213.
“한 조는 수도로 가서 디모네 닉스가 보르고 피에타와 내통한 증거를 찾고, 피에타 백작 부부의 유해를 수습한다.”
“그럼 나머지 조는….”
아이스 중령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배를 공수하란 겁니까?”
임무를 무사히 끝난 뒤엔 다시 처음 도착했던 해안 절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숨겨 둔 개인함선을 챙겨야 했고, 바다에서 자신들을 마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비레오 호와 접선해야 했다.
“수도로 향하는 지금부터는 정말 신중해야 해. 그런데 13명은 너무 많아. 신중한다고 해도 눈에 띌 거야.”
지금만 해도 그랬다.
13명이 한 번에 여관에 들어가면 눈에 띄니까, 3명만 방을 빌리고 나머지는 몰래 숨어들지 않았나.
“거기다가 멜라니 벨리피아의 사망 소식이 퍼지고 있다. 우리가 수도에 도착할 때면 이미 보르고 피에타가 어떤 수를 썼을지도 몰라.”
특함은 전투를 하러 온 게 아니다. 그저 필요한 증거를 몰래 가져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흔적은 남기지 않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인원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
“…….”
레토의 의견에 대원들은 조금씩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13명을 반으로 나눠도 무려 예닐곱 명이었다. 가까스로 은밀히 기동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었다.
“이견은?”
아무도 없었다.
“벨로 대위.”
그래서 레토는 조를 나누는 권한을 노아에게 넘겼다.
“앞으로 남은 임무들은 전부 벨로 대위의 역할이 중요해. 그러니 수도로 함께 갈 인원은 그대가 정하도록.”
막중한 책임감에 노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이미 레토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동안, 노아는 어떻게 조를 나눌지 다 생각해 뒀다.
“저와 보르 중위. 이렇게 조장을 나눕니다.”
그 말에 셀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노아가 자신을 떨어트릴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가야…!”
“아니, 넌 배를 수색해.”
노아가 단호히 말했다.
“여기서 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은 나 다음으로 너야. 그러니 네가 대원들을 이끌어야 해.”
“그런 거라면 중장님도….”
“그것만이 아니야.”
노아는 벨리피아 저택에서 획득한 비밀 협약서를 언급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해. 못해도 거기서 찾은 비밀 협약서와 다른 증거들을 왕국으로 무사히 가져가야지.”
만약 수도로 간 조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남은 대원들이라도 아들라보르로 돌아가야 했다.
레토가 조를 나눈 것엔 이런 이유도 있었다.
“…X발.”
진짜 X 같네.
셀린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결국 노아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체념의 의미였다.
“…좋은 배 구해 놓을 테니, 부모님 모시고 무사히 와라.”
셀린의 동의에 노아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렇게 13명은 두 조로 나뉘었다.
해안가로 내려가 배를 공수할 조원으로 셀린과 아이스 중령, 피스트 준위, 로간 미타스 상사, 아미레 네고 중사, 호네스 메라 일병이었다.
“하지만 조장은 중령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7년 전에 전쟁에 참전하셨으니, 저 다음으로 이곳 지리에 밝으시잖습니까.”
아이스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미, 너도….”
“난 수도로 갈래.”
아미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
아미를 셀린 쪽으로 보내려고 했던 노아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미는 네 속셈을 다 알고 있단 듯이 코웃음을 쳤다.
딱 봐도, 수도행 인원은 특함에서 가장 전투력이 우수한 놈들이었다.
물론 해안행에도 아이스 중령이나 아미레가 있지만, 수도행은 아예 대놓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꼴이었다.
그래서 아미는 수도 쪽을 선택했다.
“저쪽에는 이미 메델라가 있어. 치유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을 필요가 있어?”
“…이럴 땐 눈치가 더럽게 좋네.”
“원래 좋아.”
일부러 눈치를 안 쓸 뿐이지.
뻔뻔스럽게 대답한 아미는 수도행 조원으로 들어갔다.
“…….”
셀린은 그제야 남몰래 안도했다.
‘아미가 있으면 노아가 폭주해도 제압할 방도가 있을 거야.’
셀린은 벨리피아 저택에서 보았던 노아의 모습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중장님.”
대원들이 각자의 역할 수행을 위해 준비하는 사이.
셀린이 아무도 모르게 레토를 불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벨리피아 저택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 줬다.
***
그날 오후.
“그럼 나중에 보지.”
“무운을 빌겠습니다.”
레토와 아이스 중령의 악수를 끝으로, 특함 대원들은 두 조로 나뉘어 각각 이동했다.
수도행 조원들은 곧장 마차에 올라탔다. 이곳 영지는 수도가 가까웠기 때문에 마차가 늦은 오후에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해안행 조원들은 걸어서 영지 밖으로 이동했다.
벨리피아 영지에서 일어난 민란 봉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는 마차가 확 줄어든 탓이었다.
“그런데 배는 어디서 구해야 하는 겁니까?”
아미레 네고 중사가 물었다.
“저희가 이곳으로 오는 내내, 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지 않았습니까.”
“벨리피아 영지를 한번 둘러볼까 싶은데.”
아이스 중령의 말에 나머지 대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 지금 거기로 어떻게 갑니까!”
“동부에 배치했던 병력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지 않습니까! 지금쯤이면 벨리피아 영지에 주둔하고 있을지도….”
반박하려던 피스트 준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발상은 아이스 중령이 조금 전에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맞아. 주둔하고 있을 병력은 동부 해안을 방어하고 있었어. 아들라보르 해군을 경계해 머물렀던 놈들이라고.”
그러다 벨리피아 영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신분제가 흔들리다 못해 뿌리째 뽑힐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겁을 먹은 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둘러 이동 중일 테니, 분명 그 병력들은 엄청난 무장 상태일 것이다.
아이스 중령이 말했다.
“하지만 무기만 가지고 오는 게 아닐 거야.”
해안에 주둔했던 병력.
해안.
바다.
“……!”
그제야 특함 대원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배라는 게, 꼭 나무나 철로 만든 것만 뜻하는 게 아니지.”
***
“수도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레토가 마부에게 물었다.
“오늘 탄 사람이 그대들뿐이니, 평소보다 일찍 도착할 걸세. 중간에 세 번 정도 쉴 거고.”
특함 6명이 탄 마차는 수도까지 가는 데 대략 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마차 승객은 6명밖에 없어서 그것보다 짧게 걸릴 거라고 한다.
‘수도가 근처인데 아직도 마차라니….’
레토는 자신들이 탄 마차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기가 막히게도, 지금 이 마차가 여태 탄 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멀쩡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차는 아들라보르 왕국에선 도로가 깔리지 않은 외진 시골에서나 쓰이는, 어떤 의미로는 꽤 귀한 물건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농업용 기계가 조금씩 보급되는 중이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머물렀던 영지에서도 마동력차가 몇 대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공무와 사업에 쓰이는 것이었다.
“…….”
레토는 기분이 묘했다.
‘역시 무모한 전쟁이었어.’
애초에 시스토 제국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걸어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7년 전에도 아들라보르와 시스토의 국력은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었다.
경제력은 기본이고, 교육 수준, 문화력, 1인당 평균 소득에 복지, 의료.
심지어 반려동물 행복 지수까지.
거기다 국방력은 이미 비견할 여지가 없었다.
저 모든 분야의 발전을 이룩해낸 마탑 대폭발의 주도자인 아드벨로가 직접 선두에서 군무기를 개발 중이니까.
결국 결말은 정해진 전쟁이었다.
‘소수가 저지른 일에 고통받는 건 결국 힘없는 민중이지….’
제국의 현실을 직접 본 레토는 또 다른 결말을 확인했다.
특함이 무사히 임무를 끝내고 아들라보르로 돌아가게 된다면, 시스토 제국은 빠른 시일 내에 멸망할 것이다.
“…….”
제국의 미래를 예측해 본 레토는 슬쩍 옆을 바라봤다.
그곳엔 눈을 감고 얌전히 앉아 있는 노아가 있었다.
마법약으로 염색한 빨간 머리를 시골 아낙처럼 투박하게 올려 묶고, 옷도 추레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그녀의 고귀한 분위기를 감출 수는 없었다.
“노아가 멜라니 벨리피아를 고문했습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셀린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좀, 많이 과했습니다. 물론 도중에 멈췄습니다만….”
“그러다가 우연히 보검의 비밀을 알아 버렸습니다.”
“보검에 적힌 ‘삿된 것을 베라’는 문장은, 제국에 충성하라는 뜻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피에타 가문이 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보였던 충정은 전부….
“여보.”
레토가 제국어로 노아를 불렀다.
“…응?”
감았던 눈꺼풀이 살짝 뜨이니, 푸른 눈동자가 흐린 기색 없이 반짝거렸다.
그 눈에 비친 레토 역시 마법약으로 머리칼을 검게 물들인 채였다.
“괜찮아?”
“딱히 불편한 건 없는데?”
“혹시 불안하고 힘들다면 나의 이 너른 가슴에….”
“여보….”
감동한 노아가 레토의 손을 쥐었다.
있는 힘껏.
“남들 다 있는데 부끄럽게.”
“…….”
“그런 건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해요.”
공사 지키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냐.
다정한 말투와 매서운 눈빛을 번갈아 사용하며, 경고를 야무지게 마친 노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두 상관 겸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신혼부부를 조금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레토는 욱신거리는 손을 살살 털며 별일 아니란 듯이 싱긋거렸다.
슬쩍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숨을 편히 쉬는 노아를 보니 아픈 것도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하나 여전히, 노아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이상하긴 하군.’
셀린이 전해 준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만약 그게 정답이라면, 피에타 가문은 오랜 세월을 헛되게 보낸 것이다.
그들이 쌓은 명예와 충직했던 의무감. 이 모든 게 잘못된 해석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던 거다.
‘나조차도 충격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아미와 셀린도 충격에 말을 쉬이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노아는 너무 태연했다.
아니, 오히려 벨리피아 저택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예민함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안정을 되찾았다.
‘누구보다 미련이 많았던 녀석이….’
레토는 어느새 얕은 잠에 빠진 노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