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200화 (200/245)

200.

안보국 전 국장 체포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저 자신까지 감옥에 갇히게 된 인물.

면회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티는 락소가 준비해 둔 서류들을 찬찬히 읽었다. 거기엔 나비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몰락 귀족 가문 출신, 학교에서의 성적은 꽤 준수하고….’

이것저것 읽는 사이.

“수감자가 도착했습니다.”

아티는 서류에 고정된 눈만 슬그머니 위로 올렸다.

“…와우.”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빈정거리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손에 들린 서류 속 사진과 눈앞에 나타난 남자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구치소 밥맛이 좋은가 보네.”

“…….”

“안색이 좋아 보이는군.”

아티가 뭐라고 말하든.

“…….”

사진 속 모습보다 훨씬 깡마른 나비 칼루스는 비척대는 걸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폐인이 다 됐네.’

아티는 그런 나비가 조금, 아니 상당히 하찮았다.

마치 자신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밥도 제대로 못 넘기는 비운의 사내라도 된 것처럼 구는 꼴이 웃겼다.

‘나비 칼루스….’

서류를 덮은 아티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였다.

안보국 전 국장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았던 인물이자, 간첩 조작 미수 사건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던 중요 용의자 중 하나.

그래 놓고 저리 억울하고 원통해 하는 얼굴이라니.

‘같잖고, 하찮고, 역겹고….’

하지만 그런 놈이기에.

“나는 국왕 전하의 직속 비서관이자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아우스테르 아드벨로라고 하네.”

“…….”

이것 봐.

아티는 눈에 띄지 않게 입꼬리를 올렸다.

“…국왕 전하? 아드벨로?”

나비 칼루스는 바싹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정말 뻔하군.’

서류에 적힌 나비 칼루스는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허영’이었다.

몰락 귀족 가문 출신에 제법 준수한 학업 성적과 대외 활동, 그리고 안보국에 취업, 안보국 전 국장의 신임을 받았던 전적까지.

말 그대로 탄탄대로 같은 인생이었다.

‘그래서 꺾여 본 적이 없지.’

나비는 자신의 인생에 굴곡이란 없다고 확신하며 줄곧 살아왔을 것이다.

자신은 특별하고, 우수하며, 남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도 있을 테고.

그런 인간을 조종하는 것쯤이야, 아티에겐 아주 쉬운 일이었다.

“칼루스 씨의 상황은 저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비아냥거리며 내려다보던 시선은 지우고, 아티는 제법 정중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께서 지은 죄에 비하면 억울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아주 억울한 사항입니다.”

“구, 국왕 전하께서도 이를 아십니까?”

나비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더듬더듬 물었다.

“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티의 의미심장한 말에 나비가 메마른 입꼬리를 히죽거렸다. 갈라진 입술 껍질이 터지면서 피가 흘렀다.

“이자가 중요한 증인입니다.”

“살짝 건드리면 술술 불 놈이에요.”

“자존심 몇 번 세워 주면 됩니다.”

“여기에 그 남자가 즐겼던 취미 활동과….”

락소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나비의 허영심을 다시 자극하기 딱 좋은 정보들을 모아 뒀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아티는 락소의 조언대로 했다.

평소 관심도 없던 고급 정장을 차려입었고, 손목에는 거추장스러운 손목시계까지 찼다.

마치 너와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고급스럽고 비싼 차림이 필요하단 듯이.

“당신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어조에 나비의 안색이 점점 환해졌다.

하지만 곧 얼굴을 굳히고는 긴장을 드러냈다.

“…제게서, 뭘 원하시는 겁니까?”

“안보국 전 국장이 이번 재판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티의 물음에 나비가 고개를 말없이 끄덕였다. 그러다 이어진 아티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안보국 전 국장은 이번에 무죄를 받은 간첩 조작 미수 사건을 당신에게 뒤집어씌울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한 것이 재판이지요.”

아티는 흥분한 나비를 제압하기 위해 다가오던 구치소 직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막았다.

“나비 칼루스.”

그러곤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는 나비에게 말했다.

“앉아.”

미소를 지운 아티의 짧은 명령에 나비가 몸을 흠칫거렸다. 순식간에 바뀐 그의 분위기에 다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떨리던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주저앉다시피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아티가 다시 웃었다.

“억울하지요. 그 마음 충분히 압니다.”

“…….”

“참 못된 놈입니다. 자기를 믿고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죄를 덤터기 씌우려고 하다니. 천벌 받을 쓰레기 같으니.”

사실 거짓말이지만.

1심 결과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렇지, 사실 안보국 전 국장은 이미 벌을 받기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이자가 7년 전 선왕과 긴밀한 사이였고, 전쟁의 특수를 가장 크게 맛본 인물이란 점이었다.

‘분명 그 새끼도 뭘 감추고 있어.’

노아와 레토는 대원들과 함께 제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니 이곳에 남은 자신들은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을 완벽하게 끝내야 했다.

7년 전에 맺지 못한 마무리를 위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전부 그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아티가 독을 감춘 달콤한 사탕처럼 속삭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짓지도 않은 죄까지 저지른 공범으로 몰려 처벌받을지도 몰라. 해군에서 그댈 기억하는 군인들이 많더라고.”

“…….”

“용기를 낸다면, 그대는 영웅이 될 거야.”

불의를 참지 못하고 고발한 진정한 귀족.

“우리와 협력하겠나?”

아티는 나비의 눈빛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날개 반쪽이 타들어 간 나비가 또 다른 불빛을 발견했다.

***

비레오 호는 순항 중이었다.

이제 배를 집어삼킬 것 같던 거센 폭우는 사라졌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라 밖은 어둡고, 파도도 제법 높았지만 순항하기엔 별문제가 아니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지?”

클라리스 소장이 조타병들과 대화했다.

“이 속도라면 19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한밤중이겠군. 잠입하기엔 딱 좋아.”

“하지만 제국 동부 해안의 경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번 출항에 참여한 참모진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확실히 그 점이 걱정이긴 한데….”

클라시스 소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사실 그도 그 점이 계속 신경 쓰였다.

‘7년 전에 우리 해군이 그곳을 점령했던 기억 탓이겠지.’

그리고 해군의 움직임을 제국이 예상했단 뜻이기도 했다.

‘디모네 닉스의 짓인가….’

여기까지 상정해 뒀다고 생각하니 불쾌하고 화가 났다. 도대체 그 미친놈은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계획했단 말인가.

어쨌거나 분명한 건 딱 하나 있었다.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가 전운을 판가름하겠군.’

성공하면 아들라보르 왕국은 완벽한 승리를 쥘 것이다. 7년 전 전쟁에 비로소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는 순간, 2차 전쟁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그때.

“클라시스 소장님!”

젊은 해군 한 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불길함을 감지한 클라시스 소장의 앞에, 젊은 해군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개인함선 13대가 사라졌습니다!”

“중장님은 어디 계시느냐!”

당황한 클라시스 소장이 특함이 머무는 선실로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소장님! 특함 대원 13명 전원도 사라졌습니다!”

“행낭과 무기도 사라졌습니다!”

텅 빈 선실에 남은 것이라곤 쪽지 하나뿐이었다.

[책임은 다녀와서 논하자고.]

클라시스 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쪽지를 보자마자, 능글거리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건 레토 오케아누스의 필체였다.

조타실로 돌아온 클라시스 소장은 레이더망을 확인했다.

시커먼 화면에 붉은 점 무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거지?”

클라시스 소장의 물음에 옆에 있던 조타병이 말했다.

“제, 제국의 서부 해안 방향입니다.”

“미친….”

클라시스 소장은 이걸 본부에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몰라도, 입꼬리는 어이없는 현실과 정반대로 힐끔힐끔 올라가고 있었다.

‘어쩌면….’

근거 없는 확신은 덤이었다.

이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할 것이라고.

***

어두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특함 대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빛 한 점 없는 망망대해에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 13명뿐이었다.

준비된 작전을 무시하고 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명령 불복종을 저지르는 중인데, 비레오 호에 있는 병사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저쪽에서 자신들을 추적할까, 특함 대원들은 통신 수신 번호까지 바꿔 버렸다.

[얼마나 달렸지?]

귀에 걸린 통신기구에서 레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막 1시간 57분이 지났습니다.]

[동틀 무렵까지 3시간이 남았습니다.]

[동풍이 불고 있습니다. 전원 우측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무풍의 바다로 빠질 수 있습니다!]

피스트 준위와 로간 미타스 상사, 아미가 차례대로 말했다.

시커먼 활동복에 개인함선을 착용하고, 가슴 앞에 조그만 행낭을 멘 특함 대원들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바다를 달렸다.

[이렇게 달리고 있으니 올봄에 돌고래 장군님 배웅했던 게 떠오릅니다.]

메델라 사나 하사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그때가 편했지 말입니다….]

그녀의 혼잣말에 대원들은 격하게 동의했다.

[그러면 올여름에 치렀던 개인함선 자격시험은?]

노아가 툭 던진 말에 여기저기서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위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땐 진짜 하늘에 계신 어머님을 볼 뻔했습니다!]

[차라리 지금이 편합니다! 그건 지옥이었지 말입니다!]

태풍 속에서 개인함선을 운항하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기척을 숨기고 적지에 잠입하는 게 몇백 배는 편했다.

[그만 떠들어라!]

레토가 예민해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때마침 동풍이 더욱 거세졌다. 마치 특함 대원들을 무풍의 바다로 밀어낼 것처럼.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바로 옆이었다. 특함 대원들은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마력을 더욱 방출했다.

그렇게 계속 달리기를 한참.

[…지금부터 지휘권은 벨로 대위에게 넘긴다.]

레토가 노아를 선두에 보냈다.

선두에 도착한 노아의 눈이 일순 커다래졌다. 하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전원 감속.]

노아의 명에 따라, 대원들이 조금씩 함선의 속도를 줄였다.

그들의 눈앞에 십여 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나타났다.

드디어 시스토 제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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