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184화 (184/245)

184.

아바치리아 추기경은 신성청에서 상당히 높은 권위를 지녔다.

속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신성청 내 서열 3위였다. 주된 임무는 신성청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신부였던 그는 오랫동안 신성청을 위해 헌신했다. 그를 향한 성왕의 신임은 굳건했고, 아바치리아 추기경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 이이…!”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신성청 내부를 함부로 뒤지는 저 버러지 같은 것들을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이 괘씸한 것들!”

하지만 그라고 딱히 뭘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수사관은 부산히 움직이고, 당황한 추기경과 성직자들은 이도 저도 못하는 와중.

홀로 느긋하게 구는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바치리아 추기경은 그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네 놈이냐! 네 놈이 저 지옥에 갈 버러지들의 수장…!”

“어이구, 추기경님.”

멱살을 잡힌 남자는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재미있단 듯이 히죽거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 위에 드러난 나태한 표정과 무미건조한 음성은 추기경의 모골을 송연케 했다.

“신을 모시는 분이 이리 난폭해서 어쩌시는 겁니까.”

초면에 실례인 짓을.

제 멱살을 붙잡은 늙은 추기경의 손을 먼지 털듯이 툭, 치워낸 남자가 흐트러진 옷자락을 정리했다.

추기경은 그제야 남자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너, 넌…!”

상의와 하의가 이어진 시퍼런 옷을 입은 수사관들과 달리, 홀로 멀쩡한 정장을 차려입은 심드렁한 인상의 남자.

덥수룩한 갈색 머리에 눈꼬리가 축 처진 초록 눈동자.

상대를 묘하게 내려다보는 시선.

그리고 딱히 표현하지 않아도 온몸에서 느껴지는 우월감.

“…아드벨로?”

물어보는 추기경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늙은 성직자는 과거에 몇 번 보았던 아드벨로의 괴물 한 명을 떠올렸다.

그 말에 젊은 사내가 싱긋 웃었다.

“절 보고 누구를 떠올리셨습니까?”

“아, 아아…!”

“연배를 보면 아마 할머니가 아닐까 싶은데….”

아티는 그렇지 않으냐며 고개를 살짝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제가 할머니를 많이 닮았지요?”

“괴, 괴물 새끼…!”

“지금이라도 알아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러곤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우스테르 아드벨로라고 합니다. 국방부와 검찰의 합동 조사차 신성청을 수색 방문하러 왔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성스러운 영역에 그 더러운 발을 디딘단 말이냐!”

“국왕 전하의 명입니다.”

“…뭐?”

놀라움에 주춤거리는 추기경의 눈앞에, 아티는 수색영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이번 신성청 수색이 국왕의 명으로 진행되는 사안이며, 그 사유가 무엇인지까지 적혀 있었다.

아티는 나이가 지긋한 추기경이 수색영장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간단하게 알려 줬다.

“아스포텔이 생각보다 사교적이더군요.”

그리고 역시나.

“…….”

성왕 스켈레로 3세의 가명을 말하기 무섭게, 아바치리아 추기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거기에 대해서 베스페라가 안부 전해 달랍니다. 늙은 늑대가 저승에서 당신을 기다린….”

“잠깐! 잠깐만 기다려 보게!”

추기경이 황급히 아티의 팔을 붙잡았다.

“어, 어디서 무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건 아주 큰, 정말 큰 실수라네.”

조금 전까지 역성을 내지르던 노인이 총기를 잃고 말을 더듬거렸다. 주름이 길게 파인 눈꼬리도 파르르 떨었다.

아티는 그런 노인을 무심하게 내려다봤다.

‘들었는지 모르겠다, 라고….’

디모네 닉스의 1차 공판은 검찰 측의 증거 보충을 이유로 연기되었다.

이 소식은 라디오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신성청에서도 이를 당연히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티가 예상하는 신성청이라면, 수도에 보낸 저들의 정보원이나 첩자를 통해 그 이상의 재판 정보를 얻어냈어야 했다.

가령, 재판에서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1차 공판에선 디모네 닉스가 육군을 사적으로 움직여 피니치 구역에서 전투를 일으킨 점에 대한 내란죄 성립 여부를 논했다.

그러다가 증거 보충을 위한 유예 기간이 주어졌고.

한데 지금.

‘이 새끼들….’

아티는 조금 전 추기경의 말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뽑아냈다.

하나는, 지금 신성청은 재판 내용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능력을 잃은 상태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들은 지금 디모네 닉스가 자신들의 약점을 손에 쥐었다고 착각한다는 것.

‘디모네 닉스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자신들의 정보를 팔았다고 착각하는군.’

아티는 제 추측이 확실한지 확인해 보기 위해 미끼를 던졌다.

“추기경님.”

그는 상체를 살짝 숙여, 노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성기사단을 부르지 않으시는 겁니까?”

능청스럽게 꿈틀거리는 눈썹은 아바치리아 추기경을 압박했다.

정곡을 찔린 추기경은 아티를 기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젠 무섭다 못해 순수하게 궁금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성기사단을 당장 부르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신성청 입장에선 수사관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더럽히는 적이었다. 느닷없는 침입은 당연히 불쾌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성기사단을 부르지 않았다.

“…….”

아바치리아 추기경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아티가 영문을 모르겠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방긋 웃었다.

“이상하게도, 전 알 것 같단 말이지요?”

이에 아바치리아 추기경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저도 모르게 해 버린 행동에 그는 뒤늦게 아차, 했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 버린 뒤였다.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은 성기사단에게 무슨 변고가 있다고 말하는 꼴이었다.

속이 다 보이는 행동에 아티는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잠시 뜸을 들이던 아티가 아하, 하고 이름 하나를 말했다.

“그래. 파르수스 경.”

성기사단 1부대의 부단장.

“그자를 포함해서, 많은 성기사가 실종되었지요?”

늙은 추기경은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지?’라는 눈빛으로 아티를 바라봤다.

두려움에 일그러진 표정이 어째 낯이 익었다.

“추기경님.”

아티가 마무리를 던졌다.

“지금 그 표정, 그 새끼가 죽었을 때와 똑같군요.”

“…너어어!”

추기경의 고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분주하게 수색하던 수사관들도, 이를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성직자들도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아바치리아 추기경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아티에게 달려들었다. 늘 점잖고 엄격하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어이쿠.”

아티는 몸을 옆으로 살짝 비키며 추기경의 돌진을 가뿐하게 피했다.

아바치리아 추기경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괜찮으십니까? 나이도 지긋하게 드신 분이 발정 난 원숭이보다 더 씩씩하시군요.”

“이 개새끼가! 저주받아 사지가 썩어들…!”

“그런 말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아티는 제게 다시 달려드는 추기경의 팔을 뒤로 꺾으며 제압했다.

“진짜 저주에 걸린 건 성왕이잖습니까.”

버둥거리던 추기경의 몸이 일순 멈췄다.

“아바치리아 추기경님.”

아티는 이제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횡령 및 내란 공모죄로 체포합니다.”

신성청 벽에 그려진 자비로운 어머님이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

검찰이 신성청을 수색했단 사실은 빠르게 퍼져 갔다.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성역을, 인간의 우두머리가 침범했다니.

이에 대해 검찰은 비공개 수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일이 대중에 공개되어 유감이란 뜻을 표했다.

기자들은 왜 신성청을 수색했는지 질문을 퍼부었다.

그중에는 혹시 7년 전에 사라진 성녀와 관련되었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검찰의 대답은 딱 하나였다.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현재 재판 중인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증거를 입수하였습니다.”

수색은 그 때문에 이뤄진 것일 뿐.

절대 국교를 억압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아드벨로 대장이 검찰의 입장이 적힌 신문을 접으며 히죽거렸다. 피곤하던 차에 참 재미난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생각해?”

응접용 소파에 앉아 있던 베네딕토 군종실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착잡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 신성청 수색에는 정말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 있었다.

피니치 구역에 잠입하여 증거를 가져온 해군, 재판을 일부러 지연시키기 위해 계획을 짜 둔 검찰과 법무부 등등.

아드벨로와 오케아누스의 은밀한 협력까지.

그 속엔 베네딕토 군종실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인과응보입니다.”

모든 업은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이국의 격언, 사필귀정이 바로 작금의 사태를 의미했다.

“전 신성청을 믿었던 자였고, 제 신앙은 여전히 하늘에 계시는 위대한 어머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군종실장이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하나 7년 전 전쟁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신성청의 내부 비리를 잘 알고 있더라?”

“신성청에 잠시 파견 가서 공부했던 적이 있었는데, 출입을 엄금하던 곳을 떠올렸을 뿐입니다.”

“출입을 엄금….”

아드벨로 대장이 피식거렸다. 신성청의 속 보이는 행동이 참 아니꼽고 같잖았다.

그러고는 웃음을 싹 지우더니, 군종실장에게 물었다.

“신성청은 이제 어찌 될 것 같으냐?”

“크게 위축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 국교의 직위를 박탈당할지도 모른다.

신성청 고위 관계자들은 전부 재판에 나가 중형을 받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볼 사람들은 경악하고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잘못은 신앙을 도구로 이용하여 악을 저지른, 성직자란 가죽을 뒤집어쓴 사악한 범죄자들이 했지.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주변 이웃에게 친절하고, 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평범한 신도들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잘될 겁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

아드벨로 대장이 싱긋 웃었다.

“그나저나.”

베네딕토 군종실장이 대화 주제를 슬쩍 바꾸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게.”

아드벨로 대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달력을 힐끔거렸다.

“…사흘 남았군.”

아드벨로 대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달력을 힐끔거렸다.

특함의 제국 잠입 작전이 벌써 3일을 남겨 두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