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외로워?
내가?
“…하하.”
노아는 저도 모르게 비웃고 말았다.
외롭다니, 내가?
다시 생각해도 가당찮은 소리였다. 제 주위만 보더라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눈앞에 있는 레토는 사랑하는 남편이고, 집에는 씩씩한 여동생과 자기 할 말 조곤조곤 다 내뱉는 언니도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한숨만 푹푹 나오는 오빠도 가끔 만나고, 괴짜 중의 괴짜인 할머니와 상냥하고 잘생긴 할아버지도 있는데.
떨어져 지내지만 늘 자신들을 걱정해 주는 엄마 아빠도 있고, 군에는 친구들과 동료들도 있다.
이웃들과도 사이가 좋고, 마을에선 나름 인망도 있다.
그런 내가 외롭다니.
“…….”
하지만 어째서인지 몰라도, 노아는 레토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외롭지 않다는 그 한마디가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레토는 그런 노아를 묵묵히 기다렸다.
“…협곡은.”
그러나 노아의 입에서 나온 건, 조금 전 회의에서 말했던 서쪽 해안지역에 관한 것이었다.
“정말로 있어.”
“…….”
“그곳에 피에타 가문의 별장이 하나 있어. 가신 가문의 영지라서 종종 놀러 갔었어. 그때 아버지랑 주변을 산책하면서 분명히 들었단 말이야…!”
덤덤했던 말투는 어째선지 간절한 절규로 변해 버렸다.
“응.”
레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네 말 믿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지 못할 거야.
레토는 저 뒷말을 구태여 내뱉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노아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사람들이 노아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진짜 정체가 제국 귀족이란 사실을 모르는 건 둘째치고, 과연 그것이 진짜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노아에게 그 사실을 말해 준 피에타 백작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노아의 추억을 함께 공감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들라보르 왕국에 사는 노아 벨로는 외톨이가 아니지만.
‘제국의 귀족이었던 피에타 가문의 소녀는….’
혼자였다.
그리운 추억을 홀로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외톨이.
‘…아, 그러고 보니.’
레토는 새삼스러운 것을 떠올렸다.
노아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
아니나 다를까.
노아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던 서쪽 해안에 과연 협곡이 있는지, 당장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작전은 참모부에서 짠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대위님.”
피스트 준위는 노아에게 사과했다.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그곳에 협곡이 있단 걸 확인할 수가….”
“괜찮습니다.”
노아는 의외로 담담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곤란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생각하면, 참모부는 적절한 판단을 했을 뿐이다.
확인되지도 않은 구역으로 귀중한 전력을 보내다니, 그건 자살 방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일렁일렁 피어오르는 슬픔은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비참해졌다.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해서가 아니라, 저의 추억이 증명되지 못했단 사실이 가슴 아팠다.
심지어 그걸 할머니에게 들었다고 거짓말한 것도 속상했고.
하지만 노아는 그 감정들을 애써 무시했다.
되풀이되는 이성은 같은 결론만 반복한다. 여기에 내 추억을 증명해 줄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데, 뭐 하러 슬퍼하느냐고.
그러나 가슴은 진정되긴커녕 계속 술렁거렸다.
“외로워?”
‘괜한 말을 들어서….’
노아는 사령관실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이토록 마음이 뒤숭숭한 건 레토가 했던 되도 않는 말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외롭다니, 말도 안 돼.’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노아는 괜한 생각을 떨쳐 버리듯이 고개를 사납게 흔들었다. 옆에 있던 아미가 갑자기 왜 저러냐는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야.”
아미가 이 틈에 슬쩍 물었다.
“우리가 작전하러 가는 날에, 클라레 생일이라며?”
그 말에 노아가 왜 물어보느냔 듯이 아미를 바라봤다.
“네 동생 나중에 엄청 울겠다, 그치?”
“뭐….”
그렇지 않겠느냐며 대답하려던 찰나.
“생일파티는 언제 해? 나도 가도 되냐?”
“그건 상관없는데….”
“가서 축복 한번 내려줄게.”
아미의 속삭임에 노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미는 다 안단 듯이 히죽 웃으며 노아의 팔뚝을 제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없는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이 몸께서 값비싼 축복을 선물해 줄게. 이거 진짜 비싼 거다?”
“…….”
“짜식, 뭘 벌써 그리 감동하냐.”
하여튼 난 너무 착하다니까.
“이러다가 신성청에서 내 인성보고 성녀라고 의심하는 거 아냐?”
“지랄.”
맞은 편에 있던 셀린이 별 지랄을 다 보겠다는 시선으로 아미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아미는 메롱메롱 혀를 날름거리며 약올렸다.
“여러분.”
사령부실 안으로 대원이 들어왔다.
푸른 머리를 반듯하게 넘긴 그는 특함의 소속 대원인 아이레 네고 중사였다.
“조금 전에 보급창에서 내려온 겁니다.”
네고 중사는 가지고 온 것을 대원들의 책상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하얀 편지지와 흰색 봉투, 그리고 기밀 서류를 봉할 때 쓰는 전용 스티커였다.
“…….”
“…….”
그걸 본 대원들의 얼굴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중장님.”
똑똑, 사령관실 문을 두드린 네고 중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피스트 준위와 이야기를 나누던 레토가 무슨 일이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뭐지?”
“유서 작업을 내일 오후까지는 끝내 달라는 참모부의 전언입니다.”
“으으.”
피스트 준위가 대놓고 질색했다.
“…난 마탑 소속인데.”
“월급 양쪽에서 다 받으면서 소속 따지지 마.”
레토는 네고 중사가 건네는 편지지와 봉투, 스티커를 받아들었다.
“별거 아냐.”
레토는 7년 전에 한 번 써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역시 싫으네.”
몇 번을 쓴다고 해도, 사지를 눈앞에 두고 미리 쓰는 유서는 역시 달콤하진 않았다.
***
군인이 유서를 쓰는 경우는 딱 하나다.
위험한 작전 임무를 수행하기 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물론 모든 작전이 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최악의 경우는 존재했으며, 더욱이 군인은 그런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서를 쓰는 경우는 곧 유서를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서’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썩 달갑진 않았다.
“…내 생애 이런 글짓기는 자소서 이후로 없는 줄 알았거늘.”
특함 대원 중 한 명인 클라우스 구베르 하사가 괜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어색한 사령부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의 노력은 잘 먹혔다.
“그러게나 말이야.”
로간 미타스 상사가 동의했다.
“이 나이에 유서라고 해 봐야, 뭐 쓸 게 있겠냐.”
“심지어 저는 여자친구도 없지 말입니다.”
“너 여친 없냐? 불쌍한 녀석….”
“미타스 상사님도 애인 없잖습니까.”
벨라 토르 중사가 남말하고 있단 듯이 놀리자, 다른 대원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로간이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중령님은 뭐라고 썼습니까?”
셀린이 슬쩍 물었다.
아까부터 심각한 표정으로 유서를 적던 아이스 중령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그냥.”
아이스 중령이 그제야 펜을 놓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처자식도 있고, 집 산다고 대출받은 것도 있어서….”
그의 말에 대원들의 표정이 덩달아 애달파졌다.
“…나 죽어도 절대 재혼하지 말고 내 사후 연금이나 받으면서 애들 잘 키워 달라고 적었어.”
“…….”
“…….”
그리고 그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아이스 중령은 괜한 오해를 또 사기 전, 자신이 쓴 유서의 내용을 변명했다.
“전사한 군인의 사후 연금은 배우자와 그 가족들만 받을 수 있다고. 만약 내 아내가 재혼하면, 그 연금은 전부 국가에 귀속되지.”
“어, 그건 좀 아까운데….”
메델라 사나 하사가 놀란 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군인이란 직업은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나라에서 주는 혜택도 무궁무진했다.
그중 가장 호응이 좋은 건 퇴직연금이었다.
무탈하게 복무해서 정년에 퇴직하면, 그 연금으로 2대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은 괜한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없으면 아내 혼자 애들을 돌봐야 하는데, 돈이라도 따박따박 들어올 곳은 있어야지.”
아이스 중령의 유서는 오롯이 저가 죽고 남은 가족들의 생계와 미래만을 고려하여 적은 것이었다.
“…나 너무 쓰레기가 된 거 같아.”
까불거렸던 아미는 괜히 미안해졌다.
“너무 진지하게 쓸 필요는 없어.”
아이스 중령이 다 쓴 유서를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괜히 힘줘서 썼다간, 나중에 돌아와서 유서 처분할 때 부끄러워질걸?”
그 말에 호네스 메라 일병이 냅다 편지지를 찢어 버렸다. 읽지도 못할 정도로 갈기갈기 찢는 그의 얼굴이 시뻘겠다.
“일기 쓰듯이 마음 편안하게 써.”
말이야 그리할 수 있어도.
“…….”
“…….”
아이스 중령의 유서 내용을 알고 난 뒤, 대원들은 오히려 유서를 쓰는 게 어려워졌다.
결국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유서를 완성한 사람은 아이스 중령과 레토 뿐이었다.
“…유서도 유경험자 우선인가?”
기가 막힌 레토가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노아의 책상 위에 그대로 있는 새하얀 편지지를 보자마자 눈을 가늘게 접었다.
결국, 유서는 숙제가 되고 말았다.
‘뭘 써야 하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노아는 잠들기 전까지도 편지에 글 한 줄 적지 못했다.
“아직도 못 적었어?”
들리는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드니, 레토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여튼 진지하다니까.”
그래서 좋아하지만.
레토는 씩 웃으며 상체를 숙여 노아와 입을 맞췄다.
입술을 살짝 짓누르는 따뜻한 부드러움과 함께 비누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
하지만 노아의 뚱한 표정은 변함없었다.
“음….”
그런 노아를 바라보던 레토가 물었다.
“이름이 뭐였어?”
“무슨 이름?”
“제국에서 불렸던 이름.”
펜을 만지작거리던 노아의 손가락이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