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아드벨로 대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신성청과 디모네 닉스는 오래전부터 손을 잡고 있었다. 이들은 나라에 해악을 끼칠 불온한 사상을 품고 있었지.”
다만, 그녀의 설명 속엔 그들이 7년 전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란 사실은 빠져 있었다.
노아는 그런 대장님의 심중을 충분히 이해했다.
‘여기서 전쟁의 진짜 원흉이 드러나면 큰일이니까.’
해군의 단합이 필요한 상황에, 괜히 애국심과 충심이 뒤틀릴 수 있는 사실을 누설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은 드러나서 좋을 게 없는 비밀도 있었다.
‘모르는 게 약인 거지.’
유인물을 쥔 노아의 손가락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이런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언짢은 기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게 과연 비밀을 덮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니면 조금 전 용의선상에 오른 제국 귀족 때문인지.
노아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제국 귀족….’
손에 쥔 유인물이 기어코 구겨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배신자 한 명이 노아의 심기를 마구 헤집고 있었다.
그 사이, 아드벨로 대장이 설명을 이어 갔다.
“해군이 투입된 비밀 작전에서 발견된 증거는 디모네 닉스의 내란죄를 성립하게 하는 증거다. 하지만 국왕 전하께선 더욱 확실한 증거를 원하신다.”
“확실한 증거라고 하시면?”
해군 사관학교 교장인 볼트리아 중장이 눈을 가늘게 접었다.
그는 원래 이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볼트리아 중장은 아드벨로 대장의 뒤를 이을 차기 참모총장으로 내정이 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해군 본부 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아둘 의무가 있었다.
“확실한 증거….”
질문을 받은 아드벨로 대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곤 혀로 윗입술을 살짝 핥았다. 천하의 그녀도 긴장하고 있단 뜻이었다. 그걸 바라보는 비서실장의 숨소리가 살짝 거칠어졌다.
곧, 아드벨로 대장이 말했다.
“제국에 증거가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있다.”
아드벨로 대장은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해군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국왕이 명령한 준전시상태에 대비하는 작전명 ‘아비스’는 심연을 뜻하는 고대어로, 아주 깊은 바닷속을 비유하기도 했다.
여타의 방어준비태세와 그에 준하는 작전들은 말 그대로 전쟁을 대비하거나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아비스는 정반대였다.
국가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군통수권자의 절대적 명을 받들어 적진에 직접 잠입하는 특수 명령이었다.
심해처럼 조용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준전시상태를 발동하되, 모든 것은 극비로 진행될 것이다.”
그렇기에 해군들은 지금부터 대대적인 비밀 작전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목적지는 시스토 제국.”
작전 준비를 위한 기간은 열흘로 결정되었다.
‘열흘….’
노아는 잔뜩 고양된 숨을 바들바들 떨며 내뱉었다.
열흘 뒤.
드디어 간절히 바라던 귀향이었다.
***
긴급회의는 동이 트고 어둑하던 하늘이 새하얗게 눈부실 정도로 밝아진 뒤에야 끝났다.
“아, 지친다….”
참모총장실로 돌아온 아드벨로 대장은 응접용 소파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다리 하나는 소파 등받이 위에 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봤지, 아까 그 얼굴.”
“…….”
진하게 우린 홍차를 가져온 비서실장이 쓰게 웃었다.
어떻게 보지 못할까.
회의 내내 분노를 억누르고 참던 노아의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그 아이가 미친 듯이 날뛰지 않으려고 인내하던 모습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안타까웠다.
노아의 손에 들려 있던 유인물은 결국 쓰지 못할 정도로 우그러져서 새로운 것을 하나 받아 가야 할 지경이었다.
비서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가지 못하게, 막는 건….”
“막으면 걔가 널 죽일지도 몰라.”
아드벨로 대장이 심드렁히 말했다.
그 말에 비서실장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아드벨로 대장이 혀를 짧게 찼다.
“제국에 가는 건, 노아가 우릴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야.”
아들라보르로 숨어들어 온 뒤, 노아는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새로운 가족, 어린 동생을 키울 수 있는 평화롭고 안전한 일상,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까지.
하지만 거기에는 노아의 미래는 없었다.
노아에게 가장 최우선은 언제나 클라레였다. 그리고 다음은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의 시신이었다.
“내가 노아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아?”
“신랑감이 마음에 들어서?”
“뭐, 괴롭히는 맛은 있지.”
아드벨로 대장이 킬킬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손녀의 결혼을 허락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노아가,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잖아.”
해군사관학교를 다닌 것도, 언덕 위 벨로 저택으로 분가한 것도, 해군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도.
전부 클라레와 죽은 친부모를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혼만큼은 달랐다.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올려두고 살던 녀석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었어.”
하필 그 상대가 자기 가족을 파멸로 몰아넣은 남자의 핏줄이란 것도 기구했지만, 그래도 둘 다 서로 사랑해서 함께하겠다는데.
반대할 마음은커녕 기쁨에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그래서 내가 레토 그 녀석이 예뻐 죽지.”
“그러면 조금 덜 괴롭히시지 그러셨습니까.”
“에이, 그건 아니지!”
아드벨로 대장이 콧방귀를 피식거렸다.
“내가 분명히 도착하기 전에 결혼하지 말라고 했는데! 도착하고 오니까 벌써 결혼해서 살림까지 합쳤잖아!”
그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에서 열불이 난다며 으르렁거렸다.
비서실장은 이때다, 싶어 홍차를 내밀었다.
마침 적당히 식은 홍차가 은은한 향을 내뿜으며 아드벨로 대장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계획대로, 대장은 홍차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잔을 전부 비웠을 즈음.
“그러니까.”
아드벨로 대장이 말했다.
“이번 작전엔 노아가 반드시 참가해야 해.”
마주하게 될 슬픔은 너무나 잔혹할 테지만, 그녀는 노아가 반드시 견디어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다.
“…돌아오면 결혼식이나 한 번 더 시킬까?”
아드벨로 대장의 중얼거림에 비서실장이 동의하듯 방긋 웃었다.
“결혼식을 못 봐서 아쉬웠는데.”
“그치? 게다가 이번에 하면 온 가족이 다 모이는 거잖아.”
죽은 친부모에게도 그 모습을 보여 줘야지.
아드벨로 대장은 다 마신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샤프 영지를 지키는 비밀 조직은 정기 모임을 위해 언덕 위 벨로 저택에 모였다.
저택 옆 차고에 모인 아이들은 화사한 색상의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앉았다.
간식은 아스가 만든 짭조름한 감자튀김과 시원한 청포도 주스였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직의 우두머리인 클라레가 대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방학 숙제는 다 했어?”
“그림일기랑 만들기 숙제 빼고는 다 했어.”
리리가 먼저 말했다.
“아무도 훔치지 못하는 저금통을 만들 거야. 동전을 훔치면 못이 튀어나와서 파상풍에 걸려.”
클라레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훌륭한 발상이었다.
“나도 일기 빼고는 전부 했어.”
보르가 말했다.
“나도.”
셀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기랑 책 읽기 한 권만 남았어.”
세레니가 말했다.
“으음, 좋아. 모두 성실하고 바람직한 마레이 학생으로서 꾸준히 숙제를 했구나.”
클라레는 대원들의 성실함에 감탄했다.
“참고로 나도 일기 빼고는 숙제 다 했어. 얼마 전에 세레니랑 같이 만들기 숙제로 필통을 만들었지.”
비록 바느질 대부분을 아스가 해 줬지만, 천 위에 도안을 그리고, 단추를 꿰매는 건 자신들이 해냈다.
근황을 전부 주고받은 뒤, 드디어 비밀 조직의 정기회의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어른들의 무심함이었다.
“언니랑 형부가 변했어….”
조금 전까지 씩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클라레는 풀 죽은 목소리로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새벽에 갑자기 일 나간다면서, 전부 군대로 가 버렸어.”
“우리 아빠도.”
센샤도 한결 기운 빠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최근 부모님이 종종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눈 적이 많았다.
그때면 센샤도 괜히 눈치가 보여서 절로 입을 다물게 된다.
부모님은 늘 별일 아니라고 웃어 보이지만, 그래도 센샤는 뭐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니, 나갈 때 표정이 엄청 무서웠어.”
“울 아빠도….”
군인을 가족으로 둔 아이들은 불안을 품고 있었다.
“혹시….”
보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전쟁이 일어나려는 거 아닐까?”
보르의 말에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군인이 바쁜 거는, 전쟁 말고는 없잖아.”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센샤가 서둘러 반박했다.
“아빠가 말했어!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이겨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제국에서 또 싸움을 걸 수도 있잖아.”
다섯 명 중 가장 똘똘한 보르가 안경 콧대를 손가락으로 척 올리며 말했다.
“너희도 알지? 우리 부모님이 마탑에서 일하는 거.”
보르의 집안은 대대로 아드벨로의 가신 가문이었다.
지금도 보르의 부모는 마탑에서 근무 중인데, 최근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식사 중에 몇 번인가 한 적 있었다.
아이 앞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 같으나, 영민한 보르는 그 대화 내용을 거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이해도 해냈다.
“계속 간첩 사건도 일어나고, 나라가 엄청 시끄럽대.”
“…….”
묵묵히 듣던 세레니가 클라레를 살폈다.
“힝….”
불안해진 클라레는 입술을 삐죽이며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덩달아 세레니도 가슴이 철렁거렸다.
“전쟁은.”
세레니가 힘을 주어 말했다.
“안 일어날 거야.”
단호한 말에 클라레를 비롯한 친구들이 세레니를 바라봤다.
“왜냐하면, 해군이 지켜줄 거니까.”
“마, 맞아!”
리리도 세레니의 말에 동의했다.
“엄마가 그랬는데, 아빠가 못된 짓 하려는 걸 경찰이랑 해군이 잡아서 혼내 줬다고 했어!”
리리가 클라레에게 말했다.
“그때 아빠 잡아 준 해군이, 노아 언니라고 했어.”
“울 언니…?”
클라레가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거렸다.
“확실히, 해군은 강하지.”
보르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일어나도, 해군이 다 잡아서 물리칠걸?”
“맞아! 해군은 강해!”
“게다가 클라레 집에는 해군이 네 명이나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아이들은 한 명씩 해군이 얼마나 강한지 성토하며, 전쟁이 일어나도 해군이 금방 물리칠 거라고 자신했다.
“…응.”
클라레가 한결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불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