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아들라보르에서 마약은 상당한 중범죄였다.
마약 소지, 마약 흡입 등, 어떤 것이건 마약과 관련된 범죄는 초범이어도 반드시 구금형이었다.
그리고 마약 제조는 무조건 사형이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수도에선 마약을 재배하고 외국에 유통했던 전직 왕실 기사의 1심 결과가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검찰에선 사태의 위중함을 고려하여 사형을 구형했다.
세간에서도 1심 판결은 사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나라에서, 마약과 연루된 사건만 벌써 세 개나 일어났어. 프세드 렐리, 육군 내 피아 마약.”
그리고 오늘 남부에서 올라온 소식까지.
심지어 거기엔 왕국으로 밀입국하려는 간첩까지 있었단다.
“…간첩이 맞는가요?”
아이트라가 물었다.
왕국에는 먹고 살기 위해 몰래 숨어들어온 제국민이 제법 되었다.
밀입국한 제국민을 간첩이라고 확정 짓기엔 조금 성급한 느낌이 있었다.
“아이트라.”
알버스가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느리게 쓸어올렸다.
사르륵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백발이 서슬 퍼렇게 번뜩이는 그의 눈동자를 살짝 덮었다.
“네 염려는 알고 있다. 아마 그 점 때문에라도 지금 남부 역시 신중히 조사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들이 간첩이라고 확신하고 있군요.”
아이트라의 말에 알버스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긍정의 뜻이었다.
“난 왕국의 국방을 수호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란다.”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며, 나라를 위협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자들은 항상 의심해야 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범죄 조직의 배를 타고 넘어왔어. 간첩이란 의심을 최우선으로 해 둬야 해.”
“그건 그렇네요.”
아이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는 그 범죄 조직의 뒷배로군요.”
“이쯤 되니, 의심을 안 할 수 없어.”
“신성청 말인가요?”
아이트라가 물음에 알버스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역으로 되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돌아온 물음에 아이트라가 저도 모르게 한쪽 눈을 찡그렸다.
오랜만에 보는 딸아이의 앳된 모습에 알버스가 잠깐이나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트라가 두 무릎 위에 다소곳이 모은 손가락 하나를 까딱, 움직였다.
“…여기서 문제는.”
알버스는 아이트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체포된 불법 폭력 조직의 진짜 흑막이겠죠.”
그녀는 그 흑막이 신성청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물론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어쩌면 그 남자와도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디모네 닉스.
아이트라 역시 최악을 가정해야 했다.
그녀는 그 남자의 이런 점이 가장 무서웠다. 인간이 만들어낸 상식을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가 너무도 잔혹했다.
디모네 닉스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누구의 면회도 받지 않고 홀로 독방에 있는데, 아이트라는 그 남자와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만으로도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괴물을 상대하는 건, 이토록 끔찍한 일이었다.
“…흑막도 흑막이지만.”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 아이트라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실, 이것도 꽤 중요한 이야기였다.
“마약과 무기의 출처가 제국이고, 그걸 왕국으로 수출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에요.”
“그래.”
알버스가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알싸한 것이 식도를 타고 떨어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그러나 도수가 제법 높은 이 술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자신의 속을 달래 주진 못했다.
“제국 정세가 불안정한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
국방부 장관이란 직책답게, 알버스는 시스토 제국의 정세를 늘 주시하며 매일 올라오는 정보를 파악해 뒀다.
“특히 요즘은 그게 더해.”
현 시스토 제국은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
전쟁을 치른다고 너무 큰 돈을 써 버린 탓에, 제국은 지금 부도가 나기 직전이었다.
배상금, 피해 보상금, 전쟁 부채 등등.
이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 제국이 선택한 건 제 나라 국민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경제적 문제는 삶의 질을 무너트리지.”
나라가 돈이 없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니 치안이 엉망이고, 돈을 잃고 삶이 궁핍해진 사람들은 결국 나쁜 방향을 힐끔거리게 된다.
“지금 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마약이라더구나.”
“얼마나요?”
“병원비가 없어서 마약으로 통증을 참는다는군.”
“…….”
아이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도 어느 정도 파악한 정보였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제국의 현 상황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지하경제가 활성화되는 중이군요.”
“심지어 그걸 황실이 몰래 주도한다는 추측도 있어.”
“세상에….”
아이트라는 말을 아꼈다.
끝내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안 그러면 평소 잘 쓰지도 않는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문득, 어느 평론가가 쓴 글이 떠올랐다.
그 평론가는 디모네 닉스를 비롯한 현 군 관련 재판에 대해, 7년 전 전쟁 이후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시사했었다.
지금, 아이트라는 그 말을 뼈저리게 공감했다.
‘무기를 개조하고, 마약을 만들어….’
그걸 왕국에 팔아넘겼다.
불법 폭력 조직과의 밀거래를 통해.
간첩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숨어 있었고.
“…….”
톡, 톡.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까딱이는 아이트라의 침묵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아이트라.”
지켜보던 알버스가 입을 뗐다.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
그는 이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책사이자, 전략 연구원인 오케아누스 후작에게 물었다.
아이트라가 감았던 눈을 느리게 떴다.
그리고 알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올 한 해에 일어난 일말의 사태들을 비롯해, 지금 왕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단 ‘왕국’만의 일이 아니에요.”
아이트라가 숨을 짧게 고르며 말했다.
“7년 전의 고름이 다시 커졌어요. 터지기 직전이죠.”
“국왕 전하께 너의 의견을 전해도 되겠느냐?”
“최대한 빨리, 서둘러 저와 만나게 해 주세요.”
아이트라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시스토 제국이 또 한 번, 이 나라에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어요.”
그것도 최악의 방법을 선택해서.
“제 예상이 맞는다면, 제국은 아들라보르 내부에 무력 폭동을 일으키려고 해요.”
***
아이트라의 염려는 곧장 국왕에게 전해졌다.
밤중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국왕은 크게 분노했고, 당장 관련 부처 장관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삽을 없애야 할걸?”
국왕은 대뜸 농담으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안 그러면 지금 당장 내가 선왕의 무덤을 파서, 그 썩은 몸뚱아리를 산산조각 낼 테니.”
어마어마한 불효를 내뱉는 국왕의 눈빛엔 농담 한 줌도 없었다.
그는 지금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만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떤 누구도, 그런 국왕을 말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 그의 심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니만 못한….”
망할, 빌어먹을.
그리고 자체 음소거 된 욕설들.
치미는 불효를 그렇게 겨우 다스린 국왕이 착석하며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보고해.”
옆에 있던 보좌관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현재 해군에서 밀입국한 제국인 3명을 비롯해, 함께 체포한 불법 폭력 단체 단원 일부를 심문 중입니다.”
“어디에서?”
“‘검은 건물’입니다.”
알버스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저런.’
잠깐이나마 동정심이 들었다.
‘검은 건물’은 해군 본부 내에 있는 어느 특정 건물 한 채를 의미한다.
겉보기에는 창고처럼 생긴 단층 건물이다. 겉면이 시커멓게 칠해져 있고 접근을 막은 통제 구역이라 뜬소문이 많았다.
예를 들면, 그곳에서 비밀리에 고문을 자행한다는 그런 소문.
그리고 알버스는 그 뜬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관계자 중 한 명이었다.
“…어디까지 알아냈다지?”
국왕이 물음에 보좌관이 대답했다.
“제국 고위 계층이 이번 밀거래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회의실 내부가 술렁거렸다.
“가관이군.”
국왕이 손을 살짝 들자, 회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계속하게.”
“최근 말이 많은 군 관련 재판 소식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특정 인물의 구속된 사실이 알려진 뒤에….”
“…그 뒤에 밀거래를 주도했다고?”
말을 중간에 끊은 국왕이 뒷말을 예측했다.
보좌관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의 추측이 정확했다.
“해군에선 왕국 내부에 제국 고위층과 밀통하는 반역자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건 생각머리가 있는 놈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어.”
국왕은 일부러 날카롭게 대꾸했다.
“핵심을 말해.”
“…….”
잠시 머뭇거리던 보좌관이, 숨을 고르며 이내 말했다.
“디모네 닉스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쾅!
보좌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날카롭고 묵직한 굉음이 울렸다.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보니, 알버스 오케아누스 장군이 벌떡 일어나 있었다.
그가 앉았던 자리의 테이블 모서리에 파이다 못해 둥그렇게 부서진 홈 자국이 있었다.
바닥 아래로 떨어진 나무 파편이 먼지처럼 뒹굴었다.
옆에 앉은 장관들은 눈치껏 귀를 막거나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 모두 백사자를 함부로 진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저 맹수가 디모네 닉스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도 그자를 증오하고 있었다.
“…국왕 전하.”
눈이 반쯤 돌아버린 듯한 알버스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괴물과 연관되었단 증거는 무엇입니까?”
“보좌관.”
국왕이 어서 말하란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살 떨리는 회의실 분위기를 가까스로 견디며, 보좌관이 말했다.
“이, 이번에 체포되어 심문 중인 간첩 세 명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으나, 믿을 만하다는 게 해군 측의 입장입니다.”
“이유는?”
“디모네 닉스와 밀통했다는 제국 고위층의 정체 때문입니다.”
“누구인데?”
“보르고 피에타입니다.”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
알버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주 그냥.”
국왕은 이제 체념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렸다.
“X 같은 미친 괴물 새끼가 발도 넓지!”
보르고 피에타.
그자는 7년 전 제국의 전쟁 선포를 강하게 주장했던 전범 중 한 명이며.
시스토 제국의 영광이었던 피에타 가문을 추락시키고, 선대 가주인 제 친동생을 죽인 배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