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174화 (174/245)

174.

회의를 마친 경찰들과 노아는 배 위에 올라탔다.

경찰들이 낡은 방수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노아 역시 개인함선을 몸에 부착했다.

‘한 달 만에 찬다고 이렇게 무겁냐….’

노아는 이번 작전에 참여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몸에 걸치는 도합 80kg의 개인함선은 꽤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적응할 수 있는 이 기회가 무척 다행이었다.

‘이걸 차고 제국에 잠입해야 한다니.’

노아는 잠시 아찔해졌다. 어쩌면 제국으로 잠입하는 작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

“…….”

경찰들이 개인함선을 착용하는 노아를 빤히 구경했다.

시선을 느낀 노아가 조그맣게 웃었다.

“…재밌는 구경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안해진 경찰들이 다른 뜻은 없었다며,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저 신기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아무래도 개인함선은 해군의 비밀병기 같은 거니까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저기….”

경찰 무리 중 가장 막내로 보이는 사내가 손을 살짝 들었다.

“한번 착용해 봐도 됩니까?”

“이 미친놈이!”

옆에 있던 선배가 불호령을 던졌다.

“군 무기를 자격도 없는 놈이 함부로 다뤄서 어쩌려는 거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그리 소리 지를 것까지야….”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동료들을 놔둔 채로, 위길 경위가 다가와선 한 번 더 정중히 사과했다.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개인함선이 워낙 알려진 바가 없는 무기니까요.”

“솔직히 저희도 해군에서 특함의 전력을 배치해 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평소보다 들뜬 상태입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하셨나요.”

노아의 물음에 위길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바다는 해군의 영역이기도 하니….”

처음에는 고속정 같은 작은 함정으로 아예 현장을 기습하는 작전을 짰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원 요청을 받은 해군에서 역으로 새로운 작전을 제안하더니, 특함 병력을 차출해 주겠다고 먼저 말했다고.

“…….”

싱긋 웃는 노아의 속내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대장님 짓이구나.’

특함의 사령관은 레토지만, 그 외에도 특함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특함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아드벨로 대장이었다.

‘어지간히 화가 나셨나 보군.’

손녀 친구한테 그런 불행한 가정사가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고 화가 났을까.

노아는 작전 중에 실수로 리리의 친부를 몇 대 쳐도 해군 측에서 무마해 줄 것 같단 확신이 들었다.

사색에서 막 벗어날 즈음.

어선이 덜덜 엔진 소리를 내며 출항했다.

어느 정도 바다로 나오니, 멀찍이 떨어진 어선 몇 대가 보였다.

어망을 던지며 작업에 열중하거나, 새벽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는 어선들이 보였다.

“무전기입니다.”

위길 경위가 노아에게 무전기를 전달했다.

“대상이 가까워지면 저희가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작전 예상 소모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녀석들의 배 중 하나에 추적기를 달았습니다.”

위길 경위가 배 운전석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경찰이 미리 설치해 둔 탐지 시설이 있었다.

검은 화면에 초록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데, 그 속에 빨간 점 하나가 중앙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까 말했던 추적기의 발신 신호였다.

“곧 마주할 겁니다.”

못해도 10분은 걸릴 것이란 말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바다로 몸을 던졌다.

던지는 순간, 노아는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찰나에 마력을 흡수한 개인함선은 투명한 보호막을 펼쳐 노아의 몸을 감쌌다.

덕분에 바다에 가라앉은 노아의 몸은 물에 젖지 않았다.

곧 해수면 아래 노아의 모습이 빠르게 감춰졌다.

이를 지켜본 위길 경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군.’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노아가 방출했던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느꼈다.

‘저 정도의 거대한 마력을 찰나에 만들어 내다니.’

피부를 칼로 찌르는 듯한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경지였다.

위길 경위만이 아니었다.

다른 경찰들도 조금 전 노아에게서 전신의 털이 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몇몇은 턱 밑으로 식은땀이 송골 맺힐 정도였다.

“휴우….”

정작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노아는 그제야 편안해졌다.

‘힘을 방출하니 편하긴 하네.’

묵직한 개인함선도 마력을 방출하니 제법 버틸 만했다.

평소 훈련할 때 느꼈던 익숙한 감각들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평소보다 훨씬 가벼운 기분이었다.

‘역시 오러 때문이겠지?’

부부검을 손에 넣은 뒤로 꾸준히 해 온 오러 훈련 덕에, 마력의 운용이 눈에 띄게 능숙해졌다.

특히 이번 출장 때 오러를 사용해 전투까지 했으니, 더욱 흐름이 원활하게 느껴졌다.

[대위님.]

허리에 찬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노아가 무전기를 들었다.

“예, 잘 들립니다.”

[목적물이 근접 중이라, 저희도 지금부턴 어민인 척 연기하겠습니다.]

배 아래로 어망이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말에 노아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배가 가까워지면, 저희가 신호로 붉은 어망을 펼치겠습니다.]

그러면 목적물 아래로 접근하여, 용의자들이 탄 배의 프로펠러를 망가트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 그 뒤엔 저도 진압에 합류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무전을 마친 노아는 조금 더 몸을 낮춰 배 밑으로 들어갔다.

‘못해도 10분은 걸린다고 했지?’

노아의 개인함선은 잠수용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닷속에 잠수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최대 20분, 깊이는 최대 4m입니다.”

“모든 기능을 끄고 보호마법과 굴절마법만을 발동하면?”

“잠수 가능한 깊이는 그대로나, 시간은 못해도 5분 정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제 결혼식 날, 손가락 해적단을 소탕했던 방법과 거의 비슷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노아는 주변을 예의주시했다.

곧 양옆으로 어망이 떨어졌다. 평범한 파란색 어망이었다. 신호를 줄 때 떨어트리겠다던 붉은색은 아니었다.

때마침 어망은 바닷속 물고기 떼를 솜씨 좋게 잡았다.

생각지도 못한 만선에 노아가 피식거렸다.

물고기를 낚은 어망이 다 건져질 즈음, 2시 방향으로 조그만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붉은색 어망이 물속으로 던져졌다.

‘저거구나!’

허리에 찬 무전기에서 지직 소리가 났다. 위길 경위가 무전기를 켜서 주변 상황을 들려주고 있었다.

[저 배는 뭐지?]

[글쎄요, 어어…]

[왜 저희 쪽으로 다가오는 거죠?]

경찰들의 어색한 연기에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노아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배를 향해 조용히 접근했다.

물속에 잠긴 탓에 바깥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수면 위로 기다란 물체가 어선을 향해 위협적으로 뻗어지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노아의 움직임이 더욱 신속해졌다.

‘저거, 어디선가….’

석연찮은 기시감을 느끼며, 노아는 배에 달린 프로펠러를 공격했다.

물속에선 총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법으로 직접 가격했다.

손끝에 조그맣게 응축된 마력이 프로펠러를 향해 발사됐다.

콩알만 한 마력탄은 프로펠러를 단번에 부러트렸다.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선체를 흔들었다.

“어, 어어어!”

“으아! X발 갑자기 뭐야!”

노아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흔들리던 배에 몸을 가누느라 정신없던 괴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총 여덟 명.’

빠르게 배 위에 있는 인원을 파악한 노아가 총을 들었다.

탕! 탕!

그리고 순식간에 발포했다.

“으아아아!”

“아악!”

노아가 쏜 총은 괴한들의 손등과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비켰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들린 흉기를 떨어트리고, 위협을 취하려던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데엔 더할 나위 없었다.

그 틈에 배를 붙인 경찰들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꼼짝 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전원, 마약 밀거래 및….”

“아이고, 불법 무기까지 소지했네?”

“습! 가만히 있어!”

경찰들이 괴한들을 제압하는 사이.

“…….”

노아는 그들 속에서 누군가를 찾았다.

“하아.”

그리고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조금 전에 노아에게 총을 맞아 손등에서 피가 흐르는 남자가 고개를 벌떡 들었다.

남자는 노아를 보자마자 눈을 불안하게 떨었다.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사실은 알았지만.

“저 누구인지 알죠?”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따님에겐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

리리의 친부는 딸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고개를 휙 돌렸다.

뭐가 그리 분한 건지 굳게 다문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심하긴.’

노아는 저 표정을 잘 알았다.

범죄자들이 되도 않는 자기 연민에 푹 빠져서, 제 처지가 억울할 때 꼭 저런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이 이 지경이 된 게 전부 세상의 탓인 것처럼, 반성은 곧 죽어도 안 하는.

위길 경위가 염려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는 사이입니까?”

“제 동생 친구의 아버지입니다.”

“저런.”

위길 경위가 진심으로 동정했다.

“괜찮습니다. 저 인간이 죽어도 눈 깜짝할 사이는 아니거든요.”

“가족분들이 걱정이군요.”

“얼마 전에 이혼당했어요.”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현장 수색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경찰들은 배에서 상당량의 마약을 발견했다. 그리고 불법 개조 총기류, 도박에 쓰이는 사기용 카드 같은 것들도 나왔다.

“체포한 8명 중 3명이 제국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데?”

배는 한 척이었는데, 어떻게 밀거래를 한 거지?

어선에서 밖을 살필 때도, 다른 선박은 보이지 않았다. 위길 경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석연찮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노아가 입을 열었다.

“이미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진 경찰들의 시선이 체포된 범죄자들을 향했다.

눈이 마주친 범죄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듯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

위길 경위가 분을 억누른 채로 중얼거렸다.

“지금, 저희가 밀입국하려는 간첩들도 잡았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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