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무죄라고?”
쾅!
라디오 뉴스를 들은 아드벨로 대장은 주먹으로 애먼 책상을 쳤다. 책상 모서리엔 파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살벌한 참모총장실의 분위기는 문밖으로까지 여실히 전해졌다.
“자네들은 조용히 있게.”
비서실에 있던 비서실장이 평소처럼 침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비서들은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
비서실장이 참모총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짜증을 애써 가라앉히기 위해,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던 아드벨로 대장이 비서실장을 보자마자 말했다.
“어디까지 알아냈어?”
“현재 수도 측에 연락해 뒀습니다. 국방부에서 재판 과정 조서를 입수하면 바로 전보로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미쳤어? 그게 어떻게 무죄야!”
“뉴스에서 확인한 바, 정확히는 부분 유죄입니다.”
안보국 전 국장의 재판 쟁점은 두 가지였다.
횡령의 고의성. 그리고 간첩 사건을 조작하려 했던 의도.
그중 재판부는 횡령은 고의성이 인정되어 유죄를 내렸으나.
“…간첩 조작 사건은 의도적 악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아드벨로 대장이 조용히 뒷목을 잡았다.
“비서실장.”
대장은 분을 감추지 못해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명했다.
“그 판사 새끼 이름하고 정보 가져와.”
“대장님. 진정하십시오.”
비서실장이 점잖게 타일렀다.
“군인은 어떤 정치적 행보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재판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도 정치적 행보냐?”
“그랬다간 자칫 쿠테타를 도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
“지금 재판을 기다리는 머저리를 떠올리십시오.”
반역죄 재판을 눈앞에 둔 디모네 닉스를 생각하면, 해군은 이번 일에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되었다.
“…쯧.”
아드벨로 대장이 마땅찮단 듯이 혀를 찼다.
하지만 아까보단 차분해진 기색이었다.
“…….”
잠시 말이 없던 아드벨로 대장이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긴급회의 소집해.”
“정보가 모이는 대로 진행할까요?”
“아니, 지금 당장.”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대회의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자리에 참석한 간부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 역시 조금 전 라디오를 통해 발표된 안보국 전 국장의 1심 재판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레토는 그 재판에 증언까지 하고 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번 1심 결과가 기가 막혔다.
“이건.”
아드벨로 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잘못 아니야.”
드물게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회의실을 압도했다. 지금 아드벨로 대장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간부들 역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침묵은 아드벨로 대장의 감정에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코 분노해야 할 결과지.”
해군에 와서 사기를 치려던 안보국의 행보가 무죄로 판명났다.
이건 당연히 해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하나 그 전에.
반드시 따져야 할 것이 있었다.
“증거, 증언. 모든 것이 다 갖춰졌는데도 무죄란다.”
무죄인 이유는 하나.
“간첩 조작 행위에 의도적 악의가 없어서. 그래서 그 행위는 무죄라고 한다.”
간부들의 불쾌감이 더욱 커졌다.
“나 참.”
제 입으로 말하고도 기가 막힌 글로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간부들이 앉은 뒤쪽을 느리게 서성거렸다.
“이건 아니지 않냐?”
아드벨로 대장이 물었다.
“의도적인 악의란 게 도대체 뭔데? 애초에 ‘악의’라는 단어 자체에, 나쁜 짓을 하겠단 의도가 명시된 거 아닌가?”
천진난만 아이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물음엔 비아냥이 가득했다.
의도적인 악의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단어 조합이었다.
간첩으로 억울하게 몰릴 뻔한 피해자가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는데, 되도 않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이면 재판답게 죄의 유무를 판단이나 하지….”
간부들의 뒤를 한 바퀴 느리게 돈 아드벨로 대장은 다시 자신의 자리인 상석으로 돌아왔다.
“…공감도 못 할 개똥철학을 왜 논하냐고.”
후우.
그러곤 제 자리에 서서 숨을 깊이 들이켜더니….
쾅-!
거센소리와 함께, 의자가 테이블 위를 날아갔다.
아드벨로 대장이 한쪽 발을 번쩍 들어서 눈앞에 있는 의자를 발로 찼기 때문이다.
날아간 의자는 반대편 문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누구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X발!”
푸하하하!
아드벨로 대장이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한참을 웃어 댔다.
“의도적 악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이 역광처럼 그녀를 비추니, 그 기괴함이 더욱 증폭되어 광기가 선연하게 느껴졌다.
과연 아드벨로의 괴짜라 불릴 법한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불현듯 웃음을 멈췄다.
“아주 재밌네.”
그녀는 테이블에 손을 짚으며 상체를 살짝 기울이곤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린 이 일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선 안 돼. 군인은 절대 행정과 사법에 영향력을 내비쳐선 안 되거든. 군사력을 가진 우리의 업보 같은 거지.”
군대는 절대 정치성을 지녀선 안 된다.
힘을 가진 자의 행보는 항상 조심스러워야 했다.
아무리 나라의 일이 불만이더라도,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면 군인의 파업은 절대 용납 불가능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
침묵하는 간부들의 표정에 사악한 심기가 드리웠다. 그 속에서 베네딕트 군종실장은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레토였다.
“우리 해군은 그저 하던 일만 하면 됩니다. 아들라보르의 바다를 수호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만을 바칠 뿐.”
아드벨로 대장이 테이블을 짚었던 손을 떼더니, 곧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그래.”
그녀는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해군을 훑어봤다.
“너흰 그것만 하면 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침묵하거라.
아드벨로 대장이 명령했다.
명령을 받드는 간부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회의실이 떠나갈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
그날 오후.
“아드벨로는 이번 재판 결과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아드벨로의 가주, 제니우스 아드벨로가 오늘 오전에 발표된 안보국 전 국장의 1심 재판 결과에 대한 성명을 냈다.
얼마 전에도 아드벨로는 테네브레의 안보국 합류에 관한 문제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조차 아드벨로는 서면을 통해 의사를 드러냈다.
괴짜로 유명한 아드벨로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공식적으로 모습을 비추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가주가 직접, 자택에서 방송용 마이크와 장비 등을 설치해 이번 재판에 대한 아드벨로의 입장을 직접 밝혔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악의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증거와 증언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깨트린 재판부의 결정에 치가 떨린다.”
마이크를 통해 왕국 전역으로 퍼지는 제니우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그녀가 발표하는 내용 속 단어들은 정말 격렬했다.
“사법부는 그딴 인간들을 판사로 내버려 둔 것을 영원한 수치로 여기게 될 것이다.”
심지어 1심 판결을 내린 재판부 판사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직접적인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드벨로의 성명은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왕국은 물론이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으로 손꼽히는 아드벨로가 특정 사건을 언급하며 적나라한 비난을 던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재판 결과에 의아해하던 사람들도 덩달아 동조하며 판사들을 욕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아드벨로의 입장 표명이 해군의 정치적 견해를 대신 내비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아드벨로 전대 가주인 글로리아 아드벨로가 현재 해군 수장으로 역임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관심이 해군을 향했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은 단 하나였다.
“아드벨로 가주의 성명은 해군과 일절 관련 없습니다.”
해군 대변인의 답변은 짧고 간결했다.
그리고 이를 끝으로 해군은 모든 질문에 침묵했다. 수도에 있는 해군 연락소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의무에만 몰두했다. 바다를 지키고, 나라를 수호하고, 국민을 지키는 것.
남부 언론도 이번 아드벨로 가문의 성명을 호의적으로 싣고, 지지한다는 논조로 기사를 냈을 뿐, 반박은 단 한 줄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안보국 전 국장의 1심 재판부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지 격렬하게 비난했다.
악의에도 의도를 따지는 것이라면, 사람을 죽인 살인범도 의도적 악의가 없다면 무죄를 받을 거란 빈정거림도 빼먹지 않았다.
“그러게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죄를 때린 건지….”
“쯧, 그러게나 말입니다.”
훤한 대낮.
한적한 부둣가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수군거렸다.
“아드벨로도 얼마나 기막혔겠냐.”
“다시 생각해도 말이 이상합니다. 의도적 악의가 없어서 무죄라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개소리지.”
“그 판사 놈은 밤길에 돌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네요.”
“야, 그래도 경찰인데 그런 말은 가려서 해라.”
“그래도 말이지요….”
며칠 전 아드벨로의 성명으로 떠들던 경찰들이 대화를 멈췄다.
“마침 오는군.”
그들은 부둣가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벨로 대위님.”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들고 오는 금발의 군인을 향해, 경찰들이 다가왔다.
그중 검은 머리의 중년 남성이 손을 내밀어 대표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이번 체포 작전을 지휘하는 위길입니다.”
“반갑습니다. 해군 특함에서 파견된 노아 벨로입니다.”
인사를 마친 위길 경위가 작전을 설명했다.
“오늘 이곳 해상에서 마약 밀거래가 진행될 겁니다.”
“대범하군요.”
노아가 잔잔한 바람이 부는 바다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날도 좋아서 해상 가시거리가 아주 넓었다.
노아의 중얼거림에 위길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일반적 인식을 역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그런 범죄를 밤에 몰래 저지른다고 생각하니까요.”
위길 경위가 작전을 설명했다.
“어민으로 분장하여 배에 오를 겁니다.”
실제로 사용되는 어선을 대여하였으며, 그곳에 올라 고기 잡는 시늉을 하며 항해하다가 현장을 기습할 것이라고.
“…….”
작전을 듣던 노아가 말했다.
“그럼 저는 물 아래로군요.”
위길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와 함께 배에 올라타셨다가, 저희가 현장을 기습할 때 아래에서 지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