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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결혼합니다-167화 (167/245)

167.

“디모네 닉스가 멀쩡한 거, 그 새끼가 정말 나쁜 놈이라 그런 거 아냐?”

“…….”

노아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방금 뭘 잘못 들은 거 같아.”

“네 마음 알겠는데, 진짜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

아미가 조금 더 풀어 말했다.

“아까 말했지만, 그 인간이 겪고 있을 저주는 정신에 타격을 주는 계통일 거란 말이지?”

정신 계통의 부작용은 소위 정신 착란과 비슷했다.

환각, 불안, 흥분, 망상 등등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수준의 심각한 고통을 줘, 시전자를 끝내 죽음으로 이끈다.

하물며 부작용이 저주로 바뀌었으니, 정신적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쓸모없을 정도로 원래부터 또라이였다면?”

아미는 디모네 닉스의 타고난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들어보니 그놈, 보통 쓰레기가 아닌 거 같더만.”

애당초 그가 저질렀던, 그리고 저질렀다고 추측되는 사건들만 해도 ‘평범’이란 범주를 한참 넘어섰다.

한마디로 제정신인 사람은 결코 저지르지 못하는 짓이었다.

“그러면….”

무언가를 깨달은 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미는 바로 그거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디모네 닉스는 저주가 안 먹힐 정도로 타락한 인간이란 뜻이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단순했다.

“우린 괴물을 상대 중인 거야.”

***

수도를 떠나기 이틀 전.

아드벨로 저택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빠!”

“클라레!”

아침 댓바람부터 수영복에 튜브를 끼고 저택을 돌아다니던 클라레는 아메타를 보자마자 폴짝 뛰었다.

그러고는 쪼르르 달려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우오!”

하지만 허리에 찬 튜브 때문에 퉁 튕겨 데구르르 옆으로 굴렀다.

“너 뭐 하냐?”

뒤이어 나온 노아가 기가 막힌단 시선으로 바닥을 뒹구는 동생을 바라봤다.

“이씨! 이 나쁜 튜브!”

“자기가 잘못해 놓고는….”

“이런 거 필요 없어!”

괜히 창피해진 클라레는 냅다 튜브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죄 없는 곰돌이 튜브만 쓸쓸히 바닥에 남겨졌다.

“아빠아앙!”

클라레는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천연덕스럽게 몸을 흔들었다.

“보고 싶었어! 아빠도 나 보고 싶었어?”

“당연하지! 아이고, 그새 또 컸어?”

“좀 많이 크는 중이야. 성장기거든.”

“그런데 우리 막내, 왜 수영복 차림이지?”

“으이구, 그러다 감기 걸려.”

노아가 하녀에게 받아 온 커다란 수건으로 클라레의 몸을 감싸며 말했다.

영웅의 망토처럼 수건을 목에 두른 클라레가 멋진 자세를 착착 취했다.

근엄한 표정 연기까지 더하니 꽤 근사한 느낌이 났다.

“어때? 멋있지?”

“우리 딸은 뭘 해도 멋있지!”

“히히, 역시 아빠는 뭘 안다니까!”

아메타의 품에 안긴 클라레가 헤실헤실 웃었다.

그런 동생을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노아가 이내 피식거렸다.

“아빠, 왔어? 오느라 고생했어.”

“고생은 너희가 했지.”

아메타는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노아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스랑 네 남편은?”

“아스는 수영장에 있어!”

도로 튜브를 다리에 넣어 쑥 올린 클라레가 대답했다.

“아스는 여기 와서는 계속 수영만 해. 남부에 내려가기 싫다고도 자주 말해.”

말하던 중에 풀이 죽은 클라레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집에 같이 안 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노아가 동생의 오동통한 뺨을 빵 반죽처럼 만지작거렸다.

“널 두고 수도에 남겠다고? 아스가 바보도 아닌데?”

“그거야 그렇지만….”

“가서 아스한테 ‘아스가 해 준 음식이 가장 맛있어!’라고 말해 봐. 돌아가면 이것저것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할걸?”

“오! 나 마침 아스의 파스타가 먹고 싶어졌어! 고기 다진 거!”

기운을 차린 클라레가 냅다 복도를 질주했다.

지켜보던 노아가 뛰면 안 된다고 소리치니, 달리는 속도를 빠르게 줄였다.

“…보시다시피.”

노아가 아메타에게 말했다.

“아스는 수영장에 있고, 레토는 응접실.”

곧 있으면 국방부 조사대에서 육군 수색에 관한 중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라디오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치티아 양은?”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

아메타는 일단 제 방으로 향했다. 뒤를 따라간 노아는 그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전했다.

귀 기울여 듣던 아메타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신성청은 결국 갈 데까지 갔군.”

그는 마탑에서 부검한 육군의 검사 결과를 꺼냈다.

“예상대로였어. 뇌에서 피아가 검출되었어.”

“후우….”

노아는 피부 위로 오소소 돋는 닭살을 손바닥으로 벅벅 쓸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 부하에게 그런 마약을 중독시키다니.

“뇌 주름 사이사이마다 어두운 보라색의 불순물이 끼어 있더구나. 뇌의 일부는 아예 보라색으로 물들기까지 했고.”

“그렇다는 건….”

“아주 오랫동안 피아에 노출되었단 뜻이란다.”

설명하던 아메타가 진절머리를 치며 혀를 찼다.

“저기, 아빠.”

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약에 오래 노출되면, 무슨 안 좋은 거라도 있어?”

“글쎄다….”

아메타는 말을 아꼈다.

“정보가 별로 없어. 7년 전 전쟁에서 처음 발견된 거라서.”

거기다 관련된 인물들은 전부 전쟁 중 피살당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부검했던 뇌의 상태를 보아, 아메타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측 하나를 내놓았다.

“…아마, 오래는 못 살 거다.”

한눈에 봐도 심각할 정도로 불순물이 뇌에 가득 차 있었다.

7년 전 전쟁 때 피아를 흡입했던 연합군 부검 결과와 비교해도 심한 상태였다.

“풀루스 대위라고 했었나?”

아메타는 구치소에 있다는 젊은 군인을 떠올렸다. 그 군인이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피아 약물의 피해자였다.

“참 기구한 인생이구나.”

디모네 닉스의 눈에 들어 세뇌에 빠지고, 신성청의 죄까지 덤터기를 쓸 뻔했다.

그리고 약물 중독으로 시한부까지 예상이 되니.

“너희 또래 아이라서 더욱 마음이 쓰이네.”

“…치료는 안 돼?”

노아가 물었다.

아빠 말대로, 풀루스 대위의 인생이 너무 기구해서 안타깝고 동정이 들었다.

만약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디모네 닉스의 눈에 띄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아니, 그건 잘못이 아니라 최악의 사고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메타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중독이 왜 무서운 것이겠니.”

빠져나올 방법이 어렵고,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피아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이기기 위해, 사람의 인간성을 지우는 데만 목적이 있는 못된 마약이었다.

과연 연합국이 해독제를 만들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나마 가능성이라곤 치유마법인데….”

아메타가 노아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치티아 양에게 한번 물어볼 테냐?”

“그런 거면 됐어.”

노아가 단칼에 거절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아미가 더 중요해. 가뜩이나 신성청의 감시를 피하느라 힘들었는데, 성녀의 힘을 빌려달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

“어이구, 눈물 난다?”

들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열린 문틈 사이로 아미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아저씨 오셨다고 해서. 인사드리려고 왔어.”

“치티아 양.”

“잘 지내셨어요? 안색 보니 여전히 건강하시네요.”

아메타와 짧게 인사를 나눈 아미가 노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풀루스 대위의 치료 시도를 흔쾌히 허락했다.

“물론 시간은 걸릴 거고, 내 안전을 우선으로 할 거야.”

피니치 구역에서 성력을 대놓고 쓴 탓에, 신성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게 락소가 떠나기 전에 알려 준 정보였다.

그러니 아미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 사람을 남부로 데려갈 수 있나요? 그리고 성력은 아주 조금씩 쓸 거예요.”

“정말 괜찮겠어?”

노아가 한 번 더 되물었다.

정작 아미는 의연했다.

“그 사람만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디모네 닉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잖아. 그리고 신성청에도.”

신성청에 크게 한 방 먹일 수만 있다면, 아미는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남부에 연락해보마.”

아메타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 레토가 노아를 찾아왔다.

“노아. 지금….”

노아를 부르던 레토는 방에 있던 아메타를 발견했다.

“오셨습니까? 오시는 길 불편하진 않으셨고요?”

“기차에 몸만 실으면 되는데 불편할 게 있나.”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참, 노아.”

아메타와 인사를 마친 레토가 말했다.

“지금 막 국방부가 육군 수색 중간 결과를 발표했어.”

그 말에 다들 라디오 방송이 켜진 응접실로 향했다.

마침 국방부 대변인이 인사를 마치고 본론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국경 작전사령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여러 건의 횡령을 비롯한 비리 정황을 적발…]

이어지는 내용들이 가관이었다.

장교급 군인 간의 뇌물수수, 무기 불법 유출 등을 비롯한 군용물 절도. 군 진급 심사 조작까지.

“…….”

묵묵히 듣던 노아는 진급 심사가 언급되자 레토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때렸다.

레토는 머쓱하니 맞은 부위만 손으로 벅벅 쓸었다. 본인도 내심 찔렸던 탓에 할 말이 없었다.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발표를 듣는 아메타의 표정이 어두웠다.

[또한, 수색 중 피니치 구역에서 상황 불명의 피격 상황과 다수의 시신이 확인되었음에도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아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이거 비밀 작전 아니었나?”

자신들의 작전 내용이 방송으로 나오자 조금 당혹스러웠다.

“우리만 저 때 없는 존재가 되면….”

레토가 한쪽 입꼬리를 심술 맞게 비틀어 올렸다.

그는 라디오 발표를 통해 국왕과 알버스의 심중을 파악했다.

“…디모네 닉스를 전범으로 몰아갈 수 있어.”

디모네 닉스가 저지른 범죄는 하나같이 심각했다.

하지만 단연코 규모가 크고 위태로운 건 전쟁 범죄였다.

그가 7년 전 전쟁의 원흉이었단 사실은 쉽사리 공개할 수 없었다.

알려지게 되면 아들라보르 왕국의 존속까지 흔들리게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 죄를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야 하느냐.

‘어림도 없지.’

레토와 같은 생각이었던 국왕과 알버스는 논의 끝에 피니치 구역에서 일어난 비밀 전투를 공개한 것이다.

두 나라가 마주하는 국경 내 중립지역에서 전투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걸 숨기고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니.

심지어 그곳에 육군으로 추정되는 신원의 시신까지 있었다.

“…디모네 닉스는 국가의 병력을 사적으로 차출해 전투를 일으키고 희생시킨 전범이 되는 거네.”

노아의 말에 레토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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