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일단 세 사람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저택에 돌아가기로 했다.
“근데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운전하는 레토의 옆얼굴을 심각하게 살펴보던 노아가 물었다.
“…설마 너도 토했어?”
“안 했어.”
“안 하긴 무슨! 전에 할머니가 대장님이란 사실 알았던 날이랑 안색이 똑같은데.”
“중장님도 사람이었네….”
뒷좌석에 누워서 골골거리던 아미가 그 와중에 피식했다.
노아가 말했다.
“운전 내가 할까?”
“중장님, 절대 바꾸시면 안 됩니다!”
기겁한 아미가 냅다 소리쳤다.
다행히 저택까지는 금방이었고, 운전은 마지막까지 레토가 했다.
“디모네 닉스 봤을 때처럼 아찔했다….”
아직 점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생명의 위협을 무려 두 번이나 겪은 아미는 오한이 드는 기분이었다.
억울해진 노아가 투덜거렸다.
“운전 늘었거든. 이제 브레이크가 어느 쪽인지 알아.”
“…그럼 그동안 모르고 했냐?”
“모르고 하지 않았어. 잠깐 헷갈렸던 거지.”
“넌 진짜 운전대 잡지 마라.”
응접실로 향한 세 사람은 일단 숨을 고른 뒤, 디모네 닉스를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하아.”
아미가 한숨과 함께 자신이 본 걸 말했다.
“나 오늘 무조건 악몽 꾼다….”
그녀는 디모네 닉스에게서 느껴지던 섬뜩한 기운의 정체가 바로 부작용이었고, 그것을 ‘저주’라고 부른다는 걸 알려 줬다.
“여기서 말하는 ‘저주’가 정확히 무슨 뜻이지?”
우리가 흔히 아는 저주와 비슷한가?
레토의 물음에 아미가 그것관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저주라고 부르는 건, 그 단어 말고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레토는 묵묵히 수긍했다.
디모네 닉스에게서 느껴졌던 소름 끼치고 섬뜩한 기운은 정말 기괴한 것이었다.
“…….”
노아는 골똘히 생각하는 레토를 말없이 지켜봤다.
사실, 노아는 그가 디모네 닉스를 만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그 남자와 관련되면 겁을 먹고 무서워하는 레토가 또 이상 반응을 보이진 않을까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그때, 아미가 팔짱을 낀 채로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원래는 죽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건가?”
“네.”
아미의 대답은 단호했다.
“노아한테는 말했지만, 신성청에서 그것과 똑같은 기운을 풍기던 사람을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그 사람들, 전부 죽었다고 했어.”
노아의 덧붙임에 레토가 눈을 찌푸렸다.
‘그렇게 쉽게 죽는다고?’
죗값을 치르지도 않은 채?
레토는 이를 바득 갈았다. 그 인간 하나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했는데,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저주를 없앨 수는 없나?”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아미는 고개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가로저었다.
“성력으로 절대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기에 부작용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저주에 걸릴 정도라면,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이고요.”
저주는 속된 말로 ‘죗값’이었다.
신의 뜻에 반하는 짓을 저질렀는데, 어찌 또 신의 힘으로 이를 치유하고 정화한단 말인가.
아미는 성녀였기에, 자신이 지닌 거대한 힘이 그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기피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다고 해도 하기 싫었다.
“혹시 성왕이 무슨 수를 또….”
노아가 조심스럽게 추측했지만, 아미는 그럴 가능성은커녕 오히려 성왕도 저주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변태 새끼, 지금 명줄이 오늘내일하잖아?”
“그것도 저주라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저주받은 성물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처음부터 사특한 마음으로 만든 성물이잖아.”
그리 만든 것만으로도 죄인 성물을, 디모네 닉스가 계속해서 사용했으니 성왕도 부작용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꼴에 성왕이었으니까 버텼던 거지….”
성력을 착복해 겨우겨우 버티던 인간도, 결국 아미가 가출하기 무섭게 힘을 잃고 끝내는 가사 상태에 들어갔다.
“…난.”
노아가 질린단 듯이 중얼거렸다.
“악당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겠어.”
결국 이렇게 사필귀정하게 될 것을, 어째서 파멸을 스스로 선택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알아야 할 건 다 확인했다.
의도친 않았으나, 디모네 닉스가 성물을 사용해 군인들에게 세뇌마법을 걸었단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걸 만든 사람이 성왕이고, 그 역시 죗값으로 저주에 걸렸다는 점까지.
그러나 디모네 닉스의 멀쩡한 상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왜 안 죽지….”
“짐작 가는 이유는 없어?”
“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감이 영 잡히지 않으니, 아미는 슬슬 귀찮아지려고 했다.
“중위.”
레토가 물었다.
“그 저주에 걸리면, 어떻게 죽나?”
“보통은….”
아미는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분명하고 의미 적절한 단어를 골라 대답했다.
“사지가 비틀리고, 피부는 시커먼 보라색으로 변하다가 피고름이 올라와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죽여 달라고 애원하다가….”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던 아미는 냅다 손으로 제 목을 퍽 움켜쥐며 조르는 시늉을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행동에 노아와 레토가 깜짝 놀랐다.
“…….”
“…….”
하지만 저 동작이 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빠르게 파악했다.
“…이렇게 죽습니다.”
성기사들은 저주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끝내 제 목을 스스로 졸라 죽었다.
전부.
“왜 그 인간이 저주에 걸렸는데도 태연한지 모르겠지만, 그의 마지막은 딱 하나입니다.”
최악의 고통을 오랫동안 겪고, 버둥거리며, 껄떡이는 숨 속에서 제 잘못을 후회하고 절망하다가….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것.
“이게, 얼마나 끔찍한지 아십니까?”
자신의 의지로 삶을 끝내는 것부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자살을 각오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고통이 덜하고, 한 번에 완벽히 끝낼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제 손으로 죽을 때까지 제 목을 조른다니.
“아직 의문이 많지만, 그 남자의 마지막은 딱 하나입니다.”
디모네 닉스는 제 목을 조르게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
그날 밤.
“…….”
레토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거렸다.
그러다 결국 답답한 속을 어찌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침대 위 이불은 뒤척거리던 제 몸부림 때문에 주름이 가득 잡혀 있었다.
“후우.”
묵직한 한숨은 오늘 하루가 고되고 힘들었단 증거였다.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 이유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술이라도 한잔할까….’
자기 전에 술을 마시는 건 딱히 즐기지 않지만, 오늘 같은 날은 술기운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세상에.”
레토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선객이 있었네.”
“뭐야, 너도 왔어?”
노아가 들이켜려던 술잔을 흔들며 싱긋 웃었다.
식탁 위에는 도수가 제법 되는 보드카와 희석용 탄산수, 안주용 치즈와 소금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빈 잔도 하나 있었다.
“내려올 줄 알았지.”
노아는 제 옆에 앉은 레토에게 빈 잔을 슥 밀었다.
“마실 거지?”
“응.”
“어어, 잠깐만.”
노아는 술을 따르려던 레토를 제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술을 따라 줬다.
보드카에 희석용 탄산수를 넣고 소금을 살짝 뿌리자, 잔 속에서 기포가 뽀르르 일어났다.
“이거 오랜만이네.”
잔을 받은 레토의 눈빛에 그리움이 반짝였다.
“연애할 시절에, 종종 네가 만들어 줬잖아.”
“그때 너, 보드카에 소금 넣어 먹는 게 신기하다고 그랬었지.”
노아 역시 그날을 떠올리며 애틋한 미소를 지었다.
추억을 안주 삼아, 레토는 술을 단번에 넘겼다.
보드카 특유의 깊은 향에 소금의 짭짤한 맛이 더해지니 무척 매력적이고 그리운 맛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아가 말했다.
“그땐 네 대가리 한 대만 때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나만 달콤한 추억을 곱씹고 있었나?”
“난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뒤집힌다, 응?”
“…….”
지은 죄가 많은 터라, 레토는 냅다 치즈 조각을 넣어 입을 다물었다.
씁쓸한 술맛에 달콤한 치즈가 잘 어울렸다. 꿀에 절인 것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노아가 조용히 웅얼거렸다.
“그때가 좋았다, 싶어.”
“왜?”
“적어도 그때는 오롯이 너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빈 술잔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노아가 씁쓸하게 웃었다.
“머리 아픈 사건 따위 없이, 잠시나마 내가 해야 할 일도 잊을 수 있었고….”
레토는 의자를 끌어 노아의 옆으로 조금 더 바짝 붙었다. 그리고 노아의 머리를 조심히 제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순순히 몸을 기울인 노아는 얼굴을 파묻듯이 어깨에 기댔다.
“그냥, 너 때문에 사랑 고민하고 속 터지던 때가 좋더라.”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건 싫어.”
또 마음 고생하긴 싫다며 노아가 대답하자, 레토가 어깨를 잘게 떨었다. 덩달아 노아도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러곤 둘 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조용히 손을 잡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깍지를 끼어 꼭 쥐는 모습에서 조급하고 두려운 기색이 살짝 비쳤다.
“넌 괜찮았어?”
노아가 내내 걱정했던 것을 물었다.
“그 사람 만난 거.”
“모르겠어.”
레토가 솔직히 말했다.
“처음엔 몸이 움직이질 않더라.”
제게 말을 걸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레토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낡은 집에 있었다.
그리고 창고에 갇혀 귀를 틀어막은 채, 엄마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하지만 디모네 닉스의 입에서 아이트라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정신이 번쩍하더라고.”
속된 말로 열불이 뻗쳤는데, 그 때문에 굳어 버린 몸에 피가 돌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오케아누스의 일원으로서, 감히 가문에 위협이 되는 적을 당당하게 상대했다.
“다시 생각하니 좀 유치하네.”
좀 오글거리는 말도 내뱉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남자에게 한 방 먹인 건 분명했다.
“장하네.”
노아는 깍지 낀 레토의 손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쓸어 만졌다.
그녀는 레토가 얼마나 대단한 용기와 인내심을 발휘했는지 알고 있었다.
“노아.”
레토가 그런 노아의 이마에 입술을 살짝 맞췄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고개를 감싸, 저와 눈을 마주하게 했다. 노아는 순순히 이끄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
“제국으로, 가는 거지?”
“응.”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는 노아의 눈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레토는 그것을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그 감정에 누구보다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노아였으니까.
하지만 저의 사랑스러운 부인은 자신과 달리, 그것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무섭고, 두렵고, 떨려.”
노아는 솔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