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글쎄….”
아티는 국왕과 함께 디모네 닉스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어딘가 좀 불길하고 섬뜩한 인간인 건 확실하더라.”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노아는 혀를 내둘렀다.
인생 제멋대로 사는 아티의 눈에도 디모네 닉스는 상종 못 할 새끼였던 모양이었다.
“그 인간보다 최악이면 그냥 죽어야지.”
잠자코 듣던 레토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노아는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레토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티가 하다 만 말을 이었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긴 했는데, 그게 마력인지는 모르겠다.”
“마력이 있었다면 나라에 보고가 되었을 겁니다.”
레토가 말했다.
일정 수준의 마력을 지닌 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마탑에 등록해야 했다. 무분별한 마력 사용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더욱이 군인이라면 입대와 동시에 마력 검사도 진행된다.
특정 직업군은 마력을 보유하면 더더욱 중점 관리 대상이 되는데,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기사와 군인이었다.
“자칫 마법이 폭주하여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군의 무력을 이용해 폭동이나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레토의 설명에 아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일단 풀루스 대위를 만나야겠지.”
“그럼 오히려 닉스 그 새끼부터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장님의 명령은 세뇌마법의 흔적을 확인하는 거니까….”
면회실 안으로 들어간 노아가 말했다.
“일단 확인한 뒤에.”
그 말을 끝으로,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들어온 면회실 반대편. 수용자들이 드나드는 입구가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연한 하늘색 의상을 입은 젊은 남자가 그들 앞에 앉았다.
왼쪽 가슴 위에는 수감 번호만이 투박하게 수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가 누구인지는 전부 알고 있었다.
“못해도 20분 뒤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따라온 구치소장이 아티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그로서도 국왕의 갑작스러운 명으로 면회가 계속 잡히는 것이 영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안에 끝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구치소장과 직원들이 밖으로 나간 뒤.
“…반갑네, 대위.”
아티가 천연덕스럽게 인사했다.
“육군 국경 작전사령부 소속 통신병, 계급은 대위, 고아원 출신으로 닉스 작전사령부 전 사령관의 후원을 받았다지?”
“…….”
“관계자 말로는 거의 디모네 닉스의 아들 같은….”
자신의 신상이 줄줄 읊어지는데도, 풀루스 대위는 무기력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의 시선은 아티를 비롯한 일행들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딱히 바라본다는 느낌은 없었다.
‘눈동자가….’
세뇌마법의 흔적을 찾던 아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대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는 아나?”
아티가 물었다.
“…짐작은 갑니다.”
풀루스 대위의 첫마디는 의외로 고분고분한 인정이었다.
“디모네 닉스 사령관님의 내란 선동죄 때문이지요.”
“선동죄?”
“그럼 아닙니까?”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입을 맞췄나 보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몰라도 돼.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아티는 재밌단 듯이 피식거렸다. 하지만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은 단 한 순간도 웃지 않았다.
“디모네 닉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대충 알고 있지?”
“…….”
“그리고 그자가 신성청과 짜고 모든 죄를 그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한 것도.”
“…….”
“억울하지 않나?”
나였다면 배신감에 벌써 쓰러졌는데.
아티가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
하지만 풀루스 대위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는 마치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배신당했단 걸 알면 당연히 화를 내고 분노해야 했다. 하다 못해 허망함이라도 보여야 했다.
하지만 풀루스 대위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그때였다.
“…르겠습니다.”
풀루스 대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것이었다.
“제가 왜 억울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디모네 닉스는 자네를 배신하려 했는데?”
“그러라고 있는 게 저입니다.”
“…와우.”
아티는 그만 헛웃음을 터트렸다.
웃었으니 다행이지, 옆에 있던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사령관님은 저를 거둬 주시고, 훈련시켜 주고, 멀쩡한 사람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혹시 그거, 닉스 본인이 그리 말하던가?”
전형적인 세뇌로군.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거리긴 했지만, 아티는 풀루스 대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법이 걸려 있긴 한가?’
천하의 저조차도 마법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다니.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의문이 들었다.
과연 풀루스 대위는 세뇌마법에 걸려 있긴 한 것인가.
만약 마법이 걸린 게 아니라면, 디모네 닉스를 도대체 무슨 수로 저 지경까지 세뇌시킨 거지?
‘그렇다면….’
짐작 가는 바가 떠오르는 찰나.
“그분은.”
풀루스 대위가 말했다.
“저의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아닌 거 같은데….”
“고아의 삶이 어떤지 아십니까?”
“그딴 일반화는 하지 말고.”
설렁설렁 대꾸하는 아티의 말투에 묘한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
“모든 고아가 자네 같진 않아.”
“그건 당신이 고아로 지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친구 중엔 고아 출신들도 있거든.”
아티가 싱긋 웃었다.
“고아의 삶은 분명 평탄치는 않지. 그것까진 부정하지 않아.”
하나 그렇기에, 아티는 풀루스 대위가 내뱉으려는 핑곗거리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만약 그대가 고아로서의 삶을 핑계로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었고, 디모네 닉스가 유일한 빛이었단 소릴 하려는 거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아티의 눈에 어둑한 그늘이 졌다.
“…주어진 고난을 이겨냈고, 이겨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지.”
“…….”
여태 반응이 없던 풀루스 대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풀루스 대위.”
아티의 목소리가 한결 차분해졌다.
“내 눈에 그대는 화를 내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아이 같아.”
그는 제 어린 막냇동생에게 제국 간첩이 새기는 문신을 알려 줬을 때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가르쳐줬다.
“이럴 땐, 보통 그댈 이 지경으로 만든 어른을 욕해야 해.”
“그게 닉스 사령관님이란 말입니까?”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지, 자기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지 않아.”
아티는 자신의 아버지 아메타를 떠올렸다.
“그대가 아버지라고 믿는 디모네 닉스는….”
제겐 너무도 과분한 아버지를 떠올린 아티가 물었다.
“그댈 위해 무엇을 희생하였나?”
“…….”
당연하게도, 풀루스 대위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
다만 그것이 본인의 의지로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대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못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그럼 우린 이만 가도록 하지.”
풀루스 대위의 눈빛이 또 한 번 흔들렸던 것.
“면회를 허락해 줘서 고맙군.”
충분한 답이 되었다.
***
구치소에서의 면회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일행은 차를 타고 곧장 구치소를 떠났다.
저택으로 가는 동안, 네 사람은 자신들이 알아낸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아미였다.
“세뇌마법에 걸린 게 아닌 거 같던데….”
조수석에 앉은 아미는 영 께름칙한 표정이었다.
“근데 눈이 좀 이상했단 말이지….”
“역시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었군.”
운전대를 쥔 아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법에 재능 있는 나도 면밀히 살펴봤지만, 마법의 흔적은 없더라고.”
“이 오빠 역시 재수없네.”
“어쨌건 우리 성녀님도 세뇌마법의 흔적이 안 보였단 거지?”
“일단은요.”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눈동자가 이상하지 않았어?”
아미가 의아하게 여겨 봤던 건, 마법에 해박한 지식이 없는 노아 역시 이상하게 여겼던 점이었다.
“힘없이 풀려 있더라.”
마치 모든 기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힘이 빠져 있는 눈동자였다.
그러나 고작 그것 하나만으로 약물 중독을 의심할 순 없었다.
타고난 눈동자가 그런 모양일 수도 있고, 그 외에 다른 신체 부위는 이상 소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톱도 멀쩡하고, 황달 없고, 면회실 들어올 때 걸음걸이도 문제없었고.”
“근데 구치소에 들어갈 때 마약 검사 안 해요?”
“하긴 하는데, 기본적인 검사만 하니까 신종 마약은 가끔 안 나올 때도 있어. 그런 건 조금 더 전문….”
세 사람이 계속해서 논의하는 동안.
“…….”
레토 혼자 조용했다.
그는 차에 탄 뒤로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긴 상태였다.
“그 눈….”
그리고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을 때, 레토가 말했다.
“…본 적 있어.”
그 말에 잘 달리던 마동력차가 서둘러 갓길에 정차했다.
“어디서?”
노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국에서.”
레토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제 말을 듣기 무섭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노아가 흥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연합국과 싸울 때, 저런 눈을 한 녀석들을 종종 봤어.”
“아.”
그 말에 뭔가 떠오른 아티가 짧게 탄식했다.
“…아아, 빌어먹을.”
그러곤 평소 입에 잘 담지도 않는 욕지거리와 함께 얼빠진 웃음을 힘없이 뱉어냈다.
운전대 위로 기운 빠진 상체를 숙이니, 경적이 빠앙 하고 커다랗게 울렸다.
“그래서 그 새끼한테서….”
그래, 그랬던 거군.
이렇게까지 얽혔다니.
의미 모를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던 아티가 뒤를 돌아봤다.
“노아.”
시선이 마주친 노아는 아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 가나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가나 보다.”
그것도 최악의 방법으로.
“…자, 잠깐만!”
침묵하는 노아 대신, 아미가 당황한 투로 물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 좀 해 봐요.”
“오케아누스 중장이 말한 대로, 저건 어떤 특정 마약류에 의한 증상이야.”
아티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건 검출이 안 돼.”
약물이 뇌에만 쌓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