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별이 쏟아질 것처럼 가득 박힌 밤하늘이었다.
닉스 소장과 신성청이 협력했다는 증거들은 찾았다.
대원들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한 새벽이 찾아오면 다시 수도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이제 증거를 국왕과 검사단에 보여 주면 신성청의 거짓 증언을 뒤집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디모네 닉스 소장을 법정에 세울 수 있다.
“…….”
하지만 노아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모포를 덮은 몸은 하염없이 뒤척거렸고, 좀 진정될 찰나도 없이 한숨이 푹푹 나왔다. 마른세수를 연거푸 계속하니 얼굴에 때가 탈 겨를조차 없었다.
당연했다.
아티가 알려 준 7년 전 전쟁의 끔찍한 내막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제국 간첩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들 있었잖아? 그거 다 이 새끼들의 작품이야.”
“사실은 간첩의 소행들이 아니라, 이 새끼들이 만든 불법 사병 단체의 병력들이 저지른 짓이지.”
“이유? 별거 없어. 전쟁을 찬성하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이들 중 하나가 시스토 제국과 접선해 침략을 부추겼지. 모든 게 이들이 계획이었던 거야.”
“거짓말 같지? 말하는 나도 거짓말 같아.”
그래,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이 모든 게 다 꿈이고 거짓이면 좋겠다….’
찬란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노아의 푸른 눈은 어느 때보다 메말라 있었다.
그저 허망했고, 슬펐고, 원통했다.
거기다 아티는 저 끔찍한 사실들을 알려 줘도, 정작 가장 중요한 건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럼 왜 저런 짓을 벌인 거야?’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뭐지?
왜 내 가문을 멸망시킨 거야.
우리 부모님은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는데.
“…읏!”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노아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울면 안 돼.’
가문을 멸망시킨 원수를 제 손으로 죽이고, 부모님의 유해를 다시 찾은 뒤에 울기로 다짐했었다.
“후우, 후우….”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코와 입을 막은 채, 노아는 천천히 느리게 호흡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핑 돌던 머리가 아주 조금이지만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저 예고 없이 일찍 알게 되어 놀랐을 뿐이지, 적의 뒤를 추적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사실들이었다.
‘…좋아, 진정했어.’
손을 치운 노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불 지핀 기름통을 중심으로 다섯 명이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자고 있는지 별 뒤척임 없이 누워 있었다.
단 한 명을 빼고.
“…….”
“…….”
하필 레토가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노아는 저도 모르게 탄식해 버렸다.
“아이 씨….”
“남편 얼굴 보자마자 욕이라니.”
“감탄사야.”
투덜거리던 노아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토의 옆에 앉았다.
“다음 불침번은 누군데?”
“형님.”
레토는 옆에 있던 상자 속 서류 한 뭉치를 기름통 안에 넣었다. 기름통 위로 불똥이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리듯 올라왔다.
“…봤어?”
노아가 물었다.
“아니.”
대답하는 레토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다.
노아는 그런 레토를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불 앞에 앉은 그의 옆모습은 마치 노을 진 여름 바다 같았다.
붉게 물든 은발과 그림자 진 피부 탓인지 애수가 느껴졌다.
“레토 넌….”
노아가 기름통 주변 흙을 군화 신은 발로 슥슥 긁으며 물었다.
“…전부, 알고 있었어?”
“…….”
“탓하려고 묻는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노아는 서운함 따윈 단 한 줌도 느끼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렇게 심각한 사항을 어떻게 함부로 발설할까. 만약 이 사실이 알려졌다간 왕국은 아주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궁금한 건 다른 문제였다.
“나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어.”
레토가 순순히 말했다.
“노아 너도 짐작했겠지만, 나는 디모네 닉스 소장을 개인적으로 추적하고 있었어.”
“어째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거든. 국왕의 명도 있어서 계속 예의주시했지.”
“의심스러운 정황?”
“음, 말하기가 좀 곤란한데….”
“혹시 오케아누스 후작님과 관련된 거야?”
허를 찔렀는지, 레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아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 버렸다. 자리에 없는 아이트라를 언급하는 것이 큰 잘못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물어봐야 했다.
“그, 나도 사실은 조사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건데….”
노아는 아이트라가 닉스 소장과 이혼했던 것,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자식 한 명이 있었단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부러 알아본 건 아니야. 그냥 닉스 소장을 조사하다가….”
“알아.”
툭, 하고 커다란 손이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그리 죄짓는 표정 짓지 마.”
“응….”
“그래, 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레토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노아는 슬쩍 눈을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레토가 싱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노아는 가슴이 저렸다.
저 미소를 잘 알고 있었다.
저건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제 아픔을 꾹 참을 때 짓는 미소였다. 돌아가신 친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보여 줬던 미소와 똑같았다.
레토는 제 손가락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손깍지를 꽉 끼었다.
저 습관도, 노아는 알고 있다.
지금 레토는 불안해하는 중이다.
“후작님의 인생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놈이지.”
누가 도움이 안 되는데?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단순한 효도니까.”
도대체 뭐가 효도인 건데?
“거지처럼 돌아다니던 고아를 거둬서 이렇게 사람 만들어 주셨는데, 효도라도 한 번 해야지 않겠어?”
“이미 충분히 효도했잖아.”
순간 울컥해 버린 노아가 레토의 손을 꼭 쥔 채 말했다.
“전쟁에서 영웅이 되었고, 젊은 나이에 별까지 달았어. 넌 네가 할 수 있는 효도란 효도는 다 했다고!”
“그런가?”
“그럼 아니야?”
“아직 좀 모자라지 않아?”
“…뭐?”
다그치면 알아 처먹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레토는 어울리지 않게 고집을 부리며 노아의 눈을 올곧게 응시했다.
제 선택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만악의 근원이야, 그 새끼는.”
“…….”
“어차피 사형을 당할 게 분명한데, 여기서 죽나 나중에 죽나. 그게 뭐 달라질 게 있나?”
“너 지금 무슨 소릴….”
“걱정 마.”
레토가 안심하란 듯이 웃었다.
“모든 건 여기서 다 끝날 거야.”
“레토 오케아누스, 너…!”
그 순간.
“……!”
황급히 자리를 박찬 노아가 마스를 집었다.
검을 공중에 던지듯이 잡아 몸을 회전하니, 검집이 뒤로 스르륵 빠지면서 날이 바짝 선 검날이 드러났다.
노아는 그 찰나에 마력을 오러로 전환했다.
그리고 푸른 오러를 머금은 마스를 어느 곳을 향해 휘둘렀다.
검에서 뻗은 푸른 초승달 형태의 검강이 어둠 속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러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울렸다.
“기습이다!”
레토가 다른 대원들을 깨웠다. 잠들었던 대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허둥거리는 기색 없이 자신들의 무기를 챙겨 들었다.
“적은?”
아티가 마법으로 기름통 모닥불을 끄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너머를 응시했다.
“…….”
아미가 땅에 손을 얹은 채로 탐지마법을 발동했다. 그녀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또르르 흘렀다.
“…10명.”
탐지를 마친 아미가 눈을 떴다.
“전방 8명, 우측 후방에 2명입니다.”
“거리는?”
“현재 거리는 전방 기준 200m, 우측 후방은 150m입니다. 조금 전 노아의 공격으로 주춤하는 듯합니다.”
“신성청에서 보낸 건가….”
아티는 락소에게 눈짓했다.
락소는 소총을 들고 주위에서 가장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갔다. 후드를 몸 위에 넓게 펼쳐 덮으니 금세 자취를 감췄다.
“…….”
야간용으로 바꾼 특수 렌즈 너머로 정찰하던 락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성청이 아니야!”
락소가 외쳤다.
“육군입니다! 머리를 짧게 친 병사가 보입니다.”
“잉? 그딴 걸로 알아챈다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아미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주 전투 지역이 아예 다르기 때문이야.”
아티가 설명해 줬다.
“해군은 물에서 싸우기 때문에, 물에 빠지는 걸 대비해 머리칼을 기르도록 하지. 그래야 머리칼을 잡아 건질 수 있으니까.”
반면 땅에서 싸우는 육군은 오히려 반대였다. 긴 머리칼이 적의 손에 잡혔다간 큰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짧게 자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기사들은 어지간해선 머리칼을 안 자르지.”
“아, 맞다. 그랬었지.”
“사관 학교에서 안 배웠냐?”
“몰라, 기억 안 나. 배웠던가?”
“도대체 어떻게 군인이 된 거냐, 너….”
“잡담은 그만하시죠.”
레토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주의를 줬다. 그의 허리춤에는 파란색 검집이 채워져 있었다. 페미나였다.
적과의 대치는 제법 오래 이어졌다.
“…왜 안 덤비는 거지?”
아미가 총구를 계속 겨눈 채로 중얼거렸다.
“조금 전 노아의 선공 때문이다.”
레토가 검에 손을 올린 채로 대답했다.
“우리 측 공격이 저들의 예상을 상회한 거야. 그러니 허튼수작 부리지 못하고 계속 상황을 주시하는 거지.”
하지만 계속 이런 대치가 이어졌다간 자신들의 손해였다.
오늘 새벽에 출발해야만 내일 수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다 만약 저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 버렸다면, 돌아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다.
“최악의 경우에는 둘로 나뉘어야겠지만….”
노아와 레토가 증거를 가지고 수도로 먼저 가고, 남은 아티와 아미, 락소가 저들과 싸우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아티에겐 그런 선택지 따윈 없었다.
“매제.”
“예, 형님.”
“그 검,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나?”
“…….”
잠시 놀라 굳었던 레토가 이내 말했다.
“…노아만큼은 아니지만, 휘두르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그대가 노아와 함께 전방 8명을 처리한다.”
아티의 명에 레토가 재깍 달려갔다.
“그리고 나머지 셋은 대기하도록.”
“잠깐! 나도 가서 돕…!”
“성녀, 정신 차려라.”
레토의 뒤를 쫓아가려던 아미가 멈칫했다. 아티는 웃음기 없는 눈짓으로 아미에게 조용히 경고했다.
“네 차례는 곧 올 거야.”
“…안 믿는 척하더니?”
“말했잖아. 난 아드벨로라고.”
아티가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끌어 올렸다.
“10, 9, 8….”
그러곤 느닷없이 초를 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