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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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아들라보르 육군 초소였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지금 다섯 명이 있는 곳은 아들라보르가 아니었다. 이들은 중립지대인 피니치 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아주 대놓고 간첩을 돕고 있네.”

기가 막힌 노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피니치 구역은 아들라보르와 클렌스 두 왕국 사이에 있는 중립지대다.

하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아들라보르 왕국의 소관이고, 아들라보르 육군 국경 작전사령부에서 도맡았다.

그런데 초소에는 군인 한 명 없었다. 그렇다고 감시용 마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저길 좀 봐요.”

락소가 산 아래를 가리켰다.

국경선을 경비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먼 곳에, 조그맣게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국경 작전사령부.’

내려다보는 레토의 눈빛이 음산하게 번뜩였다.

저곳에서 근무 중일, 저 혼자 태연한 모습으로 온갖 탐욕과 죄악을 일삼고 있는 닉스 소장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멀진 않군.’

작전이 끝나면 몰래 빠져나와 죽이면 될 듯했다.

대원들은 초소 주변을 살폈다. 지뢰는 탐지되지 않았고, 금이 간 창문 너머로 초소 내부도 탐색했다.

“…육군 물갈이가 시급하다, 야.”

아미가 혀를 끌끌 찼다.

“이제 보니 우리 해군은 정말 성실하고 착하고 애국심 넘치는 열혈 군인들이었네, 그치?”

“너 애국심 넘쳐?”

노아의 물음에 아미가 답했다.

“돈 많이 주면 넘쳐.”

“안 넘친단 뜻이구나.”

한 번 더 주변을 살핀 노아가 아티를 불렀다.

“아티.”

그러나 대답 없는 아티는 자신들이 나온 굴 입구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시커먼 동굴 속을 향한 그의 시선과 입가에 걸린 뜻 모를 미소가 조금 섬뜩했다.

“뭐 하냐? 출발 안 해?”

“…….”

“아티!”

결국 무릎으로 허벅지를 가격당한 뒤에야, 아티는 미안하다고 성의 없이 사과하며 몸을 돌렸다.

본격적인 작전 시작이었다.

“지금부터 전시 태세를 유지한다.”

부대의 임시 대장은 아티였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명은 절대적이다. 전 대원 무기를 소지한 채로 진입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망설이지 말고 사살하도록.”

그 말에 락소가 찰나였지만 인상을 찌푸렸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질문하는 레토의 말투는 상관에게 하는 것처럼 깍듯했다.

아티는 하늘을 바라보고, 불어오는 바람 등 여러 가지 요건을 확인한 뒤에 대답했다.

“최소 다섯 시간은 걸릴 거다.”

대장정이네.

아미가 소리 죽여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짐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에 출발하지.”

다섯 명은 말없이 행낭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비상식량, 지도, 나침반, 작은 구급함, 수통, 모포 등등.

그리고 각자의 무기를 챙겼다. 철컥철컥, 탄창을 채우는 소리와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살벌했다.

노아와 레토는 자신들의 검을 뽑아 확인했다. 날카로운 검날의 끝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한동안 훈련 안 했는데, 괜찮을까?”

레토가 노아에게만 들리도록 소곤거렸다. 그는 오랜만에 손에 쥔 페미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걱정 마. 몸이 기억하고 있을 테니.”

오러에 익숙해진다는 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실수하거나 다치기도 하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절대 까먹지 않는다.

“기억해 봐. 오러에 적응했을 때, 아프지 않았잖아.”

지금도 말이야.

그렇지 않으냐는 노아의 물음에 레토가 조용히 웃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검으로 전투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뭔 소리야. 군에서 검술 훈련도 하잖아.”

“그건 기사단에서 파생된 교양 훈련인데….”

사실 노아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최근 해군은 검술 훈련을 폐지하고 무기 종류에서도 검을 제외시킬 계획이었다.

“떠드는 걸 보니 준비 다 한 모양이지?”

아티가 준비를 마친 대원들을 둘러봤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다섯 명은 머물렀던 흔적을 전부 지운 뒤에 하산했다.

그리고 몇 분 뒤.

“…….”

바람에 풀잎이 스치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일 정도로 고요하던 산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동굴이었다.

다섯 대원이 나타났던 동굴 입구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

만년설을 품은 산 밑을 행군하는 다섯 대원의 낯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렬로 나아가는 행군은 아티, 락소, 아미, 노아, 레토 순이었다.

각자의 손에는 소음기를 장착한 자동권총이 들려 있었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커다란 바위나 길이 꺾이는 곳에 도착할 때마다 총구를 겨누며 주위를 날카롭게 살폈다.

그 때문에 전신이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었고, 서늘한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중간중간 쉴 때조차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아티는 이곳 근방이 전부 불법 사병 단체의 영역일 수 있다고 했다.

저쪽에서 어떤 무장 세력을 갖췄는지 모르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때조차 주변을 계속 경계해야 했다.

“락소 씨는 저격수였나요?”

잠시 쉬는 중, 노아가 물었다.

락소가 챙겨 온 소총에는 저격수들이 쓰는 특수 과녁 렌즈가 붙어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실력은 제법 괜찮았어요.”

어색한 미소로 대답하는 락소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 그는 본격적인 작전 수행이 시작된 순간부터 상태가 나빠 보였다.

“…그래서 군을 그만뒀죠.”

락소가 말했다.

“뭘 죽이는 게, 상당히 힘들었답니다.”

특수 부대 저격수라는 건, 필요한 상황에 반드시 무언가를 쏘아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어야 한단 뜻이었다.

국가를 지킨다는 이유로 작전을 수행했지만, 락소는 제 손으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현실이 점점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결국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군대 특유의 위계질서도 좀 싫었고 말이죠….”

“아….”

그제야 노아는 레토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군이 싫어서 전역한 놈에게 군 음식을 왜 줘.”

그는 락소를 배려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또 이렇게 군을 돕고 있으니, 뭔가 악연이라도 이어진 모양입니다.”

락소의 농담에 노아가 피식거렸다.

“옆에 있군요, 그 악연.”

“설마 나 말하는 거야?”

묵묵히 듣고 있던 레토가 말도 안 된다며 비웃었다.

“내가 이 녀석을 얼마나 잘 챙겼는데. 그치? 그렇다고 대답 안 하면 돈 뺏는다?”

“아이고, 부인. 댁의 남편이 저 괴롭힙니다.”

락소가 과장되게 투덜거렸다. 친한 사이니까 가능한 농담이었다. 노아는 소리 죽여 웃었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또 행군이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낮게 기울어져 있었다. 발밑이 어두워졌고, 하늘 역시 어스름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 곧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빠른 일몰이었다.

‘하긴, 북쪽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노아가 생각하던 찰나.

“…….”

때맞춰 아티가 손을 스윽 들었다.

뒤따르던 대원들이 빠르게 멈췄다.

아티는 고갯짓으로 길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엔 폐광산이 있었다.

“…….”

“…….”

그곳을 바라보는 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티의 설명이 없어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저곳이 자신들의 목적지였다.

락소는 특수 과녁 렌즈를 설치한 소총으로 저 먼 곳을 자세히 살펴봤다.

“…사람의 흔적이 있습니다.”

설명하는 락소의 목소리가 조금 굳어 있었다.

“입구에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습니다. 종이? 서류?”

“다른 건 없나?”

아티의 물음에 락소가 과녁을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불을 지핀 흔적이 있는 기름통이 보입니다.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쪽에서도 움직이는군.”

불을 지폈다간 그 연기가 육군 측에 감지될 수 있는데도 저런 선택을 하다니.

“급하거나, 믿는 구석이 있거나.”

아님 둘 다거나.

어쨌거나 저곳에 중요한 증거가 있단 사실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냈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육군 측에서 확인하러 오지 않는단 것도.

“치티아 중위.”

레토의 지시에 아미가 땅에 손을 짚었다. 눈을 감은 채, 굴절마법에 자신의 마력을 숨기어 폐광산 내부를 빠르게 살폈다.

아미의 주특기인 탐색 마법이었다.

“…사람이 있습니다. 이동 중입니다.”

집중하는 아미의 감긴 눈이 찡그려졌다.

“둘, 넷, 여섯….”

탐색을 마친 아미가 눈을 떴다.

“감지된 인원은 총 20명입니다.”

2명은 입구 근처, 나머지 18명은 폐광산 내부 통로에 분산되어 있었다.

“폐광산 통로는 두 갈래입니다.”

“그중 사람이 비교적 많은 곳은?”

“입구 기준 오른쪽입니다. 왼쪽에는 세 사람뿐입니다.”

“대장, 명령을.”

레토가 아티를 바라봤다.

“…나와 오케아누스, 벨로만 진입한다. 베네딕토와 치티아는 이곳에 남아 후방 호위하도록.”

***

폐광산은 80년 전, 아들라보르 왕국에서 관리했던 구리 광산이었다.

그러나 매장량이 워낙 소량이었던 탓에 빠르게 문을 닫아 버렸고, 그 뒤로는 사람의 발길이 완전히 뚝 끊겼다.

피니치 구역을 육군이 관리하게 된 뒤로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폐광산에서, 정체 모를 무리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들 모두 어둑한 색상의 망토와 복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벌어지는 망토 사이로 화려한 은색 무늬가 비쳤다.

신을 상징하는 백합과 손수건, 그리고 손수건 아래 감춰진 두 검이 교차되어 만들어진 십자가.

신성청 소속 성기사단의 문장이었다.

그들은 웬 낡은 나무 상자를 옮기는 중이었다. 상자 안에는 정체불명의 기계와 상당한 양의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단장님.”

그들 중 한 명이 자신들을 감독 중인 누군가에게 말했다.

“안에 보관된 서류와 통신기계는 이것들이 전부입니다.”

“확실하게 확인했나?”

“예. 저희가 들어간 곳이 마지막 구역이었습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전부 가지고 나간다.”

단장의 지시에 성기사들이 밖으로 나갔다.

‘이게 웬 고생인지….’

기사들의 품에 들린 상자를 바라보는 그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다들 놀라지 않겠습니까?”

“7년 전 전쟁을 일으킨 원흉 중 하나가 신성청인 걸 알면….”

“증거는 당연히 있지요. 대신….”

빌어먹을 새끼.

이번 재판으로 드디어 시한폭탄을 치우는 줄 알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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