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바로 플루스 대위에 대한 정보였다.
정확히는 디모네 닉스 소장의 주요 동선 및 눈에 띄는 행적 등을 기록한 보고서였다.
“그 인간, 오케아누스 후작님과 이혼한 뒤에 어떤 고아원을 정기적으로 후원했다고 해.”
대외적으로는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한 짓이라지만, 락소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상을 발견해 냈다.
“고아원 출신의 남자아이를 거의 양자처럼 돌봤다는데, 그게 바로 플루스 대위야.”
“그럼 이 고아원은 지금….”
“없어.”
락소가 보고서 끝부분을 가리켰다.
“7년 전에 전소하면서 선생님들과 원생들이 전원 사망했어.”
“…….”
“그런데 당시 원생들의 시체 몇 구가 모자랐어.”
여기까지만 읽더라도, 상황이 대충 짐작 갔다.
“이 고아원….”
레토가 서류에 적힌 주소지를 살폈다.
“북부 피니치 지역 근방이네.”
심지어 고아원이 개원한 날짜가 10년 전인데, 신성청의 지원으로 설립된 종교 고아원이었다.
“답 나왔군.”
정보를 확인한 레토가 말했다.
“북부로 갈 준비를 한다.”
“…예?”
소파에 반쯤 드러누웠던 아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 이제 도착했지 말입니다?”
“그러니 출발해야지.”
“헐….”
기가 막힌 아미가 노아를 바라봤다. 노아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어차피 기차에서 이틀 동안 쉬었을 거 아냐.”
“부부가 쌍으로 재수가 없으려니….”
욕 한 번 뱉은 뒤, 아미는 알아서 엎드려뻗쳐 10초에 들어갔다.
락소가 그 광경을 꽤 놀랍단 듯이 바라봤다.
“…나 없는 동안 군이 좀 재밌어졌네?”
“다시 복귀할래?”
“X발, 돌았냐.”
그렇다고 군에 다시 복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 락소의 진심이었다.
***
불법 사병 집단을 소탕하는 비밀 작전이 개시되었다.
필요한 것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국왕이 다녀간 바로 다음 날부터 잠입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뒀었다.
“조금 두근거리는걸?”
한껏 차려입은 옷을 벗고 시커먼 위장복으로 갈아입은 아미가 거울을 보며 씩 웃었다.
“그래서, 몇 명이나 도륙할 건데?”
“도륙하러 가는 거 아니야.”
“대장님이 찢어발기고 오라는데.”
노아는 할 말을 잃었다.
출발 전.
“간단하게 설명하지.”
레토가 작전 사항을 전달했다.
“차량을 타고 수도 외곽까지 달린 뒤, 근처 철도에서 대기하다가 북부행 화물열차에 올라탈 거다.”
작전 기간은 나흘.
이 안에 불법 사병 집단을 소탕하고, 증거들을 가져와야 했다.
“조금 더 자세한 사항은 이후 접선할 지원군에게 전해 듣게 될 거다. 그때 조금 더 확실한 계획을 논하도록 하지.”
레토는 작전에 참여한 대원들을 한 명씩 둘러봤다.
노아와 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질문은?”
“야.”
잠자코 듣고 있던 락소가 황급히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참가 중인 거야.”
시커먼 위장복 차림의 군인들 사이에, 전역 예비군 한 명이 섞여 있었다.
“너도 군인이잖아.”
“전역했거든!”
“전역한 예비군은 전쟁 및 그에 준하는 천재지변, 그 외 긴박한 상황에 추가 동원될 수 있지.”
레토는 별일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어?”
하지만 락소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노아와 아미는 낚였구나, 싶어 안쓰럽게 그를 바라봤다.
“뭐야, 진짜로 뭐 죽이고 싸우는 그런 상황이야?”
“자, 그럼 출발해 볼까.”
“야! 레토 이 새끼야!”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락소는 눈물을 머금으며 차에 올랐다. 까맣고 투박한 외형의 마동력차는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다.
“아스.”
출발하기 전, 노아가 자신들을 배웅하러 나온 아스에게 클라레를 부탁했다.
“최대한 빨리 오도록 노력할게.”
“다들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스는 네 사람이 탄 차량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검은 마동력차는 대로를 지나, 인적이 드문 갓길 쪽으로 빠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곧 수도 외곽으로 벗어나는 도로가 나타났다.
“궁금한 게 있는데.”
차를 몰던 레토가 물었다.
“둘 중에 누가 신성청에 대한 정보통이야?”
그 말에 노아는 자연히 락소를 바라봤다.
“아까 보니 락소 씨, 술집 말고 뭔가 다른 걸 하시는 것 같던데….”
“사실은 정보상이 진짜 직업이에요. 술집은 부업이고요.”
락소가 순순히 대답했다.
“진짜요? 그런 건 소설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깜짝 놀란 아미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노아는 저 얄미운 것이 지금 일부러 저런다는 걸 빠르게 눈치챘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걸 말해도 돼요?”
“비밀이긴 한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알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머쓱한 웃음과 함께 목덜미를 매만지던 락소가 이어 말했다.
“하지만 신성청은 나도 많이 모르는데….”
신성청은 군대나 기사단보다 폐쇄적인 집단이다. 그곳의 정보를 빼내는 건 군 기밀에 접근하는 것보다 위험했다.
그 탓에 락소 역시 국왕이 부탁했던 정보들을 수집할 때 신성청과 관련된 것들에선 상당히 고생했었다.
“아, 그거 나예요.”
아미가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신성청 정보통이야. 이래 봬도 어머님의 견실한 딸이거든.”
아미가 이 보란 듯이 성호를 그으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
“…….”
노아와 락소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중위, 거짓말하면 구라구라가 잡아간다?”
레토는 아예 거짓말이라고 확정 지었다.
“진짜인데 아무도 안 믿네.”
아미는 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빙 둘러봤지만, 딱히 화를 내거나 따지진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남부에서 가지고 온 무기 두 점이 담긴 가방을 툭툭 건드렸다.
“근데 이건 뭐야? 대장님이 열어보지 말라고 해서 아직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길이를 보면 저격용 소총 같기도 한데.”
락소도 가방에 들린 게 궁금한 눈치였다.
“음….”
잠시 고민하던 노아가 레토를 바라봤다. 운전 중이던 레토는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었다. 너 하고픈 대로 하란 뜻이었다.
잠시 고민한 노아는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 줬다.
“검이야.”
“검으로 싸운다고?”
락소가 놀란 눈으로 노아를 바라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은 게 확연히 보였다.
“어, 이거 그거 아냐?”
반면, 아미는 검 두 자루를 알아봤다.
“마스랑 페미나! 올봄에 중장님이 너 진급 방해하고 보란 듯이 받아 갔던 전리품!”
“레토 너 그런 짓을 했다고?”
락소가 경악했다.
“그런데도 결혼했다고? 벨로 양, 제정신입니까?”
“노아가 호구라서 그래요.”
“이왕이면 착하다고 해 줄래?”
“와아, 이런 천사를 봤나….”
“저 새끼 지금 내 아내한테 천사라고 했냐?”
국외로 몰래 잠입하기 위한 작전 부대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시끌벅적했다.
때마침 마동력차가 수도를 완전히 벗어났다.
늦은 밤이어도 수도 외곽은 여전히 지나가는 차가 많았다. 이들이 탄 검은 마동력차는 더욱 외진 길로 들어갔다.
가로등조차 없는, 나무들로 빼곡해 어둡고 좁은 숲길을 지나갈 때마다 차체가 가지와 수풀에 긁히면서 흠집이 마구 생겼다.
“아까워라.”
락소는 흠집이 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근데 너 정말 검만 쓸 거야?”
“일단은 주무기로 쓰려고.”
“하긴, 너 검 잘 쓰는 거야 유명하지만….”
가방 속 두 자루의 검을 힐끔거리던 아미가 다른 걸 물었다.
“근데 다른 무기는? 설마 이 검 두 자루가 다야?”
“무기는 곧 도착하는 곳에서 조달할 거다.”
레토가 차를 멈추며 말했다.
차에서 내린 네 사람은 그대로 숲길을 걸어갔다. 수풀을 헤치고 몇 분을 걸으니,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철도가 놓인 들판이었다.
“마침 오는군.”
레토가 철도의 끝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 덜컹덜컹, 수많은 바퀴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북부로 향하는 화물열차였다.
“이 구역은 수도와 근처 영지가 인접한 곳이라 속도를 늦출 거다. 그때 올라타면 된다.”
“칸 호수는?”
“‘8번’이라고 쓰인 곳이다. 그곳만 문이 열려 있을 거야.”
국왕이 보낸 지원 병력이 미리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노아와 레토는 가방에서 검을 꺼내 허리에 찼다. 아미는 신발 끈을 서둘러 확인했고, 락소는 제발 실수로 떨어지면서 합류에 실패하길 기도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었다.
화물열차는 레토의 말대로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철도 아래에 누워 몸을 숨기고 있던 네 사람은 기관사가 탄 머리 부분이 지나가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레토가 말한 대로, ‘8번’이라 쓰인 화물칸만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덕분에 넷은 무사히 화물칸에 올라탈 수 있었다.
“…X발!”
그 와중에 무사히 올라탄 락소는 아직 떨치지 못한 군인으로서의 운동 신경을 저주하고 있었다.
“저 녀석, 특수 부대 출신이거든.”
“그래서 국왕이 락소 씨도 포함시킨 거구나.”
레토의 설명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제법 신경을 썼군.”
내부를 살피던 레토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말이 화물칸이지, 불법 무기상의 가게처럼 벽면에 다양한 총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날이 번뜩이는 단검들도 종류별로 있었다.
“화물용 상자 안에도 전부 탄창이 채워져 있어.”
근처에 있던 상자 안을 살핀 아미가 혀를 내둘렀다.
천장에 달린 희미한 조명이 기차를 따라 흔들거리니 탄창들에 피얼룩이 묻은 것처럼 보였다.
“여기엔 행낭도 있네? 총 다섯 개.”
“난 처음부터 확정된 인원이었군.”
빌어먹을 국왕 새끼.
락소는 울며 할라피뇨 먹기로 제 몫의 행낭을 챙겼다.
“근데 그 지원 병력은?”
총을 고르던 아미는 그제야 국왕이 보낸다던 지원 병력을 찾았다.
“저기 있어.”
노아가 뚱한 표정으로 어두컴컴한 구석을 가리켰다.
빛 한 점 드리우지 않는 화물칸 구석으로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거짓말처럼 인기척이 느껴졌다.
‘평범한 실력자는 아닌 모양이네.’
제법 예리한 편이라 자신하는 아미가 속으로 혀를 찼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일인 거야….’
반면 락소는 자신이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렸단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하는 중이었다.
눈치 봐서 도망칠까 잠깐 고민했지만,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곧 희미한 조명 아래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덥수룩한 갈색 머리를 꽁지처럼 대충 묶은, 초록색 눈동자가 예리하게 반짝이는 남자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노아는 오랜만에 보는 오빠를 보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왕이 보냈단 지원 병력은 아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