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245)

133.

“…누구요?”

처음 듣는 이름에 노아는 퍽 당황했다.

‘육군이 여기서 왜 나와…?’

생뚱맞은 제3의 세력 등장은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중장님, 혹시 아십니까?”

“국경 경비 부대면 특수 부대야.”

설명하는 레토 역시 육군에 아는 사람은 몇 있지만, 플루스 대위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엄선된 군인들만 차출하는 곳이야. 그곳 출신이 이적 행위를 했다면 육군이 발 빠르게 대처했을 텐데….”

“어쨌건 곤란하게 되었어요.”

로세카 검사가 손으로 앞머리를 넘기며 음소거로 험악한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전해 주는 변호인단의 주장은 이랬다.

“해군 측의 조사가 애초부터 잘못되었다고 해요.”

“조사를 우리만 했나? 왕실 기사단도…!”

순간 욱했던 노아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젠장!’

왕실 기사단 뒤에는 국왕이 있었다.

“기사단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국왕을 저격하는 꼴이에요.”

어쨌거나 기사단은 국왕 직속이니까.

로세카 검사가 말했다. 그녀 역시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의중은 확실하군요.”

노아가 말했다.

“변호인단은 피고의 죄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 책임을 어떻게든 분산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해군의 무능도 지적하려는 듯했다.

‘아드벨로와 척을 지려는 건가?’

노아는 기가 막혔다. 늑대가 무섭다고 호랑이한테 싸움 거는 꼴이라니. 변호사 정신이 보통 투철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정상적인 판단을 아예 못 하든지.

“그나저나 이해가 안 가는군요.”

레토가 물었다.

“사법 거래가 진행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제 말이요!”

로세카 검사가 의아한 점은 따로 있었다.

“분명 추후 관련자를 실토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하는 거래를 제시했고, 저쪽에서도 받아들였단 말이죠.”

어제까지만 해도 그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

“…….”

말을 하던 로세카 검사가 멈칫했다. 노아와 레토도 마찬가지였다.

셋은 동시에 깨달았다.

저들은 거래를 불발시키려고 한 것이다.

***

베닝은 약속대로 후문에서 노아와 레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동력차는 처음 탔던 것과 다른 차종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아저씨.”

“예상한 것보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베닝이 모는 파란색 마동력차가 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노아와 레토는 재판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덩달아 차 안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

눈치 좋은 베닝은 괜히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에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최대한 빨리 저택에 도착하도록 운전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드벨로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노아와 레토는 집무실로 향했다.

레토는 조금 급한 손짓으로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해군 본부 참모총장실 비서실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오케아누스입니다. 암호는….”

신원을 확인한 뒤, 레토는 서둘러 아드벨로 대장을 바꿔 줄 것을 부탁했다.

“조금 전 1차 공판을 끝나고 돌아왔습니다. 급히 알려드려야 할 사항이 생겼습니다. 대장님과 연결 가능합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철컥, 소리가 나더니 회선 연결음 소리가 짧게 들렸다.

[…뭐가 잘 안 됐나 봐?]

전화를 받은 아드벨로 대장은 마치 이럴 줄 알았단 듯이 태연스러운 목소리로 상황을 물었다.

“신성청에서 증인이 나왔습니다.”

레토는 법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전달했다.

피고 측 증인으로 나온 신성청 직속 추기경, 수많은 변호인단, 갑작스러운 형량 사법 거래 불발까지.

[…….]

잠자코 듣던 아드벨로 대장은 한참 말이 없었다.

“중장님.”

그 틈에 노아가 말했다.

“어쩌면 그 변호인단, 신성청 측에서 보낸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플랜시 전 소장 측은 현재 돈이 없다. 재산은 동결되었고, 막대한 보상금을 갚아야 하니 도리어 빚만 산더미다.

그러니 아직 이혼하지 않은 부인에겐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녀의 친정은 어떨지 몰라도, 미래도 없는 놈에게 도움을 주진 않을 것 같았다.

[변호인단은 어느 쪽인지 알아?]

아드벨로 대장이 물었다. 레토가 말을 전달하자, 노아는 소장에서 읽었던 상대 측 변호인단 명칭을 떠올렸다.

“…캄파나입니다.”

“캄파나?”

[아 그 X 같은 새끼들이…!]

변호인단 이름을 들은 아드벨로 대장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신성청 후원을 받는 변호인단이야. 아주 대놓고 범죄자를 편들어 주고 있군. 급하긴 한가 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레토가 물었다.

[…캄파나 변호인단은 신성청의 재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들이거든. 아드벨로와도 몇 번이나 부딪힌 적이 있어.]

그리고 그때마다 끝이 썩 좋지 않게 끝났다.

[지독하기론 동네 깡패보다 더해.]

아드벨로 대장의 말은 중요한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등에 불 떨어졌나 봐. 중범죄자를 이유 없이 변호한다는 건, 이 빌어먹을 사건에 신성청도 관련된 거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재판에 지장은….”

[오히려 잘됐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사악한 웃음소리가 섬뜩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둘은 직감했다.

지금 글로리아는 심기가 아주 불편한 상태라는 걸.

[자기들 의심해 달라고 보란 듯이 나타났는데, 쥐잡듯 패 버려야 하지 않겠냐.]

“그럼 재판은….”

[당연히 계속해야지.]

내일 증거 적부심 심사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알아보라 말했다.

대신, 아드벨로 대장이 지원 인력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신성청 하면 이 인간이 최고거든.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아드벨로 대장은 전화를 철컥 끊어 버렸다.

“…그렇다는데?”

레토가 옆에 있던 노아에게 말했다.

“우리 대위는 어찌 생각하시나?”

레토는 걸치고 있던 정복 재킷을 벗어 던지며 물었다. 깔끔하게 넘겼던 앞머리도 손으로 벅벅 쓸며 헝클어트렸다.

“신성청이 관련된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만….”

노아가 궁금한 건, 신성청이 이번 사건에 어째서 연관되었느냐는 점이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거야 잡아서 족치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니까.

“신성청에게 득이 될 점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이거 자칫하면 일이 진짜 심각해질 거 같은데….”

이쯤 되니 평범한 이적 사건인 줄 알았을 때가 좋았다며, 레토가 아련한 그날을 추억했다.

“잘못하다간 국교랑 싸우는 꼴이 되잖아.”

“근데 신성청이 끼어들 틈이 있었나?”

마찬가지로 재킷을 벗은 노아가 말투를 편안하게 바꿨다. 동시에 안에 받쳐 입었던 셔츠 목깃 단추를 세 개 정도 풀었다.

“굳이 의심해 본다면….”

레토가 손가락 몇 개를 접었다.

“프레드 랠리가 마약 종자를 어디서 구했느냐.”

“간첩이 건네줬을 가능성은?”

“간첩이 내려오기 전부터 마약을 재배했다고 했어.”

신성청은 한때 마약이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퇴치하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마 손에 넣었을지 모르지.”

“…….”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 돌아가는 작태를 보면 억측도 아닌 것 같군.”

레토가 쓰게 웃었다.

“원래 신성청은 인간의 욕망을 봉인한다는 이유로 추잡한 것들을 많이 모아 뒀거든. 야한 책이나, 음란한 그림….”

“신성청도 신성청이지만….”

노아가 말했다.

“육군의 플루스 대위는 도대체 누구야?”

“육군도 얽혔나?”

“그건 조심스럽게 추측해야 하지 않을까? 플랜시 소장처럼 개인의 일탈일 가능성도 있고.”

“…….”

레토가 긍정의 의미로 침묵했다. 하지만 영 탐탁잖은 기분까지 떨치지는 못했다.

어쩐지 계속 뭐가 마음에 걸렸다.

“…일단 좀 쉴까?”

레토가 지친 한숨을 흘리며 제안했다.

계속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자신들은 지금 돌발상황에 크게 당황했고, 그렇기에 잠시 숨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럼 좀 씻고 올게.”

노아도 동의하며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갈아입을 옷을 챙긴 뒤, 방 옆에 딸린 욕실에 물을 틀어놓고 멍하니 지켜보기를 잠깐.

‘…진짜 한 달 내내 일만 하는 거 아니야?’

불현듯 떠오르는 불길함에 노아가 몸을 잘게 떨었다.

솔직히 재판 증언 한 번 하려고 수도에 한 달 동안 머무르는 출장이란 소리에, 할머니가 드디어 가족이라고 특혜를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특혜는커녕 일만 더 커졌다.

‘일부러 우리 보낸 거 아냐? 대놓고 부려 먹으려고?’

합리적 의심에 괴로운 신음이 터지려던 찰나.

“작은 주인님.”

아스가 찾아왔다.

“아스, 클라레는?”

“수영하고 뻗어서 자고 있어요.”

식칼토끼 수영을 원 없이 자랑하느라 점심도 먹기 전부터 이른 낮잠 중이었다.

“저기, 전에 부탁하셨던 거….”

“알아봤어?”

“알아는 봤는데….”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주위를 살피던 아스는 기어코 방문을 잠갔다. 욕실 문도 잠갔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단둘밖에 없는 욕실을 두리번거리며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왜 그래?”

“그게, 어우, 이걸 어떻게 말한담….”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스는 겨우 용기를 내 말했다.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작고 조심스러웠다.

“20년 전에 신문에 났더라고요.”

“20년 전에? 뭐 사고 쳤대?”

“오케아누스 후작님이랑 이혼해서요.”

“뭐?”

욕조에 기대앉았던 노아가 깜짝 놀라 휘청거렸다. 따뜻한 물이 반쯤 채워진 욕조에 빠질 뻔한 걸 아스가 서둘러 붙잡아 줬다.

“그럼 후작님이랑 결혼했던 사이라고?”

“그 당시엔 아직 후계자 신분의 영애였지만요.”

“그런데 귀족이랑 결혼했다가 이혼한 게 신문에 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야?”

“닉스 소장한테 내연녀가 있었대요. 그리고 사생아도.”

“…….”

노아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지간한 쓰레기가 아니었구나.’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였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이었는데, 이어진 아스의 말은 오늘 들은 것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진짜 이혼 사유로 추측되는 게, 친자식의 사망이래요.”

“친자식?”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열병이 나서 사망했다고 해요.”

“죽었다고? 근데 왜 그게 진짜 이혼 사유….”

“아들이 죽어 가는 중에, 닉스 소장이 내연녀랑 같이 있었다고 해요. 그게 밝혀져서 이혼당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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