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해군 소장 이적 사건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검사 측의 발언이었다.
“본 사건은 국방을 뒤흔드는 최악의 범죄입니다. 국가 기밀을 빼돌려 타국에, 그것도 7년 전 전쟁을 일으켰던 시스토 제국으로 팔아넘기려 했습니다.”
로세카 검사는 힘 있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사건의 위중함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본 검사단은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검사의 마지막 말이 끝나는 동시에 흐느끼는 울음이 들렸다.
노아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플랜시 전 소장의 부인이었다.
“…대위.”
레토가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옆을 봐.”
그 말에 시선을 살짝 돌렸던 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느껴 우는 부인의 옆에서, 추기경이 그녀를 위로 중이었다.
“…….”
다시 앞을 바라보는 노아의 얼굴 위로 언짢음이 드리웠다.
“어떻게 생각해?”
“이상하긴 합니다.”
때마침 피고 측의 주장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플랜시 전 소장 옆에 앉은 체격 좋은 변호사가 떠드는 목소리 뒤에 숨어 대화를 이어 갔다.
“저 추기경은 무엇 때문에 플랜시 전 소장 측의 증인으로 나왔을지, 그 점이 의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서 인성 증언하러 온 건?”
“그러면 부인이 증언을 나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변호사는 피고인의 죄를 인정하나, 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이어 갔다.
피고는 군 복무로 인한 압박과 피로, 정서 불안 등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지랄도 유분수인데, 그치?”
“지킬 분수도 없으니까 저러는 겁니다.”
노아와 레토도 대화도 눈치껏 끝났다.
양측의 주장을 들은 판사가 변론 시작을 알렸다.
검사 측이 먼저 변론을 시작했다.
로세카 검사는 플랜시 전 소장이 저지른 죄목을 하나하나 읊으면서, 중간중간 적절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신빙성을 더했다.
그럴 때마다 방청석에 앉은 기자들이 분주하게 수첩에 내용을 갈기듯 썼고, 일반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숨을 헉 들이켰다.
피고인석에 앉은 변호인단은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아는 의아해졌다.
‘고용할 돈이 있나?’
플랜시 전 소장은 이적 죄만 저지른 게 아니었다. 그는 군내 자금도 횡령했었고, 그 때문에 재산이 동결되었다.
거기다 지내던 관사에서도 내쫓겼기 때문에 경제적 형편이 위태로운 상태일 텐데.
한 명도 아니고, 저런 다수의 변호인단을 고용했단 점이 너무 이상했다.
“재판장님.”
로세카 검사가 힘줘 말했다.
“이미 해군에선 피고인의 범행을 의심하고 비밀리에 추적 중이었습니다. 즉, 피고인은 오랜 시간 치밀하게 이 범죄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기에 죄질이 극도로 사악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이 서둘러 자신들끼리 무어라고 수군거렸다. 그 틈에 로세카 검사가 레토를 증인으로 요청했다.
판사가 이를 인정했다.
“다녀올게.”
레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젊은 해군 장교가 굳은 표정으로 증인석 앞에 섰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할 때, 방청석 뒤쪽에서 떨리는 한숨이 들렸다.
“증인의 이름과 소속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로세카 검사가 물었다.
“레토 오케아누스. 계급은 중장이며, 직함은 해군 참모차장과 해군작전사령부 사령관, 해군 본부 예하 특수 함선 사령부 사령관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자기소개와 함께, 본격적인 증언이 시작되었다.
“증인은 피고의 범죄를 짐작하고 있었습니까?”
“아드벨로 참모총장님께서 출장을 가시기 전에 조사를 명하셨습니다.”
“재판장님, 이와 관련된 증거 3호를 제출합니다.”
검사 측에서 제출한 증거 3호는 해군 본부에서 제출한 당시 사건 경과 보고서였다.
판사들이 증거를 인정했다.
검사가 이어 물었다.
“증거 3호에 의하면, 아드벨로 해군 참모총장님께서 피고의 범행 정황을 의심하여 조사하라고 명을 내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예,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황이었습니까?”
“플랜시 전 소장이 군수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꾸준히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군수품 조달을 위한 경쟁 계약에 손을 쓰고.
이를 통해 얻어낸 뇌물과 예산 횡령 등.
레토의 증언이 이어질수록, 피고 측 변호인단이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증인이 보시기에, 피고가 저지른 범죄 행위는 어떻게 보였습니까?”
“질문을 조금 더 명확히 해 주시겠습니까?”
“피고가 저지른 범죄들은, 정서 불안 등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낼 수 있는 것들입니까?”
로세카 검사는 마치 모두가 들으란 듯이 또박또박 발음했다.
“…거론된 범죄들은 최소 두 달 전부터 진행됐습니다.”
이에 레토가 잠시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준비가 필요한 범행입니다. 온전하지 않은 정신 상태에선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질문은 이상입니다.”
로세카 검사가 발언을 종료했다.
“피고 측, 질문하시겠습니까?”
“예.”
조금 전 정상참작을 주장하던 풍채 좋은 변호사가 나왔다.
“증인은 현재 어떤 직위에 몸담고 계십니까?”
“해군 참모차장, 해군 작전 사령부 사령관, 해군 본부 예하 특수 함선 사령부 사령관을 겸임 중입니다.”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신 것 같지 않습니까?”
“…….”
레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틈에 검사 측에서 반박했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단은 사건과 무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의를 인정합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변호사가 질문을 정정했으나, 의도는 변함없었다.
“증인은 아들라보르의 영웅이시지요. 뛰어난 실력을 지녔고, 그런 만큼 대단한 직책을 도맡으셨고.”
“칭찬 감사합니다.”
“하나 그 때문에 관리 감독의 소홀함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레토의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고 물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같잖긴.’
뒤에서 지켜보던 노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죄를 부정할 상황이 아니니, 어떻게든 책임 소재를 해군과 분산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틀리진 않았어.’
노아는 새삼 변호인단의 직업 정신에 감탄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뢰인을 위해 저런 말도 안 되는 논리까지 사용하는 거다.
‘그렇지만….’
노아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동시에 레토가 입을 열었다.
“요컨대….”
지옥의 주둥아리를 말이다.
“해군의 총사령관이자 수장이신 아드벨로 대장님께 본 사건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레토의 말에 변호사가 크게 당황했다.
“그,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아닐 수 있습니까.”
싱긋 웃는 레토의 눈빛은 재미난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렸다.
“해군의 관리 감독은 결국 최종적으로 아드벨로 대장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분이 당시 자리를 비우셨으니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을….”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목소리를 높이려던 변호사가 움찔하곤 서둘러 목청을 낮췄다.
“그땐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증인이 참모총장 대리를….”
그리고 그 말을 뱉자마자 깨달았다.
‘젠장!’
자신이 젊은 중장에게 휘말렸음을.
“바로 그거죠.”
레토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게 휘었다.
“해군만이 아니라, 모든 조직은 업무를 분산하고 그 자리에 책임자를 세웁니다.”
“…….”
“우리는 책임자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이 돌아갑니다. 하지만 책임자가 부정을 저지른다면, 그것이 믿은 자의 죄입니까?”
“…….”
변호사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검사는 굳이 질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판사 역시 끼어들지 않았다.
“저는 제 맡은 바를 해냈습니다.”
부정을 찾아내어, 이를 벌하는 것.
“변호사님의 주장대로라면, 이 사건의 책임 소재는 아들라보르 왕국의 위대한 국왕 전하께도 지분이….”
“질문은 이상입니다.”
변호사가 황급히 자리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재밌네.”
자리에 돌아온 레토가 노아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노아는 얌전히 있으란 듯이 레토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
추기경은 그런 둘을 잠시 바라보더니, 도로 고개를 돌렸다.
***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플랜시 전 소장의 범죄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변호인단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검사는 이어서 왕실 기사단 측 증인을 소환했다.
그는 이젠 기사직에서 박탈된 델라트 경이 플랜시 전 소장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단 사실을 증언했다.
다음은 피고 측에서 소환한 증인 차례였다.
“그이는 가정에 충실했어요. 하나뿐인 딸을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고….”
예상대로, 플랜시 전 소장의 부인은 남편의 편을 들었다.
‘정작 딸은 그 아빠 때문에 다니던 학교도 그만뒀다던데.’
노아는 이 자리에 없는 딸을 떠올리니 씁쓸해졌다.
“재판장님.”
그때, 변호사가 말했다.
“피고인이 지은 죄를 부정하지 않으나, 세간에 알려진 것과 비교해 지나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노아와 레토는 조용히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어진 변호사의 말에 노아와 레토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사건에는 또 다른 배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진짜 실세입니다.”
“재판장님!”
로세카 검사가 서둘러 이의를 제기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증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검사 측에 관련 정보를 넘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급하게 알게 되어….”
“양측 모두 앞으로.”
로세카 검사와 변호사가 판사 앞으로 갔다.
이들이 무언가를 다급히 논의하는 사이,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이제 검사 측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피고 측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프레드 랠리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상황을 감지하는 노아는 석연찮은 기분이었다. 레토 역시 동의했다.
“정숙하십시오.”
검사와 변호사를 자리로 돌려보낸 판사가 입을 열었다.
“피고 측의 주장은 재판의 쟁점을 흔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비공개 재판을 열어 이를 확인하겠습니다.”
다음 공판은 추후 알리겠단 말을 끝으로 재판이 끝났다.
소란스러운 방청객을 뒤로하며, 노아와 레토는 자신들을 눈짓으로 부르는 로세카 검사를 따라 나왔다.
“빌어먹을!”
검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조금 전 피고 측 변호인단이 한 말 들었지요?”
“저게 무슨 뜻입니까?”
“또 다른 배후라니….”
“증인석에 있던 추기경….”
호흡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로세카 검사가 말했다.
“…그가 들었다고 합니다.”
고해성사 중에 이번 사건의 진짜 범인을 만났다고.
“육군 국경 경비 부대 소속 플루스 대위가 진범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