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45)

131.

플랜시 전 소장의 1차 공판이 열리는 날.

“언니 어디 가?”

클라레는 아침부터 해군 정복을 차려입은 노아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부도 멋진 옷 입었네? 그때 돌고래 장군님 봤을 때 입었던 거랑 비슷한데, 조금 다르다?”

“여름에만 입는 해군 정복입니다.”

대답하는 레토는 며칠 만에 머리를 뒤로 멀끔하게 넘긴 상태였다. 클라레는 그 머리가 새삼 신기해서 제 앞머리를 두 손으로 휙 따라 넘겼다.

“그러면 둘이 같이 일하러 가?”

“응.”

“쉬려고 온 거 아니었어?”

클라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른은 노예라서 못 쉬는 건가?”

천진난만한 아이의 혼잣말에 노아와 레토는 서글퍼졌다.

“어쨌든 잘 다녀와!”

착한 클라레는 언니와 형부가 일하러 가는 길을 손수 배웅해 줬다.

“내가 언니랑 형부 몫까지 재미나게 놀게!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낮잠도 대신 자고, 어어, 또, 뭐 어쨌든 많이 할게.”

“호호, 그럼 우린 나중에 수영하면서 놀까요?”

“그렇다면 식칼토끼 수영을 보여 주겠어!”

“잘들 다녀오세요.”

“돈 벌고 와!”

얄미운 배웅을 뒤로하며, 차에 오른 노아와 레토는 재판장으로 향했다. 운전은 베닝이 직접 해 줬다.

“이번 공판은 수도에서 무척 유명합니다.”

운전 중인 베닝이 말했다.

“그러니 입구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겁니다.”

“사건이 워낙 심각하….”

“그것도 있지만.”

노아의 말을 베닝이 잘랐다.

“두 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

“…….”

그 말에 노아와 레토가 서로를 슥 바라봤다. 위아래로 상대를 찬찬히 바라보는 눈빛이 사뭇 진중했다.

둘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너 때문이네.”

“너 때문이군.”

“그냥 두 분 때문이라니까요.”

베닝은 기가 막혔다.

서로 잘생기고 예쁘니까 너 찍으러 온 거라고 확신하는 젊은 부부가 어이없으면서도 보기 좋아 웃음이 절로 났다.

그의 말대로, 차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입구에 가득 있는 기자들이 눈에 보였다.

“장날보다 더하네.”

노아는 보자마자 학을 뗐다.

저 인파 사이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찔했다.

반면 레토는 이런 상황이 꽤 익숙했는지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나 예전에 왕궁에 갔을 때도 저랬는데.”

“왜?”

“무공 치하한다고 선왕이 불렀었거든.”

그땐 기자들이 아니었지만.

레토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하지만 노아는 그것만으로도 그때 레토가 홀로 버티었을 압박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레토가 승전의 주역이었음에도, 선왕을 비롯해 많은 기득권이 그를 견제하고 시샘했었다.

“너무 잘나도 고생이야.”

노아의 중얼거림에 레토가 입꼬리를 슥 올렸다.

건물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고급스러운 마동력차의 등장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베닝이 말했다.

“두 분은 재판이 끝나시면 후문 쪽으로 나오십시오. 제가 다른 차로 바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곧 해군 정복 차림의 두 남녀가 차에서 내렸다.

“오케아누스 중장이다!”

“벨로 대위도 함께야!”

두 사람을 알아본 기자들이 사진기를 들이밀며 다가오더니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플랜시 전 소장의 이적 재판에 증언하러 오셨습니까?”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두 분이 이번 사건 해결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같은 해군이었던 동료가 재판장에 섰는데, 어떤 심경이십니까?”

말할 틈조차 주지 않는 질문 세례와 사진기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노아와 레토는 이 모든 것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직원들이 서둘러 문을 닫았다.

“…지치네, 벌써.”

그제야 노아가 혀를 내둘렀다.

“누가 보면 우리가 죄지은 사람인 줄 알겠어.”

“이 정도 인기라면 군인 때려치우고 연예인 해도 되겠는데?”

“군인이니까 이렇게 몰려든단 생각은 안 하냐?”

둘은 몸수색을 마친 뒤, 공판이 열리는 법정으로 향했다.

그곳엔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미리 방청권을 예약한 일반인들도 있었다.

“오셨습니까.”

노아와 레토를 알아본 법원 직원이 증인 대기실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재판은 언제 시작됩니까?”

“20분 뒤로 연기되었습니다. 피고인을 호송 중인 차량이 늦게 들어왔거든요.”

직원이 나가고, 노아와 레토는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대부분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몇몇은 노아와 레토처럼 소속을 드러내는 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왕실 기사단, 신성청 직속 추기경인가?’

왜 있는지 알 것 같은 사람, 왜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

“…….”

하지만 그중에서도 레토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중장님.”

노아 역시 같은 사람을 봤는지, 레토를 부르더니 같은 곳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레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플랜시 전 소장의 아내가 있었다.

***

“이제 법정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재판 시작 5분 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증인들이 법정으로 이동했다.

“오케아누스 중장님. 벨로 대위님.”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둘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맡은 검사 로세카입니다.”

이름처럼 장밋빛 머리칼과 혈색 좋은 피부가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총명한 눈빛과 빈틈없는 자세는 그녀가 만만찮은 실력자라는 것을 방증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레토가 손을 내밀었다. 로세카는 기쁘게 손을 잡았다.

“저야말로 나라의 영웅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증언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악수를 마친 레토가 슬쩍 물었다.

“플랜시 전 소장의 아내였던 사람이 보이던데.”

“아….”

노아와도 악수를 나누던 로세카 검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피고 측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였던 사람이 아니라, 아직도 아내입니다.”

“이런.”

노아가 안타까이 중얼거렸다.

“아직 이혼하지 않은 겁니까?”

“그렇다고 하더군요. 거기다 면회도 꼬박 가고, 구치소에 있을 때도 옥바라지를 꾸준히 하는 모양입니다.”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로세카 검사가 혀를 짧게 찼다. 하지만 차마 욕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사랑했는지,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는 건지….”

하지만 재판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얹어 말했다.

안타깝지만 부인의 증언은 어떤 가치도 없었다. 죄가 이미 명확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와 증인 역시 확실했다.

“오히려 제가 주시하는 건 신성청에서 온 사람입니다.”

“저희도 의아하게 여기긴 했습니다.”

노아는 피고측과 가까운 방청석에 앉은 추기경을 힐끔거렸다.

“이 문제에 신성청이 관련되었습니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애초에 전쟁이 끝난 이후로는 신성청에 대해 여론이 회의적이지 않습니까.”

특히 성녀가 행방불명된 뒤로 더더욱.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테지만…….”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없군요.”

레토의 말에 노아와 로세카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피고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다리가 쇠사슬로 포박된 채, 상체는 심지어 하얀 밧줄에 단단히 묶인 채 나타난 플랜시 전 소장이었다.

‘많이 늙었군.’

노아는 만감이 교차했다.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의 만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예전 직장 상관은 많이 달라졌다. 멀끔했던 얼굴은 눈에 띄게 초췌해졌고,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해 하관이 거뭇거뭇했다.

‘동정심은 안 드는데….’

노아가 탐탁지 않은 건, 그런 플랜시 전 소장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부인이었다.

“…중장님.”

노아가 레토를 불렀다.

“전 중장님이 저런 짓거리를 했다간, 제 손으로 죽여 버릴 겁니다. 흘려 줄 눈물도 없을 테니 각오하십시오.”

“내 마지막 숨을 대위가 거둬 준다니.”

그것만큼 짜릿한 게 있을까.

레토가 씩 웃으며 노아에게 대답했다.

“…….”

노아는 말을 않기로 했다.

이어서 판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판사들이 앉은 뒤에 착석했다.

이제 법정의 모든 문이 닫혔다.

“지금부터 사건번호 309알파인218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명은 올봄 일어났었던 ‘해군 소장 이적 사건’이었다.

***

“알아봐 달라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노아와 레토가 법원에 간 뒤.

클라레가 저택 정원에서 방학 숙제용 식물을 심는 동안, 아스는 저택 내 구비된 도서실에서 골똘히 궁리했다.

‘군인에 관한 정보를 일반인은 어떻게 조사하지?’

일단 도서실로 오긴 했다.

아드벨로는 백여 년 동안 아들라보르의 모든 문화와 기술 혁명의 중심이 되어 왔다.

그러니 이곳 수도 저택에는 엄청난 양의 자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우선은 군사 관련 서적부터 찾아봤다. 7년 전 역공전에 대한 백서도 훑어봤고, 주요 사건을 모아 둔 신문 색인도 살펴봤다.

‘아.’

색인을 찬찬히 훑어보던 아스의 손가락이 멈췄다.

무려 20년 전 발행된 신문에 ‘디모네 닉스’란 이름이 언급되었다. 다만 이때는 소장이 아니라 대위였다.

‘이 정도면 진급 운이 없는 건가?’

같이 사는 가족들이 하나같이 군 내 고위급 장교들이라서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아스는 그리 생각하며 색인에 적힌 신문 기록을 찾았다. 20년 전 신문은 투명한 필름을 입힌 채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아드벨로가 기록하다니.’

찾고 나니까 이상했다.

‘해군이면 몰라도, 육군 대위를 왜 기록해 둔 거지?’

그만큼 중요한 사건에 휘말리기라도 한 건가?

작은 주인님은 왜 이 사람을 찾는 거지?

의아함을 뒤로한 채, 아스는 신문을 찬찬히 훑었다. 어차피 관련 기사를 찾으면 자신의 의문은 금방 풀릴 문제였다.

그리고 디모네 닉스가 언급된 기사는 사회면에 있었다.

무슨 커다란 사고라도 쳤나, 싶었던 아스의 눈은 기사 제목을 읽자마자 튀어나올 듯 커졌다.

“세상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제 목소리에 놀란 아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에 저 혼자뿐인데도, 괜히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하염없이 눈치를 살폈다.

신문에 실린 남자의 흑백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가 바로 디모네 닉스였다.

20년이란 시간을 넘어 보아도 상당한 미남이었으나, 기사 제목과 내용은 그 찰나의 감탄을 싹 증발시켰다.

[닉스 대위, 불륜과 사생아 논란 등으로 이혼]

평범한 군인의 이혼이 사회면 기사로 크게 보도된 건, 그의 배우자가 대단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당시 오케아누스 영애였던 아이트라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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