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이상이 사건의 전말이에요.”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왕궁으로 달려온 노아에게, 아스는 클라레가 감옥에 갇힌 이유를 전해 줬다.
“진짜 감옥에 갇혔어?”
“네.”
“어우, 머리야….”
노아는 아찔해지는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으며 쓰러지듯 쭈그려 앉았다.
“나도 안 들어가 본 감옥인데…!”
“대부분은 안 들어가죠.”
“근데 그걸 고작 6살밖에 안 된 것이 들어갔단 거 아냐!”
물론 클라레가 친 사고가 저의 예상을 훨씬 웃돈 규모이긴 했다. 사고를 쳐도 도자기 따위를 깨는 정도라고 예상했는데, 무려 국왕에게 영 좋지 않은 부상을 입히다니.
‘내 동생이지만 보통내기가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 6살 어린아이였다.
“어린애를 감옥에 가둔다는 게 말이 돼?”
그 어린 게 감옥에서 겁먹고 울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노아는 다시 초조해졌다.
“그런데 아스 넌 왜 이렇게 태연하냐? 클라레가 감옥에 있다며!”
“그랬는데, 지금은 안 계세요.”
왕후궁에 계시거든요.
“어?”
고개를 번쩍 든 노아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아스가 못다 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감옥에 갇히셔서 기념사진 찍으시고, 왕후 전하의 초대를 받아 왕후궁으로 가셨어요.”
“…왜?”
“글쎄요.”
난들 어떻게 알겠느냐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아스는 정말 얄미워 보였다.
혼란스러운 사건 전개에 노아는 이제 정말 두통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클라레가 놀라지 않았단 사실에는 크게 안도했다.
마침 노아의 도착을 전해 들은 왕후궁 측에서 차를 보냈다. 차에 올라탄 노아와 아스는 에메랄드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궁에 도착했다.
“언니!”
차에서 내리니, 창문 발코니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클라레!”
“언니! 나 지금 누구랑 차 마시게?”
“위험하니까 난간에 올라서지 말라고 했지!”
노아의 외침에 클라레가 서둘러 난간에 기댄 몸을 내렸다.
잠시 후, 활짝 열려 있는 커다란 문 너머로 클라레가 나타났다.
“언니! 보고 싶었어!”
노아의 품에 와락 안긴 클라레가 헤벌쭉 웃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듯한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노아는 속으로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선 보기에는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물어봐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언니도 들었어?”
클라레가 기다렸단 듯이 제 무용담을 자랑했다.
“아니! 그 비서 아저씨가 계속 시비를 걸잖아. 갑자기 내 볼을 막 꼬집어서 흔들고, 자기보고 오빠라고 부르라는 거야.”
양심 없는 새끼네.
노아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뭐라고 애한테 계속 오빠라고 부르래.’
카일리코 국왕은 벌써 결혼해서 어린 왕자도 키우는 아버지였다. 양심이 있으면 딸뻘인 애한테 저런 말을 하면 안 됐다.
“막 자기 얼굴이 잘생겼다고 그러는데, 형부랑 할아버지보다 못생겼는걸.”
“그 둘을 이길 순 없지.”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가족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비스와 레토는 정말 아름답고 잘생긴 남자들이었다.
하물며 클라레는 그토록 잘생긴 레토를 처음 봤을 적에도 ‘아저씨’라고 불렀다. 레토 역시 그런 호칭을 딱히 지적하지도 않았고.
‘나름 반반하게 생기긴 했지만….’
노아는 카일리코 국왕의 얼굴을 떠올렸다. 준수한 외모이긴 했으나, 오빠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필살기로 팍!”
클라레가 박치기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건 원래 다리 사이를 발로 차야 하는데, 내가 아직 좀 덜 커서 머리로 쳤지.”
반사적으로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노아가 멈칫했다. 어쩐지 손을 대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도 조금 자랑스러웠다.
‘무인의 피가 흐르긴 하는구나.’
자신의 단점을 보강하여 재빠르게 전략을 수정한 점은 무인으로서 아주 훌륭한 성장이었다. 피에타 가문의 핏줄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확인할 줄은 몰랐지만.’
찝찝한 면이 없진 않았다.
어쨌거나 노아는 이걸 어찌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음….”
그리고 노아는 결정을 내렸다.
“클라레.”
“왜애?”
“그 필살기는 봉인해 두자.”
노아가 클라레의 손을 꼭 쥐며 진지하게 말했다.
“너무 강력한 거 같아. 그 필살기….”
“모자.”
“응?”
“필살기 이름은 모자야. 모두 고자로 만든다고 해서 모자.”
아까 아스가 지어 줬다며 클라레가 말했다. 노아는 아스를 가볍게 째려봤다.
정작 아스는 자신의 작명 실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근데 봉인이 뭐야?”
클라레가 물었다.
“봉인은 힘을 숨긴다는 거야.”
“왜 힘을 숨겨야 해?”
“너무 강한 것 같아서.”
쉬운 이해를 위해, 노아는 식칼토끼를 예로 들었다.
“식칼토끼는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이어도 함부로 식칼을 뽑지 않잖아. 정의의 편은 고작 그런 하찮은 놈을 상대로 힘을 발휘해선 안 돼.”
“오….”
예시가 적절했는지, 클라레는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기 나름대로 이해를 한 것처럼 보였다.
“힘을 봉인하는 거, 쪼금 멋진 거 같아!”
“넌 원래 멋있어.”
클라레를 번쩍 안아 든 노아가 클라레의 볼에 쪽쪽 입을 맞추며 칭찬했다.
“못된 아저씨를 혼내다니, 멋지다! 그러니까 왕후 전하께서 널 초대하신 거지. 그렇지, 아스?”
“당연하죠. 얼마나 근사했다고요.”
아스는 어느 때보다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노아의 귀에 몰래 속삭였다.
“아가씨가 필살기 쓰는 거, 사진으로 찍어 뒀어요.”
그런 걸 찍을 정신이 있었다니.
노아는 역시 가장 사악한 건 아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심 궁금하긴 했기에 잘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벨로 대위님.”
대기 중이던 시녀 한 명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왕후 전하께서 차를 함께하지 않겠느냐며 여쭈라 하셨습니다.”
“언니, 내가 안내해 줄게!”
한 번 가 봤다고, 클라레는 자신이 직접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과연 왕후가 기거하는 곳답게 궁 내부는 크고 넓었다.
“여기야!”
그런데도 클라레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자신이 머물렀던 방을 잘 찾아갔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던 왕후가 싱긋 웃었다.
“아들라보르의 왕후 전하를 뵙습니다. 노아 벨로라고 합니다.”
노아는 예의를 갖춰 왕후에게 인사했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예법에 왕후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둥글게 휘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많이 놀랐을 테지.”
아들라보르의 왕후는 조금 매서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웃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고, 나긋한 말투엔 노아가 했을 걱정을 염두에 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노아는 그녀가 한 나라의 왕후로서 그 직위에 걸맞은 성품을 지녔다고 느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기쁘다고 말하면, 실례가 되려나.”
“저야말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심란함을 끼쳐 죄송….”
“사과할 일이 아니야.”
왕후가 호호 웃었다.
“오히려 클라레 양 때문에 아주 즐거웠지.”
“에헴!”
절 칭찬하는 말에 클라레가 이 보란 듯이 으스댔다. 노아는 그런 동생을 보며 쓰게 웃었다.
왕후는 먼저 사정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 줬다.
“클라레 양이 감옥에 간 건 국왕 전하의 뜻이 아니라네.”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을 치지만, 어린아이를 감옥에 보낼 정도로 인성까지 바닥이라 여기진 않았다.
“아무래도 보는 눈도 많으니, 오케아누스 장군이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일부러 가둔 거라네.”
“언니, 내가 감옥에 갇힌 사람 중 가장 어리댔다? 대단하지?”
“그건 자랑이 아니야….”
또 으스대는 클라레를 진정시키려던 노아가 멈칫했다.
‘…보는 눈이 많아서?’
그 말에 노아가 서둘러 왕후를 바라봤다.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왕후의 얼굴에 어딘가 짓궂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게 누가 땡땡이치라고 했니?”
왕후는 이번 사고가 정말로 즐거운 모양이었다.
“클라레 양이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요. 나중에 따로 상을 보낼게요. 꼭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길 바라요.”
“네에!”
“그래도 다음에는 그 필살기는 쓰지 말아 줘요.”
“가장 강한 필살기인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그 인간한테 마음에 드는 곳이 얼굴이랑 거기밖에 없거든요.”
“그럼 다음엔 어딜 패지?”
“패지 마!”
왕후는 자매의 대화에 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제 정말로 놀러 가 볼까?”
왕후는 벨로 자매들과 함께 차를 타고 왕후궁 뒤에 있는 커다란 정원으로 향했다.
들판처럼 넓고 푸르른 그곳엔 아주 큰 풍선이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었다.
바로 국왕이 준비한 진짜 선물인 열기구였다.
“카리나랑 사돈 할아버지가 먼저 타고 있어. 난 언니들이랑 타려고 일부러 왕후 전하랑 기다리고 있었다?”
감동한 언니들은 클라레를 꼭 껴안았다.
때마침 열기구가 내려오고 있었다. 커다란 탑승용 바구니 위에서 누군가가 손을 붕붕 흔들고 있었다. 카리나였다.
“엄청 높이 올라갔어! 구름 사이에 있었어!”
평소 얌전한 아이가 어찌나 흥분했는지, 바구니에서 내리자마자 카리나가 폴짝폴짝 뛰며 자신이 본 것을 자랑했다.
그래서 노아가 온 것을 조금 늦게 알아챘다.
“형수님도 오셨어요?”
“네. 재미있게 노셨나 보네요.”
“그럼 형님도 오셨어요?”
“레토는 못 왔어요. 일이 많아서 피곤했는지 잠들었거든요.”
“아….”
그 말에 카리나는 눈에 띄게 축 처졌다.
노아는 마음이 아팠다.
레토는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면서 열이 오른 탓에 동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카리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왕궁으로 출발하기 전에 레토를 침대에 직접 눕히고, 베닝에게 의사를 불러오라고 지시까지 해 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럴 낌새는 전혀 안 보였는데….’
도리어 얼마나 쌩쌩했는지, 전날 밤을 떠올리면 절로 허리가 욱신거리려고 했다.
“손주며느리야.”
그때, 알버스가 노아를 불렀다.
“괜찮은 게냐?”
카리나가 아스와 클라레 곁으로 가 버린 걸 확인한 뒤, 알버스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물었다.
“…레토가 갑자기 열이 나서 쓰러졌습니다.”
“뭐?”
“일단 의사를 불러 뒀습니다. 제가 봤을 땐 단순한 몸살처럼 보이긴 했지만요.”
“어허….”
알버스도 느닷없는 레토의 소식에 놀란 듯했다.
‘짐작 가는 게 없진 않은데….’
노아는 어째선지 그걸 알버스에게 물어보는 게 껄끄러웠다.
“난 디모네 닉스 소장을 의심하고 있어.”
그 말을 꺼냈을 때.
그때부터 레토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