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45)

116.

카일리코 국왕의 발표는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첫 번째로, 국왕은 그간 암암리에 언급을 꺼리던 테네브레를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여태 국왕들이 자신들만의 첩보 기관을 숨겨 왔거나 언급을 최소화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파격이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언급한 테네브레를 폐지하고 안보국에 투입한다는 것에, 찬반 여론이 들썩거리며 맹렬히 부딪혔다.

찬성 측 여론은 테네브레의 합류로 나라를 수호하는 방첩 정보 기관이 더욱 강해진다고 반겼지만, 반대 측 여론은 막강한 권력을 테네브레에 쥐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아드벨로는 당연히 본 사안에 대해 유감이란 입장을 성명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적대해 온 테네브레를 신뢰하지 않았다.

때문에 남부의 여론도 이를 따르고 있었다.

반면, 해군은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성명을 내지 않았다.

비록 해군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군대는 정치성을 띠지 말아야 했다.

거기다 현 해군 대장이 아드벨로 가문 출신이 아닌가. 그렇기에 입장 표명을 더욱 신중히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본부 내에서도 이번 사안은 뜨거운 감자였다.

“아무래도 너무 속 보이는 짓이지 않냐?”

아미가 매점에서 사 온 과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결국은 자기 왕권 강화하려고 이 지랄을 한 거잖아. 누구 좋으라고 테네브레를 양지로 올려.”

어쩌면 간첩 조작 미수 사건도 국왕이 꾸몄을지 모를 일이라며 아미가 음모론을 펼쳤다.

그 말에 특함 대원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건 너무 갔다.”

듣던 셀린이 반박했다.

“너 설마 국왕 편이야?”

“미쳤어?”

셀린은 아미의 과자를 몇 개 훔쳐 먹으며 투덜거렸다.

“그 인간은 얍삽하고 비열하거든. 보나 마나 기회를 엿보다가 안보국이 뭔 짓을 할 게 뻔하니 옳다구나, 하고 이용한 거지.”

그녀의 의견에 다들 놀란 눈으로 셀린을 바라봤다.

“…너 국왕이랑 아는 사이야?”

아미의 물음에 셀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겠어?”

“하긴, 그건 또 그렇네.”

수긍한 아미는 셀린을 한 번 힐끔거렸다. 하지만 더는 묻지 않고 과자를 먹는 데만 집중했다.

“중장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아이스 중령이 레토에게 물었다.

“나도 일단은 보르 중위와 의견이 같아.”

레토의 지지를 얻은 셀린은 어중간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저와 같은 뜻이라 해도 하나도 안 기뻤다. 그렇다고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제 친오빠를 닮은 놈이라 영 떨떠름했다.

그리고 그건 레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찬반을 따지자면, 난 반대지.”

“그렇지만 이대로 밀고 나가지 않겠습니까?”

아이스 중령의 말에 레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보국을 비워둘 순 없으니까.”

여기서 찬반 토론을 펼쳐 봤자, 이미 수도에선 안보국 개편에 발 빠르게 착수하고 있을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고 실력이 퇴보되었다곤 하나, 안보국은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국가기관이었다.

안보국의 힘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전쟁이 끝난 뒤의 안보국은 너무 나약해졌고, 제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국왕도 이를 염려했기 때문에, 당장 방첩과 정보 수집, 처리 등에 능숙한 테네브레를 수혈한 거다.

방법의 옳고 그름은 둘째치고, 레토는 국왕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하여튼 능구렁이 새끼.’

레토는 제 성격도 좋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리코 국왕은 그런 저를 뛰어넘는 교활하고 약삭빠른 인물이었다.

‘결국 챙길 건 다 챙기네.’

남부까지 내려와 왜 그 지랄을 하나 싶었더니.

솔직히, 레토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거다.”

레토가 조용히 손가락을 깍지 꼈다. 그리고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마다 힘을 줘 슬그머니 압박했다.

‘드디어 잡는다….’

조용히 내뱉는 숨소리가 느리고 길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레토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침묵으로 삭이던 찰나였다.

“중장님.”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노아가 레토를 찾았다.

“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와, 대장님 엄청 예민하실 텐데….”

아미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레토를 바라봤다.

지금 아드벨로 대장은 국왕의 뒤통수 치는 개혁안에 무척 언짢은 상태였다.

평소 즐겨 하는 얄미운 농담도, 서글서글한 웃음도 없었다.

지금 참모총장실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비서실장님이 어지간하면 비위 맞추라고 조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눈도 마주치지 말랍니다.”

노아가 가기 전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아드벨로 대장을 오랫동안 보필해 온 비서실장마저 오늘은 최대한 조심하라고 진지하게 당부까지 했다.

“나 평소에 대장님한테 잘하지 않던가?”

“…….”

레토의 질문에 노아는 답하지 않았다. 저놈이 대장님의 정체를 알기 전에 ‘할망구’라고 욕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참모총장실로 가는 길에, 레토가 노아에게 궁금했던 걸 물었다.

“우리 훈련 말이야.”

여기서 레토가 말한 ‘훈련’은 마스와 페미나로 하는 오러 적응 훈련이었다. 본부 내엔 많은 사람이 오가니 함부로 ‘오러’를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거 나름 잘하는 중, 맞지?”

“그렇습니다만.”

“솔직히 난, 이번 자격시험을 아주 쉽게 해낼 줄 알았거든?”

노아가 대놓고 비웃었다.

상상하는 게 클라레처럼 유치하고 귀여웠다. 이제 겨우 오러에 익숙해진 주제에, 아주 큰 꿈을 꾼 모양이었다.

하지만 레토가 말한 대상은 그 자신이 아니었다.

“근데 대위, 꽤 힘들어하지 않았던가?”

그가 걱정하고 궁금했던 건 노아였다.

오러를 지닌 사람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했다. 노아가 이번 시험을 무사히 치르긴 했지만, 그런 것치곤 다른 대원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아무리 강해져 봤자….”

노아가 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결국 인간의 범주입니다.”

그러곤 레토를 올려다봤다.

“우리가 훈련하는 힘은 만능이 아닙니다.”

아무리 마법과 오러가 인간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고 해도, 자연 앞에서는 나약한 미물일 뿐이었다.

“그럼 얼마나 강해진 걸까?”

“음….”

노아가 대충 자신들의 실력을 가늠해 봤다.

“아마 한 손으로 바위에 구멍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대신 골절은 각오해야겠지만.

노아가 심드렁히 대답했다. 아직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은 한참 남았지만, 가시적인 변화는 분명 있단 뜻이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레토는 어서 훈련의 성과를 더욱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노아가 염원을 이루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떠드는 사이에 두 사람은 참모총장실에 도착했다.

“대장님.”

레토가 도착을 알리자,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허락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내부는 엉망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책상 위에 불량스럽게 앉아 있는 아드벨로 대장이었다.

그녀는 당장 바닥에 침 뱉으며 욕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였다. 군인이라기보단 질 나쁜 욕쟁이 아줌마 같았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내리면,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정체불명의 파편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찢어진 서류 조각들과 반토막이 난 볼펜들이었다.

“문 닫아.”

레토가 군말 않고 문을 닫았다.

“아, 빡쳐….”

아드벨로 대장은 책상 위에 있던 부채를 잡더니 미친 듯이 펄럭거렸다.

본부 내 건물은 항상 적정 온도를 유지 중이었다. 그러나 아드벨로 대장의 속에서 올라오는 열불까지 식히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셔츠 위쪽 단추를 꽤 많이 풀어헤친 꼴이었다.

‘아이고.’

레토는 노아가 미리 전해 준 비서실장의 조언대로 눈을 내렸다.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게 이 뜻이었나.’

비서실장의 조언은 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란 경고만이 아니라, 감히 저 모습을 함부로 눈에 담지 말란 중의적인 경고도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야.”

그때, 아드벨로 대장이 입을 열었다.

“쿠데타를 준비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대장님, 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레토가 싱긋 웃었다.

“걱정 마라. 내가 준비 다 해 놓을 테니, 너는 가서 왕 새끼 목만 따 오면 돼. 그러면 내 손녀랑 결혼하는 걸 허락해 주마.”

7년 전 전쟁보단 쉬울 거라고, 그러니 한번 해 보자고 제안하는 아드벨로 대장은 거짓 한 점 없이 진지했다.

그녀는 정말로 카일리코 국왕의 이번 안보국 개선안에 화가 난 상태였다.

“꼴에 왕은 왕이라고 재수 없는 건 타고났군. 얄미운 여우 새끼 같으니.”

한번 만나서 족치려고 했는데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서는 라디오 연설로 사람 허파를 뒤집어 버렸다.

“가죽을 벗겨다가 목욕탕 발 닦는 수건으로 만들어 버릴까 보다.”

노골적인 비아냥이 한참 쏟아졌다.

“대장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레토가 결국 물었다.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쿠데타나 같이 일으켜 보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드벨로 대장이 두 사람을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희, 수도에 좀 다녀와야겠다.”

뜬금없는 출장 명령에 노아와 레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에 수도에서 연락이 왔다.”

아드벨로 대장이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 쪼가리들이 바로 조금 전에 왔다던 연락이었다.

노아는 그 중 눈에 띄는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왕실에서 온 겁니까?”

거기엔 왕가를 상징하는 늑대 문장이 찍혀 있었다.

“너희를 증인으로 신청했더구나.”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겁니까?”

들끓는 화가 좀 가라앉았는지, 아드벨로 대장이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대답했다.

“이미 알겠지만.”

아드벨로 대장이 말했다.

“올봄부터 해군과 관련된 사건들이 기묘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

해군 소장 이적 사건부터 시작해 손가락 해적단, 부대 내 가혹행위, 그리고 안보국의 간첩 조작 미수 사건까지.

여기에서 파생된 사건들도 범상치 않았다.

이적 사건과 연관된 왕실 기사가 수도 근처에서 몰래 마약을 만들었고, 작년 가을에 몰래 들어왔던 간첩들이 샤프 영지까지 내려왔다가 체포되었다.

“국왕 새끼 하는 짓이 짜증 나긴 해도, 그게 정답이야.”

아드벨로 대장은 카일리코 국왕의 치밀함만큼은 인정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왕실 기사단이 남부에 저지른 무례를 못 본 척하며 허락한 국왕부터였으니까.

아마 국왕은 이 모든 상황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이상함을 직감했을 거다.

“죽은 선왕이 저지른 거 치운다고 고생이 많아.”

“그럼 저희는 가서 무얼 하면 됩니까?”

레토가 물었다.

“아까 말한 대로야.”

왕실은 해군에서 이번 사건들과 관련된 증언을 해 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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