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운항 자격시험을 치르기 며칠 전.
“안보국 X 되게 하고 싶은 사람?”
셀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레토는 대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특함 대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마치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싶어 안달 난 어린 학생들 같았다.
열정적인 참여에 레토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안보국 X 되게 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첫 번째로 대원들이 한 일은 특함 대원들의 신상 정보를 가짜로 채워 넣은 서류와 바꿔치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꿔치기한 가짜 서류에는 특수한 안료를 덧발랐다.
무색, 무취, 무향이 특징인 이 물질은 아드벨로 가문에서 만든 발명품이었다. 중요한 물건이 도난당했을 때 쉽게 추적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물에 씻기지 않고, 그렇기에 잘 묻어나는 성질을 지녔다.
왜냐하면 이 물감은 도난 방지용이 아니라, 오로지 도난 이후에 범인을 잡아 족치기 위해 만든 응징용이기 때문이었다.
괴짜로 유명한 아드벨로다운 발명품이었다.
어쨌건 이 물질은 특수한 용액과 닿아야만 본연의 색이 나타났다. 눈이 찡할 정도로 화려한 연두색인데, 그 색이 지금 안보국 직원들에게 잔뜩 묻어 있었다.
“네놈들이 훔친 우리 신상 자료에 뭘 발라 뒀거든.”
아미는 연두색이 옮겨진 경로를 친절히 설명해 줬다.
“너희 중 누군가가 자료실에 침입했지?”
자료를 건드린 범인의 손이 공범자들과 접촉하면서 안료를 옮긴 것이다.
그렇게 손으로, 몸으로, 옷으로.
훔친 자료를 숨긴 가방으로.
가방을 숨긴 마동력차 트렁크 아래 은밀한 공간으로.
“증거 확보했습니다.”
군사 경찰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그는 아미가 말했던 대로, 특수한 용액을 뿌려 연두색이 묻은 곳을 수색했다.
검은 마동력차 트렁크 아래에 숨겨진 비밀 공간에 서류를 조작한 흔적들이 나왔다.
“…!”
연두색이 유독 많이 묻은 직원들의 고개가 땅으로 떨궈졌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엔 망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것들이 정말 안보국이라니….’
아미가 소리 죽여 한숨을 흘렸다.
‘내 기도들은 전부 부질없었네.’
착취당하는 것도 모르는 채 성녀로서 살아가던 시절, 그때의 아미는 제 나름 왕국을 위해 정성 어린 기도를 매일 올렸었다.
그런데 그 기도는 결국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신은 방관자니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지.
오랫동안 성녀로 살아온 아미가 뼈저리게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신은 자신들을 지켜만 볼 뿐, 결코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미와 마찬가지로,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에게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는 노아가 명령했다.
“전원 영창으로 호송해라.”
안보국 직원들은 이동하는 중에도 억울하다며 몸부림을 치거나 괜한 악을 썼다.
그때마다 군사 경찰들이 뒤통수를 후리거나 옷자락을 흔들어 댔다.
[너희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진술이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판단할 시엔 묵비권을 행사할…]
노아는 호송되는 안보국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권리를 알려 줬다.
“베르나르 중사.”
그리고 노아는 군사 경찰 중 한 명을 불렀다. 달리스 베르나르 중사는 일전에 가혹행위 사건 때 안면을 튼 군사 경찰이었다.
“저들 중에서….”
노아가 목소리를 낮춰 속닥거렸다. 노아의 말을 들은 베르나르 중사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저놈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데?”
끌려가는 안보국의 등을 향해 침을 뱉던 아미가 물었다. 그녀의 발치에 침 자국이 가득했다.
“영창에 갇히지 않을까?”
“영창 터지겠네.”
“아니면 일반인들 가두는 구금실에 나눠 들어가겠지.”
“이젠 역할을 바꿔서 우리가 저놈들 상담하나?”
“상담이랑 취조가 같냐.”
피식거리며 대꾸한 노아는 주차장에 남겨진 안보국의 마동력차 중 하나로 향했다.
“셀린 공주.”
차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셀린이 뾰로통한 얼굴로 노아를 응시했다.
“구하러 왔습니다.”
“재미없는 농담이야.”
“공주님이라 불리면 좋아하지 않나?”
“넌 중장님한테 밤에 공주님이라 불러 달라고 하냐?”
“미쳤어?”
역겨운 소리 말라며 일축한 노아는 그제야 셀린 옆에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를 발견했다.
아르카는 눈웃음을 지은 채로 노아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기척을 전혀 못 느꼈는데….’
마냥 재수 없고 능글맞은 인간인 줄 알았더니, 존재감을 완벽하게 감출 정도의 실력은 지닌 모양이었다.
‘괜히 한 나라의 국왕이 아니란 거군.’
새삼 다시 봤다.
그래 봐야 개미 땟국물을 물에 희석한 수준이었지만.
그때, 셀린이 말했다.
“수갑 풀어 줘.”
그제야 노아는 깜빡한 것을 떠올렸다.
“수갑 열쇠 받는 거 깜빡했어.”
결국 셀린은 수갑을 찬 채로 본부로 복귀해야 했다.
***
그날 저녁, 해군은 기자 회견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초청에 기자들은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기자 특유의 예리함이 이번 회견에서 뭔가 심상찮은 내용이 발표될 것 같다고 직감했다.
기자들은 서둘러 회견장으로 향했다.
“많이도 왔군요.”
“남부 기자들은 전부 왔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이렇게 갑자기?”
회견장이 기자들로 가득 찼을 즈음, 정복 차림의 해군이 안으로 들어왔다.
해군의 정체를 알아챈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드벨로 대장이야!”
누군가의 외침을 신호 삼아, 기자들이 서둘러 사진기를 들었다. 찰칵찰칵 쉴 틈 없이 터지는 셔터 소리와 조명이 아드벨로 대장의 등장을 환영했다.
‘아드벨로 대장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분명 엄청난 특종일 거다!
확신에 찬 기자들이 서둘러 펜을 들었다.
왜냐하면, 글로리아 아드벨로 대장은 해군의 수장이 된 뒤로 외부에 모습을 노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요 행사에 참석은 할지언정 사진 촬영은 언제나 피해 왔다. 이유도 알려진 바가 없는데, 사람들은 그냥 아드벨로 대장이 괴짜라서 저러는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아드벨로 대장은 괴짜로 유명한 아드벨로 내에서도 엄청난 괴짜로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 기자 회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웬만한 사건이 아니란 것을 방증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아드벨로 대장이 발표를 시작했다.
“금일 오전, 안보국이 해군 본부 내에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려다 발각되어 체포했습니다.”
발표 내용은 기자들이 짐작한 대로 아주 충격적이었다.
놀란 기자들은 서둘러 손을 움직여 아드벨로 대장의 발표를 받아 적었다.
“현재 안보국 직원들은 해군 내에 구금 중이며, 보다 자세한 상황은 나눠주는 유인물로 확인하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열리더니, 군인 두 명이 들어와 기자들에게 인쇄물을 배포했다.
기자들은 서둘러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거기엔 안보국이 해군을 상대로 상담이라는 명목하에 사상검증을 시작했으며, 그 이유가 안보국 내 계파 갈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충격적인 내용에 기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질문 받겠습니다.”
다들 손을 번쩍 들었다.
아드벨로 대장은 그중에서 아무나 한 명을 골랐다. 동글뱅이 안경을 낀 갈색 머리 여자였다.
“‘월간 남부 시사’의 제니 벨로입니다.”
기자가 물었다.
“조금 전 제공한 자료에는 안보국 내 계파 갈등이 문제라는데,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번 남부 출장을 의아하게 여기는 안보국 직원들이 있었단 겁니다.”
즉, 이번 간첩 조작 미수 사건은 안보국 내에서도 왈가왈부가 많았다는 뜻이었다.
기자들은 빠르게 받아 적었다.
다음 질문은 오렌지 단면처럼 진한 금발의 남자였다.
“‘주간 시사 쟁점’의 아메타입니다.”
“질문하세요.”
“얼마 전에 안보국이 7년 전 전범 다섯 명을 체포하였단 소식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번 조작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회견장이 술렁거렸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바로 얼마 전에 전범 체포로 공을 세운 안보국이….”
안보국이 전범들을 체포했단 뉴스가 나온 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그런 안보국이 느닷없이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고 하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아드벨로 대장이 말했다.
“거기까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드벨로 대장은 고작 이런 식으로 답변을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이어진 그녀의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다.
“그러나 안보국이 얼마 전 해군 내 가혹 행위 사건과 관련되었단 사실은 파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가혹 행위를 저지른 에페레나 전 대위의 부친인 에페레나 자작이 안보국과 연관되었단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또 다른 사실에 놀라기도 잠시, 기자들은 서둘러 에페레나 자작이 저질렀던 범죄를 떠올렸다.
현재 에페레나 자작은 구속된 상태인데, 죄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아드벨로 가문과 군수 사업을 한다는 거짓을 유포하여 투자금을 받은 사기. 그리고 그 돈을 가로챈 횡령.
“아니야, 그거 말고 또 있잖아….”
누군가가 말했다.
“그 왜, 플랜시 전 소장이랑 가혹 행위 가해자들이 호송되었단 뉴스 나왔을 때….”
죄인들이 옮겨지던 날, 에페레나 자작의 추가 범죄 사실이 밝혀졌었다.
“주가 조작.”
1년 전.
정체 모를 인물이 유령 회사의 주식을 상장한 뒤, 거짓 소문과 가짜 뉴스로 주가를 폭등시킨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사건의 범인이 최근에 에페레나 자작이었음이 밝혀졌다.
“기자 여러분.”
아드벨로 대장이 한 가지를 당부했다.
“본 기사에 대해서는 이틀의 엠바고를 요청합니다.”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기자들도 아드벨로 대장이 직접 나서서 엠바고를 요청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이유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기자 회견을 마치고 나온 아드벨로 대장은 곧장 참모총장실로 향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서실장이 그녀를 보자 말했다.
“조금 전 오케아누스 중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든?”
“나비가 날아갔다고 합니다.”
“좋아, 좋아.”
아주 바람직한 소식을 들은 것처럼, 아드벨로 대장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기다려 보자고.”
나비의 날갯짓이 가지고 올 거대한 폭풍우를.
***
나비 칼루스는 자신이 어떻게 도망쳤는지, 이젠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것이라곤 군사 경찰들이 찰나 보였던 빈틈, 그리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뭐든 다 해냈고, 뭐든 다 가질 수 있었던 나비에게 오늘의 치욕과 패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비는 알지 못했다.
자신들의 계략을 처음부터 눈치챘던 해군이 왜 저를 놓쳤는지.
과연 그것이 고의였는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