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245)

113.

긴급회의를 마치고 나온 레토는 곧장 특함 사령부실로 걸음을 향했다.

특함 사령부실은 분주했다. 운항 자격시험으로 다들 피곤한 상태였지만, 억울하게 체포된 전우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전원.”

레토가 손가락을 튕기며 대원들의 이목을 모았다.

바삐 움직이던 특함 대원들이 하던 것을 멈췄다. 다들 제각기 선 자세로 임시 회의가 열렸다. 레토는 대원들이 조사한 것들을 듣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발표는 아이스 중령이었다.

“안보국이 머물렀던 숙소를 비롯해 해군 본부 건물에서 이동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증거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탑에서 보증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현재 남은 흔적을 추적하며 또 다른 증거를 확보하는 중입니다.”

다음 발표는 노아였다.

“안보국 측이 제시한 보르 중위의 간첩 혐의는 전부 날조입니다. 미리 저희가 조작해서 바꿔치기했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복이 많습니다.”

“체포 과정에서 불이익은 없던가?”

“현장에 있었던 치티아 중위를 비롯한 영사 내 군인들 말로는, 변호사 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옆에 있던 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장님. 그리고 안보국은 외부인 출입 금지인 영사 구역에도 들어왔습니다.”

아미의 말에 레토가 퍼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마지막까지 야단이군.”

안보국은 엄연한 외부인이다. 해군 본부에 들어오는 것은 허락받았을지언정, 그것이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녀도 된단 뜻이 아니었다.

더욱이 영사는 군인들의 사생활 구역이었다. 해군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영역을, 안보국은 태풍으로 복구 중이라 정신없는 틈을 타 영사를 함부로 침범했다.

“거참.”

레토가 중얼거렸다.

“뇌를 끄집어내서 한번 연구해 보고 싶네.”

“더러운 거 함부로 만지지 마십시오.”

이상한 거 옮습니다.

노아가 정당히 주의를 줬다. 레토 역시 그럴 마음이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발표자는 호네스 메라 일병이었다.

“중장님.”

다만 그는 무언가를 말하는 대신, 책상 서랍에 넣어 뒀던 서류 봉투를 건넸다.

“…….”

봉투 속 서류들을 빠르게 읽어 가던 레토의 눈빛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실속 있는 정보로군.”

“저희 부모님이 가지고 계시던 것 중 일부입니다. 추후 재판으로 넘어갈 때 공통 증거로 제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감사 인사를 따로 전하도록 하지.”

레토는 서류를 피스트 준위에게 전달했다. 내용을 확인한 그는 서둘러 사령관실로 향했다. 곧 문틈 너머로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이제 납치당한 대원을 찾으러 갈까?”

“중장님.”

아미가 손을 들었다.

“이번 작전명은 ‘공주님 구하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데?”

레토는 부관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보르 중위 구출 작전은 ‘공주님 구하기’라 부르기로 한다.”

작전명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벨로 대위.”

“예, 중장님.”

“군사 경찰에게 곧장 연락을 넣도록. 절대 그들 중 누구도 해군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실망시키지 마라.”

“공주님을 무사히 구출하고, 그분을 해치려 한 무뢰배들의 정수리에 정의의 철퇴를 내리겠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부관의 대답에 레토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명을 받은 노아는 그 자리에서 저와 함께 갈 대원들을 차출했다. 로간 미타스 상사, 벨라 토르 중사와 함께했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아미가 동행을 자처했다. 노아는 흔쾌히 수락했다.

“치티아 중위님도 보르 중위님이 걱정되시는 겁니까?”

벨라가 물었다. 그녀는 혹여 안보국이 셀린에게 나쁜 짓이라도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었다. 간첩인 걸 인정하라면서 질 나쁜 협박과 고문이라도 자행하면 큰일이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음…….”

“글쎄…….”

정작 노아와 아미는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셀린은 걱정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아는 셀린은 안보국에게 그리 쉽게 당할 만큼 유순한 성격이 아니었다.

‘묵비권 행사하면서 괴롭힐 거 같은데.’

노아는 그렇게 생각했고.

‘안보국 등신짓 하는 거 구경하러 가야지!’

아미는 마냥 즐겁고 해맑았다.

“두 분 다 저렇게 전우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시다니……!”

벨라는 감탄했다.

“그런 거 아닐걸?”

“그런 거 맞거든?”

퍽!

노아는 로간의 뒤통수를 손으로 가볍게 쳤다. 아야! 예고 없는 타격에 놀란 로간이 억울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 * *

그렇게 레토의 명으로 출동한 노아는 무장한 군사 경찰들을 이끌고 주차장을 포위했다. 로간과 벨라는 주차장 후문 쪽으로 돌아가, 그곳 역시 완벽하게 막았다.

이제 안보국은 정말로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안보국 직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당혹스러운 기색이 완연한 가운데, 땀을 미친 듯이 흘리고 있었다. 비단 더운 날씨 탓이 아니었다.

“확성기 좀.”

군사 경찰들 뒤에서 지켜보던 노아가 손을 척 내밀었다. 옆에 있던 아미가 새빨간 확성기를 건넸다.

[아, 아.]

확성기 너머로 노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들립니까, 안보국 직원들.]

세상 지루하고 심드렁한 목소리가 저들에게 마지막 자비를 고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보르 중위를 이쪽으로 넘기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공개 처형보다 수치스러운 창피를 당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안보국은 노아의 친절을 오히려 시비로 받아들였다. 범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노아가 아미를 슥 바라봤다.

“무례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둔다고 뭐가 달라지는 거 같습니까!”

“저희는 국가를 수호하는 중대한 사명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혐의는 안보국이 전적으로 수사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건 곤란합니다!”

안보국은 지금 해군이 간첩을 옹호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며 도리어 역성이었다.

하지만 전부 다 저러진 않았다. 한쪽에선 이런 상황을 여전히 곤란해하는 안보국 직원들도 있었다.

“음.”

안보국의 위태로운 현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노아가 확성기에서 입술을 떨어트렸다.

“좀 짜증 나서 머리 뽑아 버릴 뻔했어.”

노아가 짧게 감상을 읊었다.

“저것들 지금 물구나무서서 말하나? 어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전부 다 더럽고 역겨울 수 있지?”

“우와. 너 방금 중장님 말투랑 똑같았어.”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배우는 부부거든.”

“그러면 조금 더 괴롭혀 봐.”

생각보다 재밌네.

아미가 킥킥거리며 돌아가는 상황을 즐겁게 구경했다.

안보국 직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분에 겨워 욕설을 내뱉거나 차체를 주먹으로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

“쟤네 왜 저러냐?”

“곧 죽을 거라 그래.”

때마침 차 안에 있었던 국왕 오누이는 야생동물 구경하듯 바깥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나름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도 있었다.

“벨로 대위님.”

민머리가 훌륭한 데카르 보였다.

그는 홀로 군사 경찰들 앞까지 걸어갔다. 총구가 자신을 보란 듯이 겨누고 있으나, 겁먹은 기색 없이 당당히 앞에 섰다.

그 모습에 노아가 의외란 듯이 바라봤다.

“보르 중위님의 신변은 저희가 확실하게 보호하겠습니다.”

“억울하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운 주제에, 그런 침도 안 발린 거짓말을 어찌 믿습니까.”

“…….”

노아의 돌직구에 데카르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저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 역시 안보국 소속이었다. 자신의 소속이 이런 식으로 무시당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만일 혐의 조사 중에 간첩으로 의심될 만한 정황이 없다면…….”

“지금부터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하십시오.”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노아가 경고했다.

그 말이 신호인 것처럼, 군사 경찰들이 안보국을 향해 겨눈 총구를 보란 듯이 재조준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목표물을 노려보는 자동 소총은 당장이라도 발포될 것처럼 위험한 기운을 풍겼다.

“여러분이 내뱉은 단어가 총알이 되어 돌아갈 수 있으니.”

“…….”

“마지막으로 요구합니다.”

당장 셀린 보르 중위를 내놓으십시오.

“…….”

“…….”

그러나 안보국 직원 그 누구도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저들이 아무리 분열되었다고 한들, 안보국을 적으로 대우하는 해군을 앞에 두자 똘똘 뭉쳐 든 것이다.

‘차라리 분열이 나았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재빨리 치운 노아가 확성기를 들었다.

이제 교섭은 끝났다.

[안보국!]

노아가 말했다.

[그대들을 체포한다!]

군사 경찰 중 몇몇이 총구를 내리고는 안보국 직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윽!”

가장 가까이에 있던 데카르가 팔을 뒤로 붙잡히면서 바닥에 강제로 무릎 꿇려지는 걸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제압당했다.

“이거 놔!”

“아악!”

“이게 도대체 무슨……!”

반항 한 번 못 하고 제압당하는 안보국 직원들은 뜨겁게 달궈진 땅 위에 쓰러졌다.

노아는 그들에게 죄목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출입 금지인 자료실을 무단 침입한 죄, 자료실 기밀 정보를 유출한 죄, 선량하진 않지만 그래도 무고한 해군을 간첩으로 몰아가 혐의를 씌운 죄…….]

노아가 죄명을 말할 때마다 안보국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뭐, 뭐야……!’

‘전부 알고 있었다고?’

놀랍게도, 안보국 직원들은 자신들의 죄가 절대로 들통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가 막혀서.’

그 생각을 알아챈 아미는 할 말을 잃었다.

‘알아챈 게 아니라, 본인들이 함정에 빠졌던 것뿐인데.’

이미 해군은 안보국의 속내를 일찌감치 눈치챘었다. 그러니 일부러 태풍이 몰아치는 날에 본부 건물에 사람을 배치하지 않았던 거다.

아무리 험악한 날씨라고 해도, 본부에 당직 한 명 없다는 걸 이상하다고 알아채지 못한 그 시점에서부터 안보국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미는 이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기로 했다.

“자, 손 한번 펼쳐 볼까요?”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진 안보국 직원들을 향해, 아미가 무언가를 칙칙 뿌렸다.

손에 들린 건 조그만 물뿌리개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든 건 평범한 물 따위가 아니었다.

“……!”

정체 모를 액체를 맞은 안보국 직원들의 몸에 기묘한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이 찡할 정도로 화려한 연두색이었다.

연두색은 직원들의 손, 얼굴, 옷 등 구석구석에서 나타났다.

“특수 안료라는 건데.”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색이지만, 이처럼 특정 화학 물질과 반응하면 본래의 색을 드러낸다.

“이게 무슨 뜻일까?”

너희가 X 됐단 뜻이지.

아미가 싱긋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