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45)

112.

셀린이 간첩 혐의로 안보국에게 체포되어 연행되었단 소문은 단숨에 퍼져 갔다.

그리고 아드벨로 대장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심심풀이에게 당했군.”

드물게 다정한 아드벨로 대장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가 위로하려고 다정하게 구는 게 아니란 것쯤은,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아드벨로 대장이 레토에게 물었다.

안보국이 간첩이라고 체포한 군인은 특함 소속이었다. 당연히 그 책임은 레토에게 있었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도 레토였다.

“면목이 없습니다.”

레토가 순순히 사과했다.

“제대로 안보국을 가지고 놀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났습니다.”

“기르던 개한테 물려도 이것보단 기분이 덜 더러울 거야.”

“그런데 지금 체포된 중위는 어디 있습니까?”

베네딕토 군종실장이 물었다.

“현재 안보국은 해군 내에 있네.”

안보국은 셀린을 체포하기 무섭게 해군 기지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해군은 현재 태풍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임시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발이 묶인 안보국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셀린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

“그나저나 간첩 혐의라니….”

에르와쇼 감찰실장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물었다.

“일단, 정말입니까?”

“아니.”

레토가 말했다.

“내 이름에 있는 오케아누스를 걸고, 보르 중위는 무고해.”

“그럼 안보국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는 겁니까?”

“미친놈 머릿속을 내가 어찌 알겠나.”

“…….”

네가 해군의 미친개잖아.

장교들이 다 할 말 많은 눈으로 레토를 바라봤다. 물론 결혼하고 성질이 많이 죽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놈을 능가하는 미친놈은 아직 본부에 없었다.

하지만 레토의 말대로였다.

천하의 미친개도 감히 이해하지 못할 만큼, 지금 안보국은 상식을 뛰어넘는 미친 짓을 벌이는 중이다.

그리고 이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오케아누스 중장.”

“예, 대장님.”

“알아서 해결할 수 있지?”

“예.”

“그럼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내지.”

애초에 아드벨로 대장은 이 사안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긴급회의는 눈속임에 불과했다.

안보국이 자신들의 사기극이 잘 먹혔다고 착각하게끔, 그래서 마음 놓고 방심하게끔 만들려는 수단일 뿐이다.

“마음 아파라.”

아드벨로 대장이 심드렁히 말했다.

“이렇게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을 겪어야 한다니.”

“당장 고소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기자들에게 연락하겠습니다. 못해도 오늘 저녁 안에 회견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디셉 법무실장과 노빌리아 공보정훈실장이 대장의 의중을 파악하고 재빨리 대답했다.

“그 외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비스 비서실장이 물었다.

“…….”

다리를 꼰 채, 깍지 낀 손가락 중 하나를 탁탁 움직이는 아드벨로 대장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덩달아 방 안의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아무래도….”

아드벨로 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역시, 태도를 좀 바꿔야 할 것 같구나.”

아드벨로 대장은 드물게 진지한 말투로 제 생각을 부관들에게 전했다. 평소처럼 가볍고 어투가 아니었다.

“가지고 놀지 말고, 죽여 찢어야 했는데.”

그래야 이딴 사달이 안 났을 텐데.

해군의 수장은 반성했다. 섬뜩하다 못해 피비린내 나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성찰은 진심이었다.

“해군의 문제점이 뭔 거 같나?”

“지나치게 착하고 성실한 점입니다.”

레토가 뻔뻔히 대답했다.

“해군은 오랫동안 아들라보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당연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희생된 전우를 잊어선 안 되었다. 그들에게 바다는 전우의 무덤이고, 언젠가 자신들도 묻힐지 모를 전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군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고, 앞으로도 그리해야 합니다.”

“계속 말해 봐.”

“선량한 사람들만 모인 탓인지….”

레토의 얼굴 위로 비통한 그늘이 드리웠다. 진심으로 가슴 아픈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례한 것들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양심을 발휘합니다.”

“바로 그거야.”

손가락까지 튕기며 아드벨로 대장이 동의했다. 다른 제독들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에 동참했다. 확실히 자신들 해군만큼 양심적이고 올바른 군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적어도 자신들이 알기로는.

“우린 너무 착해.”

아드벨로 대장이 안타까워했다.

“싸움을 걸러 온 등신들도 손님이랍시고 대우까지 해 주고. 너희, 왕실 기사단이 왔을 때도 그랬잖아.”

바로 얼마 전에 안보국을 심심풀이 상대라고 지칭했던 것과 무척 상반되는 자세였다.

“인제 이런 미련한 짓, 그만하자꾸나.”

한 번쯤 보여 줘야 했다.

해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감히 해군을 적으로 돌리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

자신들을 질투하는 편협한 찌질이들에게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그래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여러 사건에서, 해군이 피해를 최대한 덜 보게 될 테니까.

***

‘아, 미친.’

웃음 참느라 진 빠지는 줄 알았네.

셀린은 지금 안보국 직원들이 끌고 온 검은 차량에 홀로 타고 있었다.

두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차 밖에는 저를 감시하는 안보국 직원 2명 정도가 서 있었다.

‘설마 내가 간첩 취급을 받다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진 셀린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내려다봤다. 겨우 참았던 웃음이 다시 터지려고 했다.

‘미치겠네, 진짜!’

입술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서둘러 위로 올렸다. 콧구멍이 다시 벌렁거리려고 했다.

공주로 살면서, 그리고 해군으로 살면서 어지간한 일은 다 겪어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

셀린이 차창 너머 안보국 직원들을 힐끔거렸다.

안보국 직원들의 분위기는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대체적으로 다들 긴장 상태였지만, 그중 반은 어째 고조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불안해하는 듯했다.

‘…그렇군.’

셀린은 바로 안보국의 상황을 파악했다.

‘내부가 분열 상태구나.’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고 가는 이 역겨운 행위를 안보국 전원이 동의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셀린은 살짝 초조해졌다. 자신이 간첩 혐의를 쓴 건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제 출생만큼이나 간첩과 거리가 먼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제 정체를 너무 빨리 들키는 건 곤란했다.

‘아직은 안 되는데….’

당장 떠오르는 건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노아와 아미, 사관생도 시절부터 함께 지낸 소중하고 끔찍한 친구들.

그리고 특함 대원들과 제 나름 인연을 맺은 샤프 영지 이웃들.

“…….”

애먼 입술을 살살 깨물던 찰나였다.

“……?”

차 밖에서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듣자마자 기분이 팍 상하는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린 셀린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는 동시에, 차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을 지키는 분들은 잠시 쉬러 갔습니다.”

“…….”

“그동안은 제가 감시하겠습니다.”

“꺄악!”

셀린이 경악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설마 이거 네 짓이냐?”

“뭐 좋다고 생선 대가리를 괴롭히겠어.”

카일리코 국왕, 아니, 안보국 직원인 아르카가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동시에 셀린의 얼굴은 시공간이 비틀어진 것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아르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너 진짜 못생겨졌구나.”

“X발 지는 원래부터 못생겨서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주제에.”

“뭐래, 죽은 아버지 닮은 게.”

“너 사람이 상도덕이 있지! 어떻게 그런 놈을 닮았다고 하냐? 이 항문에서부터 살가죽을 까뒤집을 새끼.”

“네 얼굴에 걸맞은 단어 선택이구나. 무척 잘 어울려.”

“새언니는 도대체 이 새끼랑 한 이불 덮고 잘 수 있지? 네 얼굴 보고 토하지 않던?”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는 그간 묻지 못했던 안부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 됐고!”

셀린이 수갑 찬 제 손목을 들어 보였다.

“이거, 네 짓이냐? 이대로 네 목을 졸라 국장 치러도 되겠지? 내가 직접 상주로 나서마.”

“친애하는 동생아.”

아르카가 멋들어진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널 도와주려고 온 거야.”

“그냥 안보국에 끌려갈래.”

“어유, 너 끌려가면 고문당한다?”

“…….”

셀린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오빠를 노려봤다.

인제 보니 저 망할 놈은 안보국 직원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머리는 또 무슨 짓을 했길래 쥐 새끼 잡아먹은 것처럼 붉은 건지.

그냥 다 싫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싫은 건, 안보국의 이해 못 할 행동이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데?”

셀린이 물었다.

“간첩 조작해서 성과라도 올리려는 거야? 아니면 얼마 전에 라디오 뉴스에서 나왔던 전범 체포랑 관련된 거야?”

“글쎄, 어떨 거 같아?”

“…설마 전범 체포, 그거 안보국이 했던 거 아니었어?”

셀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친!”

놀란 셀린이 오빠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응시했다.

“설마 그래서야? 가짜 간첩을 만들어서 그 전범들이랑 엮으려고?”

“그걸 알아보려고 내가 위장 취업 했지.”

“머리야….”

셀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수갑 채워진 두 손으로 문질렀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아르카는 제법 안도하고 있었다.

마주할 때마다 으르렁거리긴 해도, 동생을 향한 그의 걱정 하나만큼은 진심이었다.

좀 진정한 셀린이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물었다.

“안보국을 저대로 내버려 둘 건 아니지?”

“당연하지.”

“그럼 난 어떻게 할 건데? 나 아직 정체 들키면 안 되잖아.”

“이제 곧 오빠 친구가 나타날 거니까.”

“중장님 말이야?”

셀린이 한쪽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난 그 인간도 영 별로인데.”

“그래도 친구 동생이라고, 너한테 좀 잘해 주지 않냐?”

“…….”

셀린은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거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저 망할 놈의 동생이란 탓에, 레토에게서 동정 어린 눈빛이라면 여러 번 받아 봤다.

셀린과 레토는 딱 그랬다. 그런 놈의 친구라서 영 호감이 안 가고, 그런 놈의 여동생이라서 불쌍하다고 여기는 그런 관계.

“어쨌건 너무 걱정 마.”

아르카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말했다.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출하는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야.”

저기 봐.

아르카가 창밖을 가리켰다.

무장한 군사 경찰들이 안보국이 모여 있는 주차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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