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245)

110.

“…근데 왜 반말하냐?”

“악!”

곧장 아드벨로 대장에게 머리채를 잡힌 아미가 비명을 질렀다.

“이게 어디서 하늘 같은 별한테 반말이지? 응?”

“아야야! 아아!”

“죄송합니다는 어디로 갔냐?”

“이러다 안에 대원들 다 깹니다!”

“다 기절해서 괜찮아. 그치, 비서실장?”

비서실장이 싱긋 웃었다.

아미의 머리는 아드벨로 대장의 손짓 따라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였다. 마치 예의 바른 어린아이의 공손한 인사 같았다.

“그리고 난 이제 공작이 아니야, 전직 성녀.”

“깡패다, 깡패!”

“요 되바라진 게 진짜…!”

분이 풀릴 때까지 인사를 받은 뒤에야, 아드벨로 대장은 손을 놓았다. 아미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으, 군 내부 가혹행위…!”

“네놈이 진짜 가혹행위를 못 겪어 봤구만.”

됐고.

이야기를 일축한 아드벨로 대장은 제 할 말만 했다.

“넌 그냥 평소처럼 살아.”

너 내키는 대로, 하고픈 거 실컷 하면서 살라고.

“너흴 지키는 건 우리 몫이니, 약간의 협조만 하면 돼.”

“…….”

“몸이 좀 나은 거 같으면 대원들한테 치유마법이나 살살 걸어 줘라. 보르 중위는 폭주 전조 증상이 나타났다니 조금 더 신경 쓰고.”

“그런데 걔는 왜 폭주한 겁니까?”

아미가 한결 유순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대충 정리하려던 아미는 차라리 씻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머리 정리를 멈췄다.

“걔도 너랑 똑같지.”

아드벨로 대장이 말했다.

“안보국이 내려왔는데, 마음껏 마력을 쓸 수 있겠어?”

셀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마력은 국가에 등록된 상태였으며, 두문불출했던 지난 7년을 제외하곤 공주로서 대외적인 활동도 했었다.

만일에라도.

“공주의 마력을 알아채는 놈이 생기면 큰일이지.”

다행이라면, 셀린의 조심성 때문에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

아드벨로 대장이 기대된단 듯이 씩 웃었다.

“자기가 간첩으로 조작된 걸 알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할지.”

***

특함 대원들의 시험은 무사히 끝났다. 그들의 운항 과정은 전부 기록되었으며, 이는 마탑에 보내져 추후 개인 함선 개선에 이용될 예정이었다.

시험을 마친 특함 대원들은 의무실에서 꼬박 하루를 기절했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바닷물과 땀, 자신들이 뱉은 토사물로 더러워진 몸을 씻었다.

그런 다음 준비된 전투식량을 먹으며 태풍이 소강되기를 기다렸다.

“내일 새벽에는 집에 갈 수 있을 듯합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온 메델라 사나 하사가 말했다.

“…이럴 거면 이틀 휴가가 무슨 의미가 있나 모르겠네.”

아미가 육포를 잘근거리며 투덜거렸다.

“기절해 있는다고 하루 꼬박 지나갔더니, 이젠 태풍 때문에 또 하루를 여기서 버티어야 하나.”

“내일 새벽에 집에 가면 뭐하나. 내일은 출근해야 하는데….”

셀린도 아미의 의견에 동의했다.

다들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내년에도 이런 강도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속이 울렁거리고 정신이 피폐해지려 했다.

“중장님.”

아미가 레토를 불렀다.

“휴가 하루만 더 주시면 안 됩니까?”

“그걸 왜 나한테 요구하나.”

나도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레토가 자신들은 다 같은 처지라며 서글픈 현실을 짚어 줬다.

“나도 월급쟁이 군인이라 힘이 많이 없다.”

“중장님은 해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람이면서 말입니까?”

“하필 첫 번째로 높은 사람이 아드벨로 대장님이잖아.”

“중장님은 왜 하필 대장님 부하인 겁니까?”

“치티아 중위, 엎드려뻗쳐.”

“맨날 할 말 없으면 엎드려뻗쳐래….”

그래도 아미는 순순히 명령한 대로 엎드려 뻗쳤다. 식사 중인 걸 고려해, 적당히 3초 정도만 했다.

“중장님.”

그 틈에 노아가 물었다.

“내일부터 바로 정상 근무입니까?”

“그래.”

“대장님께 건의라도 한번 해 보심이 어떻습니까? 아직 본부에 계실 것 아닙니까.”

“음….”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은 레토가 고민했다.

아미는 이건 차별이라면서, 자기가 말할 때는 듣는 척도 않았다면서 셀린을 붙잡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직장인데! 공사 구분은 해야지! 자기 아내라고 저렇게 의견 받아주고 고민해?”

“말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봐.”

셀린이 냉정히 말했다.

아미는 그냥 투덜거리면서 시비를 걸었을 뿐이고, 노아는 차분한 어투로 제안하듯 요구했으니까.

“…재수 없어.”

할 말이 없어진 아미는 퍼석한 파운드케이크를 우물거렸다.

그리고 저녁.

아드벨로 대장을 만나고 온 레토가 희소식을 들고 왔다.

“내일 하루까지 휴가 연장해 주시기로 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 감사합니다!”

아미가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휴가는 내가 대장님에게 요구해서 받았는데, 왜 신에게 감사를 올리냐.”

레토는 아미에게 엎드려뻗쳐 5초를 명령했다.

그렇게 대원들은 몸을 풀며 본부 내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 새벽이 되자마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노아와 레토도 붉은 애마를 타고 언덕 위 벨로 저택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온 거 같아….”

집을 바라보는 노아는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태풍 때문에 저택 외관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포근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난 아까 좀 울었어.”

주차를 마친 레토는 정말로 눈시울이 촉촉했다.

남편의 이른 갱년기를 의심하며, 노아는 잠긴 문을 열쇠로 열었다. 집안으로 들어설 땐 저도 레토처럼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누가 보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비극적이기까지 했다.

집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곧장 방으로 들어가, 냅다 침대 위에 엉켜 누웠다.

“…….”

“…….”

그리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와아!”

그런 둘을 발견한 건, 피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클라레였다.

“아스! 아스! 언니랑 형부가 자고 있어.”

“어머, 언제 오셨던 걸까요?”

아스는 현관에 있던 두 사람의 신발을 치우며 일부러 깜짝 놀란 척했다.

“죽은 거 같아서 코 밑에 손가락 대 봤는데, 다행히 숨은 쉬더라.”

“다행이네요. 장례 비용은 절약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스는 두 사람이 푹 쉴 수 있도록, 클라레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향긋한 라벤더 입욕제를 푼 목욕물에 몸을 담근 뒤, 아스는 클라레에게 시원한 복숭아 탄산수를 만들어 줬다.

클라레가 그걸 마시며 노는 동안, 아스는 이른 점심을 준비했다.

“뭐 만들어?”

다 마신 음료 잔을 가지고 부엌으로 온 클라레가 물었다.

“라구 파스타요.”

“냠냠!”

“네, 냠냠 맛있답니다.”

“언니랑 형부도 먹을까?”

“일어나면 드시겠죠?”

“가서 깨울까? 나 그거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클라레가 허공에다가 제 손바닥을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휘둘렀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들었는데, 기절한 사람을 깨울 때 이렇게 뺨을 치더라고!”

“그럼 아프지 않을까요?”

다 볶은 고기를 접시에 옮겨 담던 아스가 물었다.

“뽀뽀로 깨워 주는 건 어떨까요?”

“어린이의 뽀뽀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어른들은 가끔 우리 입술을 너무 물건처럼 쓰더라?”

그렇게 쓸 거면 돈을 줘.

클라레는 제 입술의 희소성을 주장했다.

“우리 아가씨가 또 성장했네요!”

아스는 자기 주장을 또박또박 하는 클라레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클라레의 뺨 때려서 잠 깨우는 방법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요 배은망덕한 동생 같으니.”

“우아아!”

갑자기 몸이 부웅 떠오른 클라레가 뒤를 돌아봤다.

“언니! 형부!”

“그렇게 때리면 나랑 네 형부가 아프잖아.”

“보고 싶었어! 뽀뽀오!”

“말 돌리는 게 아주 수준급입니다, 처제?”

노아와 레토는 클라레를 꼭 끌어안으며 볼에 뽀뽀해 줬다. 클라레는 꺄르르 웃으며 두 사람의 볼에 답례의 뽀뽀를 해 줬다.

“두 분 다 고생하셨어요.”

식사 준비를 마친 아스가 돌아온 가족들을 환영했다.

네 사람은 라구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으며 이틀간 못 나눈 대화를 나눴다. 주로 클라레가 대피처로 갔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들었다.

“나 학교에 피난 갔는데, 거기서 사돈댁 만났다?”

“제 안부는 전해 주셨나요?”

레토의 물음에 클라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부가 언니한테 맞았던 거 말했어요.”

클라레는 레토가 이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전부 알려 줬다.

“언니한테 까불다가 발가락으로 허리 꼬집힌 거랑, 뒤에서 놀래켰다가 볼 깨물린 거랑, 언니가 어서 씻으라고 했는데 안 씻고 있다가 잔소리 들은 거랑….”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재잘거릴 때마다, 노아의 안색은 태풍 치는 바다를 운항할 때처럼 새하얗게 질려 갔다.

“그랬더니 형부 엄마가요,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 달래요.”

“아….”

그랬군요.

잘못한 것도 없건만.

“…음, 여보?”

레토는 노아의 눈치를 살폈다.

“언니 들었지? 사돈어른이 미안하대.”

“나 잠깐 전화 좀….”

식사를 서둘러 멈춘 노아는 오케아누스 저택에다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수화기 너머로 통화 연결음만 계속 들렸다.

노아는 불안함에 몇 번이나 전화를 끊고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하지만 전화가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이잉, 언니도 참.”

클라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식사할 때는 자리를 함부로 뜨면 안 되지!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

야무진 잔소리는 노아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노아는 결혼한 뒤로 이렇게 등골이 오싹한 적은 처음이었다.

***

“…전화선이 망가졌다고?”

“물에 잠기면서 이물질에 끊어진 모양입니다.”

“수리 기사는 언제 올 수 있다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구역이 많아서, 빨라도 오늘 저녁에야 방문한다고 합니다.”

오케아누스 저택으로 돌아온 아이트라는 곧장 저택 복구에 들어갔다.

이곳 저택은 해안 가까이에 자리한 탓에,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아 피해가 제법 컸다.

덕분에 벨로 저택에 있는 며느리가 진땀을 빼는 중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이트라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

그때, 카리나가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집사를 물린 아이트라가 아이에게 이리 오라 손짓했다.

“무슨 일이니? 방에 빗물이라도 들어왔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카리나가 뒤를 돌아봤다.

“사돈 어르신께서 오셨어요.”

카리나가 가리킨 곳에는, 글로리아가 싱긋 웃으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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