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쉴 틈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파도는 언덕 높이만큼 높아졌다가, 심해 밑바닥이 드러날 것처럼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대원들은 어쩔 도리 없이 바다에 잠겼다가 겨우 수면 위로 올라오기를 수백, 수천 번을 반복했다.
그들은 전부 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다. 보호 마법으로 동그란 보호막을 치고 있어도, 쏟아지는 바닷물을 전부 막진 못했다.
거기다 몇몇은 굽이치는 파도의 흔들림을 버티지 못하고 토악질까지 했다. 이마저도 보호 마법 때문에 밖에다 뱉지 못하니 전부 옷에 묻어 버렸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험이 진행된 지 벌써 3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시험을 위해 타고 왔던 대형 함선은 이미 먼저 항구에 선박한 상태였다. 크고 무게가 나가는 만큼 위태로운 바다에서도 나름 안정적인 운항이 가능한 덕분이었다.
반면.
개인 함선은 일반적인 배가 아니었다. 운항자의 몸에 착용할 수 있는 보호구처럼 생겼고, 무게는 고작 40kg밖에 되지 않았다.
커다란 함선도 이런 악조건 속에선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특함 대원들은 몸 하나로 태풍 속 바다를 견디어야 했다.
그것도 3시간이 넘도록 마력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헉…….”
“으윽, 죽을 거 같아…….”
“…….”
대원들은 슬슬 한계였다.
눈앞은 점점 흐릿해지고, 머릿속에선 날카로운 이명이 들렸다. 내뱉는 숨에선 비릿한 쇳내가 올라왔다.
조금만 방심해도 파도에 몸이 집어삼켜졌고, 이를 악물고 수면 위로 올라와도 다시 집어삼켜졌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단 위험한 유혹이 그들의 정신을 흔들어 댔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럴 때마다 레토가 대원들의 정신을 다잡았다.
특함 대원 13명 모두가 지친 상태였지만, 그중에서도 레토는 단연코 피폐한 상태였다.
그는 특함 사령관으로서 함선을 운항하는 중에도 12명을 하나하나 살피고, 위험에 빠지면 도와줬다.
단정하게 뒤로 넘겼던 은발은 바닷물과 땀으로 젖어 헝클어졌고, 바닷바람에도 끄떡없던 고운 피부는 그새 수척해졌다.
“여기서 죽으면 정말로 개죽음이다! 바다에 네놈 새끼들 몸뚱어리 버릴 생각 마라! 폐기물 같은 너희 시체는 바다를 썩게 만들 뿐이니까!”
그리고 입도 거칠어졌다.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붉은 눈은 악독하게 번뜩였다.
“정신 차려, 벨로 대위!”
그의 도움을 받은 대원 중에는 노아도 있었다.
“헉, 허억……!”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노아는 거친 숨을 토하며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고맙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레토 다음으로 실력자라 평가받는 그녀에게도 현 상황은 끔찍했다.
레토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대원은 아이스 중령이 유일했다.
“여기서 죽으면 내 퇴직금과 사망 위로금을 마누라랑 자식들이 독차지하게 된다고! 나 죽었다고 바로 재혼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보지!”
물론 그도 제정신을 유지하진 못하는 중이었다.
“아악!”
“으아아아!”
하지만 아이스 중령의 혼잣말은 대원들의 사기를 증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내 퇴직금!”
“빌어먹을 연금!”
“시X 절대 포기 안 해!”
“내 도오온!”
대원들은 젖 먹던 힘을 쥐어짰다. 이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악과 깡, 그리고 돈뿐이었다.
“항구가 보인다!”
누군가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
어둑한 앞길에 미약한 빛이 보였다. 해군 기지에 설치된 등대였다.
* * *
“특함 전 대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비서실장이 보고를 올렸다.
“……하아암.”
참모총장실에 설치된 간이침대에서 설잠에 빠졌던 아드벨로 대장이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했다. 휘청거리며 일어나는 그녀를 부축한 비서실장은 준비해 온 물잔을 내밀었다.
“부상자는?”
물을 다 마신 아드벨로 대장이 이불을 치우며 물었다.
“전 대원 구역질과 두통, 몸살 기운을 겪고 있습니다.”
그중 골절이 3명, 근육 파열은 8명, 그리고 전원 바닷물을 먹었기 때문에 탈수와 장염, 미생물 감염 등이 의심되었다.
“현재 본부 내 의무병들이 응급 치료 중입니다.”
“생각보다 별일 없었네?”
보고를 들은 아드벨로 대장이 뚱하니 대답했다.
“마음에 드시지 않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비서실장이 물었다.
“생각보다 시험 수준이 약했나?”
아드벨로 대장이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녀는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경미한 부상만 입은 특함 대원들에게 제법 놀라는 중이었다.
“피 토하는 놈 없어?”
“다행히 없습니다.”
“네 생각엔 어때? 시험 난도가 쉬워 보였어?”
“제 의견으론.”
비서실장이 흐트러진 대장의 소매를 고쳐 주며 말했다.
“상당히 수준 높은 난도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이.”
직접 함선에 올라타 배웅까지 했기에, 아드벨로 대장은 오늘 바다 조건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았다.
‘못해도 중상자가 서넛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특함의 수준이 월등한 모양이었다.
“기쁘신 모양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아드벨로 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곤 제 손으로 입꼬리를 더듬거렸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웃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그런가 봐.”
말로 표현한 뒤에야, 아드벨로 대장은 자신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달았다.
“녀석들, 내 예상을 웃도는 능력을 지녔군.”
자신이 생각해도 시험 난도가 너무 높았나, 바다 환경이 너무 끔찍했던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저의 자랑스러운 특함 대원들은 보란 듯이 성공해 냈다.
“뿌듯해.”
“한 번 보러 가시겠습니까?”
“가 봐야지.”
비서실장의 손을 잡고 침대에서 일어난 아드벨로 대장이 복도를 나섰다.
비상 조명등만 켜진 어둑한 복도는 냉장고처럼 서늘했다. 태풍 특유의 날카로운 바람과 창을 깨트릴 것처럼 쏟아지는 빗소리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기괴해졌다.
“……뭐가 나올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덩달아 그의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그 나이 먹고 귀신 따위가 무섭냐?”
“조금 그렇습니다.”
“겁쟁이네. 손잡고 갈까?”
아드벨로 대장이 손을 내밀었다. 호기로운 대사와 달리, 그녀의 손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비서실장이 싱긋 웃으며 손을 잡았다.
복도를 걸어가는 중, 비서실장이 현재 대원들의 상태를 마저 보고했다.
“의무실에 있다고 합니다. 부상은 전부 경미하나, 만일을 위해 링거를 맞고 누워 있습니다.”
“치료는 누가 했는데?”
“영사에 있던 의무병과 군종병들을 불렀습니다. 그중 2명은 치유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치유 마법…….”
“생각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군종실장의 물음에 아드벨로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서 상태 좀 보고.”
의무실 문을 벌컥 열자, 응급 처치를 마치고 정리 중이던 의무병과 군종병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경례를 올렸다.
“됐어, 하던 거 해.”
경례를 보는 척도 않은 아드벨로 대장이 가까이에 있던 군종병 한 명을 불렀다.
군종병은 알아서 상태를 보고했다.
“다들 수액을 맞고 잠들었습니다. 몇몇은 미약한 마력 폭주 전조 증상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가라앉혔지만, 전문가가 확인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누가 마력 폭주 전조를 보였지?”
“아미 치티아 중위님, 셀린 보르 중위님입니다.”
“고생했다. 조심해서 영사로 돌아가도록.”
군인들을 전부 내보낸 뒤, 아드벨로 대장은 침대에 누운 특함 대원들의 잠든 모습을 찬찬히 바라봤다.
“……죽었나?”
가까이에 있던 레토의 코밑으로 손가락을 슥 가져가 댔다. 다행히 뜨끈한 숨결이 느껴졌다.
“이놈도 참 질기군.”
“기껏 살아 돌아왔는데…….”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겁니까.
레토가 감긴 눈을 힘겹게 뜨며 쉰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냈다. 시험 중에 대원들을 챙기느라 소리를 하도 지른 탓에 목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그래도 네가 사령관은 사령관이네.”
아드벨로 대장이 피식거렸다.
“나 왔다고 눈까지 뜨고 말야.”
“대장님 목소리가 들려서…….”
“듣기 좋든?”
“지옥에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이 자식, 정말로 바다 위에서 주둥이만 떠다닌 건가?”
나불거리는 말투는 얄미웠지만, 레토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겨우 뜬 눈도 결국은 힘에 부쳐 다시 감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레토는 대원들을 챙겼다.
“다들, 무사…….”
“무사해. 오늘 하루는 여기서 죽어라 잠만 자야겠지만.”
“……노아는 어떻습니까?”
“네 바로 옆에 누워 자고 있어.”
아드벨로 대장이 레토의 바로 옆 침대에 누운 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운 금발과 예쁜 얼굴이 눈에 띄게 상했지만, 그래도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이 들고 있었다.
그때.
“……”
레토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필, 눈 뜨자마자 대장님을 보다니…….”
“아 놔, 이 새끼가 개념을 바다에서 잃어버리고 왔나.”
요새 잠잠하더니 그새 또 기어오르네.
아드벨로 대장은 걱정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개념을 잃어버린 레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시 바다에 가서 건져 오게 해 줄까? 퐁당퐁당 돌 던지듯이 한번 네놈을 던져 줄까?”
“으…….”
도망치지도 못하는 레토는 고통스러운 신음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한데…….”
아드벨로 대장의 애정에서 겨우 벗어난 레토가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걸려들었어.”
“역시 특함 중에서 골랐습니까?”
“오냐.”
안보국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특함과 아드벨로 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료를 훔치고, 간첩으로 몰아갈 무고한 군인을 찾아냈다.
“그 와중에 특함 고르는 배짱 하난 칭찬해야지.”
아드벨로 대장이 킥킥거렸다.
“그래야 파급력이 장난 아닐 테니까.”
“안보국 녀석들은 그런 짓을 해도 칭찬받고, 부럽습니다.”
“너도 안보국 할래?”
“그냥 백수 하겠습니다.”
레토는 해군에 자대 배치한 순간부터 소장 임관으로 들어왔다. 그가 해군에 차곡차곡 쌓아 둔 퇴직 연금은 또래와 비교하면 이미 상당한 액수였다.
그러니 레토에게 이직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입니까?”
레토가 물었다.
“그 자식들은 누굴 골랐습니까?”
“아주 예상 밖의 인물이지.”
아드벨로 대장이 안보국의 뜨거운 관심으로 선택된 특함 대원의 이름을 읊었다.
“셀린 보르 중위.”
“와.”
레토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이쯤 되니 안보국이 왜 파멸로 들어섰는지 알 것 같았다. 뒷공작을 저지른다는 선택부터 글러 먹었지만, 그래도 이왕 할 거면 뒤탈 없는 놈을 골랐어야지.
“하필 골라도…….”
“그러게나 말이다.”
아드벨로 대장이 공감하듯 한숨을 푹 내뱉었다.
“하필 골라도 공주를 고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