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위험천만한 파도 위에 떠 있는 함선은 무척이나 위태롭건만.
“핫초코 맛있네.”
여유롭게 머그를 쥐고 홀짝이는 아드벨로 대장은 숲속 별장에 놀러 온 귀부인처럼 우아했다.
“…….”
“…….”
그러나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13명의 특함 대원들은 곧 있을 자격시험으로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다.
“파도가 참 어여쁘지?”
콰앙!
아드벨로 대장이 말하기 무섭게, 거대한 파도가 함선을 덮치듯 때렸다.
아기 발목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잔물결 같은 것이 아니었다. 건물을 무너트릴 때 쓰는 거대한 추가 부딪히는 듯한 굉음이 연이어 쾅쾅 울렸다.
그럴 때마다 배는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아드벨로 대장도, 때를 기다리는 특함 대원들 모두 별일 아니란 듯이 개의치 않았다.
평소였다면 멀미를 참느라 얼굴색이 허옇게 떴을 텐데, 그리고 미친 듯이 욕을 읊조렸을 텐데.
“…….”
“…….”
지금은 입을 다문 채, 굳은 표정으로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아드벨로 대장은 그런 특함 대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개중에도 유난히 긴장한 놈의 얼굴이 있었다.
“…네가 막내였던가?”
오메였나?
아드벨로 대장이 물었다.
“…대장님, 저는 아우디 피스트 준위입니다.”
그 와중에 이름 잘못 불리고 막내 취급까지 받은 피스트 준위가 어처구니없단 듯이 관등성명을 댔다.
“그리고 막내 이름은 호네스입니다.”
막내는 긴장한 상관들 속에서 나름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대놓고 티가 나지 않을 뿐이지, 실상은 창밖으로 보이는 시커먼 파도와 귀를 찌르는 바람 소리에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여자가 그런 거 신경 쓰면 크게 못 돼.”
“저는 남자입니다!”
평소라면 대장님이 또 대장님하는구나, 하고 넘겼을 테지만, 지금은 모두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래서 피스트 준위는 제 불만을 용기 있게 털어놓았다.
“전 억울합니다.”
“뭐가 또 억울하냐, 응?”
“애초에 저는 군인 출신이 아니라 마탑 출신입니다!”
피스트 준위가 자신의 본 재적을 부질없이 언급했다.
사실, 그에겐 조금 억울한 사연이 있었다.
“전 원래 마탑 연구소 소속이었습니다! 개인 함선 개발할 때 참여했다가 해군 특함으로 임시 발령나더니, 아직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말입니다!”
“그런 것치곤 말투가 이미 군인이구나. 자랑스럽다, 준위.”
아드벨로 대장은 대견하단 눈빛으로 피스트 준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꾸욱 눌렀다.
“으으…!”
피스트 준위가 괴로운 신음을 토했다.
“그러니 오늘 시험도 잘 통과하리라 믿으마.”
“제발 저 좀 마탑으로 다시 보내 주십시오!”
피스트 준위가 간절히 외쳤다.
“저거 봐….”
아미가 그런 피스트 준위를 보며 수군거렸다.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면 본성이 드러난다더니, 준위님의 인성은 공론화가 필요할 정도로 사악했네.”
“계약직이란 소문은 듣긴 했는데….”
셀린이 끼어들었다.
“진짜였구나. 그런데 왜 아직도 해군에서 중장님 비서로 일하는 거래?”
“돈에 혹했대.”
노아가 대답해 줬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마탑이랑 해군 양쪽에서 월급을 준다고 해서 하는 거래.”
“와, 배신자…!”
사실을 알게 된 아미가 치를 떨었다.
“준위님이 바다에 빠져도 도와주지 마라.”
분에 떨던 아미가 아래 대원들에게 통보했다.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대신 중장님 비서직을 맡았잖아.”
노아는 피스트 준위를 살짝 편들었다.
피스트 준위는 레토의 비서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일을 담당했다.
그는 해군과 마탑 양쪽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집단의 주장을 전달하며 중개하거나 개인 함선 임시 보수, 운항 보고서 작성 등등 다양한 업무를 직접 맡고 있었다.
“…조금은 도와주겠어.”
사정을 이해한 아미가 한발 물러섰다. 물에 빠지면 구명튜브 던지는 시늉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잡담은 그만하고.”
아드벨로 대장이 손뼉을 가볍게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아드벨로 대장의 말에 선내 분위기가 다시금 가라앉았다.
“시험은 아주 쉽다.”
쉬운 만큼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아드벨로 대장은 뒷말을 생략한 채, 시험 내용을 설명했다.
“개인 함선을 착용한 뒤, 현재 함선 위치에서부터 본부 내 항구까지 도착하면 돼.”
한 문장으로 설명을 끝낸 아드벨로 대장이 물었다.
“질문은….”
아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안 받을 거니까 손 내려라.”
아미가 풀 죽은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네 녀석들도 알겠지만.”
굳은 표정의 아드벨로 대장은 어딘가 비장미가 느껴졌다. 덩달아 특함 대원들 역시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실수는 곧 죽음이다.”
개인 함선은 아들라보르 왕국의 모든 기술과 마법을 모아 만든 최신의 정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완벽’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 함선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기계이고, 그것을 착용하고 운항하는 사람은 언제든 실수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너희가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지.”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너희 특함은 엄청난 특혜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의무를 짊어지고 있지.”
하지만 멀리서 떨어져 지켜보는 일부 편협한 이들의 눈엔, 그 의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개인 함선을 착용할 자격을 얻었는지, 개인 함선을 운항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설령 그 노력과 의무의 무게를 설명한다고 해도,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무시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보란 듯이 보여 줘야 하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죽을 각오로 훈련한다는 걸.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마냥 쉽게 얻어진 게 아니란 걸.
이 모든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답지 않게 응원을 했군.”
본인도 머쓱했는지, 아드벨로 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제 진심을 드러내고선 쑥스러워한단 것을 잘 알기에, 노아와 레토는 소리 없이 눈을 맞추며 싱긋 웃었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애먼 질투로 자위하는 X도 안 되는 것들에게, 너희가 얼마나 대단한 새끼들인지 보여 주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아드벨로 대장의 명령에 특함 대원들이 크게 대답했다.
***
“…….”
한창 무언가에 집중하던 나비 칼루스가 움찔했다.
그의 시선은 거센 바람에 덜컹거리는 유리창을 향했다. 당장 유리창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강풍이었다.
어둑한 바깥 때문에 해군 본부도 조명을 켜지 않으면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캄캄했다.
하지만 나비는 불을 켤 수 없었다.
오늘은 해일을 동반한 태풍 탓에 해군 본부에도 최소 인원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 인원들 역시 새벽과 오전에 안전 점검을 마치고 전부 영사로 돌아갔다.
“오늘이 기회다. 그러니 잘해 내라고.”
“너도 잘 알지? 지금 안보국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이건 범죄가 아니야. 그저 위험분자를 색출하는 것뿐이야.”
서류를 뒤지는 나비의 손은 잘게 떨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료실에 있었다. 당연히 허락된 방문이 아니었다. 선배들이 어디선가 구해 온 자료실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몰래 잠입한 것이었다.
창밖은 비바람으로 시끄러운데.
“하아, 하….”
서류를 더듬으며 하나하나 살피는 나비의 숨은 그런 잡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고 거칠었다.
그가 살펴보는 건, 특함 대원들의 신상이 기록된 서류였다.
곧 나비는 서류 중 몇 개를 속속 뽑아냈다.
그리고 뽑은 것들을 따로 챙겨 온 종이에 옮겨 적었다. 이름과 출신, 가족관계, 이력사항 등등.
베껴 적는 걸 마친 나비는 서류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제 흔적을 전부 지운 뒤에 밖으로 나왔다.
“…후우.”
집중하느라 참고 있던 숨을 내쉬던 그때.
“…선배님?”
부르는 소리에 놀란 나비가 뒤를 돌아봤다. 숨을 쉬다가 멈칫한 탓에 사레가 걸려 괴로운 기침을 콜록거렸다. 고작 그것만으로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 아르카?”
“여기서 무엇 하십니까, 선배님?”
붉은 머리의 사내, 아르카가 고개를 천연덕스럽게 갸웃거렸다.
“그러는 너는?”
긴장한 탓에, 나비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저는 데카르 선배님이 시키신 심부름입니다. 해군 본부에 남은 당직들이 저희 몫의 비상식량을 챙겨 줬거든요.”
아르카는 제가 끌고 온 손수레를 가리켰다. 조그만 바퀴가 4개 달린 파란색 손수레 위에는 커다란 상자 4개가 쌓여 있었다.
안에는 휴대용 전투식량과 마실 것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군내 병영식당도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
“그런데 선배님은 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
나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를 응시하는 아르카의 시선엔 의심 따윈 없었다. 그러나 특유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신은 당혹스러운 속내를 얼굴 위로 전부 드러내고 있을 테니까.
“…도와주마.”
나비는 아르카를 지나쳐 수레 뒤로 갔다.
“감사합니다. 이거 꽤 무거웠거든요.”
수레를 끄는 손이 저리다는 농담으로 아르카가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수레를 끄는 동안, 두 사람은 어떤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아르카는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나비는 찔리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푸르스름한 비상 조명이 켜진 어둑한 복도에선 낡은 수레의 바퀴가 덜그럭대며 구르는 소리만 들렸다.
그날 밤. 나비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악몽을 꿨다.
***
아드벨로 대장이 드물게 대원들의 목숨을 걱정했던 운항 자격시험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말인즉.
“X발! 이놈의 지랄 같은 파도!”
“균형 잡아라! 마력 분배를 조금이라도 흐트러트리지 마!”
“호네스 메라! 정신 차려! 네가 멀쩡하면 보호 마법도 멀쩡하다고! 고작 5m짜리 파도에 겁먹지 마!”
“으아아! 잠긴다, 잠겨!”
“잠수함들은 수면 아래로 들어가라! 그리고 함선들은 빠지는 즉시 올라오도록!”
대원들의 비명도 절정에 달하고 있단 뜻이었다.
그들은 격랑을 헤치며 개인 함선을 운항했다. 평소라면 한 시간 안에 도착했을 거리를, 그들은 현재 3시간째 운항 중이었다.
다시 말해, 말 그대로 지옥을 헤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