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바닥으로 떨어진 테이블은 산산조각이 났다.
“…….”
부서진 테이블을 본 아르카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주제 모르고 까불던 못된 입술도 얌전해졌다.
당황하는 아르카를 보자니 노아는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그리고 내심 감탄했다.
‘효과가 나타나고 있구나.’
7년 만에 사용한 오러는 조금씩 몸에 변화를 끌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성과를 방금 테이블을 걷어차면서 확인했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그러나 노아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제 예상으론, 테이블이 아예 천장에 박혀야만 했다. 그럴 생각으로 테이블을 발로 찼는데 너무 맥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힘 조절을 너무 했나?”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노아가 혀를 짧게 찼다.
“쯧.”
스스로에 대한 아쉬운 마음에 나온 행동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러나 아르카는 자신에게 하는 경고라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까와 달리 얌전해진 기세가 눈에 띄었다.
“…….”
하지만 노아의 시선은 그보다는 그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테이블이 부서지니 가려졌던 그의 하반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테이블이 떨어질 때, 그의 다리에 올려져 있던 두 손엔 어떤 떨림도 없었다.
시선을 느낀 아르카가 제 손을 꾹 쥐며 말했다.
“제가 벨로 대위의 오빠를 아는 이유는….”
“당신이 테네브레거나.”
먼저 대답한 노아가 시선을 옮겼다. 아르카를 바라보는 노아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테네브레와 관련된 사람이거나.”
“그럼 둘 중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노아는 그때 처음으로, 테네브레가 간절했다.
제발 눈앞에 있는 남자가 테네브레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테네브레는 왕국에서 가장 폐쇄적인 집단이다. 그들은 외부에 자신을 노출하는 짓을 최대한 삼갔다. 설령 외부에 노출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정체를 완벽하게 감춘다.
가령 자신의 결혼식 때 해적이 나타났다고 알렸던 고기잡이꾼 같은 놈처럼.
그러니 아르카는 테네브레가 아니지만 그와 관련된 사람, 심지어 아드벨로 출신인 아티가 테네브레에 속했단 것까지 알 수 있는 사람.
‘빌어먹을.’
그걸 알 수 있는 관계자는 딱 한 명이었다.
‘국왕이구나.’
눈앞에 있는 붉은 머리의 사내는, 아들라보르의 국왕이었다.
***
카일리코 파밀라 아들라보르.
아들라보르 왕국의 젊은 국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독특한 이력을 자랑했다. 대표적으로 해군 사관학교 입학이 손에 꼽혔다.
역대 국왕들이 기사단에 입단해 훈련했던 것과 달리, 카일리코 국왕은 왕실 역사상 처음으로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이 선택은 훗날 명판으로 평가받는다. 카일리코 국왕과 함께 졸업한 134기 생도 중,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영웅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귀족 같더라니.’
노아는 당장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부디 제 추측이 틀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르카는, 아니, 국왕은 씩 웃으며 떨떠름한 사실을 긍정할 뿐이었다.
결국, 노아는 이성을 붙들어야 했다.
그리고 국왕에게 예를 갖췄다.
“해군 예하 특수 함선 사령부 소속 노아 벨로 대위, 아들라보르 왕국의 국왕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인사는 예의 바른데, 표정은 당장이라도 내 얼굴을 발로 차고 싶단 표정이로군.”
“전 원래 이렇게 생겼습니다.”
“벨로 대위의 미모는 수도에서도 유명하지.”
도로 의자에 앉은 국왕이 하다 만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그대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네.”
“간첩을 체포한 것 때문입니까?”
노아가 존대로 물었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존경심 따윈 손톱의 때만큼도 없었다.
다행이라면, 국왕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큰 도움을 받았어.”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상은 받아야지.”
국왕이 느닷없이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첫 번째 보상은, 그대의 오빠가 왜 갑자기 테네브레가 되었는가.”
여기엔 아주 예상 밖의 이유가 숨어 있었다.
“아티는 나와 약속한 게 있어서, 잠시 내 밑에서 일하는 것뿐이네. 한마디로 계약직 테네브레지.”
“아…….”
그렇구나.
노아가 무덤덤히 대답했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노아는 아티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망나니 오빠 새끼가 제멋대로 저지른 일인데, 왜 자신이 그걸 알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갔다.
“음, 안 궁금한가?”
국왕은 예상치 못한 노아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남매 사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나도 여동생이 한 명 있지. 걔도 날 엄청 싫어해.”
“여쭤본 적 없습니다.”
“여동생들은 왜 그렇게 오빠들을 싫어할까? 우린 그래도 나름 귀여운 생선 대가리 정도로 좋아하는데.”
“…….”
“대위! 지금 그 표정! 내 여동생이 날 볼 때 딱 그런 표정이야.”
그 여동생도 오빠 잘못 만나서 마음고생 심하겠군.
노아는 얼굴도 모르는 공주님을 동정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공주님은 아마….’
국왕의 여동생인 그녀는 왕위 계승서열 2위로, 제 어린 조카와 차기 왕좌를 두고 경쟁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대외적인 활동은커녕 왕실 공식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현재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조차 비공개였다.
세간에는 왕비 측에서 손을 쓴 게 아니냔 의혹이 있으나, 정확한 내막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이름이 셀레나였던가, 켈레나였던가.’
가물가물한 공주의 이름을 떠올리려던 찰나였다.
국왕이 못다 한 말을 이어 했다.
“그대의 오빠는 내 개인적인 용무를 봐 주는 중이야.”
“안 궁금한데, 꼭 들어야 합니까?”
“7년 전에 행적을 감춘 불법 사병 집단을 찾는 중인데….”
“국왕 폐하, 송구하지만 저는 그 망할 놈의 종자, 아니, 오라버니가 뭘 하든 관심….”
“그대의 언니.”
거기 출신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
노아는 처음으로 제 감정을 드러냈다.
테이블을 다시 부순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모멸적인 욕설을 내뱉은 것도 아니다.
“…….”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입에 담은 상대방을, 감히 그 이름의 무게조차 모르면서 가벼이 내뱉은 한 나라의 국왕을, 노아는 똑바르게 응시했다.
그 고요한 시선은 어떤 폭력보다 위협적이었다.
“…이건 좀 무섭군.”
국왕이 솔직하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는 노아가 방금 전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압감에 숨이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오빠가.”
노아가 조용히 물었다.
“오빠가, 말했나요?”
“아니.”
그건 아니네.
괜한 오해가 생기기 전에, 국왕이 말했다.
“아티는 생각보다 입이 무거워.”
맞는 말이었다.
아티가 다른 사람에게 제 가족에 대해 함부로 떠들 만큼 등신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노아도 믿는 부분이었다.
“그대의 오빠는 나와 이해관계가 통했기에 테네브레에 들어온 거란 말밖에 하지 않아.”
“이해관계라는 건….”
“난 그 불법 사병 집단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싶네.”
“…….”
“참고로 내가 벨로 대위의 언니를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그녀의 생존을 허락했기 때문이지.”
애초에 아스가 아드벨로에 기거하게끔 허락한 게 나니까.
노아는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알아챘다.
“할머니가 이미 보고했군요.”
“문제가 많은 집단이었거든. 아드벨로라고 해도 멋대로 굴 수 없는 문제지.”
“설마 지금도 제 언니의 일거수일투족이….”
“아, 내게 보고가 된다거나 하지는 않아.”
아스에 대한 모든 신상은 이제 아드벨로가 책임지고 보호 중이었다. 이제 아스는 왕국의 선량한 시민일 뿐이었다.
“다만.”
국왕에게 아스는 꽤 중요한 인물이었다.
“현재로선 그녀가 그 집단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증인이니까.”
그래서 관심을 기울일 뿐이라면서, 국왕은 별일 아니란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화는 좀 풀렸나?”
“애초에 화가 난 것도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제야 감정을 추스르며 노골적인 적의를 감췄다. 동시에 카일리코 국왕의 안색이 한결 편해졌다.
“휴우, 이래서 아드벨로는 적으로 둬선 안 된다니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국왕은 노아가 드러내던 중압감을 견디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국왕이 마지막 보상을 말했다.
“수도에 한번 올라오게.”
느닷없는 상경 통보에 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느닷없습니다만.”
“당장은 아니고, 늦여름이나 초가을쯤? 나중에 정식으로 초대를 한번 하겠네.”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대들이 해낸 일의 결과를 봐야지.”
파일리코 국왕은 부서진 테이블 파편 사이에서 파일을 찾으며 말했다.
“디모네 닉스 소장의 체포 말이야.”
파일을 발견한 국왕이 이어 말했다.
“그대들이 체포했던 간첩들을 왕국으로 들여보낸 게, 바로 그였거든.”
***
“디모네 닉스 소장의 체포 말이야.”
그 한마디가, 노아의 머릿속을 계속 어지럽혔다.
“…아.”
결국엔 훈련 중이던 노아가 제 오러를 조절하지 못해 부상까지 입는 사고로까지 번졌다. 미약한 폭주가 일어났다.
“…….”
통증에 눈살을 찌푸린 노아가 팔을 움켜쥐었다. 하얀 피부 위로 새파란 낙뢰 무늬가 생겨났다.
“노아!”
옆에서 훈련 중이던 레토가 서둘러 다가와 노아의 팔을 확인했다. 푸른 낙뢰 무늬에서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괜찮아?”
“좀 아프네.”
“네가 아프다고 하는 걸 보니, 진짜 아픈 모양이네.”
레토는 서둘러 제 한 손에다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노아의 팔 위에 얹었다. 마력은 곧 시원한 냉기가 되어, 열이 올라오는 팔을 식혔다.
뜨거운 열감이 가시자, 노아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쯧쯧, 잡생각이 많구만.”
지켜보던 글로리아가 다가왔다.
“오늘따라 영 집중을 못 하네.”
“할머니….”
“뭔 일 있었냐?”
글로리아가 물었다.
“…….”
노아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말해야 하나?
혹여 말하면, 일이 괜히 더 커지는 게 아닐까?
“별일 아니고.”
고민은 아주 잠깐이었다.
“안보국 직원 사이에 국왕이 숨어 있더라.”
그런 걸 숨겨 봤자 나중에 저만 피곤해지니, 노아는 그냥 고자질하기로 했다. 국왕이 곤란해지든 말든 저와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뭐?”
역시나, 글로리아는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아 놔, 이 미친 쥐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붉은 머리로 염색했고, 아르카 오페란 가명을 쓰고 있어.”
“오늘 그놈이 내 손에 잡히면, 아들라벨로는 국장 한 번을 치르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