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중장님.”
“응? 왜?”
“이거, 사상 검증 아니었습니까?”
“안보국의 원래 의도라면, 그런 거였지.”
레토는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 안보국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상담이 그들의 기선제압과 존재감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역시, 어지간하면 다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중장님은 상담을 몇 번 받으셨습니까?”
노아가 물었다.
“나?”
레토가 손가락을 접으며 찬찬히 떠올려 봤다.
“성공한 건 다섯 번?”
“그걸 다섯 번이나 받았단 말입니까?”
“그치만 재밌잖아.”
레토는 진심으로 안보국과의 상담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그는 중대한 사실을 고백하려는 것처럼 말끝을 머뭇거렸다. 그러곤 이내 결심한 듯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결혼한 뒤로, 내 성격이 상당히 유순해졌잖아?”
“…….”
“…….”
노아를 비롯한 특함 대원 전원이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거리는 차고 넘치나, 구태여 상관에게 대들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었다.
어색한 공기를 읽었을 텐데도, 레토의 뻔뻔한 자기성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그런가 봐. 전보다 단어도 조심해서 쓰고, 빈정거리는 말투도 많이 고쳤지.”
“콜록.”
아미가 느닷없이 콜록거렸다.
“지, 콜록! 지랄, 콜록!”
“치티아 중위.”
그러나 레토에겐 다 들통났기 때문에, 이름이 불린 아미는 알아서 엎드려뻗쳐 10초에 들어갔다.
노아는 친구의 만용 어린 행보를 안타까이 바라봤다.
레토는 이어 말했다.
“어쨌거나 그게 꽤 속에 쌓여 있었나 봐.”
그래서 안보국을 상대로 오랜만에 입을 털었더니, 저도 몰랐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정신이 개운해졌다는 말이었다.
“상담이 괜히 상담이 아니었던 거지.”
“뭘 얼마나 괴롭, 아니, 아닙니다.”
노아는 서둘러 질문을 회수했다.
안보국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들어 봤자 제 속만 터질 뿐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가거든 안부 전해 줘.”
레토가 나서는 노아에게 손을 흔들며 부탁했다.
누가 들으면 그와 안보국이 아주 절친한 사이라고 생각할 말이었다.
***
“벨로 대위님이시군요.”
상담실로 들어선 노아를 반긴 건, 준수한 외형의 붉은 머리 남자였다.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지친 기색과 피로함은 차마 감추지 못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노아는 저도 모르게 안보국 직원을 동정했다.
‘피곤할 만하지.’
안보국은 아들라보르 전군을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갔고, 첫 번째 대상이 해군이었다.
하지만 듣기론, 해군에 방문한 안보국 직원들은 50명도 안 된다고 한다.
정작 이곳 해군 본부엔 근무 중인 군인이 얼추 5천여 명이었다. 심지어 저 숫자엔 현재 바다에 출항 중인 함선들에 탄 해군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애초에 전군을 조사한다는 게 가능한가?’
돌연 의문이 들던 찰나, 붉은 머리의 안보국 직원이 지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들을, 그러니까 안보국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아, 차 드시겠나요?”
“반기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차는 괜찮습니다.”
“대위님은 최근 안보국 직원들 얼굴을 보신 적 있습니까?”
“몇 번 지나가다 봤습니다.”
다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긴 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고 있다. 단순히 그들의 할당량이 어마어마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해군은 안보국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노아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아드벨로 대장의 허락하에, 해군들은 작심하고 안보국 직원들과 즐거운 상담을 진행 중이었다.
레토만 해도 심심하면 상담해 달라며 애먼 안보국 직원을 붙잡고 부탁했다. 그렇게 강제로 붙잡혀 상담을 들어준 직원들은 꼭 울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러는 건 비단 레토 혼자만이 아니었다.
“군종실장님이시던가요?”
때마침 붉은 머리의 직원이 베네딕토 군종실장을 언급했다.
“그분은 하루에 3번씩 꼬박 상담을 받으시더군요.”
“…3번씩이요?”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노아는 적잖게 놀란 상태였다.
그런 노아의 심정을 꿰뚫어 본 것처럼, 붉은 머리의 직원은 이해한 단 듯이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렸다.
노아는 저 모습이 어째 레토와 닮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중장님이 더 잘생겼지만.’
그 와중에 팔은 또 안쪽으로 굽었다.
“늘 다른 사람에게 상담만 해 주시다가 이번에 자신이 상담을 받으니 색다르고 행복한 모양이십니다.”
그걸 색다르다고 표현해도 되는 건가?
노아는 괴이하단 시선으로 눈앞의 직원을 바라봤다. 제 남편과 분위기만 비슷한 게 아니라, 성격 삐뚤어진 것도 닮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케아누스 중장님을 상담했던 나비 칼, 아니, 직원 한 명은 크게 혼났죠.”
“그렇군요.”
“아마 수도로 다시 올라가면 징계를 받을 겁니다.”
직원은 여전히 웃는 낯짝으로 굳이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 줬다.
‘재수 없는 새끼군.’
붉은 머리의 직원은 단숨에 비호감으로 전락했다.
“아, 제 이름은 아르카 오페입니다. 이제 상담을 시작하겠습니다. 간단한 절차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대위님 이름이….”
상담이 시작되었다.
아르카란 이름의 직원이 가지고 온 파란색 파일에 담긴 노아의 신상 정보를 확인하듯 질문하면,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형식적인 질문과 형식적인 대답이 오가는 동안, 노아는 골똘히 생각했다.
‘…아미가 말한 대로네.’
이딴 간단한 질문 따위로 불온사상을 품은 반역자를 색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면 왜 하는 거지?’
테이블 아래로 깍지 낀 손가락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안보국이 간첩 체포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은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건 알겠다.
어떻게든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것도, 먹히지도 않을 기선제압을 하려는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막상 노아가 직접 본 안보국의 움직임은 제 예상과 너무 뒤떨어졌다. 솔직히 한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건 안보국 직원들도 느끼는 것 같았다.
‘애초에 전군을 대상으로 조사가 가능하냐고.’
처음에 노아가 느꼈던 의문.
과연 50명이 5천여 명을 상대로 상담이건 사상 검증이건,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못해도 한 명당 100명을 담당해야 해.’
하루에 10명씩 나눠서 한다고 해도 열흘이나 걸린다. 여기에 주말이나 이것저것 고려하면 최소 2주는 잡아야 한다.
거기다 해군은 이곳 본부 기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들라보르 해안에 수많은 해군 예하 부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에는 본부만큼은 아니어도 엄청난 수의 해군들이 주둔해 있었다.
그리고 해군을 상대로 한 조사가 끝나면, 그다음은 육군과 기사단이 남아 있다.
‘…역시 불가능해.’
그럼 무얼 위해 이러는 거지?
“벨로 대위님.”
의아함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중, 부르는 소리에 노아가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했다.
“좀 지루하시죠?”
“집중하지 못했네요. 죄송합….”
“이해합니다.”
아르카가 노아를 향해 싱긋 웃었다.
“…….”
노아는 그의 미소가 아까부터 영 거슬렸다. 저렇게나 작위적인 웃음이라니. 속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마치 제 속내를 감추는 상황을 많이 접해 본 듯했다.
‘귀족인가?’
거기까지 도달한 순간.
“사실 말이죠.”
아르카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씀이죠?”
“지금 우리가 하는 중인 무의미한 상담. 도대체 이딴 거로 불온사상이니 반동분자이니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곤 펼쳐 놓았던 파일을 보란 듯이 닫아 버렸다.
“당연히 불가능하죠.”
안보국 직원이 자신들의 행동을 지적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
“…….”
하지만 노아는 별 반응이 없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한 인상은 흔들림 없었다.
그러나 상대를 응시하는 파란 눈동자는 매섭게 번뜩거렸다.
아르카는 여전히 속 모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방 안은 어느샌가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가득해졌다.
그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아르카였다. 그는 노아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궁금해하실 생각은 안 합니다.”
“확실히 재미는 없죠?”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왜 이러는지 안 궁금하나요?”
“죄송하지만, 결혼했습니다.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시진 마시고요. 제겐 사슴 같은 남편과 맹수 같은 자매들이….”
“그 대답은 좀 당혹스럽군요.”
아르카가 웃음이 터진 입을 손으로 가렸다. 큭큭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따라 어깨가 들썩거렸다.
‘상담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돌았나?’
노아는 지랄도 가지가지란 감상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상담은 끝난….”
“오빠가 속을 많이 썩이죠?”
테네브레에 들어가서.
돌아서려던 노아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휘둥그레진 눈과 거칠어진 호흡은 등을 돌리고 있어 들키진 않았으나,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렇기에 노아는 숨을 크게 내쉰 뒤.
“…당신.”
도로 자리에 앉아, 제 머릿속에 떠오른 확신 하나를 입에 담았다.
“안보국 소속이 아니로군.”
“역시 티가 좀 났나요?”
아르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제부터 눈치챘죠?”
“확신은 방금 했고, 의심은 처음부터.”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은연중에 안보국과 선을 그었다.
“솔직히 저들을, 그러니까 안보국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케아누스 중장님을 상담했던 나비 칼, 아니, 직원 한 명은 크게 혼났죠.”
꼭 자신은 안보국 직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예, 전 안보국 직원이 아닙니다.”
아르카는 순순히 인정했다.
“원래는 조금 더 격식을 차려서 만나 뵙고 싶었는데….”
“본론.”
말하는 도중에 끼어든 노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안 그러면 나갈 거야.”
“참을성이 별로 없군요?”
“무슨 소리.”
피식 웃은 노아가 테이블 아래 있던 제 다리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 있던 테이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쾅!
뒤이어 한 번 더, 쾅!
간격을 두고 이어진 굉음의 정체는, 노아가 발로 찬 테이블이 천장에 박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난 소리였다.
바닥으로 떨어진 테이블은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그리고 천장은 조금 전에 테이블이 박혔던 모양 그대로 흠집이 났다.
“참았으니 이 정도지.”
“…….”
“안 참았으면 내 다리가 뭘 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