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245)

100.

“애초에 사상 검증이란 게 뭔데?”

아미는 누군가의 사상, 신념, 믿음 따위를 면담이나 관찰로 판단한다는 행위 자체를 불신했다.

그리고 그딴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뭐 대단한 짓거리라도 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안보국의 태도가 더 싫었다.

“역시 믿을 건 그분뿐인가.”

미신에 현혹된 사람처럼, 아미는 불안한 표정으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결혼한 뒤로 사람이 푸딩처럼 말랑해진 것 같긴 한데….”

노아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 중장님?”

“어, 네 남편.”

“중장님은 왜?”

“그 인간이 원래 뭐로 유명했냐.”

입이 뻐끔거리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는 아미의 입꼬리는 심술궂게 올라갔다.

“이게 유명했잖아.”

주둥이가.

***

창문조차 없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빈방.

비품실 대용으로 쓰이는지, 벽면에는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오래된 상자 같은 것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 있는 가구라곤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들이 전부였다.

숨 쉴 때마다 텁텁한 곰팡이 냄새가 딸려올 정도로 열악한 그곳엔 세 사람이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있었다.

“군 복무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한 심층 상담 검사.”

레토가 싱긋 웃었다.

“안보국도 고생이 많군요.”

얼핏 들으면 군 복지를 위한 상담처럼 들리지만, 결국은 애먼 군인들 사상 검증하는 쓰레기 같은 짓거리를 하려고 남부까지 내려오다니.

“아까 보니 사람이 많던데, 오는 길이 힘들었겠습니다.”

안보국도 참 한가하네.

“나라도 공무원 좀 그만 부려 먹어야 할 텐데 말이죠.”

사상 검증 명 내린 새끼는 나중에 가만 안 둘 거다.

“안 그렇습니까?”

그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안보국 직원들에게 물었다. 선한 미소를 뒤집어쓴 레토의 말투 속엔 가시가 가득했다.

그곳엔 서글서글한 인상의 대머리와 내내 표정이 굳어 있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중 서글서글한 대머리가 입을 열었다.

“그게 또 공무원의 애환 아니겠습니까.”

데카르가 기운 빠지는 한숨을 내뱉었다.

“알잖습니까.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공무원이라는 거죠.”

“그 마음 압니다.”

레토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도 결국은 공무원입니다. 저도 별반 다를 게 없죠.”

“중장님도 고생 많으시군요. 어쨌든 이해해 주셔서….”

“그래서 대장님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앉아 있는 거죠.”

“…….”

감사하다고 말하려던 데카르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역시 반기진 않는군.’

짐작은 했는데, 저렇게까지 빈정거릴 줄이야.

데카르는 슬슬 제 양복 아래 겨드랑이가 흥건해지는 걸 확연하게 느꼈다.

안보국은 차마 ‘사상 검증’이란 단어를 대놓고 쓰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멍청하고 얼빠진 건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담’이란 무난하고 포괄적인 단어를 선택했지만, 역시 눈치 빠른 사람에게는 바로 들통날 눈속임이었다.

예를 들면 레토 오케아누스 중장 같은 사람에게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라디오 뉴스에 나왔던 그 사건 때문입니까?”

레토가 물었다.

“전범들이 잡혔다던데, 군 관계자인 모양이군요. 연합국 중 어느 곳과 내통한 모양입니다.”

“아, 그건….”

“정확한 사항은 아직 기밀입니다.”

데카르가 말하려던 찰나, 옆에 앉아 있던 나비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레토는 그의 굳은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동시에 다리를 여유롭게 꼬았다.

‘나와 노아가 간첩들을 잡은 것까진 모르는 모양인데….’

그게 말이 되나?

간첩 체포는 굳이 따지자면 안보국의 역할이다. 테네브레도, 해군도 간첩을 잡을 수야 있지만 주된 임무는 아니었다.

그런데 국왕이 이번 임무에 안보국을 배제했다는 건,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다.

‘국왕은 안보국을 믿지 않는군.’

안보국에도 제국과 내통한 이적자가 존재하는 거다.

“…어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데카르가 눈치껏 끼어들었다.

“가볍고 형식적인 절차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너털웃음과 함께, 그는 챙겨 온 파란색 파일을 펼쳤다. 그 안에는 레토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들이 있었다.

서류를 찰나 훑어본 레토가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렸다.

‘…여기 것은 아니군.’

파일 속 서류는 해군에서 보관하는 군인들 개인정보 서류와 형식이 달랐다. 안보국 측에서 따로 알아낸 것 같았다.

‘그건 그것대로 역겨운데.’

레토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서류를 슥 살피던 데카르가 의외란 듯이 말했다.

“북부 출신이시군요.”

“그렇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들었다는 건….”

“너무 어릴 적 이야기라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말입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레토의 출생 기록은 북부 고아 출신으로, 마침 근방을 지나가던 오케아누스 후작의 눈에 들어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름은 후작님이 지어 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바다를 나아가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좋은 뜻이군요. 그 뒤에는 여타 다른 귀족들처럼 가정교사에게 배우다가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

데카르의 질문은 그의 말마따나 가벼운 형식 수준이었다.

이름, 나이, 학력 등등.

뒤이은 질문에선 해군 내 계급 확인과 업무 내용 등등.

레토는 웬만한 질문에는 전부 대답해 줬지만, 군사상 문제가 될 법한 것들은 양해를 구하고 질문을 거부했다.

다행히 그런 건 데카르도 납득하고 넘어갔다.

“최근에 손가락 해적단도 소탕하셨군요.”

“결혼식 중에 출동했습니다.”

“이야, 그거 진짜 싫으셨겠어요. 중요한 순간이잖습니까.”

데카르는 레토가 결혼식 중에 해적 소탕하러 갔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그의 왼손 약지에 있는 소박한 은반지가 도드라졌다.

“…….”

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검은 머리의 젊은 직원, 나비는 레토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꼼꼼하게 기록했다.

“…일부러 그런 겁니까?”

고개를 든 나비가 물었다.

가까스로 안정되어 가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금이 갔다.

당황한 데카르가 나비를 말리기도 전에, 레토가 먼저 물었다.

“뭘 일부러 그랬단 겁니까?”

능청스럽게 되묻자 나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감을 더욱 드러냈다.

“올봄에 해적 소탕 작전으로 그쪽을 비롯해 특수 함선 사령부가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군요.”

“설마 저한테 ‘그쪽’이라고 부른 겁니까?”

“아이고, 이 녀석이 의욕이 넘쳐서!”

하하하!

황급히 끼어든 데카르가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며 과장되게 웃었다. 그러는 동시에 나비를 노려보며 침묵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선배님.”

그러나 안타깝게도, 열정 넘치는 신입은 자신의 의견을 굽힐 줄 몰랐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논리로 짜 맞춘 가설에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의도된 행위면 어떡합니까?”

“나비 칼로스!”

당황한 데카르가 소리쳤다.

“증거도 없이 함부로 억측하지 마라!”

“하지만…!”

“괜찮습니다.”

능청스러운 반응이 튀어나왔고, 당장 말다툼을 벌이려던 데카르와 나비가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레토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뭐가…!”

“제가 잘생겼잖습니까.”

“…….”

“질투는 늘 당해 왔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도 않군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처럼 위태롭던 분위기가 단숨에 허망해졌다. 마치 공기 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흐느적거렸다.

정작 레토는 혼자 진지했다.

“젊은 나이에 소장으로 특진해서, 지금은 중장을 달고 있으니. 승승장구하는 제가 부러운 거겠죠. 거기다 미남이고.”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입니다!”

“억지라니? 이 정도 추론은 합리적입니다. 일단 미남이고….”

“증거도 없이 무슨 그런…!”

“그럼 그쪽은 아까 무슨 근거로 그딴 말을 했을까?”

“…….”

레토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나와 대원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해낸 작전을, 그쪽이 뭐라고 함부로 깎아내리고 의심했던 건가?”

순식간에 무거워진 공기는 나비의 가슴을 짓눌렀다.

“여기는 해군이다.”

첨예해진 분위기는 실탄을 장착한 총이 되어, 나비의 뒤통수를 겨냥했다.

“나라를 수호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애국자들의 성지에서, 감히 무슨 자신감으로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

톡.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비의 턱 아래에 맺힌 땀방울이 테이블에 떨어지면서 난 소리였다.

하지만 나비는 그걸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줄곧 저만 응시하는 붉은 눈동자는 잠시라도 한눈파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오케아누스 중장님.”

결국, 데카르가 대신 사과했다.

“저희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 대신.”

잠시 고민한 레토가 결심하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조언을 하나 하지.”

그리고 말했다.

“두통약과 위장약을 챙겨 둬.”

***

안보국이 아들라보르 전군을 상대로 사상 검증에 들어간 건, 일종의 기선제압이었다.

그리고 그걸 해군이 모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방문을 거절하지 않은 건, 아드벨로 대장의 부하 사랑 때문이었다.

“심심풀이 정도는 되어 줄 테니까.”

아드벨로 대장은 해군을 아끼고 부하를 소중히 생각하는 최고의 상관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부하들의 복지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대장님의 하해와 같은 진심을 이제야 알았네.”

레토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그의 뼈대 굵은 손가락엔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

그런 상사를 바라보는 노아의 푸른 눈은 바싹 메마른 채였다.

“…어서 도장이나 찍어 주십시오.”

노아의 재촉에 그제야 레토가 손을 움직였다. 그는 조금 전 노아가 제출한 보고서를 살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태풍이 올라온다고?”

“일요일 밤부터 영향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요일 출근 확정이군. 시험은 태풍이 가장 거셀 새벽에 시작될 거니까.”

준비할 게 많겠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레토가 보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특함 대원들의 운항 자격시험 날짜가 정해졌다.

“오늘은 대위가 상담받는 날이던가?”

레토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곧 예정 시간이라 가 봐야 합니다.”

노아는 보고서를 건네받으며 대답했다.

“재밌게 놀다 와.”

“재미….”

노아는 요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좋아진 레토의 피부를 바라봤다. 원래도 피부가 좋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윤기가 돌며 눈부신 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레토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안보국 직원들과 먼저 상담한 군인들은 이전보다 안색이 화사해졌고, 성격도 밝아졌다.

심지어 몇몇은 만성 비염이 나았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그래서 노아는 께름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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