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245)

94.

“흐음…….”

노아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레토는 아직 모른다.

하나 원래도 매사 진지한 아내가 저렇게까지 심각한 분위기로 말한다는 건, 분명 자신의 예상을 웃도는 위험한 일인 게 틀림없었다.

무려 피에타 가문의 생존자다.그녀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엔 분명 피비린내가 진동할 거다.

“괜찮아.”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기에 자신이 함께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부부는 일심동체잖아.”

애처가인 그는 아내 혼자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 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은근히 기분 좋기도 하고.”

“뭐가 말씀이십니까?”

“부당하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도움이 필요한 거지?”

“…….”

노아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망설였던 이유는 바로 그거였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분명 혼자만으로 벅찼다. 

그만큼 위험했다.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최악의 경우엔 전쟁이 다시 발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레토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는 노아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하고 뛰어난 인물이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위험한 게 분명한 상황에 함께하자고 말하는 건 너무 미안한 짓이었다.

“내 신부님.”

커다란 손이 노아의 볼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노아는 그제야 자신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아까 말했지? 내 도움을 바라는 게 너무 좋다고.”

“…….”

“오히려 네가 나 몰래 위험한 일을 혼자 하러 갔다면, 그게 더 서운하고 슬플 거 같아.”

“저도 알 것 같습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밀항하려던 델라트 경 일행을 체포하는 작전에 제외되었을 때, 노아는 무척 속상했었다.

어떤 사정이든 간에 자신을 믿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괴로웠다.

“…나중에 후회하시면 안 됩니다.”

노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레토에게 말했다.

레토는 바로 그거란 듯이 기쁘게 눈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힘든 일에 날 끌어넣었다고 투덜거리시면, 그때부터 각방인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자기야, 그런 무서운 단어 쓰지 마…….”

“이제 됐으니까 어서 사령부실로…….”

“아아, 네 냄새 너무 좋다.”

“…좀 떨어지십시오!”

무겁게, 진짜!노아는 어느샌가 제 등에 매달리듯 안긴 레토를 악착같이 떨어트리려다가, 끝내 실패하고 그를 어부바한 채로 사령부실로 향했다.

사이 좋은 부부의 등장에 사령부실이 웃음바다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오후에도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점점 묵직해졌고, 덩달아 불쾌 지수 또한 높아졌다.

“비가 한바탕 쏟아지겠군.”

훈련장에 도착한 글로리아가 잿빛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곤 기발한 생각이라도 돌연 떠올린 것처럼 씩 웃었다.

“슬슬 네놈들 시험 한번 치를 생각이었는데, 폭풍우 거하게 칠 때 바다로 나가야겠다.”

그 말에 신발 끈을 고쳐 신던 노아도, 처음 와 본 훈련장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레토도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글로리아가 말한 ‘시험’은, 1년에 한 번씩 있는 특함 대원들의 개인 함선 운항 자격시험을 뜻했다.

개인 함선을 운항하기 위해선 방대한 양의 마력을 보유해야 하며, 발동된 개인 함선을 짊어지고 움직일 수 있는 강한 체력을 지녀야 했다.

즉, 자격시험은 해군 역사상 가장 고난도의 체력 시험이었다.

“…유서를 준비해 둬야겠군.”

천하의 레토마저 눈앞이 암담해지는 통보였다.

“…….”

노아는 딱히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그런다고 확정된 지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오라도 미리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

흐린 하늘만큼 우울해진 레토에게, 노아가 챙겨 온 검 한 자루를 건넸다.

자신의 오러를 머금은 페미나였다.검을 건네받은 레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럴 수가.”

레토는 자신이 상당히 강한 실력자라는 걸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한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한테 목숨 걸고 까분 거였네…….”

허세를 부리듯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아슬아슬했다.

검을 쥐자마자 확신했다.지금껏 자신이 보아 온 강자들은, 제 손에 쥔 이 엄청난 기운 앞에서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런 힘이 존재할 수 있지?’

손에 닿자마자 전해지는 흉포한 기운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힘이었다.

저 역시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마력량을 지녔지만, 이 검 속에 담긴 거센 기운은 그마저도 가소롭단 듯이 난폭하게 움직였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무인의 극치가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니.

레토는 이 힘의 이름을 정중히 불러보았다.

“오러…….”

그러자 검을 쥔 손이 화끈거렸다. 

검 속에 들어 있는 오러가 제 손 가죽을 뚫고 안으로 침범하는 기분이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검을 놓칠 뻔했다.

“노아.”

지켜보던 글로리아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애송이한테 설명해 주란 뜻이었다.

노아는 레토에게 페미나에 대해 설명해 줬다.

“피에타 가문의 부부검이 전설의 보검으로 불리는 이유는, 오러를 지니지 않은 사람도 오러를 쓸 수 있기 때문이야.”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는데.”

레토는 검에 깃든 오러에 집중했다.

“…이거, 네 오러야?”

“응.”

“그렇다면 일종의 충전식 무기로군.”

“천하의 보검을 그딴 저렴한 별명으로 부르는 배짱 봐라.”

글로리아가 피식 웃었다.레토는 아예 검을 들어 올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네 이름은 건전지….”

“페미나거든!”

그새 또 기어오르는 레토에게 한소리 지른 뒤, 노아는 못다 한 설명을 이어 갔다.

“어쨌건 네 말대로 충전식, 아이씨, 어쨌건 마스와 페미나는 오러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피에타 백작은 하나의 검을 소지하면, 다른 한 검엔 자신의 오러를 흡수시켜 반려에게 건넸다.

“그러면 그 반려는 검에 흡수된 오러를 자유롭게 쓰며 싸울 수 있었지.”

“고전 소설에 비슷한 류의 무기가 나오는데, 그런 거랑 비슷한 거야?”

“비슷한 게 아니라, 바로 그게 이 검이야.”

부부검에 대한 정보는 의외로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나 오래된 고전에서 간간이 등장했다.

“검의 재료도 상당히 특수해.”

“오러를 흡수하는 광물이라, 마력을 흡수하는 것과는 다르겠지?”

“‘아우라’라고 알아?”“그것도 고전 소설에서 나오는 전설의 광물이잖아.”

“그게 검의 재료야.”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전설의 광물인 아우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부부검은 세상에 현존하는 유일한 아우라였다.

“…으음.”

잠깐만.진지하게 듣고 있던 레토가 서둘러 말을 끊었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어렸다.그래도 레토는 침착하게 조금 전에 들은 것들을 복습했다.

“그러니까 이 검들이 전설의 뭐, 그런 거라고?”

“응.”

“오케아누스 출신 영웅의 미담을 그린 동화책에 나오는, 옛날 옛적에 발견되곤 했다는 전설의 광물로 만들었다고?”

“안 믿기지?”

끄덕끄덕.

레토는 새로운 문물을 경험하는 아기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알아보고 싶지만, 그러기 전에 제 나름의 이해가 필요했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너한테 동병상련을 느끼는군.”

글로리아가 안타까이 혀를 찼다.

“나도 처음에 너처럼 반응했어.”

세상이 혀를 내두르는 괴짜였던 그녀조차 피에타 가문의 신비로운 비밀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눈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직시해라.”

글로리아는 레토를 위해 조언했다.

“넌 이미 노아랑 결혼한 뒤에 코 꿰인 거야.”

“그럼 전 노아 곁에 항상 찰싹 달라붙….”

“…….”

“죄송합니다.”

입방정은 이제 습관이라서.순순히 사과한 레토는 다시 글로리아를 힐끔거리더니 싱긋 웃었다. 

글로리아는 저 망할 손녀사위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참았다.

“…피에타 가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바로 너처럼 반응하는 사람들 때문인 게야.”

현시대의 기술력과 그로 인해 변해 버린 대중의 상식과 세상의 풍조는 그들의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너도 듣자마자 놀랐지?”

“솔직히, 지금도 안 믿깁니다.”

레토는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 제 손에는 아우라로 만든 검이 있다. 

그리고 검을 통해 오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믿기지 않는 건,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글로리아가 말한 대로였다. 

아들라보르 왕국에서 나고 자란 그에겐 오러와 아우라 같은 건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공상’이었다.

“…으음.”

정작 노아는 레토의 반응을 썩 이해하지 못했다.

“넌 마법사가 오러를 못 믿으면 어쩌자는 거야.”

“자기야, 그거랑 이거는 달라.”

마법은 기술의 일종으로 발전했지만, 오러는 오래된 역사서에만 기록된 허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레토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부부검으로 오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전설은 들어본 적 있는데…….”

“왕국에선 그런 소문이 돌았었구나.”

“그래서 이상하단 거지.”

들어보니 피에타 가문은 오러를 쓸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자신들의 능력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7년 전에 제국에서 전쟁 중일 때도, 난 피에타 가문이 오러를 쓴다는 소문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

그리고 레토는 그 이유를 바로 지금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노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레토.”

그러나 곧 다짐한 듯, 용기를 낸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피에타 가문은 아드벨로의 도움을 받아, 아들라보르 왕국으로 비밀리에 망명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

이유는 하나였다.

“더는 그곳에서 마스와 페미나를 휘두를 수 없었기 때문이야.”

제국을 위해 삿된 것을 베겠다는 선조들의 의지가 담긴 부부검이, 더는 제국을 위해 발동하지 않았다.

“그 말은…….”

레토의 인상이 어두워졌다.

“검이, 의지를 지녔다는 소리야?”

“그것까진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 선선대 백작이셨던 내 할머니도, 선대 백작인 아버지도 마스와 페미나로 활동하지 못했지.”

“…….”

“일부러 능력을 숨긴 게 아니야.”

오러가 사라진 건 아니다.

마스와 페미나에 오러를 흡수시키고, 오러를 방출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을 위하는 순간, 보검들은 낡은 고철이 되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노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제국은 곧 망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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