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245)

90.

“도로는 지금부터 30분 동안 통제될 거다.”

알버스 오케아누스가 출발을 준비하는 노아와 레토에게 설명했다.

이번 작전에서 그는 후방 지원을 담당했다.

의도치 않은 유괴 미수 사건 탓도 있지만,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고 체격도 눈에 띄는 탓에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다만 오케아누스의 어마어마한 재력을 이용하여 모든 물자를 지원했다.

간첩들이 위장용으로 훔친 아이스크림 차라든가, 지금 노아와 레토가 올라탄 바이크.

마지막으로 간첩들이 호텔에서 훔친 검은색 마동력차까지.

거기다 알버스는 차량에 약간의 장난도 해 뒀다.

“상단 좌측 바퀴 이음새를 일부러 약하게 해 뒀다.”

“…….”

“할 수 없겠냐?”

“장군님 얼굴에 먹칠할 일은 없습니다.”

미소 짓는 레토의 머리 위로 헬멧이 내려앉았다.

“어흠, 그 손주며느리야.”

“할아버님?”

“그, 너는 그거면 되겠냐?”

알버스는 노아의 등에 달린 막대기를 가리켰다. 무명천으로 대충 둘러싼 탓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검이라는 것 정도는 한눈에 알아봤다.

차량을 추적하고 제압해야 하는데 검이라니.

알버스는 지금이라도 노아가 총을 소지했으면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레토를 바라봤지만, 레토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이미 그는 노아와 사전에 말을 맞춘 뒤였다.

그리고 어떤 의미론 알버스보다 마음이 심란한 상태였다.

“…너희 싸웠냐?”

“안 싸웠습니다.”

“할아버님.”

노아는 이 말을 끝으로 헬멧을 썼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바이크를 몰고 검은 차를 추적했다.

아이트라의 예상대로, 검은 차는 아이스크림 차가 멈춰선 시내 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때마침 아이스크림 차 앞에서 조그만 소란이 일어났고, 노아는 그 중심에 클라레와 아티가 함께 있는 걸 발견하고 안도했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 검은 차를 빠르게 추격했다.

영지를 벗어나자마자 총격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노아와 레토가 펼친 보호 마법에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그 틈에 레토가 왼쪽으로 빠졌다. 노아와 잠깐 시선을 주고받은 그는 숨겨 둔 리볼버를 꺼냈다.

끼이이익!

아아악!

레토가 쏜 단 두 발로 간첩들이 멈칫거리는 사이, 노아가 그들을 앞질러 달렸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고 판단한 노아는 바이크에서 재빨리 내렸다.

운전자를 잃은 바이크는 달리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나무까지 밀려 나갔다.

“…….”

노아를 확인한 레토는 총을 치우고 옆으로 살짝 비켰다.

그리고 노아는 검을 뽑았다.

무명천이 스르륵 풀리면서 붉은색 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아가 챙겨 온 건 마스였다.

마스는 곧 푸른 오러를 입었다. 번개를 닮은 오러가 나타난 순간, 숲은 소란스러워졌다.

조금 전 추격전과 총격전에도 숨죽이고 지켜보던 새들과 작은 동물들이 거칠고 폭력적인 기운을 감지하자마자 재빨리 도망쳤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토끼와 사슴,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하늘 위로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꽁무니가 빠질 정도로 도망쳤다.

그 속에서, 노아는 천천히 검 끝을 세워 올렸다.

“…….”

아예 바이크를 멈춰 세운 레토는 노아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바퀴 하나를 잃었다고 해도, 검은 차는 계속 노아를 향해 달려왔다. 경적조차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다.

그냥 치고 나가겠단 뜻이었다.

사실, 노아도 딱히 상관없었다.

헬멧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이지, 노아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머리 위로 들어 올려진 검은 이제 오러를 완벽하게 흡수했다. 검날은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그 속에서 검날 중앙에 음각으로 새겨진 문장이 번쩍거렸다.

삿된 것을 베라.

제국의 검으로 살아온 피에타 가문에게 삿된 것은, 제국을 공격하고 방해하는 적들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피에타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노아에게 삿된 것은, 저와 가족을 배신한 제국을 의미했다.

그러니 저를 향해 달려오는 제국의 간첩 역시 삿된 것에 포함되었다.

그렇기에 검을 내려치는 노아의 동작엔 망설임이 없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검은 차는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노아를 내버려 둔 채로 미끄러지듯 나무에 충돌했다.

충격으로 기절한 간첩들은 의식을 잃는 순간까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

아이스크림 차를 버리고 항구 내 거대 창고 구역으로 숨어든 간첩 둘은 무사히 영지 바깥 숲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숲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콰앙! 콰앙!

연이어 들리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숲이 흔들거렸다.

“뭐, 뭐야!”

놀라 당황하기를 잠깐, 곧 소리가 난 방향에서부터 동물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새들이며, 토끼, 다람쥐에 사슴까지 모두 그들을 무시한 채 도망치기 바빴다.

꼭 한 편의 공포 영화에 나오는 재난의 전조 증상 같았다.

수상함을 감지한 간첩 둘은 조심스럽게 소리가 난 곳으로 이동했고,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해군의 미친개다.”

간첩 중 한 명이 치를 떨었다.

“헬멧을 벗은 남자! 오케아누스 중장이었어!”

“그럼 백사자가 남부로 내려온 게…….”

“단순히 가족 여행 따위가 아니었던 거야!”

늦은 깨달음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제야 함정에 빠졌단 사실을 알아챈 두 간첩은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둘은 노아와 레토가 자신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힐끔거리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작전은 전부 실패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한 두 간첩은 몸을 숨기며 계획을 논의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만이라도 제국으로 돌아가야 해.”

만일을 대비하여 공작금을 5등분으로 나눠 각자 들고 다녔다. 덕분에 두 사람의 손엔 30만 피나가 든 가방이 2개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지? 당장은 배를 구하지도 못하잖아.”

“지금으로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가 무사해야 무슨 방법이라도…….”

도도도도.

작은 소리에 간첩들이 서둘러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도도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둘은 서둘러 총을 꺼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조준했다.

데구르르.

그리고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건.

“…….”

“…….”

아무것도 없었다.

빰빠라 빰빠빠 빠암!

하지만 발치에서 들리는 커다란 음악 소리에 화들짝 놀란 둘은, 그제야 아래를 내려다봤다.

“…털?”

거기엔 웬 동그란 하얀색 털 뭉치가 있었다.

사슴이나 토끼 같은 짐승이 여름 털갈이를 하면서 빠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빰빠라 빰빠빠 빠암!

털 뭉치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욕지거리를 토하며 간첩이 털 뭉치를 짓밟았다.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 소리 때문에 자신들의 위치가 조금 전 봤던 미친개에게 발각될 수도 있었다.

“……!”

하지만 무게를 한껏 실은 발을, 무언가가 턱 잡아 막아냈다.

그리고 내려찍는 발에 실린 힘보다 강한 힘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

무슨 일이냐고 내뱉으려던 간첩은 끝내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덩달아 음악은 더욱 커졌다.

동시에 털 뭉치도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식칼토끼! 식칼토끼!]

정의의 복수자, 식칼토끼!

[부모를 죽인 불법 도축업자! 그자의 피를 식칼에 묻혀!]

섬뜩하기 짝이 없는 가사에 맞춰, 털 뭉치는 점점 몸집을 키워나갔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네 개의 다리 같은 것들이 점점 길어지고 통통해지더니, 이내 팔다리가 되었다.

[동물복지를 실현한다! 불법 도축은 처형이다!]

부피를 키운 털 뭉치는 두 덩어리로 나뉘었다.

하나는 몸.

하나는 머리.

오른손에는 날이 시퍼런 칼날이 쥐여졌고.

머리 위로는 새하얀 귀가 길게 솟구쳤다. 얼굴로 추정되는 털 위로는 가위표 모양의 까만 눈이 그려졌다.

[정의로운 무적!]

식칼토끼!

샤프 영지를 비롯한 남부 어린이들의 친구.

두 간첩 앞에 나타난 식칼토끼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

“…….”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간첩들은 지금 자신들이 꿈을 꾸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넋이 나간 찰나.

[…목표물을 확인.]

식칼토끼의 입으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울렸다.

사람의 언어였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위치 전송을 시작합니다.]

식칼토끼의 앙증맞은 다리가 무릎을 굽혔다. 마치 추진력을 더하기 위해 달리기 선수들이 몸을 숙이는 것처럼.

“…젠장!”

간첩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이끌고 도망쳤다.

그는 저 말도 안 되는 기술이 누구의 작품인지 눈치채고 말았다.

아들라보르의 중심.

남부의 주인.

마탑 폭발의 근원.

간첩들이 도망친 곳을 향해 몸을 돌린 식칼 토끼가 다시 자세를 낮췄다.

[도주를 확인합니다.]

이제 식칼토끼의 왼손에도 또 다른 식칼이 들려 있었다.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합니다.]

식칼토끼는 먼지를 남기며 빠른 속도로 숲을 달렸다.

***

간첩을 체포하기 위해 아드벨로 대장이 제시한 기간은 닷새.

그러나 실제로 다섯 간첩을 생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되었다.

노아와 레토가 잡은 간첩은 아드벨로 측에서 보낸 수송차량에 실려, 샤프 영지 내 오케아누스 저택으로 옮겨졌다.

차를 운전한 사람은 아메타 아드벨로였다.

“…….”

“…….”

그런데 차 안은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 뿐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노아와 레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아메타가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싸웠나?’

평소라면 저 얄밉지만 붙임성 좋은 사위가 먼저 말을 걸었을 거고, 딸도 이것저것 물어보며 살갑게 대화를 했을 텐데.

“끙…….”

결국, 오케아누스 저택까지 가는 동안 세 사람은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덕분에 아메타만 괴로웠다.

“아빠, 고마워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택에 도착하니 노아와 레토가 늦은 감사를 전했단 뜻이었다.

“너희 싸웠냐?”

이 틈에 아메타가 냉큼 물었다.

“안 싸웠어.”

“그런 건 아닙니다.”

노아와 레토의 대답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에 봤을 때와 달리 달라붙거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래, 알았다.”

아메타도 그 이상 물어보진 않았다. 결혼한 자식 문제는 이혼이나 가정폭력, 사기, 도박 기타 등등만 아니면 끼어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메타가 가 버린 뒤.

“노아.”

레토가 드디어 묻고 싶었던 것을 질문했다.

“…피에타 가문의 후손이야?”

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레토의 질문엔 약간의 오류가 있었다.

그래서 정정했다.

“친딸이야.”

후손 같은 게 아니라, 피에타 백작 부부의 친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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