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
화들짝 놀란 신혼부부가 후다닥 떨어졌다.
“와, 토끼처럼 뛰었다!”
클라레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조금 전 언니와 형부를 흉내 냈다.
“어, 언제 나왔어?”
노아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색이 된 얼굴 위로 식은땀이 송송 맺히려 했다.
“…….”
저 멀리 떨어진 레토는 땅에 쓰러진 채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형부 차 소리 듣고 나왔어.”
“어디로?”
“응?”
클라레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현관문을 가리켰다.
“문 열고 나왔지.”
“…….”
“근데 둘이 밖에서 뭐 했어? 몸으로 뭘 해?”
“꼭 안아 주고 뽀뽀를 하는 거죠.”
어느새 일어선 레토가 클라레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내려 줘!”
클라레가 레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레토는 이마에 얼얼하게 남은 통증보다, 저를 거절한 클라레에게 더욱 큰 아픔을 느꼈다.
“손 씻고, 옷 갈아입고, 입 헹구고!”
그 뒤에 저를 만지라며 클라레가 으르렁거렸다.
“나이가 몇인데도 그런 거 하나 모르고! 내가 언제까지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해야겠어!”
클라레는 철부지 언니와 형부가 손 씻고, 옷 갈아입고, 입을 헹구는 것까지 감시한 뒤에야 포옹과 뽀뽀를 허락해 줬다.
“헤헤, 형부 이마에 손자국 났다!”
레토의 이마에 새빨갛게 남은 제 손바닥 무늬를 보며 꺄르르 웃던 클라레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걸 퍼뜩 떠올렸다.
“언니! 오빠 왔어.”
“역시 잡혔구나.”
노아는 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반면 레토는 적잖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테네브레인데, 그렇게 쉽게 잡히나?’
애초에 잡겠다고 해서 정말 잡을 수 있는 거였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클라레가 말했다.
“오빠가 그랬는데, 남부에 간첩 있댔어.”
그거 진짜야?
클라레가 노아에게 물었다.
“진짜야?”
노아는 레토에게 물었다.
“…그거 거짓말이야.”
레토는 두통이 도지려는 고개를 느리게 가로저었다.
***
일단, 노아는 레토에게 오빠를 제대로 소개하기로 했다.
“그 이야긴 나중에 따로 하자.”
노아는 당연히 레토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레토도 그럴 줄 알았기에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의 거짓말은 클라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으휴, 하여튼 오빠는!”
다행히 클라레는 레토의 거짓말을 믿었다. 정확히는 오빠가 저를 놀리려고 거짓말한 거라 여기는 눈치였다.
“그 나이 먹고도 날 놀리려고 한다니까. 아직도 철이 없어.”
“그런데 오빠는 어디 있어?”
노아가 물었다.
“오빠는 지금 부엌에 묶여 있어.”
“왜 또 부엌에 있대?”
“자기 방은 없어져서 갈 곳이 없으니까, 아스의 냄새라도 느끼고 싶다고 부엌에 묶어 달래.”
깜짝 놀란 레토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헤! 형부 표정 이상하대요!”
그 모습에 클라레가 꺄르르 웃었다.
그러건 말건, 혼자 심각한 레토가 노아에게 따지듯 물었다.
“저딴 소리를 애 앞에서 한다고? 네 오빠니까 말을 아끼려곤 했는데, 말을 너무 함부로 내뱉는 거 아냐?”
“네가 평소에 하는 말도 오빠랑 별반 다를 거 없어.”
누가 누굴 욕해.
냉혹한 평가에 레토가 눈썹을 푹 늘어트렸다. 옹졸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조금 불쌍해 보였지만, 사실이었기에 노아는 못 본 척했다.
“일단 부엌으로 가 보자.”
세 사람은 부엌으로 갔다.
“근데 처형이 안 보이네.”
레토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건 클라레였다.
“아스는 오빠랑 있어.”
그 말마따나, 부엌 입구 너머로 불이 켜져 있었다.
“아스! 언니랑 형부 왔…….”
와창창창!
쾅!
부엌살림 다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찌르듯이 울렸다.
“언니! 언니!”
깜짝 놀란 클라레가 노아의 품에 안겼다. 황급히 동생을 끌어안은 노아가 레토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레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을 살폈다.
찰싹!
“……!”
그러곤 입을 쩍 벌렸다.
“엉덩이 때리는 소리 났어!”
클라레가 허둥거리며 제 엉덩이를 손으로 문질렀다.
“엉덩이를 손으로 엄청 세게 때리면 나는 소리야! 내가 내 엉덩이를 때려 봐서 알아!”
“네 엉덩이를 왜 때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때렸어.”
“귀여우면 보듬어야지, 왜 때려! 아프게!”
“저기, 두 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드물게 당황한 레토가 두 사람에게 이리 와 보라며 허망하게 손짓했다.
노아가 클라레를 안은 채로 부엌 가까이 다가갔다 힐끔거렸다.
그리고 조금 전 레토처럼 입을 쩍 벌렸다.
부엌은 엉망이었다.
아스가 아끼는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던 유리장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아래로 떨어져 깨진 날카로운 푸른색 식기들의 파편이 가득했다.
그리고 진열장 바로 옆에 두 남녀가 서 있었다.
남자는 뺨을 맞아 고개가 돌아간 채였고, 여자는 뺨을 때린 손을 거두지도 못한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야.”
아티는 벌겋게 달아오르는 제 볼을 손으로 살살 쓸었다.
“여전히 손이 맵네.”
손을 대기 무섭게 뺨 위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부어오르려나, 라고 심드렁히 중얼거리는 입술은 조금 전에 뺨을 맞으면서 터졌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그리고 여전히 감미롭고.”
아티는 그저 이 순간이 행복하단 듯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퉤!”
정작 아스는 역겹다는 듯이 침을 한껏 모아 바닥에 뱉었다.
“사리 분별 못하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도련님.”
비아냥거리는 말투엔 악의가 가득했다.
정작 아티는 별 타격조차 없는지, 어깨만 가볍게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아스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난 너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거든. 그건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직접 겪어 봤으니까.
아티가 그렇지 않으냐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잠시 얼굴을 붉힌 아스는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하며 빈정댔다.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입니다.”
“나에겐 최고의 순간이었는데.”
“이렇게 안 맞으니까 헤어지자고 한 거 아닌가요?”
“그럼. 이젠 남이지.”
바드득.
아까부터 핏줄이 드러나도록 꽉 쥔 아스의 주먹에서 바득, 바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런 아스를 빤히 응시하던 아티가 말했다.
“지금은 잠시 휴전할까?”
손님이 왔거든.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아스가 뒤를 돌아봤다.
“아가씨!”
노아의 품에 안긴 클라레의 겁먹은 모습을 본 아스는 심장이 철렁했다.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아가씨가 집에 있는 걸 잊어버리다니!
당혹감에 빠진 아스가 우왕좌왕하며 클라레의 곁으로 다가갔다.
“많이 놀라셨죠? 정말 죄송해요…….”
“난 괜찮아.”
클라레가 아스의 굳은 얼굴을 손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아스는 괜찮아?”
“아가씨…….”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 아스가 코를 훌쩍이며 조그마한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댔다.
그 사이, 노아와 레토가 아티에게 다가갔다.
“뭐 한 거야?”
“입 맞췄어.”
“의자에 묶여 있었던 거 아냐?”
“사랑의 힘으로 풀었지.”
“…….”
기가 막힌 노아가 경멸과 멸시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는 와중에도, 홀로 여유로운 아티는 레토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만나는 건 처음이죠?”
두 사람은 이미 해군 부대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황상 못 본 척을 해야 함이 옳았다.
“그렇군요.”
레토는 손을 잡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인사했다.
“레토 오케아누스입니다. 평소 노아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겠군요.”
“부정은 않겠습니다.”
아티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첫 만남에 못 볼 꼴을 보였네요.”
“그것도 부정은 않겠습니다.”
찰나였지만, 너무 강렬했던 입맞춤을 목격해 버린 레토는 제 눈을 뽑아 성수로 씻고 싶었다.
울고도 싶어졌다.
인사를 끝낸 아티는 바닥에 쓰러진 의자를 세운 뒤, 발로 바닥을 가볍게 쓸었다.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졌던 뾰족한 접시 파편들이 하늘 위로 솟아오르더니 원래 짝을 찾아 맞춰 가기 시작했다.
“와아!”
클라레가 눈을 반짝거렸다.
“오빠는 성격 더럽고 재활용도 못 할 정도지만, 마법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곱씹으면 욕처럼 들리는 칭찬 고맙다.”
“별말씀을!”
허공을 빙그르르 돌던 파편들은 곧 원래 접시 모양으로 되돌아갔고, 이내 테이블 위로 착착 쌓여 정리되었다.
“대단하네.”
레토도 순수하게 감탄했다.
오빠가 쓰는 마법을 한심하게 지켜보던 노아가 말했다.
“저래 보여도 차기 마탑주였으니까.”
“이렇게 제대로 된 마법은 처음 보는 거 같다.”
세간에 마법은 과학과 접목하는 기술적인 측면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조금 전 아티가 보여 준, 말 그대로 마법 그 자체만의 순수한 능력을 보는 건 레토도 처음이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상당한 실력자…….’
고작 발재간 한 번으로 저 고난도의 마법을 발동하다니.
아드벨로가 왜 ‘아드벨로’인지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신기할 일인가?”
아티가 테이블 위에 정돈된 그릇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매제도 마법사잖아.”
“사관 학교에서 기초적인 것들은 배웠습니다.”
“아깝네.”
아티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 실력이면 내 발밑까진 아니어도, 상당 수준의 마법사가 될 수 있을 텐데.”
개인 함선을 운항할 수 있단 건 방대한 마력을 지녔단 뜻이었다.
특함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방대한 마력 보유라는 것만 보면, 그들만큼 이질적인 사람들도 없었다.
“마법사지만, 마법을 배우지 못하고…….”
아티는 특함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
그런 아티를 마땅찮게 바라본 레토가 노아에게 물었다.
“아까 내가 사관 학교에서 배웠다는 이야기는 어디로 들으신 거냐?”
“저놈은 자기 좋을 대로만 들어.”
“이기적인 놈이네.”
“…….”
네가 할 말은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사랑의 콩깍지가 단단히 쓰인 노아의 눈엔 그래도 레토가 조금 더 나았다.
적어도 제 남편은 반성이란 걸 할 줄 알았으니까.
“힝, 이거 봐…….”
그때, 클라레가 우는 소리를 냈다.
“그릇에 시커먼 줄이 생겼어.”
“깨졌으니까요.”
아스가 금이 선명한 접시들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깨진 건, 아무리 다시 붙여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거든요.”
“마법으로도?”
“어떤 방법으로도.”
대답하는 아스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클라레.”
화들짝 놀란 아스가 뒤를 돌아봤다.
기억 속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초록 눈동자가 저를 삼킬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아티는 그런 아스를 보며 눈을 둥글게 휘었다.
“깨졌다가 다시 붙으면, 아주 독특한 무늬가 생겨.”
그의 손이 접시 위에 놓인 아스의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
“난 그마저도 너무 사랑스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