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45)

66.

“이건 도련님 몫이에요.”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케이크는 무척 위험한 단내를 풍겼다.

“…….”

클라레는 케이크를 빤히 바라봤다.

“…드시면 안 돼요.”

“그 정돈 알아.”

뚱하니 대꾸했지만, 클라레의 시선은 여전히 케이크에 고정되어 있었다.

“드시면 동화책 속 마녀처럼 저주에 걸려요.”

“저주 따위,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으로 방어할 수 있어!”

“그러면 드셔 보실래요?”

“하긴, 세상이 녹록진 않지.”

클라레가 냉큼 주장을 철회했다.

“전에 할머니가 그랬는데, 뽀뽀로 그런 게 다 가능하면 전쟁 따위도 없었을 거랬어.”

“지당한 말씀이세요.”

“근데 우리나라 왕이랑 적국의 왕이 뽀뽀하고 사랑했으면 전쟁은 정말 안 일어났을까?”

“…….”

아스는 다정한 웃음 뒤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억눌렀다.

저 순진무구한 질문이 제 머릿속에 한 편의 더러운 치정극을 만들어 놨다.

너무 역겨워서 1년 전에 먹은 것까지 올라오려고 했다.

다행히 클라레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근데 좀 징그러울 거 같아.”

“그렇죠?”

“전에 사진 봤는데, 둘 다 수염 난 아저씨였어. 그리고 둘 다 너무 못생겼어.”

그새 흥미를 잃은 클라레가 말했다.

“나 정원에서 놀래.”

“오늘은 숙제 없으세요?”

“있는데, 좀 놀다가 할래!”

정원에 있던 소꿉놀이 장난감을 가져온 클라레는 발코니에 앙증맞은 케이크 가게를 차렸다.

“조금만 놀다가 들어오세요. 그리고 케이크 절대 먹으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건 도련님 거예요.”

“알았다고오.”

아스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일단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클라레는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케이크를 팔아요!”

무려 마취제가 든 케이크예요!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아는 맛이랍니다아. 어머! 손님 어서 오세요. 무엇을 사시겠어요?”

아스가 아끼는 꽃송이를 몰래 하나 꺾어 돌로 빻아 찍고, 화단에서 퍼 온 흙을 장난감 그릇에 꾹꾹 눌렀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리리네 아빠가 전에 리리의 저금통까지 훔쳤다잖아요. 그 돈으로 도박을 했다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

갑자기 말을 멈춘 가게 주인이 슬그머니 옆을 바라봤다.

새하얀 테이블 위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얼굴이 쏙, 나타났다. 오동통한 볼살이 씰룩거렸다.

“…진짜로 먹으면 죽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클라레가 저택을 힐끔거렸다.

지금 아스는 생선을 손질하고 있을 거다.

오늘 저녁에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대구 요리를 할 거라고 했으니까.

“으음…….”

케이크를 향한 아이의 욕심 많은 눈빛이 반짝거렸다.

클라레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 케이크를 먹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저거 맛있는데…….”

헉, 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주위를 괜히 두리번거렸다.

정원은 조용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사락사락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조금만 먹어 볼까나……?”

클라레는 새끼손가락으로 케이크 크림을 아주 조그맣게 덜었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클라레가 괜히 큰소리로 핑계를 댔다.

“아스가 만들어 주는 건 다 맛있단 말이야! 거기다가 이 케이크, 엄청 맛있는데!”

그걸 나 같은 욕심쟁이 앞에 떡하니 두고 가다니!

“한 입 먹는다고 정말 죽겠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외치며, 클라레는 눈 질끈 감고 크림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작달막한 손가락은 바로 입 앞에서 멈췄다.

“…응?”

클라레가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아드벨로 영애.”

제때 자르지 않아 덥수룩한 갈색 머리, 졸린 듯 처진 눈매 속에서 반짝이는 초록 눈동자.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일까요?”

남자의 커다란 손이 클라레의 조그만 손을 도둑질하듯 완벽하게 감췄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미남이 기가 막힌단 듯이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렸다.

“아티!”

클라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집 나간 오빠, 아티가 생긋 미소 지었다.

“잘 지냈어?”

“놀랐잖아! 그리고 내 크림…….”

“잠깐 안 본 사이에 먹보가 다 되었네.”

동생 손에 묻은 크림을 손수건으로 천천히 닦아 주는 아티의 손짓은 쓸데없이 우아했다.

만약 상대가 어린 동생이 아니었다면, 상대를 유혹하는 행동으로 보일 정도였다.

“아까 아스가 했던 말 기억 안 나? 먹으면 죽는다잖아.”

“아스는 그런 짓 안 해.”

클라레가 단언했다.

“아스는 내가 조금이라도 위험할 짓 같은 거, 절대 안 해.”

“안타깝지만 아스는 날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단다. 그러니 케이크에 마취제를 발랐지.”

“오빤 아스를 전혀 모르는구나?”

손가락을 닦던 아티가 멈칫했다.

이에 클라레가 사악하게 웃더니, 케이크 크림을 혀로 날름 핥았다. 그리고 꿀꺽 삼켰다.

“맛있다!”

아주 달콤한 복숭아 크림 맛이었다.

“이런.”

아티가 여유롭게 중얼거렸다.

“나, 덫에 걸린 거야?”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이 있던 발코니 아래서 커다란 원이 푸른 빛을 뿜으며 나타났다.

“마법…….”

남 일인 것처럼 태연히 마법진을 살피던 아티가 슬그머니 손을 바닥에 댔다. 그리고 제 마력을 살짝 흘렸다.

“……!”

그러나 마법진은 아티의 잔꾀를 비웃듯이 매섭게 튕겨 냈다.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달아오르는 손가락 끝이 쓰라렸다.

“할머니 솜씨네?”

쓸데없이 복잡하고 화려한 술식, 마법을 꺾으려는 상대의 마력을 바로 튕겨 내는 날카로움까지.

“당하고 말해 봐야 멋없어.”

클라레는 한심하단 눈으로 아티를 바라봤다.

정작 아티는 그런 막냇동생을 아주 신기하단 듯이 바라봤다.

“넌 왜 이리 태평해? 너도 마법진에 갇힌 거야.”

“난 아니지롱!”

이거 보라며 클라레가 뒤로 쑥 물러났다.

푸른 빛 마법진에서 쑥 통과한 클라레는 혀를 내밀며 메롱, 하고 얄밉게 놀렸다.

“대단한데?”

아티가 하품을 흘리며 감탄했다.

“할머니가 너한테만 무효화 마법을 걸었구나?”

“오빤 이제 못 나와.”

“알고 있어.”

애초에 붙잡힐 각오를 하고 네 앞에 나타난 거거든.

슬슬 마법진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티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쓰러지는 오빠를 본 클라레가 움찔거렸다.

“…아파?”

“…그럼 안 아프겠냐.”

“그러게 왜 그딴 식으로 살아서 이 꼴이 돼 버린 거야…….”

그 누구도 오빠를 동정할 수 없게 됐잖아.

혹독하기 짝이 없는 감상에 아티가 졸린 목소리로 큭큭거렸다.

마법 때문에 의식을 잃어 가는 와중에도 그는 클라레가 귀엽고 웃겨 미칠 거 같았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자연히 떠오르는 말투였으니까.

“너, 점점 말투가 네 언니들을 닮아 간다?”

“언니들은 내 삶의 이정표지!”

“그리고 난 경고판이고…….”

넌 나 닮으면 안 된다?

아티는 간만에 오빠다운 조언을 해 준 뒤.

“…….”

유언처럼 말 한마디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잠들었나요?”

기다렸단 듯이 아스가 나타났다.

쪼르르 다가간 클라레가 아스의 손을 꼭 쥐었다.

“있지, 아스.”

그리고 아티가 눈 감기 직전에 했던 말을 전해 줬다.

“오빠가 예쁘다고 말했어.”

“우리 아가씨는 항상 예쁘니, 틀린 말은 아니죠.”

“어…….”

“들어가서 양치하고 숙제해야죠?”

말을 싹둑 자른 아스가 여느 때처럼 다정한 눈웃음을 지었다.

“…응.”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낀 클라레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저택 안으로 혼자 들어갔다.

낮은 의자 위에 서서 거울을 보며 양치질하고, 흙 묻은 교복을 갈아입고, 얼굴과 손을 꼼꼼히 씻었다.

그리고 아스가 방으로 가져다준 가방에서 숙제를 꺼냈다.

오늘의 숙제는 수학 문제였다.

“…….”

열심히 문제를 풀던 클라레가 열린 문 너머를 힐끔거렸다.

“예쁘네.”

클라레는 오빠가 했던 말을 한 번 더 떠올렸다.

‘오빠는 아스한테 예쁘다고 한 건데…….’

꼭 거짓말을 한 것처럼, 아이는 마음이 아파졌다.

***

한편 해군에선.

“…진짜 목숨 걸고 알아낸 거야.”

술값 영수증 처리하러 왔다는 핑계로 본부에 방문한 락소는 제가 조사한 걸 레토에게 알려 줬다.

레토는 그가 전달한 영수증 뒷면을 읽었다.

눈속임으로 가져온 영수증 뒷면엔 락소가 레토를 기다리면서 적은 기밀 정보가 악필로 휘갈겨져 있었다.

“…….”

그리고 제 친구가 목숨 걸고 알아냈단 정보를 읽는 레토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 사건은, 나도 알아.”

중얼거리는 레토의 목소리엔 황망함이 어려 있었다.

“피니치 구역 폭발 사건. 작년 가을에 꽤 떠들썩했잖아.”

북부에는 산맥으로 나눠진 국경을 따라 철조망이 길게 세워져 있는데, 그곳을 육군 정예부대가 수호했다.

피니치 구역은 그중 산맥 끝자락, 국경의 끝에 위치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

바로 이곳 피니치 구역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인해 철조망이 끊어지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사건을 조사한 결과, 제국에서 보낸 간첩의 소행으로 밝혀졌지.”

“그때 제국을 침략해야 한다는 주전론이 일어났었지?”

레토가 당시 읽었던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제국에선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말했었고.”

대부분의 왕국민이 그러했듯, 레토는 제국 측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군 관계자였기에 더욱 제국을 의심하고 경멸했다.

“안 믿었었는데…….”

레토는 차마 인정하기 싫은, 그러나 반드시 뱉어야 하는 질문을 힘겹게 꺼냈다.

“…그게, 진짜였어?”

락소 역시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건, 간첩이 한 게 아니었어.”

내부자의 소행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 사건이 이번 남부랑 어떻게 얽혔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어떻게 밝혀진 거고?”

“간첩이 말했다더라.”

“뭐?”

“너도 이해 안 가지? 말하는 나도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처음 이 정보를 손에 넣었을 때도 뭔 소리인가 싶어서 한참을 읽었다고 한다.

“놀라지 마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락소가 넌지시 경고했다.

그리고 말했다.

“프레드 렐리.”

“…….”

레토의 눈매가 날카롭게 접혔다.

“자기들이 만든 마약을 제국으로 수출하는 유통책으로 손가락 해적단을 소개해 준 놈이, 바로 간첩이란다.”

“아까 피니치 구역 폭발 사건은 간첩이 한 짓이 아니라고…….”

“간첩이 한 짓은 아니었어.”

“…….”

“하지만 그때 간첩이 넘어왔단 건 사실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락소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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