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245)

61.

인생에서 가장 슬픈 비극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상사가 승승장구하며 찬란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기쁜 희극 역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상사가 괴로워하는 꼴을 관전하는 것이리라.

마침 여기.

“딴딴딴, 딴딴딴.”

“…….”

샤프 영지 내 해군 본부 항구에서 그 비극과 희극이 동시에 상영되는 장면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군악대의 행진곡에 맞춰 사교춤을 추는 두 사람의 얼굴은 무척 상반되었다.

“자, 한번 빙글빙글 돌아 보자!”

한 명은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워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천진난만하게 휘어진 눈가에 접힌 주름마저 꺄르르 웃는 아이의 입꼬리 같았다.

“…….”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아침부터 상사의 허리에 손 받쳐 가며 춤을 춰야 하는 이 상황이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처형이 만들어 준 독극물 맛의 강장제를 연거푸 들이켜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

“…….”

그리고 이 희극과 비극이 어우러진 순간을 목도하면서도 무표정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는 군인들은 죽을 맛이었다.

‘와, 이거 생각보다 웃기네…….’

‘오늘 퇴근하면 무조건 복권 산다…!’

‘끅, 방금 체한 게 내려갔어!’

‘중장님도 결국은 부하였구나.’

제각각 떠오르는 생각을 흘려보내며, 안면 근육을 돌처럼 굳힌 채로 두 사람의 춤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몇 분.

“…후우.”

실컷 췄다 싶은 아드벨로 대장이 먼저 춤을 끝냈다.

“역시 아침에 부지런해야 하루가 즐거운 게야!”

그렇지 않으냐며 즐겁게 질문하는 아드벨로 대장이 레토의 굽은 등을 퍽퍽 두드렸다.

“…….”

레토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그는 아침 댓바람부터 부하들 앞에서 망신당한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다.

“너도 내 덕에 운동하니 좋지? 감사 인사는 됐다.”

“이 좋은 건 대장님 혼자 하십시오. 비루한 저는 옆에서 손뼉 치며 기다리겠습니다.”

기운 빠진 레토의 목소리만 간신히 흘러나왔다.

“이 배움이 모자란 애송아.”

쯧쯧, 아드벨로 대장이 혀를 찼다.

“좋은 건 나눌수록 곱절이 된다는 명언을 알아야지.”

“나누면 반절입니다.”

레토는 이성적으로 반박했다.

“대장님, 이젠 나누기도 못 할 정도로 늙으신 겁니까? 얼른 퇴직하고 쉬십시오.”

“노년의 두뇌 건강은 운동으로 나오지! 내일부터 너랑 같이 아침에 춤추면서 운동해…….”

“다시 보니 여전히 눈에 총기가 영롱하십니다. 저도 모르는 명언을 알려 주시는 그 지혜로움에 탄복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부하들은 생각했다.

“…중장님의 남 비꼬는 말투, 대장님 판박이네.”

아미가 노아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였다.

노아는 대답 대신 고개만 묵묵히 끄덕였다.

‘레토를 발탁해 키운 게 대장님이시니까.’

7년 전 전쟁에서 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아드벨로 대장은 레토의 스승이자 은인, 그리고 나쁜 것만 가르쳐 준 못된 어른이었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너 결혼했다며?”

“대장님 손녀만큼이나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입니다.”

“넌 내 손녀 얼굴도 모르잖아.”

“대장님 손녀니까 안 봐도 뻔하지 않습니까.”

“너 지금 내 손녀 욕했냐? 죽고 싶어?”

말은 저렇게 해도, 일단은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고 있었다.

“대장님.”

레토의 멱살을 붙잡고 위협하던 아드벨로 대장의 어깨 위로 새하얀 재킷이 얹어졌다.

비서실장이었다.

테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점잖은 눈웃음이 비쳤다.

“흘리신 땀이 식으면 몸이 차가워지니, 운동하신 후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

아니꼬운 시선으로 비서실장을 힐끔 보던 아드벨로 대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비스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 버렸어.”

“다음이 또 있을 겁니다.”

“뭐, 네가 나랑 추겠단 거냐?”

말은 퉁명스레 하면서도, 아드벨로 대장은 비서실장이 입혀 주는 재킷에 팔을 얌전히 끼워 넣었다.

“다 늙어서 이게 뭔 짓인지.”

아침부터 부하들 앞에서 춤추며 입장하는 건 괜찮은데, 비서실장이 재킷을 입혀 주는 건 남사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정복을 완벽히 갖춰 입은 아드벨로 대장에게선 그 직위에 걸맞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

“…….”

노아와 아드벨로 대장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드벨로 대장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건 돌아왔군.”

노아는 눈에 띄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드디어 해군의 1인자가 돌아왔다.

***

본부로 정식 복귀한 아드벨로 대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특함 사령부 방문이었다.

“할망구 제발 좀 가라…….”

정작 레토는 이 상황이 아주 못마땅했다.

그러나 레토가 간절히 퇴장을 바랄수록, 아드벨로 대장은 뻔뻔하게 눌어붙었다.

“오, 아이스 대령! 잘 지냈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령입니다.”

“너 아직도 중령이었냐? 나 없는 동안 뭐 했어? 놀았어?”

“3개월 동안 진급할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물어 댔다.

“네가 막내였지? 이름이 오메였나?”

“저는 막내가 아닙니다. 그리고 막내 이름은 오메가 아니고 호메스입니다.”

“그 이름 까짓것 별거 아냐. 여자가 그런 거 신경 쓰면 매력 떨어져!”

“전 남자입니다.”

“어휴, 난 또 그냥 나보다 2배 큰 여자인 줄 알았네.”

이처럼 편견 없는 인사가 겨우 끝나갈 즈음.

“…노아 벨로.”

아드벨로 대장이 처음으로 이름을 틀리지 않고 말했다.

의미심장한 부름에 사령부실 분위기도 덩달아 살짝 무거워졌다.

특히 레토는 당장이라도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 것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노아를 한참 응시하던 대장이 말했다.

“우리 대위가 애송이랑 결혼했다고?”

“그렇습니다.”

“애송이가 꼴에 보는 눈은 있군.”

“감사합니다.”

“넌 잠깐 좀 나와 봐라.”

“대장님.”

레토가 덥석 대장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급한 그의 표정은 어마어마하게 일그러졌다.

“할 말씀이 있으면 저한테 하십시오. 벨로 대위가 무슨 죄…….”

“이 새끼가 뭘 착각하는 거야!”

그의 생각을 눈치챈 아드벨로 대장이 으르렁거리며 발길질했다.

“네놈들 먹으라고 사 온 기념품 들고 가라고 부른 거다! 이 새끼는 챙겨 줘도 지랄이야!”

“그럼 올 때 들고 올 것이지…….”

“아아, 이 새끼가 안 본 사이에 군기가 빠져 가지고…….”

네가 대장이냐?

어? 네가 1인자야?

“꼬우면 네가 대장을 하시든가.”

한참 레토를 갈구며 실컷 예뻐한 뒤에야 아드벨로 대장은 노아를 데리고 참모 총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참모 총장실로 들어간 뒤에야.

“…할머니!”

노아는 그간 보고 싶었던 할머니 품에 와락 안길 수 있었다.

“어이구, 내 강아지.”

괴팍한 성미를 벗어 던진 아드벨로 대장이 여느 할머니처럼 인자하고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간 잘 지냈고? 밥은 꼬박꼬박 먹고?”

“잘 지냈어요. 할머니는 안 힘들었어요?”

“난 배가 체질이라서 말이다.”

나보다 네 할아버지가 더 힘들었을 거라며, 아드벨로 대장은 살짝 떨어진 채 서 있던 비서실장을 가리켰다.

비서실장이 동의했다.

“네 할머니랑 같이 있으면 어디든 천국이지.”

그러곤 팔을 살짝 벌리니, 노아가 그 품에 와락 안겼다.

“할아버지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너야말로 고생했다.”

그는 여전히 어려 보이기만 하는 손녀가 대견하기만 했다.

“네가 벌써 결혼이라니…….”

“우리가 네 결혼식을 못 봐서 얼마나 아쉬운 줄 알아?”

꼭 그렇게 급하게 결혼했어야 했냐며 아드벨로 대장이 나무라듯 말했다.

“죄송해요…….”

할 말이 없어진 노아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금방 돌아오실 줄 알았으면, 레토와 조금 더 상의해서 결혼식을 미룰 것을 그랬다.

“그런데 늦게 오셨네요. 원래 두 달 일정 아니었나요?”

조부모님은 노아와 레토의 사이가 틀어지기 직전에 출항해서, 두 사람이 결혼한 이후에 도착했다.

개월 수로 세어 보면 석 달 만이었다.

‘…그 난리 통이 고작 석 달밖에 안 됐다고?’

체감상 못해도 벌써 1년은 된 거 같은데, 아직 시간이 고작 그것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노아는 새삼 놀랐다.

“배 타는 게 그렇지, 뭐.”

아드벨로 대장이 대충 대답하며 하품했다.

“그나저나 애송이가 잘해 주고 있어?”

“열심히 해요.”

아직 제 속 뒤집는 말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함께 복닥거리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네 얼굴 보니 그런 거 같네.”

대놓고 내색은 안 했지만, 그녀는 노아와 레토의 관계를 꽤 걱정했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다시 본 노아는 그 전보다 신수가 훤해졌다. 레토도 마찬가지였다. 이전보다 흐트러짐이 덜했다.

“…그럼 됐어.”

걱정을 떨친 아드벨로 대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스와 페미나는 찾았겠지?”

“네. 하지만 아직 쓰진 못했어요.”

“그럴 거 같았지.”

잠시 고민한 아드벨로 대장이 옆에 있던 남편을 바라봤다.

“거기, 언제부터 쓸 수 있지?”

“오랫동안 안 썼으니, 점검까지 고려하면 일주일 뒤부터 며칠 뒤에나 가능할 겁니다.”

“그러면 일주일 뒤에 검 가지고 와라.”

척척 세워지는 계획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할머니야.’

내심 걱정이었던 점을 단번에 꿰뚫고 해결해 줬다.

노아는 비로소 할머니가 돌아왔음을 절실히 느꼈다.

“근데 너희 오빠는 어떻게 되었냐? 잡았어?”

“얼마 전에 집에 왔다가 도망쳤어요. 아스가 칼을 갈았고, 제 남편이 근무 중에 봤답니다.”

“뭔 소리야?”

“해적 소탕 중에 의심 인물로 구속한 인물이 테네브레였어요. 오빠는 그 사람을 데리러 왔고요.”

“그 망나니가 아직도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아오, 머리야.

장손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아드벨로 대장이 관자놀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아니, 내가 그 새끼 눈에 띄면 죽이라고 짐승용 마취제까지 줬는데! 그걸 못 잡아!”

“할머니, 그거 유통기간 지난 거였는데?”

“일부러 지난 거 준 거야!”

“역시 일부러였구나…….”

할머니가 열불 터진다며 욕을 한 바가지 쏟는 동안.

“이거, 맛있다더라.”

할아버지가 노아의 손에 기념품을 들려 줬다.

순항 중에 들른 우방국에서 산 알록달록한 별사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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