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언니 왔다! 형부도!”
클라레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둘을 격하게 환영했다.
“난 또, 내가 형부한테 삐쳐서 그거 때문에 안 오는 줄 알았잖아! 나 때문인 줄 알고 얼마나 미안했다고!”
“별로 미안한 태도가 아닌데?”
노아는 제 품에 안겨 찡얼거리는 클라레의 볼에 입술을 쪽쪽 맞추며 키득거렸다.
“그동안 아스 말 잘 들었지?”
“내가 아스 말은 기똥차게 듣지!”
“언니 말도 기똥차게 들어 주면 안 될까?”
“그거는 생각해 보고!”
노아 품에 떨어진 클라레는 이어 레토의 품에도 안겼다.
“내 선물!”
“나보다 선물이 더 그리웠나요?”
손에 든 선물을 뒤로 휙 숨긴 레토가 어린아이처럼 투덜거렸다.
“그래도 형부가 더 보고 싶었어요.”
클라레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삐친 척하던 레토도 따라 헤벌쭉거렸다. 그 꼴이 여느 집 딸바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나 때문에 안 오는 줄 알았잖아요!”
“우리 처제가 아무리 날 미워해도, 이 형부는 언제나 처제를 사랑할 거랍니다.”
레토가 뒤에 숨겼던 선물을 건넸다.
“와아!”
선물을 품에 안은 클라레가 눈을 반짝였다.
“선물 고맙습니다!”
클라레는 후다닥 소파로 달려가 앉은 뒤, 이번에도 힘차게 선물 포장을 뜯었다.
상자에서 나온 건 가위표 눈을 한 식칼토끼 머리였다.
“식칼토끼 수급이다!”
“보관함이에요.”
그리고 이왕이면 수급보다 머리란 표현을 써 달라고, 레토가 섬뜩한 단어 표현을 정정했다.
“형부가 멋진 거 사 줬네.”
그 사이 옷을 갈아입고 나온 노아가 선물을 함께 구경했다. 클라레는 토끼 귀를 잡아 뚜껑을 열었다.
“…다시 보니 좀 섬뜩한데?”
자기가 직접 고르고도 레토는 선물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런데 처제는 ‘수급’이란 단어를 어떻게 아는 거야?”
“용의자는 할머니랑 오빠야.”
“오빠분이겠군.”
이 집 오빠가 테네브레란 사실을 떠올린 레토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 인간은 아이의 정서 교육에 도움이라곤 전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됐지만 그가 없는 쪽이 클라레에겐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맞다!”
자리에서 일어난 클라레가 우다다 방으로 갔다가, 다시 우다다 거실로 돌아왔다.
손에는 웬 편지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한테 편지 왔어.”
“오늘 도착했더라고요.”
식사 준비를 마친 아스가 거실로 들어왔다. 오늘 저녁 식사는 라구 파스타라며 살짝 알려 줬다.
거기다 후식은 무려 샤프 영지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점의 티라미수였다.
클라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편지 봉투를 뜯었다.
거칠게 뜯긴 봉투는 조금 전 선물 포장지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할머님한테 뭐라고 왔나요?”
레토가 슬쩍 클라레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짜잔!”
“읽어 봐도 되나요?”
“응.”
클라레는 선뜻 편지를 보여 줬다.
“할머니는 나한테 만날 우리 아기, 우리 똥강아지라고 부른다? 예쁜이라고도 불러.”
“그거야 우리 처제가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
흐뭇한 미소로 편지를 건네받은 레토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
레토는 그 표정 그대로 노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바라봤다.
[우쭈쭈 쭈 쭈우 쭈우쭈 어휴 우쭈우쭈 쭈우쭈쭈 쭈우 쭈우쭈 쭈! 쭈우우 쭈 쭈우 쭈우쭈 쭈 어휴 쭈우 쭈우쭈쭈 우우 우우우 쭈쭈쭈 우 오구구……!]
황급히 편지에서 눈을 떨어트린 레토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내가 좀 피곤한가?”
“아니야, 네가 본 거 맞아.”
노아가 괜한 짓을 하는 레토의 손가락을 슬쩍 내리며 말했다.
“편지에 ‘우쭈쭈’밖에 안 보이는데?”
“할머니가 클라레를 너무 예뻐하거든. 막내 손녀라 더 그런 점이 있지.”
“우리 아가씨는 귀염둥이니까요.”
“난 귀여워!”
허리에 손을 대고 씩씩하게 외치는 클라레의 동그란 올챙이 배가 자랑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형부,”
클라레가 레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난 할머니 편지 읽을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우쭈쭈 밖에 없는데요?”
“이거는 ‘사랑하는 클라레에게’라고 쓴 거야. 그리고 이건 거의 도착했다고, 선물 많이 사 간다고 쓴 거고.”
레토는 어느 때보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사랑의 힘인 건가?”
그래서 읽을 수 있는 건가?
“…등신이랑 결혼하셨나요?”
아스가 노아에게 물었다.
“귀엽잖아.”
“제 눈에는 등신으로 보여요.”
“내 눈에만 귀여우면 됐지, 뭐.”
“어련하실까…….”
더 들었다간 점심때 먹은 샐러드가 나올 거 같아서, 아스는 얼른 저녁이나 먹자고 재촉했다.
“이러다 파스타 면이 불겠어요.”
그제야 네 식구는 오랜만에 다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
다음 날 오전.
해군이 자랑하는 군함 ‘비레오’가 항구에 정박했다.
무장 전함보다는 작아도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비레오는 아들라보르 왕국을 포함해 근처 우방국의 해안을 호위하고 돌아왔다.
“이러고 싶을까…….”
레토는 벌써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형식 차리는 걸 좋아하는 대장은 자신의 환대가 화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도착했으면서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군.”
때문에 레토는 아침 댓바람부터 붉은 융단을 깔고, 군악대를 준비시켜, 특함 대원들을 비롯한 군인들을 이끌고 아드벨로 대장을 마중하러 나왔다.
“원래 남의 돈 버는 게 어려운 일이잖습니까.”
그 옆에 같이 선 아이스 중령은 체념하듯 웃었다.
“그래도 중장님 역시 이 순간만큼은 저와 같은 월급쟁이 군인인 거 같아 기쁩니다.”
“누가 들으면 무급으로 일하는 줄 알겠어.”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레토가 입꼬리 한쪽을 비틀었다.
“그리고 내 월급은 왕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온다고.”
“그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내는 게 아드벨로라 하잖습니까.”
비율을 굳이 따지자면 자신들의 월급도 아드벨로의 돈일 가능성이 더 크다며 아이스 중령이 말했다.
“해군 중장비와 함선도 대부분이 아드벨로와 마탑이 제작했고 말입니다. 아드벨로와 관련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그만큼 해군과 아드벨로, 두 집단의 관계는 견고하단 뜻이었다.
“일할 의욕이 확 사라지네…….”
“중장님도 해군의 주요 관계자 집안 출신이잖습니까.”
현재의 해군을 만든 게 아드벨로라면, 해군의 시초는 오케아누스다.
그 명망 높은 아드벨로 영지엔 정작 해군 관련 시설이 없다.
하지만 오케아누스 영지에는 해군 사관 학교를 비롯한 주요 군부대가 주둔해 있다.
그것만으로도 오케아누스 가문이 지닌 영향력을 짐작케 했다.
“늘 말하지만, 난 양자야.”
저와 오케아누스는 상관없다며 레토가 또 부질없는 선을 그었다.
‘저 말을 누가 믿는담.’
아이스 중령이 속으로만 피식거렸다.
당사자는 저리 말해도, 세상은 그에게서 오케아누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오케아누스는 결혼한 레토를 제적하지 않았다. 레토 또한 대외적으론 가문에 누가 되지 않게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
‘거기다 대장님까지 계시니…….’
아드벨로 전대 가주가 해군 대장으로 역임 중이니, 레토 역시 대장처럼 오케아누스의 대표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니 엄청나군.’
아드벨로와 오케아누스, 두 가문에서 각각 1인자와 2인자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해군이 새삼 대단했다.
“…슬슬 준비할까.”
뒤를 돌아선 레토가 도열한 군인들에게 말했다.
“아드벨로 대장님이 귀환하신다.”
표정을 감춘 군인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대들이 할 일은 하나지.”
마찬가지로 평소와 달리 경직된 얼굴의 레토가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
“절대 웃어선 안 된다. 무조건 슬픈 생각으로 지금 그 건조하고 세상 지루한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
모두를 위해, 레토의 조언이 시작되었다.
“애인에게 못생겼다고 차였던 순간을 생각해라. 야한 화보집을 보다가 등 뒤에서 널 지켜보던 부모님의 싸늘한 시선을 떠올려.”
어떻게든 그들의 표정을 굳게 만들어 주기 위해 레토는 필사적이었다.
다행히 그의 진심은 잘 먹혔다.
“헤어졌던 애인이 기다렸단 듯이 바람피우던 상대와 사귀던 순간, 내가 짝사랑했던 상대가 뒤에서 날 험담했단 사실을 알았을 때!”
군인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몇몇은 과거 회상이 조금 심했는지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단골이라고 더 비싸게 등쳐 먹던 가게 주인, 너흴 갈구는 바로 윗선임이 배알 꼴리게 잘 되는 모습!”
묵묵히 듣던 아미가 옆에 있던 노아에게 물었다.
“중장님, 무슨 일 있었냐?”
“사고방식이 남 족치는 걸 좋아하는 쪽으로 발달했잖아…….”
그래서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집요하게 들쑤시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넌 뭐 생각할 거냐?”
아미가 물었다.
“새벽에 싸웠던 그날?”
“엎드려 뻗칠래?”
“딱 봐도 그 날이지, 뭐.”
조용!
아이스 중령의 호령과 함께 모두 입을 다물고 앞을 바라봤다.
곧이어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쓸데없이 비장미가 흘러넘치는 얼굴과 달리, 군악대가 연주하는 행진곡은 활기차다 못해 명랑하기까지 했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배에서 내려서는 조그만 체구.
점점 늘어나는 새치 탓에 옅어진 갈색 머리.
하얀색 정복 재킷을 어깨에 망토처럼 걸친 모습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시원시원한 걸음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하는 해군의 1인자.
“총원!”
레토가 외쳤다.
“귀환하신 아드벨로 대장님께 경례!”
필승!
전 대원이 팔을 올려 완벽한 각도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 아드벨로 대장이 씩 끌어 올린 입꼬리를 들썩거렸다.
“보기 좋군.”
그녀는 어깨에 걸친 재킷을 벗어 옆에 있던 비서실장에게 건넸다.
몇 달간의 항해를 동행했던 지긋한 인상의 사내가 그것을 고이 접어 팔에 걸쳤다. 그는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나 한 사람을 위해 요 코딱지만 한 것들이 아침부터 고생하는 걸 보니 아주 짜릿하고 즐거워.”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옆을 수행하는 비서실장이 제 일처럼 기쁘게 웃었다.
“특히 음악이.”
아드벨로 대장이 군악대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저의 귀환을 환영하는 저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한 곡 추고 싶군.”
역경의 순간이 찾아왔다.
“애송이!”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붙인 아드벨로 대장이 레토를 호출했다.
레토는 교수대로 향하는 13계단을 오르는 사형수처럼 처연히 불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