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45)

59.

레토와 장교들이 이후 처분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기 무섭게.

“이 새끼가!”

“우린 아니야! 우리도 속은 거라고!”

“X발! 너 따위가 우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고!”

제7함대 소속 가해자들이 에페레나 대위를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주위에 있던 군사 경찰들이 서둘러 진압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에페레나 대위는 얼굴을 두 대쯤 얻어맞고, 발로 배를 걷어차였다.

“커헉! 큭!”

새우처럼 몸을 굽힌 에페레나 대위는 침을 토하며 배를 두 손으로 가린 채 끙끙거렸다.

“…참 이상하지?”

그 모습을 심드렁히 지켜보던 레토가 말했다.

“내 눈에는 저들이나 그들이나 다 똑같은데, 뭐가 그리 억울하다고 저러는 걸까?”

“글쎄 말입니다.”

베네딕토 군종실장이 동의했다.

“그래도 감히 제 소견을 덧붙이자면…….”

그의 시선이 제압당한 채로 울부짖는 제7함대 소속 가해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저들은 자신들이 줄곧 괴롭혔던 후임들에게 뒤늦은 사과를 구하고 있었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정작 진심은 전혀 없는, 오로지 자신들에게 찾아올 끔찍한 결과를 모면하기 위한 궁색 맞은 회피.

“…권력만 믿고 나댄 놈들 중에, 결말이 좋았던 자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권력만큼 불안정한 무기도 없었다.

***

청문회가 끝났다.

가혹행위는 사실로 인정되었으며, 피해자들의 증언은 전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애초에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 및 증거들이 너무 확실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해자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수갑이 채워졌다.

“현 시간부로 모든 보직에서 해임되며, 조사 중에는 이등병 신분으로…….”

군사 경찰들은 그들에게 이후 진행될 수사 과정과 재판 진행 등을 설명했다.

넋이 나간 그들의 귀엔 절차를 알리는 목소리가 천벌처럼 들리는 모양이었다. 몇몇은 울기까지 했다.

노아는 뭘 잘해서 우냐고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아, 참고로.”

레토가 퇴장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제7함대 사령관은 오늘 오전에 일찌감치 체포되었어.”

죄명도 참 많았다.

에페레나 자작에게 뇌물을 받은 죄, 부대 내 범죄를 은폐한 죄,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고 강제 전역시킨 죄까지.

“그리고 불명예 전역한 피해자들은 해군에서 조사 후 복직을 권할 예정이다.”

며칠 전 사정 청취를 위해 군에 방문했던 민간인 차림의 방문객이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현 상황만 봐선 그들의 복직은 시간문제였다.

다시 군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들이 보인 각오 하나만큼은 동일했다.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고, 피해 보상금을 민사 소송으로 받아 갈 예정이라더군. 물론 군은 기꺼이 도와줄 테고.”

그러니 벌써 질질 짜면 곤란하다며, 앞으로 너희가 절망할 순간은 산더미니까 눈물을 아끼라며 레토가 진심으로 조언했다.

“…사람이 저렇게 사악하기도 힘든데 말입니다.”

피스트 준위가 노아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였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같은 편이라서.

노아는 절망하는 가해자들을 보니 내심 속이 후련했다.

“중장님.”

레토에게 다가간 노아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뭐, 내가 한 게 있나.”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린 레토는 피해자 석에 앉은 군인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안도감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들의 긍지와 명예를 되찾은 거다.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군인이지.”

레토는 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권력에 짓눌리는 건 무서운 일이야. 그래도 버티면서 대항할 용기를 낸 거지. 그건 정말 존경스러운 것이야.”

“옳으신 말씀입니다.”

노아는 그렇게 말하는 레토를 한 번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솔직하게 말했다.

“저들의 용기에 응해 주신 중장님도 훌륭하십니다.”

“별말씀을.”

“만약 중장님의 아내분이 보셨다면, 아주 자랑스러워하셨을 겁니다.”

칭찬을 들을 거라 예상하지 못한 레토는 잠시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싱긋 웃어 보였다.

“최고의 칭찬이군.”

마주친 두 눈엔 서로를 향한 존경과 애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말로 별일 아니었어.”

레토는 자신이 한 일을 정말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해야 했던 일일 뿐이야.”

차려진 식탁에 포크 꽂은 것뿐이라고 대충 대답한 뒤, 레토는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제게 경례하는 그들에게 되었다며 손짓하더니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긴장했던 군인들의 표정은 조금씩 풀리더니 이내 무어라 대답했다. 몇몇은 웃기도 했다.

“격려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켜보던 피스트 준위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중장님의 저런 면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동감입니다.”

노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오케아누스 후작에게 직접 전화까지 했다.

“오케아누스 영지에 사람을 풀어도 되겠습니까?”

허락을 구한 레토는 곧장 사람을 붙였다.

에페레나 자작과 제7함대 사령관이 몰래 접선해 뇌물을 주고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로 남겼다.

제7함대 가해자들에게도 사람을 붙여 종업원들에게 증언을 진술해 달라 요청케 했다.

“역시 소문과 달랐던 모양입니다.”

피스트 준위가 말했다.

“중장님이 결혼해서 평민으로 격하되었다고 다들 말하는데, 정작 오케아누스 후작님께서 도와주신 거잖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 점은 노아도 놀랐다.

내심 후작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사람이 레토를 도와줬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쁜 사람이 아니었나?’

레토가 후작을 인격자라 불렀던 게 정말이었나?

그럼 왜 결혼식에는 오지 않았고, 레토가 아닌 제게 그런 편지를 보냈던 걸까.

‘…아, 편지.’

노아는 한번 만나고 싶다던 편지에 아직 답을 하지 않았던 걸 떠올렸다.

‘오늘은 집에 일찍 갈 거 같으니…….’

돌아가서 레토와 의논해 보자고 생각했다. 만약 제 생각이 착각이라면 그에 대해 사과해야만 하니까.

***

청문회에서 있었던 일은 본부 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게시판에 공문으로 붙은 청문회 결과는 내일 남부 신문에도 실릴 예정이었다.

다만 제7함대 사령관이 에페레나 자작에게 뇌물을 받았단 혐의는 제외됐다.

“대중의 눈치가 보이잖아.”

퇴근하기 5분 전.

오랜만에 하는 정시 퇴근에 들뜬 레토가 혀로 입술을 가볍게 훑으며 말했다.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개인 함선이 밀반출될 뻔한 게 얼마 전이었어.”

몇 달 사이에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아무리 결과가 잘 풀렸다고 해도 해군이 욕먹을 일인 건 자명했다.

그래서 레토는 제7함대 사령관에 대해서는 잠시 비공개로 조사하기로 했다.

물론 그것도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엔 언론 놀이도 좀 해야겠고…….”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퇴근이 곧인데도 노아는 여전히 서류 작업 중이었다.

그간 청문회 준비 때문에 일이 많이 쌓인 탓이었다.

그래도 급한 일은 얼추 끝나 가려 했다.

“뭐, 기자 몇몇을 회유해 해군에 호의적인 기사를 쓰거나…….”

“아니면 피해자 중 몇몇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건 어떻습니까?”

노아가 제안했다.

“이번 일로 중장님께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조금만 부탁하면 해군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해 줄지 모릅니다.”

“…….”

레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상합니까?”

돌아오는 반응이 없자, 노아가 눈꼬리를 살짝 내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레토가 솔직히 말했다.

“넌 그런 거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노아가 괜히 투덜거렸다.

“솔직히 중장님이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들도 양심이 있다면 조금은 도울 겁니다.”

“대위……!”

감격에 겨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레토가 소리쳤다.

“들었나, 다들?”

노아를 비롯한 대원들이 썩은 표정으로 레토를 바라봤다.

“벨로 대위가 날 사랑한다고 했어!”

“죄송합니다. 요즘 많이 피곤해서 저럽니다.”

“아닌 척하긴. 요즘 보면 은근하게 말을 돌려 가면서 사랑을 저렇게 고백하고…….”

“오늘 퇴근하거든 병원 데려가겠습니다.”

귀나 머리, 아니면 두 군데 다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노아가 대원들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퇴근 종소리가 울렸다.

“퇴근이다!”

아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가서 에페레나 그 새끼 방에 짐 빼는 거 구경해야지! 아니다, 내가 가서 짐 빼 준다!”

적극적인 아미를 따라 모두 퇴근을 준비하는 동안, 레토는 노아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넸다.

“대장님이 왔단다.”

대장의 복귀를 알리는 레토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아드벨로 대장님 말씀이십니까?”

“비공식 복귀야. 함선이 제3함대 항구에 잠시 정박했고, 내일 본부로 정식 복귀하신단다.”

“지금 본부에 계십니까?”

“그래서 이제 잔소리 들으러 갈 거야…….”

“잘 다녀오십시오.”

노아가 기운 내라며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아쉽고 섭섭하기만 한 레토는 커다란 발을 질질 끌며 노아의 뒤를 따라갔다.

“…뽀뽀해 주면 기운 날지도.”

“공사 구분하라고 한 게 바로 조금 전입니다.”

휙 돌아선 노아가 레토를 밉지 않게 흘겨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사령부실엔 저와 레토 단 둘뿐이었다.

레토가 싱긋 웃었다.

“아무도 없는데?”

“…하여튼.”

노아는 레토의 손을 잡아끌어 의자에 앉혔다.

뽀뽀를 기대했던 레토의 입술이 축 늘어졌다.

“……!”

그러나 곧 제 몸을 꼭 끌어안는 포근한 체온과 은은한 체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정말 멋졌습니다.”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노아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중장님은 진정한 명예와 용기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

“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 줘서 감사합니다.”

대견하다는 마음으로 힘껏 끌어안은 노아가 그의 이마에 사랑을 담아 입술을 꾸욱 눌렀다.

“나머진 밤에 이어 합시다.”

노아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레토를 바라봤다.

“…….”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레토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노아만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할망구가 나 놀릴 거야.”

부끄러워 눈도 못 마주치는 레토가 괜히 투덜거렸다.

그래도 아쉬운 발걸음을 겨우 돌렸다.

배웅하고 나온 노아도 같은 생각이라 얼른 탈의실로 향했다.

‘그나저나…….’

옷을 다 갈아입고 먼저 붉은 애마에 올라탄 노아가 찬찬히 생각했다.

‘오빠가 왔고, 할머니도 왔고…….’

심지어 레토가 오빠를 봐 버렸고.

집에 가면 오케아누스 후작이 보낸 편지에 답도 써야 했다.

“…하아.”

노아는 또 피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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