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245)

58.

“예?”

“뭘 ‘예?’하고 있어.”

아드벨로 대장이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어차피 할 일 없잖아?”

“…생각보다 할 일 많습니다.”

살짝 울컥한 아미가 소심하게 반항했다. 하지만 아드벨로 대장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그런 놈이 아까는 책상에 발 올리고 잡지 읽고 있어?”

“잠깐만 쉬고 일하려고 했습니다…….”

“일 안 해도 되니까 안내나 해.”

합법적 땡땡이를 칠 기회를 주겠다며 대장은 아미의 목깃을 잡아 강아지 옮기듯 질질 끌고 갔다.

“…와아.”

아드벨로 대장이 사라진 특함.

“폭풍이 왔구나.”

셀린은 벌써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특함 대원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대장님.”

한편, 아드벨로 대장과 함께 회의실로 가던 아미가 물었다.

“에페레나 가문이 아드벨로와 무기 사업을 함께 할 거라는 소문이 돈다는데, 정말입니까?”

“아닐걸?”

“역시…….”

“왜? 그쪽에서 그런다냐?”

아드벨로 대장이 지나가다 마주치는 군인들에게 됐으니 볼일들 보라며 휙휙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아미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문으로 가혹 행위를 은폐한 것으로 보입니다. 군 내 파벌 형성도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일단 아드벨로에서 고소할 건수가 하나 생겼네.”

우리 가문 변호사들은 또 바빠지겠어.

아드벨로 대장은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그런 것 따위, 손녀딸 장난보다 유치하고 부질없는 것이었다.

도착한 회의실 문 앞에는 입장 통제를 위해 군사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아드벨로 대장은 그들이 저를 보며 놀라기 전에 먼저 조용히 하란 뜻으로 손가락을 제 입술에 가져다 댔다.

덕분에 군사 경찰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 기지를 겨우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 살짝만 열어 봐.”

대장의 명령에 군사 경찰이 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그러자.

“이 새끼가!”

“우린 아니야! 우리도 속은 거라고!”

“X발! 너 따위가 우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고!”

악에 받친 비명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으음.”

아드벨로 대장이 재밌단 듯이 빙긋 웃었다.

“잘 진행되고 있나 보군.”

***

청문회의 시작은 다소 지루했다.

청문회 목적을 알려 주고, 순서를 소개하며, 규정에 어긋난 짓을 하면 바로 퇴청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막상 시작되니,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에는 가해자들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며, 이미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화해했으니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증인으로 온 에페레나 자작의 증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락부락한 제 아들과 달리, 에페레나 자작은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에 상당히 마른 체격이었다.

인상도 비교적 온화했다.

“제 아들이 조금 서툴고 표현 방식이 남다를 뿐이지, 누구보다 제 아랫사람을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그러나 내뱉는 증언들은 온화하지 못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윗사람의 애정 표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긴 하죠.”

증언은 언뜻 기괴하기까지 했다.

어쨌건 그가 증명하고자 하는 건 두 가지였다.

제 아들과 제7함대 대원들은 죄가 없다.

그리고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의도를 왜곡했다.

“…….”

이때 레토가 깍지 낀 손가락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리는 걸, 근처에 앉아 있던 노아는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청문회 위원장으로서 중립을 지키고자 인내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진 예상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어 진행된 피해자들의 증언들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가장 먼저 증언한 건 알라크 트로피아 하사였다.

“언제나 자신의 업무를 제게 넘겼습니다.”

“훈련을 핑계로 늘 제 몸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조금이라도 피하거나 막는 자세를 취하면…….”

“제가 고아 출신이란 사실을 알곤 늘 부모 없이 자란 티를 낸다는 말도 했습니다.”

“가문의 힘으로 진급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그가 에페레나 대위에게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증거로 제출했다.

피해자 측을 대변하는 군사 경찰이 사진을 제공했다.

“본 사진은 트로피아 하사 본인의 동의하에 촬영한 것으로…….”

증거 사진을 본 레토의 눈동자엔 큰 동요가 없었다.

“에페레나 대위.”

대신, 물었다.

“조금 전 그대는 사소한 오해로 비롯된 일이라 주장했는데…….”

“그, 그렇습니다…….”

에페레나 대위가 말을 더듬거렸다.

“그 사소한 오해가 무엇인가?”

“…….”

“무슨 사소한 오해가 있었기에 부관에게 주먹질한 건지 알아야 내가 참고할 거 아닌가.”

“그, 그게…….”

말끝을 흐린 에페레나 대위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에페레나 자작의 눈이 매서워졌다.

선한 인상이 구겨지니 표독스러움이 몇 배나 강조되었다.

이어진 증언은 제7함대 소속 대원들의 것이었다.

가해자 측에 앉은 같은 부대 소속 선임들이 그들을 노려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에페레나 저 새끼는 징계 못 피하겠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에페레나 대위는 처벌이 불가피해 보이나, 적어도 자신들은 아니었다.

그랬다. 결국 중요한 건 자신들이었다.

이미 후임들의 입은 단단히 막아 놨다. 오늘 증언만 잘해 내면, 앞으로는 좀 친절해질 생각이었다.

그래도 돌아가면 그간 영창에 갇히느라 쌓인 짜증은 조금 풀어야 할 것 같았지만.

“…….”

“…….”

하지만 마음 편안하게 지켜보던 저들의 얼굴에 금이 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수건으로 입을 막고, 팔을 뒤로 돌리면서…….”

“제 식사엔 늘 모래를 뿌렸습니다.”

“가끔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누르며 괴롭히는…….”

“총구를 제게 겨누다가 실탄을 쏜 적이 있습니다.”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들고 한 시간을 서 있도록…….”

이어지는 증언에 장내는 충격으로 술렁거렸다.

레토가 바로 의사봉을 두드리며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청문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써 중립을 지키려던 장교들이 헛기침을 내뱉고, 장내 경비를 위해 서 있던 군사 경찰들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피해자들은 며칠 전 술집에서 있었던 일도 폭로했다.

“저희에게 거짓으로 증언하지 않으면 더한 위협을 가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X발! 저건 다 거짓말이야!”

끝내 참지 못하고 가해자 중 한 명이 끼어들었다.

레토는 그자를 바로 영창으로 보냈다. 청문회 중에 난동을 부렸단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한 증거로 오케아누스 영지에 있는 술집 종업원들의 진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아이스 중령이 단단히 봉해진 서류 봉투를 제출했다.

두께가 제법 되는 봉투의 인장을 뜯자, 그날의 생생한 증언이 적힌 진술서가 들어 있었다.

“설마……!”

가해자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온 사이, 무료 안주를 주겠다며 찾아왔던 종업원.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들의 술자리에 종업원들이 유난히 자주 찾아오긴 했다.

공짜 술에 공짜 음식이라고 좋아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자신들을 감시했던 모양이었다.

“가혹 행위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술집 종업원들이 곧장 해군 측에 연락을 줬고, 바로 진술서를 썼다고 합니다.”

“이것도 재주면 재주네.”

진술서를 읽던 레토가 진심으로 감동했다.

툭,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종이들에 적힌 내용은 똑같았다.

위협적인 언어 사용.

폭력이 의심되는 몸짓.

노골적인 무시와 압박.

“웬 듣도 보도 못한 잔챙이들이…….”

그는 어이가 없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러나 가해자들을 한 명씩 노려보는 레토의 붉은 눈동자는 뒤통수를 겨누는 총구처럼 섬뜩한 빛을 띠고 있었다.

“선임들께서 오랫동안 쌓아 올린 해군의 명성을, 시답잖은 담뱃불로 소파 지지듯 망가트리다니.”

그의 말 한마디가 그들의 매 순간을 위협했다.

하지만 레토가 쥔 총에 장전된 총탄은 저들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들이었다.

결국, 자신들이 뿌린 대로 거둬갈 뿐이었다.

“…더 진행할 필요가 있겠나?”

레토가 장교들에게 물었다.

다들 고민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레토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엔 이미 모두 것이 결정 났음을 암시했다.

“한데 중장님.”

위원장 중 한 명으로 참석한 코멘 인사실장이 물었다.

“에페레나 자작은 왜 온 겁니까?”

모두의 시선이 자연히 에페레나 자작을 향했다.

그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청문회 때문에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애써 분을 삭인다는 게 입술을 꾹 다물고 몸을 바들바들 떠는 꼴이 비에 홀딱 젖은 못생긴 나귀 같았다.

하지만 나귀는 자세히 보면 귀엽기라도 했다.

거친 숨을 입술 틈으로 흑흑 내뱉으며 눈을 부라리는 그의 모습은 사납고 독살스러웠다.

“그러게나 말일세.”

레토가 그런 에페레나 자작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설마 본인 따위가 여기서 어떤 위협이라도 될 줄 안 건가?”

노골적인 비아냥에 에페레나 자작이 얼굴을 붉혔다.

그의 증언은 오히려 가해자의 부모란 점 때문에 채택이 되지 않았다. 신빙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할 거 같으니…….”

레토가 노아를 불렀다.

“벨로 대위, 라디오 좀 켜 보게.”

노아가 회의실 중앙에 놓여 있던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를 맞추기를 잠깐, 곧 스피커에서 낯익은 음악이 나왔다.

정오에 시작하는 뉴스를 여는 곡이었다.

때마침 첫 번째 소식이 전해졌다.

[아드벨로 가문이 에페레나 자작을 허위사실 유포 및 주가 조작 의심 혐의로 고소했다는 소식입니다.]

붉으락푸르락하던 에페레나 자작의 얼굴이 탈색되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그는 고장 난 호두까기인형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려는 그의 목소리보다, 라디오 속 진행자가 더 빨랐다.

[또한 에페레나 자작은 아드벨로와의 군수업 개발 사업에 대해 거짓 정보를 유포하여 투자금을 횡령하였단……]

[에페레나 자작은 이번 개발 사업을 해군과 협력하여 연구한다는 내용을 퍼트렸으나, 해군 측에선 사실무근이란 입장을……]

뚝.

노아가 라디오를 껐다.

“…….”

“…….”

청문회 회의실은 라디오와 함께 싸늘한 적막에 휩싸였다. 그 속에서 노아는 태연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럼.”

레토가 침묵을 깼다.

“이제부터 저 X 같은 것들을 어떻게 족칠지 의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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