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245)

47.

주례사로 다시 나타난 베네딕토 군종실장은 야외 결혼식장의 완성도에 감동했다.

“역시 하면 한다. 그것이 바로 군대 정신 아니겠습니까.”

노아와 레토가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미친…….’

‘X발, 자기들 이야기 아니라고……!’

‘대위님도 결국 평범한 상관이었을 뿐이야!’

정작 대원들은 정원을 결혼식장으로 꾸민다고 진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저기 나무에 천 두른 거, 내가 했다?”

“그 옆에 전구 단 거는 제 솜씨입니다.”

“나약한 것들, 난 의무실 흰 천을 가져와 길 위에 깔았어.”

“그거 써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막상 자신들이 해낸 걸 보면서 소소하게 기뻐했다.

‘불쌍한 것들…….’

일찌감치 군에서 탈출한 락소는 저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저들은 기어코 부당하게 이용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두 분은 나라를 지키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셨습니다.”

베네딕토 실장이 주례를 시작했다.

“하나 군인이란 직업상, 분명 예기치 못한 일이 생깁니다.”

이번 주례는 성당에서 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가진 위험성을 강조하며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지 모를 가정을 상기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함께 살아갈 것을 선택했습니다.”

베네딕토 실장이 눈짓으로 신호를 줬다. 호메스가 반지를 가져왔다.

특함 대원 중 가장 막내라고 임시 화동 노릇 중이었다.

“결혼 생활도 군과 똑같습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며, 힘든 순간을 함께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쩌면 군 생활보다 어려운 게 결혼일지 모른다.

하지만 베네딕토 실장은 큰 걱정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젊은 부부가 잘 해낼 거란 믿음이 있었다.

“반지를 교환하며, 대답하시면 됩니다.”

레토가 먼저 노아의 손에 반지를 끼웠다.

“레토 오케아누스, 그대는 어떤 순간에도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힘 있는 대답에 노아의 마음이 간질거렸다.

“노아 벨로. 그대는 어떤 순간에도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노아도 레토의 손에 반지를 끼웠다. 손을 떨어트릴 때 살짝 아쉬워, 노아는 레토의 손바닥을 손톱으로 살짝 긁었다.

살짝 움찔거린 레토가 ‘이것 봐라?’라는 듯이 노아를 바라봤다.

“이로써.”

무려 5시간 27분 만에.

“두 사람의 성혼이 성사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한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특함 대원들이 종이 폭죽을 터트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두 사람의 성혼을 축하했다.

“축하드려요!”

“결혼 축하드려요!”

“행복하십시오!”

“이제 입 맞춰야지 말입니다!”

열성적인 축하는 점점 두 사람의 입맞춤을 요구하는 장난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자, 그럼 모두가 기다린 맹세의…….”

베네딕토 실장이 맹세의 입맞춤을 허락하기도 전에.

“……!”

레토의 눈앞에서 면사포가 휘날렸다.

면사포를 냅다 집어 던진 노아가 레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더니, 입술을 집어삼킬 것처럼 한껏 빨아 머금었다.

깜짝 놀라 굳은 것도 잠시, 곧 레토도 열성적으로 노아의 입술을 탐했다.

오히려 아까 제 손바닥을 간지럽혔던 걸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이 입안을 혀로 파고들며 이곳저곳을 건드리며 핥았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는 노아의 몸을, 레토는 도망이라도 칠까 강하게 끌어안았다.

“와아!”

환호하던 특함 대원들의 얼굴 근육이 점점 굳어 가기 시작했다.

“어우, 어우야!”

“악! 내 눈! 내 누우운!”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장님! 갑자기 재킷을 왜 벗습니까!”

“누가 좀 뜯어말려!”

후끈거리던 분위기로 시끌벅적하던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낯뜨거운 현장으로 변했다.

특함 대원들은 그제야 저 아름답고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상사고, 그들의 끈적한 애정 행각은 독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고, 아이고!”

혈기를 주체 못 하는 두 부부를 바로 앞에서 관전해 버린 베네딕토 실장이 몸서리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사특한 것을 물리치듯 가슴 위로 성호를 다섯 번이나 그었다.

“맹세의 입맞춤을 하셔야지, 교미의 입맞춤을 하면 어떡합니까!”

피스트 준위의 고된 비명이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노아와 레토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

“언니랑 형부 왔다!”

“어서 이리로 와서 이걸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클라레와 아스는 둘을 데리고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어머, 신랑 신부 오셨네!”

“일하고 오느라 고생했어요!”

“시장하죠? 일단 뭐 좀 먹어요.”

“엄마, 나도 먹어도 돼?”

“너 아까 두 접시나 먹었잖아.”

마을 회관에는 피로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결혼식 직후의 정식 피로연은 일찌감치 끝났다. 식사도 화려했고, 기념품으로 준비한 고급 와인도 아주 큰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신랑 신부가 나라 지키러 가 버렸으니, 살짝 아쉬운 피로연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들과 이웃들이 두 사람을 위해 마을회관을 조금 더 빌려 쓰기로 했다.

“좀 엉성하죠?”

붉은 머리를 올려 묶은 여자가 다가와 멋쩍게 웃었다.

“세상에, 전혀 안 그래요!”

여자의 손을 잡으며 기뻐한 노아가 레토에게 소개시켜 줬다.

“아이스 중령님의 부인이셔.”

“닐레 아이스예요. 제 남편이 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저야말로 늘 도움을 받습니다. 들으신 대로 아름다우시군요.”

“중장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정말 아름다워진 거 같네요.”

다정한 인상의 부인은 두 사람을 음식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뷔페식으로 나열된 음식들은 조금씩 손을 댄 흔적이 보였다.

“아이들이 배고파해서요…….”

“내가 먼저 먹었어.”

어느새 나타난 클라레가 씩 웃었다.

“독이 있나 확인한 거야. 안심하고 먹어도 됩니다!”

“그런 중대한 임무를 해냈다니.”

레토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자, 어서 먹고 춤추고 놀아야죠!”

“시장하실 텐데 많이 드세요!”

“이거 좀 드셔 보세요. 보기엔 이래도 맛이 좋아요!”

“다른 군인분들도 도착했네요!”

음식들은 전부 각자 집에서 만들어 가져온 것들이었다.

가정식 특유의 투박한 색채가 눈에 띄었지만, 냄새만큼은 군침이 돌 정도로 기가 막혔다.

덕분에 그 고생을 하고도 아직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 한 군인들은 걸신들린 것처럼 먹기 시작했다.

“와…….”

“엄청 먹어……!”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놀라 입을 벌릴 정도였다.

“어휴, 다들 잘 드시네.”

“만들어 온 보람이 있네요.”

음식은 순식간에 바닥이 났고, 음식을 만들어 온 사람들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럼 이제 정말 놀아 볼까요?”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사람들은 테이블을 벽으로 밀어 붙이며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실컷 먹었으니 소화를 시켜야지!”

“당연히 신랑 신부가 먼저!”

“다들 박수!”

얼떨결에 중앙으로 끌려 나온 노아는 그제야 눈치를 챘다.

“그래서 이걸 입혔네.”

짧은 소매에 주름이 많이 잡힌 스커트와 제법 튼튼한 가죽 구두는 전부 이 판을 위해 준비된 거였다.

“뭐가 말이야?”

같이 나온 레토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했다.

레토도 꽤 투박한 흰색 셔츠에 밑단을 한 번 접은 검은 면바지, 그리고 잿빛 멜빵을 입었다.

구두 역시 노아와 똑같은 재질과 모양새였다.

“춤추는 거야.”

“춤?”

그 말에 레토는 자신이 배운 것들을 떠올렸다.

“궁정춤 같은 거 말고.”

노아가 직접 보여 주겠다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잘 봐.”

즐겁게 웃는 얼굴로, 노아가 치맛자락을 살짝 잡으며 오른발을 한발 내밀었다.

쿵! 쿵!

곧 주변에 물러나 있던 사람들이 바닥을 발로 밟으며 박자를 맞춰 갔다. 노아도 따라 발을 굴렀다.

그 소리를 신호 삼아, 경쾌한 곡조가 연주되었다.

포크 기타와 백파이프, 북, 바이올린.

제각각의 악기들이 만들어낸 즐거운 음악을 따라, 노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로 바닥을 두드리며 딱딱 소리를 냈고, 레토의 주위를 장난치듯 돌며 치마를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대뜸 제자리를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로 환호했다.

“…….”

자유로운 춤사위에 흠뻑 빠진 레토는 넋을 잃고 바라봤다.

“별거 아냐!”

노아가 레토의 손을 잡으며 외쳤다.

“그냥 추면 돼! 마음대로 춰!”

“난 안 춰 봐서 몰라.”

겨우 정신 차린 레토가 답지 않게 망설였다.

“이건 어떻게 춰야 되고 그런 거 없어.”

오랫동안 민중들의 노고를 위로한 음악에 격식은 필요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실컷 웃으면 되었다.

“…….”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레토는 조금 전 노아가 췄던 것처럼 발을 움직여 봤다.

어색한 발동작은 점점 음악을 따라 속도가 붙었다.

“잘하네!”

노아가 씩 웃었다. 레토도 따라 웃었다.

이제 둘은 서로 밀착한 채로 중앙을 마음껏 휘저었다. 숨이 금방 차올랐지만, 누구도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 우리도 이제 춥시다!”

“여보, 오랜만에 한 곡 할까?”

“나도 출래, 나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짝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즐겁게 웃으며 자신만의 춤을 선보이고 자랑했다.

못 춰도 놀리는 사람 없고, 오직 유쾌한 떠들썩함만이 가득했다.

“형부! 나랑도 춰요!”

“눈높이를 맞춰 볼까요?”

아스가 클라레를 품에 안았다. 단숨에 키가 커진 클라레는 허공에다 화려한 발재간을 자랑했다.

“누나, 결혼 축하해요.”

“고마워, 세레니.”

노아는 클라레의 친구인 세레니와 손을 잡고 빙그르르 돌았다.

지붕이 떠나갈 정도로 신명 난 발소리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

그리고 저들의 유쾌한 모습을, 누군가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안 들어가십니까?”

“…됐어.”

백사자, 알버스 오케아누스가 등을 돌렸다.

밖으로 나온 그는 대기 중이던 차에 올라탔다.

“괜히 가서 분위기 망칠 일 있나.”

“큰 도련님께서 장군님을 내치실 일은 없습니다.”

“알아.”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좋은 걸 봤군.”

좌석에 몸을 편히 기댄 알버트가 희미하게 웃었다.

“녀석, 그렇게 웃을 줄도 알고.”

사람들 속에서 신부를 끌어안고 있던 레토는 세상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은 사내였다.

저 모습을 봤으니, 백사자는 이곳까지 내려온 보람이 있었다.

“그만 가지.”

그는 어서 제 딸에게 자신이 본 걸 말해 주고 싶었다.

큰 꼬맹이는 아주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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