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245)

46.

“일반 함선은 잠수를 얼마나 할 수 있지?”

“최대 20분, 깊이는 최대 4m입니다.”

“모든 기능을 끄고 보호마법과 굴절마법만을 발동하면?”

“잠수 가능한 깊이는 그대로나, 시간은 못해도 5분 정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레토의 전략은 간단했다.

“내 신호를 받으면 잠수한다. 잠수하는 순간 보호마법과 굴절마법만을 유지해라. 그리고 다음 신호에서 최대 노트를 수직으로 출력한다.”

하지만 해적단의 현 상황과 남부 해안의 특성 등, 수많은 지식을 고려해 내놓은 최선의 전략이었다.

남부의 여름 바다는 유난히 물이 투명해진다.

거기다 오늘은 화창한 날이라 가시거리도 넓었다.

하지만 그만큼 햇살이 강하단 뜻이었다.

“굴절마법을 시전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지.”

굴절마법은 100년 전 아드벨로 마탑주가 개발한 수많은 업적 중 하나였다.

빛의 성질을 이용해 시전자의 모습을 감추는 마법은 그해 타국의 침략을 완벽하게 막으며 승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군수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아들라보르는 여전히 100년 전 괴짜 마법사의 비호 아래 있었다.

“…아! 아악!”

뒤늦게 손가락이 잘린 걸 알아챈 시카 리우스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레토는 그런 틈조차 주지 않았다.

신부를 인도해야 할 새하얀 면장갑을 낀 손이 그의 울대를 찍듯이 붙잡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사이,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특함 대원들이 역할을 나눠 어선을 되찾았다.

“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래야! 물속에서 튀어 올랐다고!”

“겁먹지 마라! 저 무거운 쇳덩이를 차고 민첩하게 싸울……!”

제 딴엔 사기를 일으키려던 선원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

그가 조금 전에 외쳤던 외마디와 달리, 노아는 출렁이는 배 위에서도 제 본 기량을 마음껏 뽐낼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쓰러진 해적의 배에서 검을 뽑은 노아는 곧장 뒤를 돌았다.

“윽!”

제 등 뒤에서 총을 겨누던 해적의 손목을 깊이 벤 뒤, 발로 그의 턱을 걷어찼다.

그렇게 날아간 해적은 인질들이 묶여 있는 곳까지 떨어졌다.

개인 함선을 착용한 탓에 발차기에 실린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이구, 벌레.”

탕!

인질들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던 아미가 리볼버로 해적의 허벅지를 쐈다.

해적이 허벅지를 붙잡고 쓰러지자, 셀린이 그를 붙잡아 어딘가로 집어 던졌다.

거기엔 진압해 둔 해적들이 쌓여 있었다.

“괜찮습니까?”

“해군에서 왔습니다. 이제 무사합니다.”

“다치신 곳은 없나요?”

해적들의 믿음직스러운 인질들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시카 리우스에게 짓밟혔던 선장도 간단한 치유마법으로 몸을 조금씩 추슬렀다.

“선내에 숨어 있던 잔당들을 잡았습니다.”

“해적들의 선박도 구속했습니다.”

배 안으로 들어갔던 해군들이 양손에 기절한 해적들을 기념품처럼 가지고 나왔다.

“…봤지?”

이 모든 것을 뿌듯하게 지켜본 레토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커다란 손아귀에 목이 붙잡힌 채로 들어 올려진 시카 리우스가 숨이 껄떡껄떡 뒤집힐 정도로 괴로워했다.

“끄윽, 어, 으어어…….”

시카 리우스는 발레를 처음 하는 아이처럼 발끝을 세워 어설픈 춤을 추고 있었다.

숨이 안 쉬어질 법하면 땅이 발에 닿으면서 공기가 감질나게 들이켜졌다.

그 간질간질한 호흡이 그에게 죽음의 공포가 뭔지 가르쳐 줬다.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이미 반쯤 뒤집힌 상태였다.

제 목을 쥔 레토의 손을 떨어트리려고 발악하던 팔도 축 늘어진 상태였다.

“이걸 어떻게 하지?”

정작 레토의 팔은 성인 남자를 들어 올렸음에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성난 근육이 당장 예복을 터트릴 것처럼 불끈거렸다.

“죽이시면 안 됩니다.”

의견을 말하는 아이스 중령의 볼에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물론 그의 것은 아니었다.

“잔당들의 거처를 찾아내고, 이들의 여죄를 추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까 짜증 나는 거야.”

이 눈치 없는 새끼 때문에 저와 노아의 결혼이 엉망이 되었다.

마음 같아선 손가락은 무슨, 그냥 사지를 손수 뜯어다 바다에 집어 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화가 풀릴까 말까 할 지경이었다.

‘그냥 저항이 거세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할까.’

죽여도 된다고 자신이 먼저 허락하지 않았던가.

“…….”

하지만 레토는 제 어쭙잖은 이성을 간신히 발휘해, 직업 윤리를 선택했다.

그는 해군으로서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

진압 중 살인은 생포가 불가능할 때를 염두해 둔 차악의 수단일 뿐이지, 정말로 저 꼴리는 대로 죽였다간 해적과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걸리는 것도 있고…….’

레토는 아쉬운 마음에 애먼 입만 쩝쩝거렸다.

“중장님.”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노아가 말했다.

“명령을.”

레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무사히 수행했으니, 퇴각 준비를 해라.”

해적 소탕은 그렇게 끝났다.

***

특함 대원들은 일망타진한 해적들과 해적선을 끌고 본부로 복귀했다.

해안도로에 내버려 뒀던 차들도 본부 주차장에 옮겨져 있었다.

잡은 해적들은 감옥에 가두고, 구출한 인질들은 사정 청취를 위해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특함 대원들은 사무실로 돌아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중장님의 차량이 주차장에 옮겨졌다고 합니다.”

“아, 내 애마를 누가 운전하는 건 영 싫은데.”

“오늘 들러리로 섰던 락소 베네딕토 청년이 운전했다고 합니다.”

“그럼 한 번 봐주지, 뭐.”

피스트 준위는 이번 소탕 작전에 붙일 이름을 물어봤다.

“작전명?”

레토는 별 고민도 않고 당장 떠오르는 단어를 말했다.

“손톱깎이?”

“대장님께서 좋아하실 작명이라 생각합니다.”

“가제라고 붙여.”

“알겠습니다.”

이로써 오늘날 치러진 해적 소탕 작전은 역사에 길이길이 ‘손톱깎이’로 불리게 되었다.

“보고서는 다들 썼나?”

“이미 몇몇은 작성을 끝냈습니다.”

남은 사람들도 조금 뒤면 금방 끝낼 거라고 피스트 준위가 예상했다.

그 말에 레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레토가 향한 곳은 휴게실이었다.

“왔냐.”

락소가 읽고 있던 낡은 잡지를 접었다. 그리고 적적한 공간을 채우던 라디오를 껐다.

사연을 소개하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차는 내가 옮겼다.”

“성당 사람들은?”

“갈 사람은 기념품 챙겨 가고, 피로연에 참석할 사람들은 마을 회관으로 이동했어.”

마지막으로 봤던 건 화동 역할을 완수했던 다섯 꼬마들이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었다.

“어른들이 참 좋아하더라. 네 처형은 사진기로 그걸 엄청 열정적으로 찍었고.”

“처제는 귀엽거든.”

“보지도 않고 귀엽단 소리가 나오냐.”

“우리 처제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워.”

“…….”

대꾸할 말이 없어진 락소는 그냥 본론으로 들어갔다.

“수도에서 체포했던 평기사.”

“프세드 렐리?”

“그놈 일당이 만들던 마약의 유통책이 시카 리우스였어.”

“아아, 나중에 할망구한테 더럽게 깨지겠군.”

지난 소탕 작전 때 확실하게 잡았더라면 오늘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변명의 여지도 없는 저의 실책이었다.

“…어쩐지.”

하지만 의아했던 점이 하나씩 떠올랐다.

“몸에 걸쳤던 옷가지들이 꽤 값진 거더군. 무기들도 녹슨 거 없이 멀쩡했고.”

자리에서 직접 확인했던 제조 연월 역시 비교적 최근이었다.

거기다 해적들의 건강 상태도 예상보다 양호했다.

소탕 작전 이후에 섬에 틀어박혀 지내느라 제대로 못 먹었을 줄 알았는데, 과일도 꼬박 먹었는지 해적 특유의 괴혈병 증상이 전혀 없었다.

“마약 유통으로 나름 쏠쏠하게 벌었나 보군.”

“그래서 급여책이 붙잡히니 다급하게 나온 듯해.”

“…….”

“너도 지금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을 거야.”

락소가 사태의 심각성을 예측했다.

“요 몇 달 사이에 군 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전부 연결되고 있어.”

“어디까지 알아볼 수 있는데?”

“내부 사항에 기밀이 붙은 거면 시간이 좀 걸려.”

“일주일은?”

“그렇게 기대하진 마라.”

어느 정도는 가능하단 뜻이었다.

은밀한 거래를 끝낸 두 친우는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피로연도 끝나 가려나…….”

레토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이래저래 일이 생기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서운하고 슬펐다.

그토록 바라던 결혼식이었다. 나름 준비도 열심히 했고, 노아와 저의 성혼을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런데 다 망쳐졌으니.

‘노아는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거 같았고.’

미련 없이 드레스를 벗고 함상복을 입던 노아가 살짝 야속했다. 어쩐지 저만 결혼에 목매고 간절했던 거 같았다.

‘바보 같네.’

레토는 부정적인 생각을 서둘러 떨쳤다.

그래도 자신들은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다.

노아와 결혼은커녕 완전히 버림받았을 뻔했던 바로 몇 달 전을 생각하면 이런 건 사치스러운 걱정일 뿐이었다.

“야.”

그때, 락소가 그를 불렀다.

“혹시 너 정복 있냐?”

***

“사령관실 옷걸이에 걸려 있는데, 왜?”

“그거 입고 나와.”

“왜?”

“입고 나오면 알아.”

레토는 미심쩍으면서도 뭐에 홀린 사람처럼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왠지 안 입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어서 와.”

레토는 자신이 몇 시간 전으로 회귀한 줄 알았다.

그의 눈앞에 선 노아는 성당에서 봤던 아름다운 신부 차림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저를 보며 수줍게 웃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레토는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못 끝낸 결혼식은 마저 해야지.”

둘은 다정한 연인처럼 팔짱을 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두 사람의 등을 밀었다.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제야 레토의 눈에 주변 환경이 보였다.

본부 앞 정원이 야외 결혼식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결혼식이 그렇게 끝나서 서운했어.”

노아가 그의 귀에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불투명한 면사포에 가려진 얼굴이 살짝 붉었다. 화장 탓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조금 욕심을 내 봤어.”

“언제 이걸 다…….”

레토는 이제 조금 울고 싶어졌다.

“너도 참.”

노아가 슬쩍 레토의 팔에 머리를 기대며 달콤히 말했다.

“여긴 군이잖아.”

안 되는 게 없어.

사랑에 빠진 부부에겐, 이 모든 걸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다고 진이 빠진 하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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