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245)

44.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입장했다.

하객들은 감히 입을 뻥긋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예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

“…….”

특히, 기쁜 마음으로 참석한 특함 대원들은 턱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저, 저분이 대, 대위님이라고?”

“아니, 그러, 아니 그러니까!”

“뭔지 아니까 좀 닥쳐 봐라.”

“대위님이 한 미모 하시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저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특함 대원들이 나누는 대화가 곧 하객들의 심정이었다.

목과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머메이드 드레스가 노아의 우아한 전신을 기품 있게 감쌌다.

군인 특유의 거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꾸준한 단련으로 다듬어진 신체 특유의 아름다운 곡선을 돋보이게 해 줄 뿐이었다.

옅은 살구색 구두가 걸음마다 또각거릴 때면, 허리에서부터 치마 밑단까지 내려오는 레이스 자락이 동화책 속 인어공주의 꼬리처럼 나풀거렸다.

한껏 꾸며 땋아 올려 묶은 금발엔 분홍색 코르사주를 장식하고, 푸른색 사파이어 귀걸이와 목걸이로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신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잠깐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것도 꾹 참았다.

“노아…….”

아메타 벨로는 그런 딸이 결혼하는 게 아직도 가슴 아팠다.

“언제든 돌아오렴. 알았지?”

“아빠,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 초혼이에요.”

노아는 부디 면사포가 자신의 근심을 가려 주길 바랐다.

“그리고 따지자면 중장님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시는 거야. 난 어디 가지도 않아요.”

“네 엄마도 그랬어.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도 아냐.”

“내 이야기 아예 안 듣는 거야……?”

아빠와의 대화가 막막해질 즈음, 딱 맞춰 레토가 구세주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저런! 신랑이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모양입니다.”

베네딕토 실장의 농담에 하객들이 깔깔 웃었다.

아직 노아는 붉은 융단이 깔린 길을 반도 지나지 않았다. 일부러 느리게 걷는 아빠의 발걸음을 맞춰 걸은 탓이었다.

그걸 기다리지 못한 레토가 끝내 직접 마중하러 나섰다.

아메타는 그런 레토가 아주 못마땅했다.

“참을성이 없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노아와 관련된 일엔 늘 침착하지 못합니다. 그녀가 제 심장을 옥죄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만 산 남자는 신뢰가 없지.”

신부의 아버지는 능글거리는 사위가 영 미덥잖았다.

못마땅한 시선을 느낀 레토가 그제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잘했어.”

다른 건 몰라도,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건 있었다.

“내 딸에게 먼저 오는 거.”

“…….”

“이젠 둘이서 함께 가게.”

아메타는 레토의 손을 덥석 잡더니, 노아의 손을 직접 쥐여 줬다.

“우리 딸, 나중에 보자.”

짧지만 진심 어린 인사를 남긴 그는 아내가 있는 앞줄 좌석으로 갔다.

기다리고 있던 제니 벨로가 큰일 한 남편의 등을 쓸어 주며 무어라 속삭였다. 아메타는 어깨를 잘게 떨었다.

신랑과 신부의 행진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아, 어떡해.”

성혼을 맹세할 단상 앞에서, 노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빠가 저러는 거 보니까, 울 거 같아.”

“나중에 아버님께 지금 느낀 감정을 말씀드려 봐.”

아주 기뻐하실 거라고 레토가 말했다. 노아도 같은 생각이었다.

분명 그 다람쥐 같은 눈을 글썽거리며 꼭 안아 주실 거다.

“그런데 후작님은 오셨어?”

“아니.”

하객 자리는 딱히 구별해서 나누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아 쪽 하객석 앞줄에 그녀의 가족이 앉은 것과 달리, 레토 쪽은 텅 비어 있었다.

“바쁘신 분이라고 했잖아.”

레토는 혹여 노아가 상처 입을까 먼저 말했다.

“난 괜찮아.”

“난 안 괜찮아.”

노아는 언젠가 오케아누스 후작을 만난다면 정말 한소리 해 버릴 거 같았다.

짧은 대화를 마친 둘은 십자가 아래 섰다.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베네딕토 실장은 오늘만큼은 군인이 아닌, 한때 어머님을 모신 성직자로서 제 소임을 다 하기로 했다.

“내빈 여러분. 오늘 이곳에 축복 어린 결합을 약속할 두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새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주례사가 이어졌다.

“저는 이 두 사람을 잘 압니다. 아들라보르의 영웅이자, 우리의 가족이며, 여러분들의 친구입니다.”

옆에 슬쩍 나와 있던 아미가 눈짓으로 신호를 줬다.

클라레가 새하얗고 두툼한 벨벳 쿠션을 들고 다가왔다.

쿠션 위엔 두 사람이 나눌 결혼반지가 있었다.

“…응?”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제 차례를 기다리던 클라레가 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올렸다.

“…….”

“…….”

반지를 빤히 구경하던 아미와 눈이 마주쳤다.

클라레가 슬그머니 반지를 제 몸 바깥 쪽으로 돌렸다.

“훔치지 마!”

“그렇게 크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

주례 중간에 끼어든 잡담에 하객들이 키득거렸다.

그제야 눈치를 살핀 아미가 호호 억지로 웃었다.

클라레는 반지 도둑을 막았다고 생각했는지 홀로 뿌듯했다.

“이렇게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축복받은 결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베네딕토 실장은 갑작스러운 상황도 잘 받아쳤다.

“길고 지루한 축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두 사람의 결혼은 많은 사람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부디 두 사람의 앞날도 그러길 바란다며, 베네딕토 실장이 조금은 사적인 진심을 담아 축사를 마무리했다.

레토와 노아가 서로에게 행복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반지 교환이 있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클라레가 두 부부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응!”

기운찬 숨소리와 함께 반지가 내밀어졌다.

레토가 먼저 노아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희미한 흉터가 남은 자리엔 언젠가 그의 치열이 새겨졌었고, 지금은 둘이서 고른 반지가 끼워졌다.

이어 노아도 레토에게 반지를 끼워 줬다.

“…깨무는 것보단 못하네.”

반지를 낀 손가락을 본 노아가 그렇지 않으냐며 레토를 올려다봤다.

마침 같은 생각 중이던 레토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그럼 성혼 선사와 맹세의 입맞춤을 하기 전에.”

결혼식 주례가 마무리되어 가는 순간.

“…볼트리아 교장님.”

“…보고 있네.”

창밖을 노려보는 군 간부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볼트리아 중장과 오린 준장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클라시스 소장이 가까이에 있던 아이스 중령에게 눈짓했고, 키르고 준장 또한 문 너머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하시는 분은…….”

중장님께 죽기 싫으면 영원히 반대하지 말라고, 베네딕토 실장이 우스운 농담을 던지기 무섭게…….

쾅!

신부 입장과 함께 닫혔던 커다란 문이 벌컥 열렸다.

“…오, 깜짝 장난?”

아미가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는 틈에 손가락으로 콧구멍 근처를 살살 긁었다.

처음엔 다들 그런 줄 알았다.

아니면 정말로 이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이 나타나 격정적인 볼거리가 제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도, 도와주세요……!”

상처투성이의 남자가 피를 뚝뚝 흘리며 안으로 들어온 순간.

“꺄아아아!”

장내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불청객은 결혼을 반대하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었다.

“얘들아, 어서 이리로 와!”

심상찮은 기류를 감지한 보호자들이 황급히 아이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아스는 클라레를 끌어안은 주인님 앞을 슬쩍 막아섰다.

손은 언제든 치마 속에 든 뭔가를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해 뒀다.

“해, 해……!”

불청객은, 아니, 흠뻑 젖어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덜덜 떨리는 숨을 겨우 쥐어 짜내며 말했다.

“해, 해적이! 손가락이 그려진 해적 깃발…!”

“총원!”

레토의 호령에 객석에 있던 군인들이 벌떡 일어나 자세를 갖췄다.

노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 언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먹은 클라레가 울먹거리며 노아를 찾았다.

노아는 그런 동생을 끌어안으며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옅은 립스틱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클라레. 아스랑 부모님 옆에 꼭 붙어 있어. 알았지?”

“언니는? 언니랑 형부는?”

“잠깐 나갔다 올게.”

노아는 면사포와 부케를 아스에게 건넸다.

“아스.”

“목숨을 걸고 아가씨를 지키겠습니다.”

아스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다녀오렴.”

“조심하고.”

제니와 아메타의 당부에 노아가 걱정 말란 듯이 씩 웃었다.

그동안 레토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군종실장, 당장 저 사람을 치료하도록. 아이스 중령은 본부에 연락해서 사령부에 있는 대원들과 함께 개인 함선을 이곳까지 가져오라고 전해. 클라시스 사령관은 함대에 연락…….”

고작 사람 한 명이 뛰어들어 와 해적이 나타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레토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들라보르의 영웅이 붉은 눈동자를 매섭게 빛내고 있었다.

하객들은 레토의 든든한 모습에 이미 안정을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중장님.”

치유마법으로 다친 사람을 보살폈던 베네딕토 실장이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였다.

“볼트리아 중장.”

레토에게 무언가 지시를 받은 볼트리아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조금 무섭다.”

클라레가 중얼거렸다.

언니를 너무 좋아하는 철부지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무서운 모습을 보니 조금 낯설었다.

“언니도 좀 무서워.”

클라레가 아스의 다리에 몸을 숨기듯이 기댔다. 아스는 괜찮다며 클라레의 등을 쓸어 내렸다.

“그치만…….”

언니와 형부를 향한 클라레의 눈은 마냥 겁에 질린 게 아니었다.

“내빈 여러분.”

레토가 하객들을 둘러보며 정중히 사과했다.

“저희 부부의 미래를 위해 귀한 걸음을 해 주셨는데, 이렇게 자리를 비우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실망 어린 비난과 야유 따위가 아니었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가서 저 망할 해적들을 전부 잡으세요!”

“늘 나라를 지켜 주셔서 우리가 고맙죠!”

“미안할 일이 뭐 있나! 어서들 다녀오게!”

“축복받을 결혼이야, 아주!”

우렁찬 환호와 진심 어린 응원이 해군의 무운을 빌었다.

“역시 언니랑 형부는 멋있어!”

클라레도 불끈 쥔 주먹을 하늘 위로 퍽퍽 찌르며 외쳤다.

“식칼토끼처럼 근사하게 이기고 와! 필살기 팍팍 쓰고!”

“아빠! 다치면 안 돼!”

본업으로 돌아간 신혼부부의 퇴장은 개선가나 다름없는 힘찬 응원 속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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