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245)

40.

해군에선 군인들의 소지 무기로 총기류와 검, 크게 이 두 종류를 지급한다.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총을 고른다. 간혹 검을 고르는 군인도 있지만, 속된 말로 멋 부리려고 소지하는 게 태반이었다.

결국엔 이들도 주무기를 총으로 삼는다.

하지만 노아는 정반대였다.

검을 주무기로 삼고, 총을 보조무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대위님의 검술은 해군의 자랑이고 보물입니다.”

노아가 본부로 발령되었던 그해, 그녀의 검술을 기초로 하여 해군 검술 교본을 다시 썼다는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중장님과 검으로 대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런 노아여도, 이 빠진 검으로 레토를 이기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한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그냥…….”

제 기억이 틀리지 않고, 당시의 제 판단 역시 정확했음을 확인한 레토는 순순히 물러났다.

‘마스와 페미나…….’

아들라보르 역공전에서 패전한 시스토 제국에서 가져온 전리품.

왕국에서도 이름을 널리 알린 제국의 귀족, 피에타 백작 가문의 비보로 알려진 낡은 두 자루의 검.

피에타 백작과 그 반려가 한 자루씩 지니기에 부부 검이라 불리는 비보엔 전해지는 전설이 하나 있다.

‘그 검을 다룰 수 있다면 오러를 만들 수 있다지.’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오러는 옛 고서적이나 아이들의 동화책 같은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기록상 전해지는 마지막 ‘오러 보유자’도 마탑 대폭발 이전에 존재했다.

즉, 오러 보유자는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에 역사가들은 오러가 특정 무기를 다루는 것에 경지에 오른 자란 호칭이라 추측했다.

‘노아가 검에 대해 아는 건 이상하지 않아.’

피에타 가문은 왕국에서도 유명했으니까.

도덕심과 정의로운 기품을 갖춘 청렴결백한 무인 가문은 같은 귀족에겐 동경의 대상, 평민에겐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멸문하긴 했지만…….’

이젠 사라진 가문을 짧게 동정한 뒤, 레토는 노아가 그 검에 대해 보였던 반응을 빠르게 반추해 봤다.

“검부터 주십시오.”

검을 향한 범상치 않은 집착.

“사랑한다고. 그리고 진급 방해한 이유도 솔직하게. 아, 물론 검도 줘야 합니다.”

까먹을 만하면 틈틈이 언급했던 검.

“…울었어?”

“피곤해서 눈이 부은 거야.”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본 노아의 붉게 짓무른 눈가.

‘그냥 평범하게 아는 건 아니었어.’

노아와 두 검 사이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

가장 의심스러웠던 건, 어린 클라레가 그 검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말했단 점이었다.

거기다 아스 역시 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상한 모습을 잠깐 보였었다.

“…….”

레토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손가락들은 곧 느릿느릿, 서로를 문질러 댔다.

‘이런 기분이었나…….’

새삼, 그는 노아가 저의 답답한 침묵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깨달았다.

노아는 레토가 저를 걱정하고 있단 걸 분명 알았다. 아침에 제 시선이 붉은 눈가로 향한 것도 알아챘고.

하지만 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쩍 웃음을 지으며, 지금은 넘어가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 탓에 레토 역시 물어보지 못했다.

‘이거 꽤 아프네.’

붉은 눈동자가 수심에 잠겼다.

내가 아무 말도 없었을 때, 노아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자신은 이제 겨우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해 보는 것뿐인데, 레토는 이런 순간을 오랫동안 참고 견디었을 노아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물어볼 용기가 안 생겼다.

물어보면 알려 줄지도 모르는데, 레토는 차마 저 궁금하다고 뻔뻔하게 굴려는 제 태도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아.”

그때, 피스트 준위가 레토에게 말했다.

“오늘 중장님과 대위님이 야간 당직이지 말입니다.”

하필 또 오늘은 노아와 군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짜릿한 밤이 되겠네.”

“대위님이 들으면 화낼 소리를 또…….”

“하하.”

레토는 평소처럼 입방정을 떨며 애써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

고된 행사가 바로 전날 있었지만, 해군의 국방 수호는 빈틈없이 이어졌다.

당직인 노아와 레토는 야간 해양 순찰을 위해 개인 함선을 들고 본부 내 해변으로 향했다.

“생각나지 않아?”

“무엇 말씀입니까?”

“내 사랑스러운 대위가 명령도 없이 멋대로 출동해 반역자들을 피떡으로 만들었던 날 말이야.”

“중장님이 제게 차일 뻔하셨던 날 말씀하시는 거라면,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두 사람이 탄 군용차가 해변 앞에 멈춰 섰다.

“으음, 이상한데?”

트렁크에서 개인 함선을 챙기던 레토가 순수한 아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며 울었던 건 어디 대위였지?”

“벌써 바람이십니까? 어느 부대 대위입니까?”

“어허, 벨로 대위. 거짓말하면 구라구라가 잡아간다고.”

“구라구라 님. 제발 저 좀 잡아가세요. 이틀 뒤에 저 화상이랑 결혼해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구라구라는 부재중입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삐 소리 이후로 통화료가 부과…….”

농담하는 사이에 개인 함선을 착용한 둘은 밤바다를 항해했다.

자정을 갓 넘긴 바다는 제법 요동쳤다.

돌고래 떼가 헤엄쳤던 바로 어제 날의 잔잔했던 파도와 크게 비교되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빠르게 흔들리는 파도 위를 달리던 노아가 감탄했다.

“하루 사이에 바다가 이렇게 달라지는데, 장군님은 이걸 다 아시고 어제 출항하신 거 아닙니까.”

“돌고래는 인간보다 우월해. 게다가 본디 우리만큼 진화가 더딘 짐승도 없잖아.”

야간 순찰을 꼼꼼히 마친 둘은 다시 해변으로 돌아왔다.

개인 함선을 탈착하고 보관함에 도로 정리한 레토가 군용차에 짐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레토.”

부르는 호칭에 놀란 그가 뒤를 돌아봤다.

“잠깐 일탈 좀 할까?”

“뭐, 뭐야…….”

레토가 살짝 모아 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어했다. 그러곤 슬그머니 두 팔로 스스로 끌어안았다.

“이렇게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렇게 날 유혹해서 어쩌려는 거야? 이 변태! 게다가 나 지금 피임 도구도 없는…….”

“구라구라 님, 저는 됐으니 저놈 좀 잡아가세요…….”

허파 뒤집는 소리는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노아는 군용차 뒷좌석에 몰래 실었던 바구니 하나를 꺼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레토가 바구니 안을 보았다.

“…술?”

이번에는 천하의 레토도 깜짝 놀랐다.

“설마 마시자는 건 아니지?”

“마시진 않고, 한 잔 따르려고.”

노아는 레토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수영 훈련장 뒤에 있는 조그만 곶이었다.

일전에 델라트 경과 페르아타 경이 개인 함선을 훔쳐서 밀항하려고 했을 때 이용했던 은신처였다.

둘은 곶 끄트머리 즈음에 앉았다.

“손수건 깔아 줄까?”

레토가 손수건을 펼치며 물었지만, 노아는 대답 대신에 보란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쓱해진 레토도 그 옆에 앉았다.

“사람 무안하게.”

“군인에게 손수건은 사치야.”

“그 전에 너는 내 여자잖아. 소중하게 대하고 싶다고.”

“조금 전까지 방정떨던 네 입 때문에 안 믿겨.”

그래도 듣기 좋은 말인지라, 노아는 싱긋 웃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신호를 알아챈 레토가 그녀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포개듯 맞췄다.

잘게 으깨진 유리가 흩뿌려진 듯한 밤하늘 아래, 휘영청 밝은 달빛이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수줍게 비췄다.

곶 아래 낮은 절벽에 부딪히는 거친 파도 소리는 그들의 심장 소리처럼 빠르게 요동쳤다.

“…이것도 나름 분위기 있네.”

감미로운 배경음 속에서 맞물린 입술은 곧 떨어졌다.

레토가 노아의 이마 위에 제 이마를 툭, 얹으며 속삭였다.

손을 뻗어 노아의 볼을 어루만지듯 감싸니, 달아오른 체온이 손바닥 너머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제 눈을 응시하는 노아의 흐트러진 표정은 빠르게 진정되어 갔다.

하지만 아직 타액으로 젖어 있는 입술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별 같네.”

“너도.”

젖은 입술 위를 가볍게 쪼듯 입 맞춘 둘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떨어졌다.

“아아, 이럴 땐 군인인 게 싫다……!”

“누가 들으면 군인이라서 못 한 게 많은 줄 알겠네.”

노아는 손수건을 꺼내 저와 레토의 입술을 정리해 줬다. 그는 도로 깨끗해진 제 입술을 엄지로 아쉬운 듯이 매만졌다.

“그래서, 술은 어디에 쓰려고?”

대답하는 대신, 노아가 익숙한 솜씨로 포도주 코르크를 뽑았다.

뽕,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알싸하면서도 산도 있는 향이 느껴졌다.

“에반젤리움?”

라벨을 확인한 레토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국산이잖아. 꽤 비쌀 텐데?”

“그것도 70년 산이지.”

“야, 이건…….”

어지간한 귀족도 구하기 어려운 거라고 말하려던 레토가 입을 쩍 벌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아는 그 비싼 포도주를 바다에 쏟아부었다.

“부모님께 올리는 술이야.”

노아는 검붉은 포도주 물줄기가 어두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말했다.

“부모님 시신이 아직 제국에 있어.”

“…….”

“그래도 너랑 결혼한다고 알려야 할 거 같아서. 보이진 않지만, 저 너머에 제국 땅이 있잖아.”

포도주를 전부 부은 노아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빈 병을 다시 코르크로 막고, 바구니 안에 도로 넣은 노아는 딱히 울고 싶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

그래서 레토도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물어봐도 돼.”

그런 레토의 심중을 알아챈 노아가 그리 눈치 안 봐도 된다며 쓰게 웃었다.

“말했잖아. 물어보면 대답해 준다고.”

“물어도 돼?”

“이상한 데서 눈치 본다, 또.”

나쁜 버릇이라며 손가락으로 레토의 콧등을 가볍게 톡, 건드리는 노아의 얼굴엔 어두운 기색이 전혀 안 보였다.

용기를 얻은 레토가 물었다.

“…괜찮아?”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만, 그는 일단 노아의 마음을 가장 먼저 물었다.

“눈 밑이 붉었던 게, 마음에 계속 걸렸어.”

“역시 안 믿었구나.”

그럴 줄 알았다며 짧게 웃던 노아는 컴컴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검은, 부모님의 흔적을 찾아 줄 수 있는 단서야.”

“부모님의 흔적?”

“돌아가신 부모님이 묻힌 곳.”

“…….”

노아는 담담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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