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245)

39.

“제가 만든 강장제예요.”

아스가 잔을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우욱……!”

냄새를 맡은 레토가 헛구역질하며 커다란 상체를 고꾸라트렸다.

노아가 기겁을 하며 아스를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노려봤다.

“너무한 거 아냐? 그 고생을 하고 왔는데 이런 독이나 주고!”

“정말 피곤하신가 보네. 독이 아니고 강장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걸 못 알아들으시고.”

아스는 끝내 두 사람에게 강장제를 억지로 먹였다.

“냄새랑 달리 맛은 평범하니까 다 마시세요.”

“처, 처형! 잠깐 이건……, 우욱!”

“야! 냄새가 이 모양인데 맛이 무슨……!”

우욱! 우으으!

사랑이 듬뿍 담긴 기력 회복 음료를 반강제로 들이켜는 노아와 레토가 살려 달라고 몸부림쳤다.

그러건 말건 아스는 호호 웃으며 남김없이 마실 수 있도록 도와줬다.

“히익……!”

복도에 숨어 있던 클라레는 문틈 너머로 비치는 지옥도 같은 그림자를 보며 벌벌 떨었다.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두 그림자를 괴롭히며 짓밟고 있었다.

“아스가 언니랑 형부를 죽이려 해……!”

조숙한 꼬마 아가씨의 머릿속엔 끔찍하고 어설픈 공포 소설 한 편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죠?”

아스가 콧숨을 강하게 내뱉으며 빈 잔을 치우러 나갔다.

그 틈에 다시 돌아온 클라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언니와 형부를 살폈다.

“…죽었어?”

눈치를 살피다 슬쩍 들어온 클라레가 코맹맹이 목소리로 물었다.

노아와 레토에게 다가가니 강장제의 역한 냄새가 진동해서 서둘러 코를 붙잡았다.

“살았어…….”

“화, 환기……!”

레토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제야 화생방보다 독하던 실내 공기가 환기되었다.

서늘한 밤공기가 들어오고 나서야 숨통이 트였다.

“둘 다 아스한테 뭐 잘못했어?”

그제야 코를 뗀 클라레가 물었다.

“당연히 없지.”

나라 지키고 왔더니 이런 취급이라며 노아가 투덜거리는 동안, 레토는 잠시 밖에 나갔다 왔다.

다시 돌아온 레토의 품에는 벨벳으로 감긴 기다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내 선물이다!”

클라레가 빵긋 웃었다.

“유감스럽게도 아닙니다.”

“힝구…….”

실망한 클라레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애먼 상자를 톡톡 건드렸다.

“이건 노아에게 줄 거예요.”

“언니?”

“사실은 좀 더 빨리 주려고 했는데…….”

클라레에게 잠시 설명하던 레토가 떨어진 곳에서 절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노아를 발견했다.

노아는 조금 전 강장제를 강제로 마셨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눈에 띄게 흔들리는 푸른 눈동자는 오로지 상자만을 담고 있었다.

“…….”

마치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아는 것처럼.

“그간 일이 많았잖아.”

레토는 상자를 들어 보이며 노아에게 말했다.

“넌 이걸 그렇게 원했으면서, 어째 까먹은 것처럼 지내는 거 같았고.”

“까먹지는 않았어.”

그제야 레토에게로 시선을 든 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잠시 머뭇거린 노아가 말을 이었다.

“…네가 더 소중했거든.”

그래서 잠시 우선순위를 미뤄 둔 것뿐이었다.

입 밖으로 꺼낸 진실이 노아의 양심을 몽둥이질했다. 하지만 노아는 그 괴로움과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 냈다.

저만의 생각이지만, ‘그분’들도 이런 제 변화를 달가워할지도 모른다.

오로지 제 생각이지만.

“에헤! 형부 아저씨 얼굴 빨개졌다!”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클라레가 말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입으로 나올 거 같아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처제가 받아 주세요…….”

“잉, 징그러워서 싫어.”

질색한 클라레가 노아의 뒤에 숨었다.

클라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노아는 레토가 가져온 상자를 건네받았다.

손에 닿는 벨벳 특유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품에 안긴 상자를 아기처럼 조심히 안은 노아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아스한테, 저녁은 안 먹는다고 전해 줘.”

“언니 어디 가?”

“방에. 오늘은 피곤하니 먼저 잘게.”

그렇게 말한 노아는 정말로 2층 계단을 올라갔다.

잠시 후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

“…….”

단둘이 남은 레토와 클라레는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아저씨, 혹시 언니한테 뭐 잘못했어요?”

“그리 말씀하면 섭섭합니다.”

레토가 손가락을 눈가에 가져가며 우는 척했다.

“제가 요즘 얼마나 노아의 말을 잘 듣는데요. 목줄 채워진 개처럼 복종하고 산단 말입니다.”

“말하는 거 보면 아닌 거 같은데…….”

어린 처제의 눈에도 형부의 변명은 영 미심쩍었다.

“작은 주인님은요?”

때마침 저녁 식사를 알리려고 나온 아스가 물었다.

“아저씨한테 삐쳐서 방으로 갔어. 밥도 안 먹고 잘 거래.”

“처제, 중상모략은 하면 안 돼요.”

레토가 클라레를 번쩍 들어 안고는 말랑한 볼에 제 얼굴을 마구 비비댔다.

클라레가 간지럽다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많이 피곤하신가…….”

아스가 위층을 올려다보며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근데 형부 아저씨.”

“응?”

“아까 언니한테 뭐 준 거예요?”

“검입니다.”

“…검, 이요?”

아스가 숨을 잘게 떨었다. 그 반응에 레토가 의아해하던 찰나였다.

“검?”

클라레의 고개가 갸웃하고 기울었다.

“‘마스’랑 ‘페미나’?”

극소수만이 아는 검의 이름이 클라레의 입에서 나왔다.

레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방으로 들어온 노아는 가장 먼저 문을 잠갔다.

철컥, 소리가 나는 걸 확인하고도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몇 번을 확인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상자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후우…….”

떨리는 심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손의 떨림이 멈췄다.

때마침 창문 너머로 달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상자 속에 든 검들에 정신이 팔려서 불을 켜는 것도 잊었던 노아에게 달빛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달빛이 성스럽게 비치는 침대 위에서.

“…….”

노아는 겨우 진정한 두 손으로 상자 뚜껑을 위로 올렸다.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린 상자 안에는 두 자루의 검이 있었다.

두 검의 검집은 색이 달랐다. 피처럼 시뻘건 붉은 검집 하나와 깊은 심해처럼 어두운 푸른 검집 하나.

황금빛 고급스러운 술이 달린 끈으로 봉인된 패전국의 유물.

노아는 그중 하나를 들었다.

레토와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으려고 했을 때 얼떨결에 받았던 붉은 검, 마스였다.

봉인한 끈을 풀고, 검집에서 꺼낸 검신을 창 너머 드리우는 달빛에 비추듯 들어 올렸다.

이가 다 빠져 해진 검날의 중앙을 모아 붙인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훑자, 숨겨져 있던 음각 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삿된 것을 베라.”

새겨진 글을 읽는 노아의 두 눈은 빠르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끝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노아는 도로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는 제 품에 끌어안았다.

또 다른 팔은 상자 안에 잠들어 있는 푸른 검을 붙잡았다.

“…으윽, 흑.”

흐느끼는 울음 사이사이로 숨넘어가는 숨소리가 꺽꺽 들렸다.

“늦어서 죄송해요…….”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노아는 이제는 닿지 못할 서글픈 사과를 끊임없이 읊조렸다.

***

마스와 페미나.

한때는 전 세계 공용어로 쓰였던 시스토 제국의 고대어로, 각각 수컷과 암컷이란 의미를 뜻했다.

그리고 시스토 제국의 어느 귀족 가문의 비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두 검은 가주와 그 반려가 각각 하나씩 소유했는데, 이 때문에 부부 검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결혼식까진 이제 이틀이 남았다.

사령부실에 틀어박힌 레토는 어느 때보다 바빴다.

이틀 뒤에 있는 결혼식과 달콤한 신혼여행을 위한 휴가 일주일을 위해 미리 해 둬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레토의 손은 어느 순간부터 멈춰 있었다.

그의 신경은 어제와 오늘, 갑자기 이상했던 노아의 태도 때문이었다.

‘분명 울었어.’

레토는 솔직히 그 검들에 미련이 없었다. 그냥 노아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가진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노아에겐 그 검이 지닌 의미가 심상치 않은 듯했다.

검을 선물하자마자 방으로 올라간 노아는 정말로 다음 날 아침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스트 준…….”

“중장님! 제발 손 좀 움직이십시오!”

부르기 무섭게 피스트 준위가 충정을 외쳤다.

“그러다 결혼식 당일 아침이나 신혼여행 중간에 여기 오셔서 일해야 할지 모른단 말입니다! 중장님도 그건 절대 싫으실 테고, 그러다가 대위님께 밉보일……!”

“자.”

레토는 준위의 책상 위로 손수 결재한 서류들을 올려뒀다.

“다 했지?”

“어? 어라? 어어어?”

“우리 준위님. 말투가 좀 짧으신 거 같습니다? 나이 어린 상사라고 놀라는 척하면서 말 놓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란 말씀입니다!”

피스트 준위는 완벽하게 처리된 서류들을 놀라운 눈으로 살폈다.

레토의 손이 멈췄던 건 제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중장님이 일을 미룬 적은 없지……’

오히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가 더 바빴던 적이 많았다.

“준위.”

그러나 레토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피스트 준위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떡하니 자리했다.

“그때 기억나나?”

“잘 못 들었습니다?”

“벨로 대위가 내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했던 날.”

“…혹시 대위님이 계급장 떼고 중장님께 한 판 붙자고 했던 날을 말씀하시는 거면,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준위는 레토의 기억 왜곡을 똑바로 잡으며 말했다.

레토는 탐탁치 않은 눈빛이었지만, 일단 말을 계속했다.

“…내가 그대보고 ‘마스’를 가져오라고 했잖아.”

“그러셨습니다.”

“근데 왜 그때 마스를 가져오는 걸 망설였었지?”

“그거야 그 검은…….”

피스트 준위가 당연하단 듯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날 피스트 준위가 마스를 가져오라고 했던 레토의 명에 깜짝 놀라면서, 동시에 불세출의 인재를 잃게 될 거라고 판단했던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가 다 빠진 고물이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런 검으로 싸우라고 레토가 말했던 건, 그냥 나한테 지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도 레토는 반 심술로 그런 의미로 말하기도 했고.

“검에 내려오는 전설로는, 그…….”

피스트 준위는 자기가 하려는 말이 얼마나 해괴망측한지 알았기에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 전설로만 내려오는 ‘오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전설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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