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바다의 날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 지금이라도 건물 높이의 파도가 당장 덮쳐 와도 이상하지 않지.”
“…….”
“우리 특함은 그런 상황에서도 국방을 수호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고.”
그간 해 온 훈련은 오늘날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내일, 혹은 그다음. 어쩌면 더 멀리 있을 ‘어떤 날’을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개인 함선을 끌고 국방의 수호자로서 임무를 완수해야 할 날.
‘그런 날이 안 오는 게 최고지만.’
노아는 유달리 평화로운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반박할 수 없는 정론에 아미가 순순히 수긍했다.
이 모든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레토가 씩 웃었다.
“들었나, 장군님?”
레토가 무릎을 살짝 낮추며 바닷물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미끄러운 잿빛 물체가 순식간에 솟구쳤다.
장군님이라 불린 대장 돌고래의 등지느러미였다.
물살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대장 돌고래의 이마에는 별 모양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돌고래가 분수공으로 숨을 뿜었다.
“방금 그 여자가, 나랑 결혼할 사람이야.”
끼루룩!
무리의 대장 격인 돌고래, ‘장군님’이 울음을 토하자 뒤따르던 무리들도 동시에 울면서 물을 뿜었다.
어른 돌고래를 따라 열심히 달리는 아기 돌고래들도 삐이삐이, 울었다.
“넌 어떻게 볼 때마다 가족이 늘어나냐.”
돌고래 떼는 매해 늘어 갔고, 레토는 그 변화가 아주 기뻤다.
“어쨌건 나도 이제 가족이 늘어나는 거네. 너랑 똑같구나.”
젊은 제독과 돌고래 장군님은 빠르게 헤엄치는 중에도 자연스럽게 교감했다.
“네가 날 살려 줬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어.”
고맙다고 인사하는 레토의 안면엔 멋들어진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자 장군님이 대답하듯 몸을 가볍게 수면 위로 뛰었다.
“…이제 곧이네.”
조그만 점처럼 보이던 여객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 너머로 바다의 색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푸른 바다는 인간의 움직임을 허락한 구역.
그 너머로 비치는 연두색 바다는 무풍의 바다로 들어가는 초입.
레토가 굽혔던 무릎을 피며 말했다.
“올해도 함께 항해하여 기쁩니다, 장군님!”
끼이! 끼이이!
장군님의 물보라가 더욱 거세졌다.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전 대원!”
레토의 호령에 대원들이 속도를 높였다.
돌고래 떼를 추월한 그들의 뒤로, 살짝 떨어져 따라오던 호위함들도 덩달아 속도를 높였다.
“특함이다!”
“개인 함선을 타고 있어!”
“와아아, 큰 함선이다!”
여객선이 가까워지자, 어린 목소리로 이뤄진 환호성이 특함을 반겼다.
마레이 학교 학생들의 열성적인 반응에 지쳤던 대원들도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역시 고되고 힘들어도, 해군 하면 이런 멋은 있다니까!”
“안 고되고 안 힘들어도 멋있는 게 더 좋아…….”
아미의 능청에 셀린이 단호히 반박했다.
“멋 좀 한번 부려 볼까?”
가장 앞에서 달리던 레토가 신호를 보내자, 대원들이 출력을 높였다.
그러자 그들의 발밑에서 엄청난 물보라가 일어났다.
하늘 높이 솟구친 물보라는 곧 안개처럼 번졌고, 햇살이 투영되면서 커다란 무지개가 그려졌다.
여객선에서 들리는 환호가 더욱 커졌다.
이에 대원들이 조금 더 묘기를 보였다. 바다 위를 달리는 그들의 동작이 점점 활발해졌고,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이리저리 교차하듯 스쳐 갔다.
“언니이이이! 형부우우우!”
그때, 웬 어린이가 목이 끊어질 것처럼 소리 질렀다.
“…대위님 여동생 아닙니까?”
호메스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와아, 목청 봐라…….”
“도대체 뭘 먹고 저리 기운 넘치는 거야?”
“목소리가 함성을 뚫었네.”
“역시 괜히 전설이 아니구만.”
다른 대원들도 일찌감치 눈치챈 모양새였다.
“…….”
대원들의 수군거림에 노아는 창피해 미칠 지경이었다.
반면에 레토는 해맑게 자랑했다.
“들었나, 중령? 우리 처제가 날 불렀어!”
“알겠으니 앞을 보십시오.”
“어쩜 저렇게 착하고 씩씩할 수 있지? 천사인가?”
“조금 전에 난간에 얼굴 끼었다고 소리 지르던 애도 클라레 양 아니었습니까?”
특함 대원들은 바다의 색이 달라지는 경계선 앞에서 멈춰 섰다.
서로를 마주 보며 이열 종대로 넓은 간격을 두고 선 그들 근처로 호위함 3척도 정지했다.
호위함의 포가 하늘을 조준하고 있었다.
“마레이 학생 여러분.”
[마레이 학생 여러분.]
특함 대원의 목소리가 여객선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해군의 특별 전송식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빠다, 아빠!”
센샤가 난간 너머로 손을 붕붕 흔들었다.
[아들라보르 왕국의 또 다른 영웅, 돌고래 장군님과 그분의 함대가 이곳을 지나갈 겁니다.]
7년 전 홀로 바다를 횡단하던 사관생도에게 제국으로 향하는 바닷길을 알려 준 돌고래.
한 명은 해군의 제독이 되었고, 한 마리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왼쪽을 봐 주십시오.]
안내 방송을 따라 사람들의 고개가 왼쪽을 향하니, 물살을 가르는 수십의 돌고래 떼가 보였다.
“장군님이다!”
“가장 앞에 있는 돌고래! 장군님이야!”
“머리에 별 모양 상처가 있대.”
“아기 돌고래도 있어! 귀여워!”
열렬한 환호에 보답하듯, 돌고래 떼의 동작이 더욱 힘차졌다.
그때였다.
“총원!”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우렁찬 호령이 바다에서 울려 퍼졌다.
“차렷!”
레토의 구호에 맞춰 바다 위 특함 대원들이 반듯하게 섰다.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고 해도 파도가 살랑살랑 흔들리건만, 그들의 몸은 단단한 땅 위에 선 것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여객선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스가 넌지시 감탄했다.
노아가 일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는 건 그녀로서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스, 방금 명령한 사람, 형부 아저씨지?”
눈을 반짝이는 클라레의 양 볼엔 조금 전에 난간 틈에 끼어서 생긴 붉은 줄이 선명했다.
“멋지다아……!”
“그러게요.”
아스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덜 잘생겼거나, 돈을 조금만 덜 벌었어도 까불지 말라고 한 대 쳤을 만큼 능글맞고 살짝 얄밉던 사람.
그게 아스가 지닌 레토에 대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제복을 갖춰 입고 근엄히 명령하는 레토를 보니 멋있다는 감상이 절로 나왔다.
‘…와, 내가 조국애를 다 느껴 보네.’
저런 사람이 나라를 지켜 준다는데, 가슴 속에 비틀어 말라진 조국 향한 긍지와 절절한 애국심이 무럭무럭 샘솟으려고 했다.
“아스, 저길 봐!”
클라레가 바다를 가리켰다.
넓게 퍼져 헤엄치던 돌고래들이 장군님의 울음 신호로 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 날개처럼 넓었던 대형은 점점 좁아지더니, 가는 마름모처럼 변해갔다.
그 넓이는 이열 종대로 흩어진 특함을 지나가기 충분했다.
“왕국의 영웅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레토는 제 팔을 칼날이 떨어지듯 사선으로 첨리하게 뻗었다.
이어 다른 특함 대원들도 그를 따라 동작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예식은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한 마리의 영웅을 위해서 진행되었다.
“배웅하는 이 순간을 무궁한 영광으로 삼습니다!”
모자 속 그늘에 가려진 레토의 붉은 눈이 매섭게 빛났다.
“장군님과 함대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레토가 사선으로 뻗었던 팔을 올려 모자 깃 앞에 세웠다.
“다녀오십시오!”
필승!
특함 대원들의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딱 들어맞는 경례가 우렁차게 이어졌다.
각이 바짝 든 제복이 멋들어지게 스치는 소리가 전율을 일으켰다.
동시에 소리 없는 예포가 하늘 위로 터졌다.
3대의 함대가 각 7번, 총 21번의 예포를 터트렸다.
돌고래 함대는 빠른 속도로 특함이 만든 길목을 지나갔다.
마치 잘 다녀올 테니, 1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처럼 물보라를 거칠게 일으키며 소리를 크게 내었다.
엄장한 전송식이 무풍의 바다로 넘어가는 돌고래들을 배웅했다.
여객선에서 바라보던 아이들의 환호는 이제 대포 소리만큼 커졌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해군을 따라 경례했다.
군인의 동생인 클라레는 비장한 표정으로 경례했다.
“다녀오십시오!”
아스는 그 모습을 서둘러 사진기에 담았다.
장군님의 함대를 배웅하는 전송식은 그렇게 끝났다.
끝난 줄 알았다.
[…마레이 학생 여러분.]
아직 바다를 떠나지 않은 특함이 여객선에 있는 마레이 학생들에게 인사했다.
듣기 좋은 저음이 부드럽게 울렸다.
‘형부 아저씨 목소리!’
클라레가 소리 죽여 킥킥거렸다.
특함 대원들이 어느새 여객선을 향해 일렬종대로 나란히 섰다.
[앞으로도 우리 해군은 여러분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아들라보르의 바다를 지키겠습니다.]
“저 사람이 내 형부예요! 언니랑 곧 결혼하는 형부 아저씨예요! 내 형부예요오오!”
클라레가 방방거리며 아무나 붙잡고 자랑했다. 아스는 그 모습도 서둘러 사진기로 찍었다.
[장군님과 함대를 배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토가 통신을 멈추자, 노아가 외쳤다.
“왕국의 희망들께 경례!”
필승!
두 번째 경례에선 아까보다 더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언니! 형부!”
그날 저녁.
“둘 다 너무 멋졌어! 나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엄청 자랑했다? 경례 외친 사람이 울 언니랑 형부라고 하니까……!”
어느 때보다 피곤에 지쳐 돌아온 노아와 레토를, 클라레가 열성적으로 반겼다.
“…….”
“…….”
정작 노아와 레토는 기운이 다 빠져 반응해 줄 힘도 없었다.
불세출의 천재와 인재로 불리는 둘도, 통풍이 안 되는 제복 차림으로 그늘 한 점 없는 바다 위를 40kg가 넘는 개인 함선을 착용하고 항해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남은 힘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좁은 소파에 발라당 기대듯 앉아 멍때리는 것뿐이었다.
“잉, 둘 다 약골이구만.”
클라레가 쓰러진 둘을 보며 혀를 찼다.
“할머니가 봤다면 잔소리 엄청 했을 거야!”
“아가씨, 오늘은 봐주자고요.”
아스는 정체불명의 녹색 음료 두 개를 컵에 담아 왔다.
“우웩.”
범상찮은 냄새를 감지한 클라레는 냉큼 코를 막고 도망쳤다.
“두 분 다 이것 좀 드세요.”
잔을 힐끔거린 노아가 물었다.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