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지금 눈앞에 계시는 제독들은 군 밖에서도 유명했다.
7년 전 아들라보르 역공전에서 각각의 공을 세우신 살아 있는 전설들.
그리고 노아는 이들과 접점이 없었다.
‘볼트리아 교장님이랑은 안면이 있어도…….’
그조차 사관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역시 생각하면 할수록 모를 상황이었다.
노아는 이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 놓고 노려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바로 이곳에 저를 부른 아이스 중령이었다.
“…어흠.”
시선을 느낀 아이스 중령이 머쓱한 기침을 토하며 제독들의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런.”
인그레스 특수전전단 전단장인 오린 준장이 눈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불러 놓고 이런 무례를 저지르다니.”
회녹색 머리를 단정하게 내려 묶은 그녀의 모습은 군인보다는 자비로운 성직자에 가까웠다.
덕분에 노아의 긴장도 살짝 풀렸다.
“우린 그냥 인사 겸 당부를 좀 하러 온 거야.”
“당부, 말씀이십니까?”
“오케아누스 중장님과 결혼을 한다지?”
물어본 사람은 제1함대 사령관인 클라시스 소장이었다.
덥수룩한 잿빛 머리를 꽁지로 묶은 모습에서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예상했던 주제가 언급되니 노아는 다시 긴장했다.
“아이고, 그리 겁먹을 필요 없어.”
클라시스 소장이 껄껄 웃었다.
“결혼을 반대하러 온 게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지.”
“반대라고 하시면…….”
“없는 사람 앞에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여태 침묵했던 키르코 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제8분전단 전단장이었다.
“오케아누스 중장님은….”
그리고 어둑한 남색 머리칼만큼이나 조용한 인상과 달리.
“…개똥상놈이니까.”
말투는 혹렬했다.
나긋하면서도 가혹한 평가에 제독들이 바로 그거라며 동의했다.
‘…그 정돈 아닌데.’
노아는 태연한 표정 뒤로 레토를 몰래 변호했다.
성격이 좀 배배 꼬여서 말투가 얄미울 뿐이고,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아서 오해하기 쉬운 것뿐이었다.
사실은 제 진심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 쩔쩔매는 점이 다시 보면 비에 젖은 멍멍이 같다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 먹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딜 봐도 저뿐이었다.
‘뭐, 나만 알면 됐어.’
은근한 소유욕이 제법 충만해지려는 찰나였다.
“그놈만큼 결혼이 필요한 사람도 없다.”
볼트리아 중장이 연초 파이프를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실내 금연이라 적힌 종이 안내문이 보였다.
“입만 나불대는 건 내심이 약하단 증거니까.”
노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볼트리아 중장의 예리한 명판은 말 그대로 정답이었다.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나름 있었던 모양이군.”
볼트리아 중장은 노아를 힐끔거렸다. 탐색하는 기색이 역력하나, 기분 나쁜 시선은 아니었다.
‘오히려…….’
노아가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릴 즈음이었다.
오린 준장이 말했다.
“갑자기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대위에겐 놀랍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가 부정했다.
그러나 오린 준장은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위태로운 분이네.”
“…….”
“위태로울 수밖에 없지.”
7년 전 역공전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국은 전쟁의 영웅을 찬양하고 수많은 보답을 품에 안겨 줬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특히 전쟁이 그러했다. 그것은 저를 종식시킨 파멸자에게 끔찍한 상처를 선사했다.
“그 녀석은 원래 말이 없는 놈이었어.”
볼트리아 중장이 피식 웃었다.
“전쟁 중에도 필요한 말 이상은 하지 않았는데…….”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아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다만 몰랐던 사실에 살짝 충격을 받느라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겨우 터진 말재주도 사람 속을 밭갈이하는 쇠갈퀴처럼 살벌해졌지. 비아냥거리는 재주만 늘었어.”
키르코 준장의 말에 다들 피식거리며 동의했다.
“말수는 많아져도, 혼자서 다 감내하려는 나쁜 습관은 고쳐지지 않은 거 같지만.”
클라시스 준장이 노아를 떠보듯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노아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 굳이 떠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그 나쁜 습관 때문에 크게 화를 냈었으니까.
“우리가 대위를 부른 건, 일종의 오지랖이야.”
오린 준장이 대표로 말했다.
“중장님을 잘 부탁하네.”
그 한 마디엔 오린 준장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진심도 함께 담겨 있었다.
“…뭐, 사실 오지랖도 핑계지!”
클라시스 준장이 껄껄 웃었다.
“오케아누스 놈, 사람 만들어 달란 청을 하러 온 거네.”
“사실 저 말이 맞지.”
“그놈은 나잇살만 먹고 능청만 늘어나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기 내가 잘 아는 이혼 전문 변호사 명함을…….”
“겨우 망아지 놈 고삐 잡았는데 무슨 재수 없는 소리를!”
이혼은 절대 안 된다며 볼트리아 중장이 강경히 외쳤다.
***
“…미안하게 되었네.”
아이스 중령이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제독들이 결국 노아에게 하고 싶었던 당부는 하나였다.
“그놈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게!”
“드디어 그 망할 놈이 자기 고삐 붙잡을 상대를 만났군.”
“결혼하면 싹퉁머리도 좀 얌전해지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명함은 꼭 챙기고.”
결혼 축하라기엔 조금 떨떠름한 덕담들.
그래도 노아는 내심 기뻤다. 레토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단 사실만으로 가치 있는 만남이었다.
대회의실에서 나온 둘은 사령부실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푸르른 하늘은 화창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잔잔했다.
봄날에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대위도 알겠지만…….”
아이스 중령이 말했다.
“그분은 너무 어린 나이에 높이 올라갔어.”
노아는 아이스 중령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였다.
“어린 나이에 구국 영웅이 되어, 역사상 유례없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해군의 2인자가 되었지.”
“…….”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이례적인 상황이니만큼, 중장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편협한 머저리들이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대위도 표현이 꽤 살벌하군.”
벌써 그리 닮아 가나?
아이스 중령이 허허 웃었다. 하지만 노아는 아주 정확히 요점을 짚었다.
“…우습지 않나?”
아이스 중령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7년 전 해군 항구에서 일어난 화재, 잘 알지?”
델라트 가문 출신을 비롯한 기사 3명이 술에 취해 항구에 저지른 방화는 왕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왕국으로 출항해야 했던 함선들이 파손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당장 수리를 한다고 해도 몇 달이 걸릴 일이었다.
“그때 나타난 게 중장님이었어.”
아직 실험도 거치지 않은 신형 무기를 맨몸에 장착한 채, 임관식도 거치지 않은 사관생도가 홀몸으로 바다를 몇 날 며칠 달렸다.
생도는 왕국에 상륙하자마자 수도까지 길을 뚫고, 고립되었던 왕국군을 구출했다.
그리고 제국 황성의 깃발을 꺾었다.
이것이 레토 오케아누스를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명예로운 1주일’이었다.
“명예 같은 소리……!”
그러나 젊은 영웅이 왕국에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시기와 질투, 그리고 역겨운 모략이었다.
모두가 명예롭고 위대하다고 찬미하는 그날을, 아이스 중령은 분에 떨며 괴로워했다.
“…….”
노아는 침묵으로 그의 감정에 동조했다.
“난 안 좋은 쪽으로 인기가 많아서.”
문득, 레토가 너스레처럼 흘린 말이 떠올랐다.
“난 그때만큼 군을 증오했던 적이 없다.”
조국을 지켜야 할 놈들이, 조국을 지키고 온 젊은 영웅을 자신들의 위치를 흔들 위험 요소로 판단한 거다.
심지어 국왕조차도.
“당시 중장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까 볼트리아 중장님이 말씀하지 않았나.”
그날의 레토를 떠올린 아이스 중령은 맥 빠지게 웃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었어.”
타인인 저도 이렇게 열이 뻗쳐 욕이 나올 정도였는데, 정작 당사자였던 레토는 예상이라도 했단 듯이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지.”
원래도 몸이 편치 않았던 국왕이 식사 중에 승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왕태자가 레토의 업적을 인정하며 그를 소장으로 특진 임관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사람들이, 조금 전에 뵈었던 분들이야.”
아이스 중령이 말을 끝맺는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대위.”
그 탓에 몇 걸음 앞섰던 노아가 뒤를 돌아봤다.
“…플랜시 소장 때 일은, 중장님이 그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어.”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제는 압니다.”
“이번에 본부 내 진급자가 자네를 포함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역시 그 일환이지.”
진급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 심지어 가장 유력한 소령 진급 대상자였던 노아마저 떨어트렸던 레토의 결정은 사실 여러 곳에서 말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변명이 없었다.
“대위에겐 사정을 설명해도 되지 않습니까?”
“됐어. 괜히 일 크게 만들 필요 없어.”
“…….”
“어차피 미친개가 또 미친 짓 한다고 알아서들 욕할 테니, 그 틈에 플랜시 소장의 뒤를 캐면 그만이야.”
“중장님….”
“내가 욕먹는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레토는 늘 저의 입장을 잘도 활용했다.
“본인이 욕먹는 걸 너무 당연시해. 나는 그게 참 보기 힘들더군.”
“…….”
“아직 젊은데…….”
감정이 격해진 터라, 아이스 중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노아는 그 침묵을 굳이 깨트리지 않았다.
‘혼자 그렇게 버텼던 거겠지.’
나와 만나기 전에도.
만난 후에도.
레토는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제 잇속만 채우려는 더러운 모진 것들을 애써 견디고 무시하며 살았다.
나날이 뻔뻔해지고 능글맞아지는 입담과 성질머리는 나름의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만만하게 보였다간 바로 물어뜯길 테니까.
야욕을 숨기고 있는 위정자들에게.
“대위.”
어지러운 생각에 잠겼던 노아가 다시 눈앞의 이에게 집중했다.
그곳엔 레토의 7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전우가 있었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령부실로 돌아가기 전, 아이스 중령은 해야 할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