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245)

26.

노아와 동기 출신인 아미와 셀린이 탕비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내기에 들어갔다.

‘…친구가 아니었나?’

사행성 내기를 조장 중인 둘 옆에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아이스 중령이 있었다.

평소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성품으로 유명한 그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아이고 대위! 내가 늘 딸같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으로 중장님 같은 남자는 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건만!”

기어코 군인이랑 결혼한다니!

“축의금은 누구한테 내야 하냐?”

“얼마를 내야 합니까? 주변 사람이 결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말입니다.”

“글쎄다…….”

“그나저나 언제 나오시는 거지? 목말라 죽겠는데.”

그리고 다른 대원들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

피스트 준위는 그대로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어라, 준위님?”

마침 지나가던 군인이 알은체하며 다가왔다.

“바쁘시네요. 또 나가십니까?”

“의무실에 좀…….”

“어디 아프십니까?”

“예…….”

피스트 준위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통이 도지려고 합니다…….”

***

탕비실에서 나온 노아와 레토는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을 각자의 언어로 설명했다.

“신혼여행은 1주일로 잡을 거다.”

“대의를 위해 한 몸 희생하겠습니다.”

특함 대원들은 대부분 후자를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대위님, 정말 큰 결심하셨습니다.”

“저 미친, 아니, 중장님과 함께하시겠다니!”

“절대 이혼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고, 대위! 내가 정말 자네가 딸 같아서 늘 말했잖아! 군인이랑은 결혼하면 안 된다고!”

“결혼 축하드립니다!”

중간에 눈물겨운 재고 요청이 있었지만, 대원들은 두 사람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애당초 대원들은 노아와 레토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장님이 널 은근히 챙겼잖아.”

셀린은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한 뒤, 손가락에 침을 툭 뱉고는 조금 전 내기의 전리품을 야무지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반면 아미는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훌쩍거렸다.

“흑, 내 30피나……!”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엔 잃어버린 돈이 분했다.

두 사람의 약혼 소식은 빠르게 퍼져 갔다.

본부 사람들은 지나갈 때마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몇몇은 그 소식에 눈물을 보이거나 슬퍼하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이 아쉬워한 쪽은 노아였다.

“대위님, 결혼 축하…….”

“흐윽, 축하드립니다!”

오늘도 축하를 건네다 말고 울음을 터트리며 가 버리는 군인이 2명이나 있었다.

홀로 남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아의 등 뒤로 누군가가 기척을 드러냈다.

“우리 대위는 인기가 많네.”

레토가 노아의 손에 들린 선물을 보며 싱긋 웃었다.

“중장님 쪽이 훨씬 더 인기가 많습니다.”

“난 안 좋은 쪽으로 인기가 많아서.”

노아의 손에 들린 선물을 채간 레토가 능청스레 웃었다.

“대장님께 연락하셨습니까?”

“뭐를? 우리 결혼?”

“예. 아무래도 같은 부대 안에 부부가 함께 근무하는 건…….”

“가능해.”

이미 다 알아봤고, 확인까지 받은 상태라고 한다.

“‘특함’은 해군의 중요 전력이고, 개인 함선을 운항할 수 있는 인재는 아주 드물지.”

쉬이 인력을 차출해 다른 곳으로 배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현 특함 부대원들은 부대가 창설된 2년 이래 인원이 그대로 유지되는 중이었다.

유일한 변동이라곤 지난해 시험에 통과하여 합류한 호네스 메라 일병이 유일했다.

“사실 아까, 대장님한테 연락드렸어.”

“뭐라십니까?”

“할망구…….”

진지한 목소리로 이어진 말은 꽤 웃겼다.

“노망난 거 같던데?”

“예?”

뭔 소리야, 그게?

놀란 노아가 걸음을 멈추며 설명을 요구했다.

“별일은 없고.”

레토가 통화 내용을 전해 줬다.

“처음엔 화내더라고. 그 할망구, 예전부터 자기 손녀랑 선 좀 보라고 난리였거든. 하지만 결혼 상대가 너라니까 바로 축하하더라.”

“…….”

“할망구 손녀면 안 봐도 뻔하지.”

노아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아드벨로’잖습니까.”

마탑 대폭발의 원인이자, 왕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 더욱이 해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문이다.

해군 종사자에겐 아주 매혹적인 혼처였다.

그러나 레토의 생각은 달랐다.

“내 인생에 아드벨로는 할망구랑 그 괴짜 마탑주로 충분해.”

경험한 바가 있는지라, 두 여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레토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짧게 쳤다.

“그리고 내 인생에 여자도 너 하나면 충분하고.”

이내 몸을 낮춘 그는 노아에게 그렇지 않으냐며 물었다. 살짝 지어 보인 눈웃음은 약간 계획적이었다.

“듣기 좋으니 봐주겠습니다.”

쪽, 하고 입술 맞추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나저나, 벌써 오늘입니다.”

“그래…….”

입맞춤 한 번에 사르르 녹아내리던 레토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노아는 응원 겸 사심을 담아 그의 등허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잘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가르쳐 준 게 있으니까.”

레토는 노아의 도움을 받아 미리 준비해 둔 것들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떠올렸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근무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이어졌다.

남부 샤프 영지에 단 한 대뿐인 체티 사의 붉은 애마는 평소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긴장되네…….”

레토는 평소와 달리 격식을 갖춘 차림새였다.

밝은 감색 정장 안에는 푸른색이 도는 셔츠를 받쳐 입었다.

넥타이는 생략했지만, 손목에 찬 은색 시계로 단정한 인상을 만들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나한테 좀 비우호적이었는데…….”

“전에 잘 어울리지 않았나? 점수도 좀 땄잖아.”

노아가 레토의 머리를 정돈해 주며 말했다.

“너 병문안 갔을 때 말이야.”

“아아…….”

노아는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레토가 병문안을 다녀간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클라레는 대뜸 ‘후회남은 굴러야 한다!’라는 주제로 열심히 인형 놀이를 선보였었다.

침대에 누운 노아 앞에서.

무려 2시간 동안 절찬 상영했었다.

“후회남? 후회하는 남자를 뜻하나?”

“대충 그런 거지.”

“그럼 그대의 언니는 뭐라고 안 했어?”

“아스는…….”

칼을 갈았다.

“나 진짜 밉보였나 보네.”

“아니, 진짜로 칼을 갈았어.”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춘 사이, 노아가 손으로 동작을 흉내 냈다.

“이렇게, 숫돌로 칼을 진짜 갈았어.”

“…….”

“그 칼로 널 조각조각 발라낼 거래.”

그리고 그 옆에선 클라레가 등신대 식칼토끼 인형의 다리 사이를 발로 차면서 필살기를 연습했다.

“…이런.”

때마침 파란불이 켜졌다. 붉은 애마는 이제 시내를 지나 샤프 영지에서 유일한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유언장이라도 써 둬야 했을까?”

운전대를 쥔 레토의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후우…….”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어지간한 중상모략도 어린애 장난처럼 다루고 이겨 낸 저에겐 무서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의 가족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건, 천하의 미친개에게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분도 지팡이 등반이 가능할 정도로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적이다!”

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클라레가 두 팔을 흔들며 환영했다.

“언니를 울린 나쁜 놈! 돌아가아!”

언니의 결혼 상대를 맞이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하지만 꼬마 아가씨는 벌써 잠옷 차림이었다.

너 같은 아저씨를 위해 예쁘게 치장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외치는 중이었다.

“어머, 아가씨도 참.”

뒤에서 지켜보던 아스가 클라레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귀한 곳에 오신 누추한 분을 왜 그리 환영하신담. 제가 가지고 온 소금 뿌리실래요?”

품에 안긴 클라레가 하얀 유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아르르르르!”

“자, 이렇게 뿌리세요.”

“아르르르! 가! 가란 말이야!”

너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어!

클라레는 으르렁거리면서도 아스가 건네준 소금을 팍 뿌렸다.

“이야, 이거 참.”

차창 너머로 광경을 지켜보던 노아가 옆을 힐끔거렸다.

“역시 가족이 최고라니까.”

“…….”

“그러게 좀 잘했어야지.”

노아는 레토의 어깨를 두들기며 홀로 밖으로 나갔다.

“하아…!”

차에 남은 레토는 운전대에 기대 쓰러졌다.

빠앙, 하고 경적 소리가 구슬피 울렸다.

“시끄러워!”

여전히 아스의 품에 안긴 클라레가 한 번 더 차에다 소금을 뿌렸다.

***

열성적인 환영과 함께 저택에 들어선 레토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곧 식사가 준비될 거예요.”

“아저씨 줄 건 없지롱! 그냥 가!”

“진정하세요, 아가씨. 그래도 작은 주인님을 이곳까지 태워 주셨잖아요. 소금 탄 물이라도 드려야죠.”

“소금도 아까워. 언니랑 아스가 힘들게 벌어오는 돈인데.”

“우리 아가씨는 어쩜 말도 이리 예쁘게 하실까!”

의기투합한 예비 처형과 처제를 보자니, 레토는 오늘 결혼 허락은커녕 제 목숨이나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노아가 미리 도와준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도 잘 안 통할 거 같았다.

“아저씨.”

노아가 옷을 갈아입으러 가고, 아스가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나, 다 들었어.”

여전히 잠옷 차림인 클라레가 직접 손님을 접대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적에는 나름 예의를 갖춰 줬던 꼬마 아가씨였다.

하지만 지금은 레토를 악당으로 인식했는지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저씨가 언니 힘들게 했다면서!”

“으음, 어른의 문제랄까…….”

“어른의 문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잠옷 배 부위에 그려진 식칼토끼가 꿀렁거렸다.

시뻘건 피가 묻은 식칼을 든 토끼는 가위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린애한테 제대로 설명 못 한다는 건, 진짜 나쁜 짓을 했단 거야.”

수준 높은 입담에 레토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반, 올챙이배를 볼록 내민 채로 제게 위협하는 어린 처제가 귀여워서 웃음을 참는 게 반이었다.

“정말…….”

볼록한 배 위로 팔짱을 올린 클라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니까 할머니가 나한테 가장의 임무를 주고 간 거야.”

그 말에 레토는 이 집에 없는 또 한 명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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