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45)

19.

“저희 딸이 학교에서 들었다고 합니다.”

“노아 대위의 여동생과 델라트 경의 아들이 다퉜다는데, 그때 델라트 영식이…….”

“그나저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달 교류라고 해도 일가족까지 데려오는 경우가 있습니까?”

레토는 아이스 중령이 했던 말을 찬찬히 떠올렸다.

처음부터 수상한 방문이었다.

‘그래서 뻔했지.’

그들은 개인 함선에 과도한 관심을 보였다. 지독한 훈련을 견딘 것 역시 개인 함선에 어떻게든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풍경이 참 좋죠?”

레토가 운전대를 한 손으로 쥔 채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서 보는 석양이 무척 근사하죠. 사실 석양은 여기보다 오케아누스 영지에 있는 해군사관학교가 더 장관…….”

레토는 델라트 경과 함께 개인 함선이 보관된 무기고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군용차까지 친히 운전하면서 길 여기저기를 알려 줬다.

델라트 경은 그 길을 전부 머릿속에 외웠다.

“…괜찮습니까?”

어느 정도 길을 외운 델라트 경이 슬쩍 물었다.

“개인 함선은 국가적 보물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보관된 장소가 기밀일 터인데, 이렇게 쉽게 길을 가르쳐 줘도…….”

“그 따위 게 무슨 보물이라고.”

말하던 중에 끼어든 레토가 비아냥거렸다.

“…왕국의 모든 기술을 집약한 최고의 작품이잖습니까.”

델라트 경은 대놓고 무시를 당했음에도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저 시건방진 놈도 개인 함선이 사라지면 관리 소홀로 크게 처벌받을 거다.

그 순간을 망상하며, 델라트 경은 애써 차분히 말했다.

“많은 나라에서 탐내는 기밀인데, 내부에서도 보안을 철저히 하는 게 옳지요.”

“보통은 그게 정론이지요.”

곧 군용차가 멈췄다.

“하지만 이건 좀 다릅니다.”

직접 보면 알 거라며, 레토가 시동을 끄며 차에서 내렸다.

도착한 곳은 정말 예상 밖의 장소였다.

델라트 경이 얼추 상상했던 곳은 철저한 경비로 삼엄한 환경이었다. 건물도 당연히 창문 하나 없이 삭막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긴…….”

하지만 그가 마주한 건 아주 작고 낡은 창고였다.

잘 봐줘야 창고지,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들어가는 길목에는 잡초가 무성해서 걸을 때마다 발목이 걸릴 정도였다.

“아담하고 좋죠?”

“아담……?”

델라트 경이 머뭇거리는 동안, 레토는 이미 무기고 입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레토는 주머니에서 시커먼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자, 이걸…….”

명함을 낡아빠진 문고리에 가져가 대니, 철컥 소리가 났다.

동시에 무기고를 둘러싼 보호 마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빛을 뿜으며 불투명하게 일렁이던 보호벽은 기이한 소리를 내더니 다시 모습을 감췄다.

“…….”

이를 본 델라트 경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레토는 다 이해한단 듯이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던 문짝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벽 안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자동문이었다.

“세상에……!”

내부는 정말 좁았다.

무기고 자체도 작았지만, 내부는 외관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어깨 부딪히며 들어갈 정도였다.

양쪽 벽면에는 복잡한 전선이 연결된 진열장이 있었다. 진열장 안에는 시커멓고 네모난 서류 가방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개인 함선입니다.”

“…….”

“아들라보르 왕국의 모든 기술을 집약시킨 정수이자,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어 준 애증의 동지죠.”

“이게…….”

개인 함선을 응시하는 델라트 경의 눈이 반짝였다.

“이게, 개인 함선…….”

그는 이제 탐욕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만 있으면 제 도박 빚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던 레토가 친절히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역겨운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불쾌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가 다가오는 새벽을 기다리는 걸, 개인 함선에 정신 팔린 델라트 경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레토와 델라트 경이 차를 타고 무기고를 떠난 후.

“여깁니다, 여기!”

반대편 쪽에서 아이스 중령과 페르아타 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개인 함선을 보관하는 무기고입니다.”

두 번째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

그날 오후.

“중장님.”

피스트 준위가 레토의 책상 위로 두꺼운 보고서를 올렸다.

술집 ‘아콘’에서 받은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고, 거기에 추가 정보를 더 붙인 것이었다.

레토는 보고서를 넘기며 눈을 빠르게 움직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로 불량하게 앉아 있건만, 권태롭기 짝이 없는 그 자세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위압감이 느껴졌다.

‘역시 빚이 많았군.’

델라트 경은 왜 처자식까지 데리고 남부로 내려왔나.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자제가 왜 굳이 학교를 다니는가.

‘돈이 없어서지.’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으나, 델라트 가문의 재정은 상당히 궁핍한 상태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내일모레 파산 직전이었다.

이유는 7년 전, 그 가문 출신의 기사가 남부에서 저지른 항구 화재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왕국은 함선으로 이뤄진 연대를 연합제국에 파견할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

그때 처음 선보이는 함선도 있었다.

200명 이상 승선이 가능한 거대 규모에 유도탄까지 장착된 최신식 함선.

어마어마한 비용과 기술력이 투입된 만큼,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올 거라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함선은 출정하지 못했다. 웬 미친 기사 놈들이 항구에 불을 지른 탓이었다.

이 일로 출항 대기 중이던 함선 1대가 완전히 소실되고, 3대가 출항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불길을 잡는다고 해군 다섯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범인들은 현장에서 바로 잡혔다. 야밤에 술에 취한 채로 불을 지른 탓에 자신들도 화상을 입고 질질 짜고 있었다.

범인들은 곧장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변명했지만, 전시 상태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냈기에 엄벌이 불가피했다.

결국 이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각 가문에 거액의 벌금을 청구했다.

‘그래도 델라트는 재기의 여지가 있었는데.’

하필 후계를 잘못 찾아서.

델라트 가문은 어쨌건 마탑이 폭발한 이후로도 끝까지 버틴 귀족 가문이었다.

재정적 흔들림은 있었을지언정 조금만 노력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새로 찾은 후계가 도박 중독자였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델라트 출신 기사는 다시금 남부에서 범죄를 저지르려 했다.

‘처자식을 데려오면서 수도 저택을 팔았고…….’

현재는 플랜시 소장이 제공한 어느 저택에서 지낸다고.

가정교사를 고용할 돈이 없으니 자식을 학교에 보냈던 거고, 그날 학교에서 만났던 가문 변호사의 진짜 정체는 밀입국 브로커였다.

‘참 재미난 사람이야.’

유쾌한 감상과 반대로, 가늘어진 붉은 눈동자는 무료함만을 담고 있었다.

“중장님.”

때마침 보고서를 덮던 레토가 고개를 들었다.

“…벨로 대위.”

어느새 나타난 노아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스트 준위는 그새 옆으로 물러나 두 사람이 대화를 편히 나누도록 배려 아닌 배려 중이었다.

“내일 저녁, 시간 되십니까?”

“혹시 데이트 신청입니까?”

“그렇습니다.”

노아는 순순히 긍정했다.

“…어?”

놀란 레토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당연히 ‘성희롱으로 신고할 겁니다.’, ‘정신 좀 차리십시오.’라고 반박할 줄 알았다. 늘 그래왔으니까.

“내일 괜찮으시다면 저와 데이트하시겠습니까?”

하지만 노아는 한 번 더 확실하게 물었다.

“근사한 저녁을 먹고, 호텔 가서 하룻밤 묵고 오는 거 어떻습니까? 좋아하시던 종류의 속옷도 준비하겠습니다.”

푸우우우!

기어코 아이스 중령이 마시던 차를 뿜었다.

가까이에 있던 셀린 보르 중위가 홀딱 젖었지만, 그녀 역시 돌기둥처럼 굳어 버린 채였다.

“진득하게 놀아 보시겠습니까?”

이젠 사령부실에 있던 특함 대원 전원이 놀랐다.

“…우와.”

진심으로 놀란 레토는 노아에게 잠시 멈춰 달란 의미로 손을 뻗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주책없이 씰룩이는 제 입꼬리를 황급히 쓸어내렸다.

“오늘 대위가 왜 이러지?”

저도 모르게 당장 한바탕하자고 역제안을 할 뻔했다.

“미인계라고 생각하십시오.”

“아주 잘 먹히는 미인계라 당혹스러워…….”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으음…….”

한참을 고민하던 레토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거절이었다.

“내일 저녁에는 내가 당직이거든. 유감스럽지만 미인계는 다음 기회에…….”

“그럼 되었습니다.”

데이트를 거절당한 노아는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받고 있는데도 혼자 태연했다. 어딜 봐도 데이트를 거절당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묘하게 후련한 모습이 도리어 의아할 정도였다.

“야, 노아 너 설마…….”

아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두에게 보여지는, 막 그런 거에 눈 뜬 거야?”

“치티아 중위, 머리 박아.”

“어휴, 그건 아닌가 보네.”

아미는 내심 안도하며 머리를 박았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노아는 한바탕 소란을 일으켜 놓고는, 대원 중 가장 먼저 퇴근했다.

“…아이스 중령.”

그리고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한 레토가 진지하게 물었다.

“개인 함선 하나 없어진다고, 왕국이 망하겠어?”

아이스 중령은 이런 놈이 해군 2인자란 사실이 너무 슬펐다.

***

마탑이 폭발하기 전만 해도, 밤을 지켜 주는 건 밤이었다.

어둠이 깔린 지상을 비추는 건 은은한 달빛, 아기자기한 별빛들이었다.

환한 대낮에 작열하는 태양과는 비교가 안 되는 발광임에도 누군가는 묵묵히 빛을 내는 달과 별을 더욱 찬양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

“…….”

숨을 죽인 채로 무기고에 몰래 진입하는 페르아타 경 일행 같은 이들이라든가.

그들은 오로지 달빛에만 의존해 수풀길을 걸었다. 사실 달빛도 불안했다.

지금 자신들의 모습을 해군에게 들킨다면 이 자리에서 처형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최대한 몸을 낮춘 채로 이동했다.

“…….”

앞서가던 페르아타 경이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여기다.”

아이스 중령과 함께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떠올리며 도착한 곳.

정리 안 된 잡초가 무성한 무기고였다.

뒤따라온 기사들은 영 못미더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페르아타 경은 보란 듯이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문고리에 올렸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개인 함선은 묵직한 검은색을 자랑했다.

“어서 움직인다.”

“…….”

“…….”

그러나 기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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