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45)

16.

개인 함선.

아드벨로 가문의 역작이자, 아들라보르 왕국의 모든 마법과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만든 희대의 무기.

군사용 무기라 알려진 바는 많이 없다.

하지만 개인 함선에 대한 성능은 소문으로 어느 정도 퍼져 있었다.

바다 위를 뜨다 못해 달리고.

잠수마저 가능하며.

장착된 조그마한 탄환으로 대형함선을 침몰시키기까지.

여기에 레이더망에도 포착되지 않는 기술도 탑재되었다니, 주변국에서 탐을 낼 수밖에 없는 보물이었다.

하지만 아드벨로 가문에선 이토록 눈부신 역작을 ‘미완성’ 취급했다.

“당연히 미완성이지.”

그리고 개인 함선을 처음 운항했던 레토 오케아누스 중장 역시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그거 처음 착용했을 때, 농담 안 하고 집 한 채를 짊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지금보다 2배는 무거웠어.”

“그때 바다에서 장군님을 안 만났더라면 물고기밥이 되었을걸?”

“방금 물고기밥 안 되어서 안타깝다고 한 새끼는 알아서 엎드려뻗쳐라.”

“아, 벨로 대위가 말한 거야? 그럼 대위 대신 옆에 있던 치티아 중위가 엎드려뻗쳐.”

기술이 집결된 만큼, 그리고 군용 무기인 만큼.

개인 함선은 엄청난 무게를 자랑했고, 이 때문에 상용화가 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왕실 기사들은 보호구를 들자마자 아차, 했다.

그리고 보호구를 착용하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그들은 바다에 입수하자마자 얼마 가지 못하고 꼬르르 가라앉았다.

“…죽었나?”

아이스 중령이 젖은 빨래처럼 널브러진 기사들을 힐끔거렸다.

“누가 살았나 확인해 봐.”

마침 근처에 있던 하사 한 명이 발로 툭툭 건드려 봤다.

“으으…….”

“쿨럭!”

아이스 중령이 방긋 웃었다.

“어휴, 다행히 안 죽었군요!”

중령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이게…….”

멋들어지게 넘겼던 붉은 머리가 미역 줄기처럼 엉망이 되어 버린 페르아타 경이 헥헥거리며 물었다.

“고, 고의인 겁니까?”

“예?”

“이, 이거, 콜록! 가, 가혹, 가혹 행…….”

“설마 이걸 가혹 행위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듣는 사람 서운하게!

아이스 중령이 질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자기 뒤에서 떠들고 있는 대원들을 가리켰다.

“으으으, 발 기분 나빠…….”

“나중에 발 바꿔.”

“…이걸 어떻게 바꿉니까!”

“노아, 저녁에 밥 먹으러 가도 돼?”

“아스가 아미 너보고 그만 오래.”

“거짓말! 아스 언닌 날 아낀다고!”

특함 대원들은 힘든 내색 없이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는 중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보호구를 아직도 착용 중이었다.

“…….”

물에 빠져 창백해진 기사들의 안색이 더욱 허옇게 질려 갔다.

심지어 저들은 물에 빠진 자신들을 보호구를 찬 채로 건진 다음, 자신들 몫의 훈련을 다시 해내기까지 했다.

“보십시오, 다들 멀쩡하지 않습니까.”

아이스 중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기사들은 그 태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특함 대원이라면 꾸준히 행하는 훈련입니다. 저희는 다리에 추를 더 달고 하지요.”

원래는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가서 이곳 항구까지 헤엄쳐 오는 게 정식 훈련이었다.

“그러지 않길 잘했군요.”

“…….”

기사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화끈거렸다.

‘젠장……!’

페르아타 경이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이래 봬도 자신들은 왕실 기사단에서 실력으로 나름 자부했다.

전설 속 ‘오러’를 다루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자신들만큼 강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의 꼴이 비참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틈을 봐서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이번 교류가 어쩌면 유일한 기회다.”

페르아타 경은 이를 악물었다.

개인 함선에 대해 알아내려면, 다른 수를 써야 할 것 같았다.

“…….”

“…….”

노아와 아이스 중령은 그런 페르아타 경을 눈에 담았다.

***

“남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델라트 경!”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자아, 여기 한 병 더 추가요!”

기사들이 바닷물 흠뻑 마시며 염분 섭취하는 동안.

“역시 술은 대낮에 마시는 술이지!”

레토의 주도 아래, 해군 장성들은 대낮부터 모여 델라트 경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장소는 남부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술집이었다.

가게 이름은 ‘아콘’.

“이 새끼야……!”

그리고 술집 주인인 락소는 계산대에서 이를 갈았다.

“너 때문에 내가 휴일에도 이 대낮에 문을 열었다고!”

“돈 벌고 좋네.”

레토는 계산대 테이블에 기댄 채로 수표책에 제 서명을 휘갈겼다.

그리고는 한 장을 쫙, 찢어 락소에게 넘겼다.

“…레토 오케아누스.”

수표를 받은 락소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돈 벌게 해 주겠단 놈이, 해군 명의 수표를 줘?”

“그럼 내 명의로 된 걸 주랴?”

“당연하지! 그래야 바가지를 씌울 거 아냐!”

“그러기에 내가 너무 청렴한 군인이라서…….”

“대낮에 술 처마시는 군인들을 언제부터 청렴하다고 하디?”

레토가 준 수표는 무기명이었다. 하지만 락소는 차마 여기에 가격을 과장되게 쓸 용기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짜증 나는 건 또 있었다.

“군종실장님은 여기 왜 있는 거냐?”

대낮부터 펼쳐진 술자리는 어색하긴커녕 화기애애했다.

왜냐하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 몸 바쳐 흥을 돋우는 사람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마시라고 합니다! 어떻게? 어머님의 지극하고 고결한 은총이 내린다! 샤랄라랄라라!”

바로 화려한 폭탄주 묘기를 선보이는 베네딕토 대령이었다.

그는 장병들의 종교 및 신앙생활을 돕는 군종실의 실장으로, 본부 내에서도 신실한 신앙자로 유명했다.

그리고 ‘술자리의 귀염둥이’로 더 유명했다.

마침 베네딕토 대령이 테이블 위에 쪼르르 선 맥주잔들 사이마다 양주잔을 떡 얹고는, 손날치기로 빠트리는 재롱을 선보였다.

“아이고, 군종실장 잘한다!”

“베네딕토 대령이 최고구먼!”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어머님의 은총’이군!”

장성들이 철부지 소년처럼 꺄르르 웃었다.

이를 지켜보는 레토의 얼굴엔 흡족한 미소가 걸쳐졌다.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

“세상에……!”

락소가 못 볼 꼴을 본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성호를 황급히 긋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 그 아들에 그 아버지야.”

그렇지 안 그러냐며 레토가 물으니, 락소가 눈으로 욕했다.

“난 술 저렇게 안 마셔.”

“하지만 술장사 하잖아.”

“너랑 대화하면, 바다에 이유 없이 뛰어들고 싶다…….”

한숨을 푹 쉰 락소는 시끌벅적한 내부를 슬쩍 살폈다.

“…그래서, 누구?”

귀찮음이 가득했던 보랏빛 눈동자에 이채가 번뜩였다.

“일전에 기사랑 같이 여기 온 쪽?”

“모은 거 있지?”

“알고 있으니까 온 거 아니야.”

계산대를 벗어난 락소가 값비싼 술을 장식해 둔 진열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커다란 돛이 그려진 양주병 뒤로 팔을 쑥 넣었다.

“자.”

뒤에서 꺼낸 건 웬 너저분한 서류뭉치였다.

“더럽다고 따지지 마라.”

“나 아무 말 안 했어.”

레토는 근처에 있던 누런 봉투에 서류를 쑤셔 넣어 반쯤 접었다.

봉투는 단숨에 두 배로 부풀었지만, 레토의 손아귀에서 단단히 붙잡혔다.

“야, 그런데.”

본론을 대충 끝낸 락소가 다시 계산대로 돌아오며 물었다.

“그 아가씨랑은 다시 만나는 거야?”

레토는 의미 모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내가 그것까지 알아봐 달라고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이게 바로 정보상의 슬픈 점이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으다 보니,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아 버리게 된다.

락소에게 가장 알기 싫은 정보 중 하나가 바로 제 친구의 연애사였다.

“너한테는 너무 아까운 여자야.”

“그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알면 좀 놔줘라….”

락소는 예전에 몇 번 만난 적 있던 노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남부는 몰론이고 수도에서도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거기다 실력도 출중하니, 분명 몇 년 뒤에 큰 인재가 될 거다.

“…….”

애먼 봉투만 주물럭거리던 레토는 여전히 침묵할 뿐이었다.

그러나 웃음 뒤에 감춰진 의뭉스러운 심보까진 감추지 못했다.

“…넌 진짜 나쁜 놈이야.”

눈치챈 락소가 혀를 내둘렀다.

“불쌍한 아가씨 같으니.”

“괜찮아, 괜찮아.”

레토가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런 나를 사랑한다잖아.”

“…….”

에휴.

락소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

“……!”

클라레가 창밖을 휙 돌아봤다.

“왜 그래?”

옆에서 같이 책을 읽던 리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갈래로 땋아 묶은 머리칼도 같이 흔들거렸다.

“…갑자기 섬뜩해졌어.”

클라레가 두 손으로 팔을 벅벅 쓸었다.

“막, 으음, 그러니까…….”

잠시 고민하던 클라레가 딱 어울리는 표현을 떠올렸다.

“웬 변태가 우리 언니를 노리는 기분이었어!”

“으응?”

리리가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클라레는 제 생각이 옳단 듯이 퍽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단발머리 센샤가 호다닥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우리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아!”

“왜?”

“나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여자의 직감이 경고했어!”

클라레의 말에 센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자의 직감이면 증거가 충분하지!”

독서 시간인 것도 잊은 채, 꼬마 숙녀들은 조그만 머리를 맞댄 채로 수다를 시작했다.

“혹시 노아 언니한테 남자 생겼어?”

“언니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어.”

“어머어머!”

“세상에, 어떡해!”

클라레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로 곤란함을 내비쳤다. 센샤와 리리가 서로 손을 잡은 채로 오두방정을 떨었다.

“어떤 남자야?”

“허우대는 괜찮아. 근데 내면이 좀 문제야.”

인성이 좀 덜 된 거 같다며 클라레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 말에 리리와 센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우리 언니보다 직급은 높고, 돈도 더 벌어.”

클라레는 레토가 지난 저녁에 사 온 백포도주를 떠올렸다.

아스가 그날 자기 전까지 좋아하던 걸 보면 비싼 게 틀림없었다.

“어? 상대가 군인이야?”

리리가 애달픈 한숨을 흘렸다.

그 나이답지 않은 성숙하고 배려 깊은 표정도 눈에 띄었다.

“어우, 어떡해! 군인이랑 결혼하면 힘들잖아.”

“맞아. 울 엄마도 나보고 절대 군인이랑 결혼하지 말랬어. 아빠도 군인이지만 똑같이 말했는걸.”

센샤도 동의했다.

“근데 진짜 잘생겼어.”

어딘가 섬뜩한 내면이 용서될 정도로 정말 잘생겼다며, 클라레가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내가 여태 본 사람 중에 가장 예쁘고 멋졌어!”

“야, 얼굴이 다가 아니야.”

센샤가 현실을 보라며 읽던 책을 덮었다.

“우리 고모 봐. 얼굴만 보고 갔다가 다시 또 왔잖아. 엄마랑 아빠가 고모 언제 이혼하는지 내기했는데, 엄마가 또 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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