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플랜시 소장의 비리 혐의에 대해서는 두 달 전부터 꾸준히 제보가 들어왔다.
하필 또 가장 해선 안 될 군 범죄만 골라 저질렀고, 시기를 보아하니 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한 날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내가 찜찜하다 했어.”
출장 전날, 위와 같은 보고를 받은 아드벨로 대장은 이럴 줄 알았단 듯이 시큰둥했다.
“나 돌아오기 전엔 치워 놔라.”
“그러면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마.”
“애송아, 꼬우면 네가 대장 하던가.”
“나 살아 있는 동안은 못 하겠지만.”
그리고 레토에게 쓰레기 청소를 명하곤 냉큼 바다로 떠났다.
“…….”
보고서를 덮은 레토가 아이스 중령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할망구가 올 때까지 내버려 두는 거, 어떻게 생각해?”
“아마 저희 둘 다 다리에 시멘트 단단히 굳힌 채로 잠수하게 될 겁니다. 행선지는 지옥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자신은 천국행을 바란다며 야무지게 동행을 거절했다.
“게다가 제겐 짐승 같은 아내와 맹수 같은 새끼들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중령 없이도 잘 살 거 같은데?”
“그래서 봐 달라는 겁니다.”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가족들을 두고 눈 감을 수 없다며, 아이스 중령은 광기 어린 미련을 질척하게 내보였다.
“한데 중장님.”
농담은 이쯤으로 하고, 아이스 중령이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어쩌면 지금부터 나눌 대화가 가장 중요한 본질일 터다.
“국왕 폐하는 이 일을 알고 계실지…….”
“당연히 알고 있지.”
레토는 그렇기에 델라트 경이 이곳까지 내려왔고, 그토록 무례했던 교류단 방문이 승인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할망구가 출장 가기 전에 보고했을 거야.”
“이쪽에 버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왕도 제정신은 아니니까…….”
“중장님만큼 말씀이십니까?”
중령의 농담에 레토가 씩 웃었다.
“나만큼이나 미친놈이지.”
자리에서 일어난 레토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 둔 제복 겉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이스 중령을 지나쳐 제 사무실로 나갔다.
“아.”
문을 닫기 전.
“오늘 기사단들이랑 공동 훈련하는 날이지?”
“예, 곧 훈련 구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으음…….”
레토가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적당히 괴롭혀.”
“명 받들겠습니다.”
아이스 중령이 경례했다.
***
해군에 방문한 왕실 기사단은 총 7명이었다.
긍정적 관계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교류라기엔 인원수가 적고, 방문 전 통보부터 실제 방문까지 보여 준 무례 역시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기사단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이미 본부에선 이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아무리 하늘 아래 다 같은 군사라 해도, 오랫동안 왕국을 지킨 기사단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해군 본부는 어쩔 수 없이 교류 일정을 급히 짰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해군과 왕실 기사단의 합동 행사가 처음 있는 날이었다.
“…소문대로 크긴 크네요.”
기사 한 명이 조그맣게 소곤거렸다.
“여기는 이동할 때마다 마동력차를 타고 다니나 봅니다.”
“수도에도 아직 마동력차는 많이 보급이 안 되었는데…….”
첫 합동 행사가 열리는 곳은 해군들이 해상 훈련을 실시하는 본부 내 해수욕장이었다.
본부에서 마동력차를 타고 5분을 달려 도착한 곳으로, 해군만의 특수 훈련을 위해 지은 시설들이 많았다.
“게다가 오늘 아침 식사…….”
식사 이야기에 다들 군침을 꿀꺽 삼켰다.
“크로와상에서 버터 냄새가 났고, 샐러드에선 윤이 났어……!”
“소스도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거였어요!”
“뷔페였다고, 뷔페!”
“해군 놈들은 매일 그렇게 먹는다고?”
“아니, 그냥 우리가 와서 일부러 더 좋게 먹는 거 아냐?”
하지만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건 말하는 본인들이 더 잘 알았다.
방문 통보한 다음 날에 바로 도착했으니, 그 짧은 사이에 식사를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기상 소리도 웬 나팔 같은 게 아니라, 엄청 부드러운 종소리였잖아요…….”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놈들도 있더라?”
기사들은 정신이 혼미했다.
대놓고 낮잡아 봤던 해군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왕실 기사단보다 우수한 환경,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최첨단 시설 보유까지.
비교되는 모든 게 부러웠다.
그리고 질투도 샘솟았다.
“…정신들 차려.”
떠드는 와중에도 홀로 침묵하던 누군가가 엄히 말했다.
붉은 머리칼을 뒤로 바싹 넘긴 남자였다. 기사들은 그를 페르아타 경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여기 놀러 온 줄 아나?”
페르아타 경이 기사들을 한 명씩 노려보며 주의를 주었다.
그제야 풀어졌던 기사들이 입을 다물고 자세를 똑바로 고쳤다.
기가 바짝 든 모습에서 뜻 모를 긴장감을 감춘 이들도 있었다.
“기사님들!”
그때, 반대편 쪽에서 누군가가 기사들을 불렀다.
“도착하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스 중령이 사람 좋은 미소를 곁들인 채 손을 내밀었다.
“특함 사령부 소속인 듀라 아이스입니다.”
손을 맞잡은 페르아타가 아이스라 소개한 사내의 훈련복에 달린 계급장을 확인했다.
대나무가 두 개.
“…아이스 중령님이시군요.”
페르아타 경이 싱긋 웃었다.
“왕실 기사단 소속인 기베르 페르아타입니다. 오늘 훈련,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명예로운 왕실 기사단과 훈련을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예의 바른 형식적 인사를 나눈 뒤, 두 상관은 각자의 대원들과 기사들을 불렀다.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부하들이 열 맞춰 섰다.
“…….”
오오.
기사단 중 누군가가 소리 없는 환호를 내질렀다.
시커먼 아저씨들만 있을 줄 알았더니, 수도에서도 보기 힘든 미인이 숨어 있었다.
멋부림 따윈 전혀 없는 머리 묶음에 화장기 없는 얼굴, 후줄근한 훈련복과 냄새날 거 같은 시커먼 단화.
차림새는 영락없는 군인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노아는 추레한 차림으로도 단연코 눈에 띄었다.
기사들은 자기들끼리 눈을 맞췄다. 시시덕거리는 눈웃음과 은근한 턱짓이 불쾌감을 점점 키웠다.
‘…집중을 전혀 안 하네.’
정작 노아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가미 뻐끔거리는 빠가사리 보듯 심드렁한 눈빛이었다.
지금 아이스 중령이 훈련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거기에 제대로 집중하질 않았다.
“야.”
그때, 옆에 있던 아미가 팔뚝으로 노아를 툭툭 쳤다.
“델라트 경은 중장님이랑 같이 외출했어.”
“어디로?”
“아콘.”
노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결국엔 거길 갔단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아, 그러면.”
설명을 마친 아이스 중령이 기사단 쪽을 바라봤다.
“이대로 훈련을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으음…….”
페르아타 경이 잠시 머뭇거렸다.
“무례한 부탁인 건 아는데, 중령님과 여기 있는 대원들은 ‘특함’ 소속이죠?”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해군, 그리고 특함이라고 하면 개인 함선이 유명하지 않습니까. 한번 체험해 볼 수 있습니까?”
“아…….”
아이스 중령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경도 아시겠지만, 개인 함선은 아무나 쉽게 탈 수 없습니다. 저희 역시 정해진 훈련 때와 긴급 상황에서만 운행합니다.”
게다가 개인 함선은 여전히 개발 중인 신형 무기였다.
해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지만, 법적으론 아드벨로 가문의 소유품이었다.
아이스 중령이 위의 이유들을 언급하며 점잖게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
하지만 페르아타 경을 비롯한 왕실 기사단은 대놓고 표정을 굳혔다.
“에이, 그 뭐 대단한 거라고 그리 꽁꽁 감춥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기껏해야 갑옷 따위나 다름없는 건데.”
심지어 몇몇은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연약한 여자들도 타고 다닐 정도면, 안전성은 어느 정도 보장된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들은 노아를 비롯한 여자 대원들을 힐끔거렸다.
“…….”
“…….”
반면 노아를 비롯한 여자 대원들은 ‘뭐 어쩌라고?’, ‘뭔 헛소리래.’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격조차 없는 비아냥이었다.
“치티아 중위님…….”
맨 뒤에 있던 호네스 일병이 속삭였다.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겁니까?”
“청부 자살인가 보다.”
수도에서 유행하나 봐.
“왜? 화 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들은 중위님이나 다른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고……!”
아미가 씩 웃으며 호네스 일병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중령님!”
호네스가 귀를 붉히며 이러지 마시라고 허둥대는 동안, 아미가 아이스 중령에게 말했다.
“저렇게 애원하는데, ‘그거’라도 체험시켜 주는 걸 제안합니다.”
“‘그거’?”
아이스 중령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건 개인 함선을 타기 위한 기본 훈련인데…….”
“착용감도 얼추 비슷하고, 부족하겠지만 저들도 만족할 겁니다.”
“으음…….”
망설이던 아이스 중령이 기사단을 힐끔거렸다.
“이거라도 해 보시겠습니까?”
“어떤 훈련입니까?”
페르아타 경이 관심을 보였다.
“개인 함선을 운전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필수 기초 훈련입니다. 아드벨로 가문에서 직접 제안한 방법이죠.”
“오, 그거 괜찮군요.”
“하긴, 기사님들도 일단은…….”
기사들의 몸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던 아이스 중령은 고개를 잠시 멈칫했지만, 끝내 위아래로 끄덕였다.
“뭐, 해 보죠.”
대원들 쪽으로 돌아선 중령이 소리쳤다.
“무기고에 연락해라!”
잠시 후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대원들이 다가가 양팔에 하나씩 끼며 훈련 도구를 옮겼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짐 내리는 걸 같이 돕던 사병이 황당하단 듯이 물었다.
“설마 이 보호구로 기사놈들 수영시키는 겁니까?”
“몰라, 자기들이 하겠다잖아.”
“예? 미친 거 아닙니까?”
“그것 역시 나도 모르겄다…….”
“아이고, 젊은 사람들이…….”
쯧쯧, 혀를 내두른 보급병은 서둘러 트럭을 몰고 사라졌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노아가 보호구를 든 채로 기사들 앞에 섰다.
“훈련 방식은 간단합니다. 개인 함선 모양을 본딴 보호구를 착용한 뒤, 반환점이 표시된 부표가 있는 곳까지 수영하면 됩니다.”
그러고는 팔에 있던 보호구를 바닥에 내렸다.
쾅! 쾅!
“…….”
“…….”
기사들은 보호구가 떨어진 모래밭을 멍하니 바라봤다.
커다란 쇳덩이라도 떨어진 건지, 보호구 주변으로 엄청난 모래 파도가 일어났다.
“참고로.”
노아가 이어 말했다.
“무게는 약 40kg입니다.”
보호구는 개인 함선 무게와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