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45)

9.

“…….”

“오히려 이쪽은 정당방위지.”

노아가 클라레를 제 뒤로 숨기며 반박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다짜고짜 누구 과실이 더 큰지 따진다?”

제 언니가 변호사와 싸우는 동안, 클라레는 뒤에서 델라트 도련님을 놀리기 바빴다.

메롱 혀를 내밀거나 주먹 쥔 손을 보이거나.

“아가씨….”

아스가 이를 황급히 말렸다.

“보호자 분,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변호사가 한숨을 푹 내쉬며 혀를 끌끌 찼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니 가뜩이나 마른 얼굴이 이상하게 야비해 보였다.

“이분은 델라트 가문의 하나뿐인 도련님입니다.”

변호사의 목소리가 한층 무거워졌다.

“델라트는 수도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벌벌 떠는 귀족 가문입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왕실을 수호하는 왕실 기사단을 배출한 곳이지요.”

어쩌라고.

노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도 않는 협박을 들어야만 했다.

“도련님은 델라트 가문의 3대 독자십니다.”

그 역시 어쩌라고.

변호사의 먹히지도 않는 협박에 노아가 레토를 슬쩍 살폈다.

이 상황을 재미나게 구경할 줄 알았던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변호사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노아의 시선을 눈치채기 무섭게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로 바뀌었다.

‘3대 독자 아니죠?’

‘그건 맞아.’

눈빛으로 대화를 마친 노아는 그러느냐며 심드렁히 답했다.

“귀한 도련님이 상처 입어 유감이겠습니다.”

“델라트 부부께선 자식 사랑이 아주 깊습니다.”

그래서 애새끼 말버릇을 저렇게 들였냐.

델라트 부부의 자식 사랑이 얼마나 유별난지는 몰라도, 교육 철학은 누구보다 최악일 거라고.

그리고 변호사도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래도 저는 델라트 부부의 신임을 받는 변호사입니다.”

“…….”

“솔직히 벨라 양의 말씀대로지요. 하지만 아이들 싸움을 괜히 크게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흠, 하고 애먼 헛기침을 한 번 토하고는.

“아이들 싸움에 어른들이 너무 나서는 건 썩 보기 좋은 일이 아니죠. 그러니….”

은근슬쩍 노아에게 말했다.

“나중에 단둘이서 따로….”

더러운 속셈을 눈치챈 노아가 그의 목을 쥐려던 찰나였다.

“…저 말이 맞지.”

여태 침묵하던 레토가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어, 아저씨도 왔네요?”

“우리 처제 잘 지내고 있었군요.”

“아저씨 눈 삐었어? 나 지금 억울하게 붙잡혀서 집에도 못 가고 있잖아요!”

“아이고, 우리 처제의 심기가 이리도 불편하시네.”

어쩌면 좋으려나.

클라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던 레토는 변호사 앞에 떡하니 섰다. 노아는 그런 레토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굳이 말리진 않았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변호사는 그제야 레토의 존재를 알아챈 듯했다. 그는 저보다 한참이나 큰 레토를 살짝 경계했다.

“저도 보호자입니다. 클라레 양과는 처제와 형부 사이죠.”

“으음, 난 아저씨를 미친개라고 생각했….”

아스가 황급히 클라레의 입을 막았다.

“결혼하셨습니까?”

노아를 향한 변호사의 시선에 실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아니꼽습니까?”

기가 찬 노아가 도리어 되물었다.

“뭐, 그이가 어지간히 잘생기고 몸 좋아야지요. 질투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오늘 밤에도 아주 성심성의껏 봉사를….”

“호호, 우리 자기는 힘도 좋다니까.”

어느새 둘은 다정히 기댄 채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그러나 노아가 제 허리에 팔을 두른 레토의 손등을 몰래 꼬집는 걸, 아스는 목격해 버렸다.

그리고 혼자 별짓을 꿈꾸던 변호사는.

“…풉!”

“어허.”

“크큭…!”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선생님들의 비웃음을 받아야 했다.

변호사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아무래도.”

다시 안경을 고쳐 쓴 변호사는 아까보다 더욱 싸늘하고 비열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남부가 수도와 떨어진 곳이래도, 귀족 가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는 듯합니다.”

“…….”

“…….”

하지만 보호자 부부에겐 딱히 먹히지 않았다.

“그건 변호사님도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

레토가 뒤늦은 자기소개를 했다.

“인사가 늦었군요. 레토 오케아누스입니다.”

“제가 언제 이름 궁금하….”

오만방자하던 변호사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오, 오케아…!”

“사실, 저도 아이들 싸움에 변호사가 끼고 하는 건 좀 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레토가 제안했다.

“보호자끼리 대화를 나누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으응….”

클라레는 아스의 품에 안긴 채로 복도를 느릿느릿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아스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눈꺼풀만 끔뻑거렸다.

“아가씨 졸리세요?”

“아직은 괜찮아….”

“오늘 많이 놀라셨죠?”

피곤해서 그런 거라며, 자도 괜찮다고 아스가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클라레는 자고 싶지 않았다. 지금 교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스.”

“네, 아가씨.”

“오케아….”

“오케아누스 가문이 궁금하세요?”

“응!”

으음, 아스가 잠시 말을 정리했다.

“아들라보르 왕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강한 귀족 가문은 아시죠?”

“아드벨로!”

“그다음으로 강한 가문이 오케아누스예요.”

마탑이 폭발한 이후, 아들라보르 왕국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 중 하나가 바로 귀족 세력의 침몰이었다.

혁명 이후로 귀족의 절반이 신분을 포기했고, 나머지 절반은 작위를 팔다가 걸려 신분을 잃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귀족 가문은 거대한 혁명을 버틴 만큼, 그 위세와 영향력이 엄청났다.

“오케아누스 가문은 아주 명망 높은 무인 가문이에요.”

“무인?”

“군인이나 기사 같은 사람들요.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뜻하죠.”

오케아누스 후작 가문은 오래전부터 왕국을 수호한 기사 가문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읽는 위인전이나 연극 무용담에 자주 등장하는 영웅들은 대부분 이곳 가문 출신이었다.

“오케아누스는 군수산업으로 유명해요.”

“군수산업은 알아. 무기 만드는 거지?”

“맞아요. 아드벨로 가문도 무기를 만들지만, 그때마다 오케아누스와 의논하고 허락을 받아야 해요.”

그렇게 협력하여 만든 무기가 해군에 있는데, 바로 노아가 운전하는 개인 함선이었다.

“그럼 중장 아저씨도 귀족이네?”

“아주 유명한 귀족이죠.”

“저 망할 꼬맹이네 집보다?”

클라레가 굳게 닫힌 교무실 문을 가리켰다.

“훨씬 대단한 귀족이죠.”

변호사가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델라트 가문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대단한 귀족이었다.

“으흥!”

영악한 꼬마 숙녀는 이익 계산을 빠르게 끝냈다.

“이제부터 아저씨를 형부라 부르겠어!”

이런, 아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중장님은 귀족이 아니어도 대단한 분이에요.”

“얼마나?”

“중장님은 해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분이세요.”

“울 언니보다?”

“작은 주인님이 그분의 부하시니까, 당연히 높죠?”

거기다 해군의 대장이 장기 출타를 떠나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 빈자리를 그다음 직위인 레토가 임시로 도맡는 중이었다.

즉, 현재 해군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은 레토였다.

‘이렇게 보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아스가 바닥에 클라레를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작은 주인님이 사귀셨던 사람이 오케아누스였다니….’

사실 아스는 노아의 옛 애인이 레토였다는 사실에 제법 충격을 받았다.

사귀어도 왜 또 그런 미친개랑 사귀었던 건지,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큰 주인님이 이를 아시면 뭐라고 하실까?’

그분이라면 딱히 뭘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아스는 걱정이었다.

‘어쩌면 알고 계실지도?’

생각해 보니 그쪽이 오히려 가능성이 있었다. 그분이라면 이미 모든 것을 알고도 재미있을 거란 이유로 모르는 척했던 걸지도 모른다.

‘…에휴.’

그리 생각하니, 아스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차라리 내일 아침 식사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아가씨, 내일 아침에 뭐 드시고 싶으세요?”

“팬케이크! 삶은 참치 으깬 샐러드랑 같이!”

“그럼 나중에 시장에 가야겠네요.”

역시, 이쪽이 더 이득 있는 고민이었다.

***

아스와 클라레가 포근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역시 델라트 가문은 그 명성대로 대단하군.”

“…….”

“범상치 않다는 거야 내가 일찍이 알아봤지. 남부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본부에 연락하는 배짱부터 아주 마음에 들더라고.”

“…….”

“그리고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어 더욱 즐겁고 말이야.”

입꼬리를 올린 채 하하 웃는 것치곤, 레토의 붉은 눈은 싸늘하다 못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시선을 오롯이 받고 있는 델라트 경은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성질머리하곤.’

노아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레토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완전히 역전되었다.

델라트 가문의 변호사는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오만방자하던 생각했던 델라트 도련님도 그제야 뭔가 이상하단 걸 알아챘는지 눈치를 마구 살폈다.

그리고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학교에 도착한 델라트 경의 표정은 불쌍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 알 바 아니지만.’

노아는 레토의 빌어먹을 성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럴 때만 말이다.

‘그나저나 저 사람이….’

델라트 경이었군.

그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귀족’다운 생김새였다.

반듯한 이목구비와 고급스러운 의상, 이상하리만치 바싹 뒤로 넘긴 머리까지.

심지어 머리엔 기름이 잘잘 흘렀다.

그게 살짝 역겨웠던 노아는 곧장 레토의 머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도 근무 중에는 항상 머리를 넘기고 다니는데, 노아는 항상 반듯해서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내가 알기론 지금 델라트 경은 해군 본부에 있어야 하지 않던가?”

“아, 그건….”

“어째 본부에서 도착한 우리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군.”

“…….”

“거기다 본인 대신 변호사가 대신 오고….”

여태 쥐 죽은 듯이 있던 변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이해는 하네.”

몸을 살짝 숙여 델라트 경과 가까이 한 레토가 한 번 더 속삭였다.

“바삐 오시느라 여독이 많이 쌓였겠지.”

델라트 경의 굽은 등이 움찔했다. 사색이 된 채로 숙인 고개는 차마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나서서 뭐하겠나.”

레토가 그렇지 않으냐며 노아에게 물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노아는 한 가지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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