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45)

8.

“이거 무슨 마법이랬더라? 부상마법?”

아미가 노아에게 물었다.

“부상마법 하나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

노아는 제 몸을 두른 다양한 마법들을 감지했다. 함선은 다양한 마법이 복합적인 체계로 이뤄진 기술이었다.

“부상마법에 균형마법이 더해져 어지간한 파도에서 견디게 했어. 그리고 체온 유지 마법을 비롯해 다양한 보호 마법이 우리가 바다에서 표류해도 장기간 견딜 수 있게 했고.”

노아의 설명에 호네스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위님! 모르시는 게 없습니다!”

“오, 우리 막둥이.”

아미가 호네스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네스가 얼굴을 붉히며 이러지 마시라고 허둥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 출항이지?”

노아가 물었다.

“사실 그래서 좀 긴장했습니다.”

그 말마따나, 호네스의 미소는 살짝 경직된 채였다. 게다가 물에 뜬 두 다리도 어기적거리는 꼴이 꽤 웃겼다.

갓 태어난 사슴보다 연약해 보였다.

“잘할 수 있을까요….”

특함에서 가장 어리고 계급이 낮은 그는 하필 첫 출항이 신형 함선을 직접 운행하는 거라, 혹여 실수라도 할까 겁이 났다.

“그 실수 감싸라고 우리 선배들이 있는 거야.”

노아가 호네스의 굽은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러니 걱정 마.”

“이 멋진 누님들만 믿으라고.”

“그래도 얜 믿지 말고.”

“오히려 대위님을 믿었다가 잡아 먹히는 수가 있어. 일전에도 비품실에서 웬 미남 상관이랑….”

“치티아 중위, 머리 박아.”

“바다에서 어떻게 머리를 박아!”

“…….”

갑자기 싸우기 시작한 선배님들 사이에서, 호네스는 겁에 질린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이리 온! 어서!”

“어이구, 우리 막내가 놀랐어?”

그 틈에 다른 대원들이 호네스를 빼냈다. 그들 역시 부대 막내를 귀여워하며 놀렸다.

“다들 지금 놀러 왔나?”

레토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지적했다.

“곧 신호가 올 거다. 다들 준비하도록.”

그 말에 대원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레토는 호네스 앞에 섰다.

“메라 일병.”

“일병 호네스 메라!”

“오늘이 첫 출항이랬지?”

“그렇습니다.”

레토는 긴장한 막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너무 긴장하지 마.”

“아….”

호네스는 감동했다.

“실수하면 기껏해야 물고기 밥밖에 더 될까?”

레토가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낚시 실력 알지?”

더럽게 못하는데, 낚시 미끼 다지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

“그러니 적당히 하면 돼.”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겁에 질린 일병의 외침이 바다를 가득 채웠다.

“…….”

덩달아 기함하는 대원들 속에서, 노아 혼자만 내 저럴 줄 알았단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찰나, 노아는 레토와 눈이 마주쳤다. 레토는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한 눈웃음을 지었고, 노아는 이를 떨떠름하게 응시했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제군들.]

그때였다.

[돌고래가 길을 텄습니다.]

통신 기구에서 신호가 들렸다.

“전원 안전거리를 확보해라!”

레토의 지시에 대원들이 멀찍이 떨어졌다. 초승달 모양의 진형으로 맞춰선 그들은 곧 전신에 마력을 감돌게 했다.

‘집중….’

노아는 투명한 보호막이 달걀껍데기처럼 자신의 일정 주위를 둥그스름하게 감싸는 것을 느꼈다.

노아가 디디고 선 해수면 위로도 동그란 파도가 점점 넓게 퍼져 갔다.

드디어 바다를 마음껏 달릴 준비가 끝났다.

“후우….”

누군가의 긴장 어린 숨결이 고요한 바다의 적막을 깨는 순간.

“전원 출항!”

여섯 함선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며 순항하는 함선은 곧 해군의 훈련용 해역에 진입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훈련 중인 다른 부대의 함선이 조그맣게 보였다.

“대열 분리한다!”

레토의 지휘 아래, 아미와 또 다른 대원 한 명이 조금씩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럼 난 내려간다!”

“나중에 봐!”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아미는 허리춤에 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아미의 몸이 점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스넙핀, 수중 진입했습니다.]

[소우사, 마찬가지로 수중 진입했습니다.]

노아는 곧 귀에 들리는 통신에 집중했다.

“중장님! 곧 합류합니다!”

“지금부터 전원 노트를 올린다!”

바다 위, 그리고 아래.

여섯 함선이 일으키는 파도가 더욱 거세졌다.

***

시범 운행을 무사히 마친 여섯 대원은 호위함에 올라와, 선내 휴게실에 자리 깔고 드러누웠다.

“아드벨로 이 미친 새끼들, 시착자 생각은 안 하고 개발하냐!”

“이번 건 균형 잡기 진짜 어렵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흔들려도 바다에 빠질 것 같았습니다.”

“야, 우리는 이번에 공기 여과막이 얇아서 물이 새더라!”

“하여튼 마탑 놈들 다 미쳤다더니….”

그리고 신형 함선 평가를 겸한 뒷담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함선을 타 본 호네스는 기절 중이었다.

“벨로 대위.”

그때 레토가 노아를 불렀다.

“집에서 전화 왔다.”

그 말에 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주인님!]

서둘러 연락실로 향하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스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노아가 다급히 물었다.

[아가씨가 학교에서 동급생이랑 싸웠대요!]

그 말에 노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휴, 난 또 뭐라고.”

하지만 진짜 심각한 건 그 뒤에 숨겨져 있었다.

[싸운 학생이 수도에서 온 델라트 경의 아들이래요.]

노아를 비롯해 연락실에서 이 통화를 함께 듣고 있던 다른 대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처제 장하네.”

그 속에서 레토 혼자만 기특하단 듯이 웃고 있었다.

***

함선이 항구에 닿기 무섭게, 노아는 양해를 구하고 학교로 향하기로 했다.

“태워 줄까?”

서둘러 근무복을 갈아입고 나오니, 탈의실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레토가 물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거절할 줄 알았더니.”

레토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아는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이래서 널 좋아해.”

레토는 제 고백에 진절머리를 치는 노아를 보며 히죽 웃었다.

“수줍어하는 모습도 귀엽네.”

“한 번쯤은 병원에 가 보심이 어떻습니까?”

노아가 진심으로 그의 정신머리를 걱정했다.

붉은 애마를 빠르게 몰아 도착한 곳은 마레이 학교였다.

애써 침착하게 있었지만, 노아의 속은 사실 말이 아니었다.

교정 앞에 세워 둔 푸른 깃발이 마구 나부꼈다. 마치 노아의 걱정스러운 마음처럼.

교무실로 향하려던 노아가 멈칫했다.

“…따라오시는 건가요?”

뒤따라오던 레토가 싱긋 웃었다.

“나 여기까지 운전해 줬는데?”

“그거야….”

“게다가 델라트 경의 아들이라잖아.”

“…….”

“한 번 따로 만날 생각이긴 했는데, 우리 처제가 자리를 마련해 줬군.”

감히 자신이 있는 이곳 해군에 그딴 무례함을 선물하다니.

이에 감동한 레토는 델라트 경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역시 우리 처제가 최고라니까.”

“누가 처제입니까.”

노아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따라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레토는 뻔뻔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

도착한 교무실은 정말 어수선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용 소파에 선생님들이 모여 있었다. 클라레와 아스는 그 속에 있었다.

“작은 주인님!”

노아를 발견한 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붕붕 팔을 흔들었다.

“벨로 학생의 보호자 되십니까?”

머리 위에 검은색 줄무늬 다섯 줄이 그어진 선생님이 다가왔다.

그는 마레이 학교 부장 선생님이었다.

“나라를 지키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는 노아에게 짧은 경의를 표한 뒤에 사건 경위를 들려줬다.

“두 아이가 하교 중에 운동장에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상대 학생 측에서….”

곤란한 기색을 감추는 대신, 선생님은 지금 이 시달의 원인을 슬그머니 가르쳤다.

“너 진짜 나중에 내가 죽일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애들치곤 제대로 된 애들 없더라.”

“팔다리를 부러트리고 등에서 피가 나도록 채찍질할 거야!”

“어머나! 역시 수도 출신은 천박하다니까.”

입이 거칠다 못해 더러운 사내아이와, 그 사내아이를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

“얘들아, 이제 그만 싸워….”

그 둘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채 훌쩍이는 담임 선생님.

“이익! 야! 쟤 죽여 버릴 수 있지?”

“죽이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입 더러운 사내아이의 옆에 앉은 검은 정장의 사내.

“델라트 학생이 부른 변호사예요.”

아스가 말했다.

“저 학생이 아가씨한테 시비를 걸었나 봐요. 아가씨가 무시하고 지나가니까, 머리를 잡아당겼다고….”

“뭐라고?”

듣고도 믿지 못한 노아가 선생님들을 둘러봤다.

“…….”

선생님들은 송구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노아는 기가 막혔다.

철부지 소년의 장난이라기엔 도가 너무 지나쳤고, 아까부터 내뱉는 말들도 악의가 가득했다.

“델라트 가문의 가정교육이 장난 아니군.”

노아에게 귓속말하는 레토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우린 저렇게 키우지 말자.”

“…….”

노아는 대답 대신에 레토의 배에 팔꿈치를 가볍게 먹였다.

뒤에서 쿨럭하는 소리를 무시하며 클라레를 불렀다.

“클라레.”

“언니!”

한참을 으르렁거리던 클라레가 노아를 보자마자 품에 안겼다.

“너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응!”

클라레가 야무지게 답했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했어.”

얄밉게 피하면서 상대를 패는 방법. 할머니가 집에 있을 때면 항상 가르쳐준 호신술이었다.

그제야 노아는 클라레의 상태가 멀쩡한 걸 확인했다. 잡아당겨졌다는 머리만 좀 헝클어진 거 빼고는 멀쩡했다.

반면 델라트 경의 아들은 상대적으로 심각했다.

머리는 새집처럼 엉망이고, 코피도 흘렸는지 옷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손등엔 손톱에 긁힌 흉도 있었다.

“보호자십니까?”

노아가 고개를 드니, 변호사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델라트 가문의 고문 변호사입니다.”

명함을 건네는 변호사의 눈동자가 노아를 가볍게 훑었다.

색이 선명한 금발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수도에서도 보기 드문 고아한 미인의 용모.

“그,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초입을 살짝 더듬은 변호사의 목이 빠르게 붉어졌다.

“…….”

그리고 이를 알아챈 레토의 표정은 눈에 띄게 싸늘해졌다.

“아무래도 아이들 간의 싸움이라기엔, 저희 도련님께서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그쪽 도련님께서 제 여동생에게 상당히 무례한 언행을 보인 것 같습니다.”

노아는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었던 델라트 학생의 욕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은 더더욱 아니고, 그 말을 제 동생이 들을 이유도 더더욱 없죠.”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의 실수….”

“아아, 댁 도련님이 욕한 건 실수고, 내 동생이 반격한 건 고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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