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45)

7.

잘 쓴 편지를 네모나게 접어서, 돌고래가 그려진 파란색 봉투에 넣었다.

봉투 겉면을 혀로 두 번 날름한 뒤에 꾸욱 눌러 닫았다.

“힝, 이거 내가 가장 아끼는 건데…!”

잠시 고민하던 클라레는 결국 아끼던 식칼토끼 스티커를 봉투에 붙였다. 정말 큰 각오였다.

“아가씨! 이제 학교 가야죠!”

계단 아래서 아스가 불렀다.

“으응!”

책가방과 편지 봉투를 챙긴 클라레가 거실로 내려왔다.

“아스, 이거 부쳐 줘!”

“큰 주인님께 보내시는 거죠?”

“가장 빨리 도착하는 거로!”

클라레는 책가방을 두르고, 때가 조금 묻은 운동화를 야무지게 고쳐 신었다.

“근데 언니는?”

클라레가 물었다.

“작은 주인님은 벌써 가셨죠.”

아스가 어깨에 둘러멘 가방에 편지를 넣은 뒤에 클라레의 신발 끈을 한 번 더 고쳐 줬다.

“에이, 같이 나가지!”

클라레가 입술을 삐죽이며 섭섭한 티를 냈다.

“중요한 손님이 방문한다고 일찍 출근하셨어요. 한동안은 그러실 거라고 하네요.”

“혹시 중장 아저씨가 언니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에요.”

밖으로 나온 아스는 자전거를 꺼냈다.

뒷자리 보조석에 클라레를 앉힌 뒤, 자전거를 끌고 나와 완만한 언덕길을 내려갔다.

“아가씨는 작은 주인님께서 그분과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으음….”

잠시 고민하던 클라레가 고개를 부웅부웅 가로 저었다.

“라디오 사연에서 들었는데, 못된 남자는 좀 굴러야 한대.”

그러니 아저씨도 더 굴러야 해!

아스는 앞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아무래도 일주일 전에 방송된 ‘전남편의 뒤늦은 후회’ 편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전거는 금방 언덕을 내려왔다. 아스는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았다.

“근데….”

클라레가 아스의 등에다 말했다.

“학교에 가서 언니랑 아저씨 연애한 거 자랑해도 돼?”

“안 돼요.”

“그럼 뭘 자랑해!”

“저번에 받은 식칼토끼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면 되죠.”

“그건 너무 약해!”

클라레가 찡찡거렸다.

“어제 리리네 작은 아빠가 돈 빌려달라고 막무가내로 찾아왔다가, 리리네 엄마한테 처맞았다고 했단 말야!”

저도 그런 걸 자랑하고 싶다며 클라레가 입술을 대문짝만큼 내밀었다.

‘이 동네 가정교육은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스는 조금 더 서둘러 자전거를 밟았다.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

왕실 기사단은 교류 차원으로 방문한다고 연락한 지 고작 하루 만에 도착했다.

이는 해군 입장에서 정말 무례한 일이었다.

멋대로 출발하고 나서 뒤늦게 연락한 것도 문제지만, 기사단의 방문으로 해군 내부의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거기다 이딴 짓으로 은근히 조직 간에 서열을 만들어 강조하는 꼴이었다.

왕국의 군사 조직은 국왕 아래 모두 동일한 위치라는 법문까지 있다는 점을 보면, 얼마나 예의 없는 짓인지 알 수 있었다.

“귀족은 다 저러나?”

레토가 항구 너머 푸른 바다를 응시한 채 말했다.

“무슨 말씀이 그렇습니까.”

옆에 함께 있던 아이스 중령이 헛웃음과 함께 답했다.

중년에 접어든 그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자랑했다.

“중장님도 귀족이시면서. 오케아누스는 천하의 델라트도 명함을 못 내밀 가문이지 않습니까.”

“난 약간 내놓은 자식이거든.”

“불효막심한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이스 중령이 허허 웃었다.

“어쨌건 우리의 고귀하신 왕실 기사단은 지금 뭘 하고 있다지?”

“피스트 준위가 현재 응대하고 있을 겁니다.”

레토의 보좌관인 피스트 준위는 지금 울며 겨자 먹기로 불청객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울지나 않으려나.”

“준위가요?”

“우리 수도 깍쟁이들이.”

“하하….”

아이스 중령이 맥 빠진 웃음으로 대신 대꾸했다. 확실히 그쪽은 가능성이 좀 있었다.

대화를 마친 레토가 뒤를 돌아봤다.

“전부 모였나?”

그의 앞에는 부대원들이 열 맞춰 서 있었다. 모인 부대원은 10명이었고, 여기에 레토와 아이스 중령까지 합치면 총 12명이었다.

해군 본부 예하 특수 함선 사령부가 전부 모였다.

인원 점호를 마친 뒤, 레토가 일정을 설명했다.

“새 함선들이 도착했다.”

그가 눈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네모난 가방 여섯 개가 쪼르르 줄지어 서 있었다.

단단한 재질에 새까맣게 칠한 가방은 어딜 보나 평범한 서류 가방이었다.

“호명한 이들은 새 함선을 받아 착용하고, 나머지는 호위함에 승선한다. 승선한 대원은 시범 운행을 관찰하여….”

“하늘에 계신 자비로운 어머니시여…!”

아미가 성호를 그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이 가련한 여인이 배를 타게 해 주세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미는 호명된 명단에 포함되었다.

“빌어먹을 신 같으니.”

가방을 들고 추적추적 돌아오는 아미는 지인 말 듣고 투자했다고 쪽박을 차 버린 허망한 개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마찬가지로 호명된 노아가 그 옆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어두운 철로 만든 것 같은 보호구 모양의 함선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네 전력이 대단하단 뜻이니까. 잠수함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 없고.”

“돈이나 더 주고 시키면 좋겠다….”

“속물적인 녀석 같으니.”

대충 대답한 노아가 함선을 꺼내 옷 위에 착용했다.

눈 오는 날에 신는 둥그런 설피 같은 것은 신발 밑창에, 그리고 보호대 같은 것들을 손목과 발목, 무릎 등에 착용했다.

착용한 함선을 점검한 뒤, 노아가 앉은 채로 다리를 하늘 높이 들어봤다.

‘전보다 가벼워졌나?’

자리에서 일어나 제 자리를 몇 번 걸어 봤다.

확실히 경량화가 되었다. 노아는 이번 신형 함선이 꽤 만족스러웠다.

착용을 마친 대원들이 다시 한곳에 모였다.

나머지 대원들은 아이스 중령의 통솔하에 호위함에 올라 먼저 출항했다. 선두에 물결이 부딪치며 갈라지는 물소리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마탑 측에서 보낸 전달사항이 있다.”

남은 이들을 통솔하게 된 레토 역시 함선을 착용한 상태였다.

“이번 신형 함선은 무게를 경량화한 탓에 이전보다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대원들은 전달사항을 빠르게 머릿속에 숙지했다.

“잠수함은 수중 진입 및 유지가 전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하니 주의하도록.”

아미를 비롯한 또 한 명의 잠수 대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함선은 호위함과 합류한 직후부터, 함정은 내 신호에 맞춰 잠수한 후부터 평균 속력으로 달린다.”

예! 짧은 대답이 우렁찼다.

“벨로 대위.”

레토가 노아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플랜시 소장을 아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노아는 꽤 당황했지만, 이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 뭐 당연한 것을 물어보느냔 듯이 노아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레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지난해에 역임하신 군수 사령관이지 않습니까?”

“안면은 없고?”

노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두 번 정도 지나가면서 뵌 것이 전부입니다.”

“…….”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별일 아니라며 돌아서는 것치곤, 레토의 얼굴엔 석연찮은 기색이 남아 있었다.

“…….”

하지만 노아는 그런 레토를 바라만 볼 뿐, 끝내 묻지는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니 기다리고 있던 아미가 인중을 내린 채 히죽거리고 있었다.

“왜 부른 거래? 너보고 사랑한대?”

“치티아 중위, 머리 박아.”

“무슨 말을 못 하냐!”

아미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곧장 일어났다.

“…우린 공사 구분은 원래 확실히 했어.”

노아가 통신기구를 장착하며 말했다. 조그마한 귀마개 같은 것을 귀에 건 뒤에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자 미세한 잡음이 지직 울렸다.

이어 삐- 소리와 함께 달칵, 하고 울렸다.

노아가 통신기구에 대고 말했다.

“해군 예하 특수 함선 사령부 소속 노아 벨로 대위, 통신 확인을 요청합니다.”

잠시 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벨로 대위, 통신 확인했다.]

호위함에 올랐던 아이스 중령이었다.

[본부 기준으로 3해리 되는 위치다. 너희 쪽으로 곧 위치 송신할 테니, 출항하거든 경로 따라 합류하면 된다.]

통신을 마친 노아가 레토에게 눈짓했다.

“전원!”

레토의 구호에 대원들이 부두 앞에 섰다.

수평선 저 멀리 있는 바다는 하얗게 반짝이고 있지만, 항구의 바닷물은 이상할 정도로 꺼무칙칙했다.

하지만 그 속에도 일말의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곧 대원들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해군본부는 해군을 총괄 지휘하는 최고 기구이다.

그리고 본부 예하엔 여러 부대가 편제되어 있는데, 이중 가장 최근에 신설된 곳이 바로 ‘특수 함선 사령부’였다.

일명 ‘특함’으로 불리는 이곳엔 13명의 소수 정예만이 소속되어 있었다.

규모는 왕국군을 통틀어 가장 작지만, 신설 이후 가장 우수한 업적을 최단기간에 달성한 곳이기도 했다.

“매번 느끼지만….”

아미는 해면에 비친 제 모습에 감탄했다.

“마법이란 거, 정말 대단해.”

바다 위를 유유자적 걷고 있는 모양새가 꼭 신의 기적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그런 허황된 신화 같은 힘이 아니었다.

마탑이 폭발하며 이뤄낸 결과였다.

“어떻게 이 대단한 기술로 100년 전에는 불 지피고 싸웠던 걸까?”

“그러니까 아드벨로가 대단한 겁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호네스가 눈을 반짝였다.

“아드벨로 출신의 마탑주께서 마탑을 폭발시킨 덕에, 지금의 오늘이 있는 거니까요.”

“말하는 게 약간 사이비 같다?”

노아가 호네스를 걱정했다.

그러나 저 말이 맞았다.

지금 이 모든 건 마탑이 지난 100년간 일궈낸 혁명의 결과물이었다.

마법은 자연현상을 어쭙잖게 따라 하는 원시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하여 삶의 질을 높였다.

그리고 아들라보르 왕국에서 가장 발달한 마법 분야가 바로 군사 영역이었다.

지금 이들 대원들이 착용한 ‘개인 함선’이 바로 아들라보르 마법 연구의 정수였다.

특수 함선 사령부는, 바로 아드벨로 가문과 마탑이 개발한 고도의 마법 기술로 싸우는 마법 전투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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